‘잘나가다가…’ 일동제약에 무슨 일이?

‘별안간’ 시험대 오른 오너 3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일동제약의 성적표가 심상치 않다. 흑자 행진을 달리던 실적은 적자로 반전됐다. 영업이익만 60% 넘게 추락했다. ‘비오비타’와 ‘아로나민 골드’로 친숙한 일동제약. 지난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윤웅섭 일동제약 사장

일동제약은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제약회사다. 창업주는 고 윤용구 회장. 지난 1941년 극동제약으로 첫발을 뗐다. 일동제약은 장 질환 치료제 개발에 전념했다. 창업주 의지가 강했는데 이는 모친이 장염으로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연에 기인한다. 일동제약은 1959년 국내 최초 유산균제 ‘비오비타’를 출시했다.

80년 역사
중견기업

회사는 다양한 유산균 제품을 선보였다. 일동제약은 국내 프로바이오틱스 분야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2016∼2018년 호실적을 기록하는 등 상승세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연결 기준 매출액은 매년 증가했다. 2013억원, 4606억원, 5039억원이었다.

영업이익도 궤를 같이했다. 148억원, 254억원, 283억원 순으로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126억원, 198억원, 127억원 등이었다.

지난해 실적은 뒤집혔다. 매출액은 5174억원이었다. 직전년도에 비해 2.8% 소폭 상승했다. 문제는 영업이익인데 무려 68.1% 감소했다. 280억원대서 90억원으로 주저앉았다. 127억원 당기순이익은 ‘-10억원’이 됐다.


지난해 일동제약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측은 주요 원인으로 ‘큐란 판매 중단’과 ‘개발비 증가’를 꼽았다.

‘큐란’은 일동제약 주력제품이다. 위산과다 또는 속쓰림에 효과적인 위장약이다. 큐란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홀로 2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생산중단품목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시장서도 퇴출됐다.

발단은 ‘라니티딘 사태’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지난해 9월 라니티딘 제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라니티딘은 의약품 성분이다. 위산 과다 등에 쓰인다. 일동제약 큐란에도 해당 성분이 포함돼있었다.

앞서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잔탁’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유산균 선두주자 실적 곤두박질
캐시카우 공백 ‘어떻게 메우나’

GSK는 다국적 제약사다. 잔탁은 GSK가 제조한 위장약이다. 잔탁은 라니티딘을 원료로 사용한다. 라니티딘을 원료로 하는 위장약에 NDMA가 발견된 것이다. NDMA는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NDMA를 불순물로 지정한 바 있다.

식약처는 국내서 유통되고 있는 라니티딘 사용 의약품에 빗장을 걸었다. 269개 품목은 제조·수입·판매가 중단됐다. 라니티딘 제제는 국내에서만 144만명이 복용하고 있었다. 국내 위장약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라니티딘 원료 제품을 판매한 제약사들은 후폭풍을 맞았다. 관련주들이 하락하는 등 타격을 받았다. 일동제약 큐란 역시 불똥을 피할 수 없었다.

큐란은 라니티딘 단일제다. 큐란은 단일제 위장약 가운데 가장 높은 매출을 자랑했다. 단일제 시장 점유율도 40%였다. 큐란은 잔탁 복제약이지만 매출은 6배 더 높았다.
 

▲ 일동제약 큐란

일동제약은 탈출구 찾기에 힘썼다. 일례로 동아에스티와 ‘가스터’를 공동 판매했다. 가스터는 소화성궤양 치료제다. 발암우려물질 성분이 없는 파모티딘 계열이다. 하지만 빈자리는 컸다. 대체재로 메꾸기에 한계가 있었다.

큐란 매출액은 2016∼2018년 99억원, 237억원, 222억원이었다. 식약처 처분이 내려지면서 큐란은 일동제약 매출항목에서 제외됐다. 큐란은 지난해 3분기(이하 3분기) 보고서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또 다른 이유는 개발비 증가다. 일동제약은 매출 10%가량을 연구비에 쏟는다. 비용 역시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2016∼2018년 연구 개발비는 212억원, 483억원, 547억원 등이다. 일동제약은 지난해 3분기에만 409억원을 썼다. 2017년 한 해 개발비와 맞먹는다. 업계 안팎에선 조만간 11%를 넘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일동제약 연구개발팀 규모는 상당하다. 인력만 300명이 넘는다. 모두 23개 팀이다. 세부적으로 중앙연구소 10개 팀, 개발부문 10개 팀, 생산부문 3개 팀이다. 신약·원료·신제품 등을 개발한다.

