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획특집]기축년, 봄을 찾는 사람들 ②재계 범털들의 히든카드

MB가 풍운아를 만났을 때…‘미워도 다시 한번?’


재계 ‘잠룡’으로 분류되는 거물급 ‘범털’들이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다. 족쇄 풀린 전직 오너들의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는 것. 한때 재계를 호령하다 일장춘몽으로 ‘강퇴’당한 재계 스타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하나같이 여전히 사업에 대한 열정과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꿈틀대고 있다는 근황만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2009년 부활이 점쳐지는 재계 풍운아들의 패자부활전을 들여다봤다.

족쇄 풀린 전직 오너들 ‘부활 날갯짓’…러브콜 쇄도
불황 틈타 패자부활전 본격 태세 “옛 명성 되찾을까”
마당발 인맥 등 노하우 재활용
물밑접촉 개시…사전 작업 완료


정부는 지난해 8월 34만여명에 대한 8·15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여기엔 포함된 재계 전·현직 총수들은 모두 14명. 정부는 면죄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을 풀어줬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게 조건이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재계 거물들의 노하우가 꼭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물론 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랬다.

“신화창조 재조명…
왕성한 활동 주목”

이 대통령은 사면을 앞두고 “대기업들도 투명윤리 경영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사면은 대기업들이 보다 공격적인 경영으로 투자를 늘리고 중소기업과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로 상생 협력해 달라는 뜻”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가 경제살리기 일환으로 내놓은 ‘특단의 대책’에 족쇄가 풀린 총수들은 경영 복귀와 함께 즉각 화답했다. 그룹별로 속속 투자와 고용 확대 방안을 내놓고 있는 것. 당시 세상 밖으로 나온 재계 범털들의 행보도 같은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재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다. 최 전 회장의 거취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그중에서도 최 전 회장의 복귀는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1970년대 중동건설 붐을 일으키면서 고속성장한 동아건설은 1980년대 현대건설에 이어 도급 순위 2위의 ‘건설명가’ 반열에 올랐고, 1990년대 초엔 리비아 대수로 신화를 일궈내며 현대건설, 대우건설과 함께 ‘건설 트로이카’를 이끌었다.

그러나 동아그룹은 IMF 때 무리한 차입경영의 부담을 이기지 못한 채 부도를 냈다. 최 전 회장은 1998년 동아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분식회계, 배임, 불법 사기대출 등이 드러났고 결국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04년 이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그는 지난해 8월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최 전 회장의 사면은 벌써 세 번째다.
최 전 회장의 올해 나이는 66세. 여타 총수들과 비교해 충분히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기다. 최 전 회장은 2005년 7월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난 이후 줄곧 부활 의지를 불태웠지만, 안방을 재탈환하기 위한 ‘재기의 꿈’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최 전 회장은 그동안 “직책이나 돈에 연연하지 않고 백의종군해 리비아 등 대규모 해외공사를 수주할 수 있다”며 경영일선 복귀를 희망해 왔다.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도 옛 명성을 되찾을지 주목되는 인사다. 국세청이 발표한 ‘1991년도 100대 납세자 리스트’를 보면 당시 종합소득세 납부 1위는 안 전 회장이다. 그는 신고소득 47억원, 납세액 23억원으로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부호들을 제쳤다. 안 전 회장의 부활이 시선을 끄는 대목이다.