주력 제품
퇴출 왜?

일동제약은 연구개발로 손실을 보기도 했다. 일동제약 3분기 보고서에서 손상차손이 언급됐다. 개발 프로젝트 중단으로 발생한 손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MR정 외 1건’에 대한 임상대상자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 실험 결과도 부진했다. 결국 사업성이 떨어졌다. 일동제약은 관련 금액 54억원을 모두 감액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동제약은 라니티딘 사태를 정면으로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도 “연구개발에 상당한 재원을 쏟는 데 기대를 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큐란을 대신할 새로운 매출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모든 연구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큐란 대체품을 찾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일동제약은 올해에도 연구개발에 힘을 싣는다. 사측은 실적 하락 고시 당일에 주주총회 소집일을 알렸다. 여러 안건 중 ‘사업목적 추가’가 있었다. 일동제약은 ‘연구개발 및 연구개발 용역업’을 새롭게 추가할 예정이다. 주총은 내달 20일 열린다.

그룹 차원서도 연구개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일동제약그룹 지주사 일동홀딩스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신규 후보물질 발굴’을 언급했다. 신약개발 속도를 올리겠다는 의지다. 그룹은 지난해 신약개발 계열사를 설립했다.


주총에선 대표이사 재선임 여부도 결정된다. 당사자는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이사 사장.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재선임이 유력하다. 일동제약 실적을 간과하기 어렵다. 다만 사령탑 교체는 큰 충격이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경영권 다툼 가능성도 적다.

지분 상황은 안정궤도에 있다. 윤 사장은 일동제약그룹 ‘꼭대기 회사’ 최대주주다. 일동홀딩스 특수관계자 지분은 절반이 넘는다. 이미 윤 사장은 4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평가도 나쁘지 않다. 결국 변화보단 안정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
 

윤 사장은 오너 3세다. 일동제약 일가 장남이다. 창업주 윤용구 회장 손자다. 아버지는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이다. 그는 2005년 일동제약 상무로 입사했다. 이전에는 글로벌 회계법인 KPMG 등에서 회계사로 근무했다.

윤 사장은 업무프로세스혁신 팀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쳤다. 그는 2013년 일동제약 대표이사 부사장이 됐다. 이듬해에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일동제약은 각자 대표체제였다. 일동제약은 2016년 8월 지주사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윤 사장은 비로소 단독대표에 오를 수 있었다.

연구개발
투자 지속

그룹 지배력은 확고하다. 윤 사장은 씨엠제이씨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배구조는 ‘윤 사장→씨엠제이씨→일동홀딩스→일동제약’으로 이어진다.


일동홀딩스는 일동제약을 비롯해 8개 계열사 최대주주다. ▲일동에스테틱스 ▲일동생활건강 ▲일동바이오사이언스 ▲일동히알테크 ▲루텍 ▲유니기획 ▲아이디언스 등이다. 일동제약은 일동이커머스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윤 사장은 일동제약·씨엠제이씨 대표이사다. 일동홀딩스·일동바이오사이언스·루텍 등에선 이사로 재직 중이다. 눈길이 가는 계열사는 ‘일동생활건강’과 ‘일동히알테크’다.

일동생활건강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회사는 이온수기 도소매와 건강식품 판매업을 영위한다. 전자공시시스템서 확인할 수 있는 일동생활건강 보고서는 2017년까지다.

일동생활건강은 그해 27억원 매출을 올렸다. 직전년도에 비해 14.2%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25.8% 줄였지만 14억원 적자를 봤다. 당기순손실만 17억원이다. 자본은 같은 기간에 비해 5배 이상 감소, 결국 ‘-21억원’으로 돌아섰다.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은 ‘계속기업으로서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회계법인은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많은 대목을 지적했다.

그룹은 일동생활건강 단기차입금에 연대보증을 제공했다. 일동제약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일동생활건강은 한국씨티은행서 30억원을 끌어 썼다. 일동제약과 일동홀딩스, 일동바이오사이언스, 일동히알테크는 30억원에 대해 연대보증을 구축했다.

일동히알테크도 완전자본잠식 기업이다. 회사는 히알루론산(피부에 존재하는 생체 합성 천연 물질)을 전문으로 생산·판매한다.

일동히알테크 매출은 오름세다. 2016∼2018년 5억원, 15억원, 25억원으로 성장했다. 다만 영업손실은 7억원, 19억원, 29억원을 나타냈다. 당기순손실 역시 7억원, 19억원, 45억원으로 부풀었다.

그룹 지배구조 공고히 구축
자본잠식 부실 계열사 눈길

일동히알테크는 2018년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직전년도 1억원 자본은 ‘-44억원’으로 추락했다. 부채가 증가하는 속도보다 자본이 빠르게 감소했다. 당시 부채는 5.92% 늘어난 반면 자본은 300배 이상 줄었다.

배경은 재고자산과 이연법인세자산이다. 일동히알테크는 재고자산을 폐기해 13억원가량 손실을 봤다. 이연법인세 자산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연법인세 자산 인정 여부는 ‘기업회계로 계산한 법인세’와 ‘세무회계로 계산한 법인세’에 달려 있다. 전자가 더 적을 경우, 그 차액을 납부할 세금서 공제 받을 수 있다. 결국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과세 소득 발생 가능성이 낮다면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적자로 세금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세금을 공제 받지 못한다. 일동히알테크 감사를 진행한 회계법인은 ‘미래과세소득 불확실’로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하지 않았다. 반면 직전년도에는 8억원가량을 인정받았다.

그룹 계열사는 일동히알테크에도 연대보증을 제공했다. 일동제약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일동히알테크는 하나은행서 126억원을 빌렸다. 일동제약과 일동홀딩스, 일동바이오사이언스는 해당 금액에 대해 보증을 섰다.
 

▲ 일동제약 아로나민 골드

내부거래 계열사도 눈에 띈다. 씨엠제이씨는 그룹 핵심사로 실적보다 지배구조서 중요한 회사다. 윤 사장은 씨엠제이씨로 그룹 지배력을 쥐고 있다. 씨엠제이씨 주종목은 ‘도소매’다. 2016∼2018년 매출액은 56억원, 45억원, 45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25.1%, 33.45%, 39.76%에 달하는 ‘알짜회사’다.

씨엠제이씨는 매출 상당액을 그룹서 냈다. 계열사들로부터 상당한 일감을 받았다. 모두 6곳이 일감을 제공했다.

같은 기간 내부거래 비중은 88.42%, 83.09%, 92.68%다. 56억원 중 49억원, 45억원 중 37억원, 45억원 중 41억원 수준이다. 일동제약이 3년 동안 가장 많은 일감을 제공했다. 씨엠제이씨는 일동제약을 통해 83억원을 벌었다. 이 외에도 일동홀딩스와 루텍이 각각 25억원과 11억원 매출을 올려줬다.

부실기업
내부거래

씨엠제이씨는 이전까지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지만 2017년부터 배당이 시작됐다. 그해 배당금액은 5억4250만원이었고 배당성향은 6.23%였다. 이듬해인 2018년에도 배당이 이뤄졌다. 1억5500만원에 배당성향은 14.90%였다. 2년간 배당액은 모두 6억2775만원이다.

씨엠제이씨 최대주주는 윤 사장이다. 보유 지분만 90%다. 씨엠제이씨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배당이 실시된 기간 동안 윤 사장에게 돌아간 금액은 모두 6억2775만원이다.

<일요시사>는 일동제약에 관련 사안에 대해 문의했지만 “담당자에게 전달하겠다”는 관계자의 말을 끝으로 아무런 회신도 받지 못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열 정리’ 일동후디스는 지금…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은 일동제약 평사원으로 시작했다. 그는 1960년 일동제약 입사 1년 만에 생산부장을 맡아 ‘아로나민 골드’를 개발했다. 이 회장은 1984년부터 2010년까지 26년간 일동제약 대표를 맡았다. 이 회장은 제약업계서 ‘샐러리맨 신화’로 불린다.

일동제약은 1996년 남양산업을 인수했다. 이후 간판을 일동후디스로 바꿨다. 회사는 일동제약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이 회장은 일동후디스를 직접 맡으며 그룹과 동반성장을 지속했다.

이 회장과 일동제약은 59년 만인 지난해 결별했다. 일동후디스는 일동홀딩스 계열서 분리돼 완전한 ‘독립경영 체제’를 갖췄다.

계열분리는 주식 교환으로 이뤄졌다. 일동홀딩스는 이 회장에게 일동후디스 주식 35만1000주를 126억원에 처분했다.

동시에 일동홀딩스는 이 회장 측 일동제약 주식 113만3522주를 227억원에 매수했다.

이 회장은 기존 일동후디스 지분 21.48%서 51.39%까지 끌어올리며 최대주주가 됐다. 일동제약 역시 지분을 높이며 그룹 지배력을 한 단계 높였다.

이 회장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서 “분리과정서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며 “지금의 일동을 내가 일궜다는 애착이 있어 일동도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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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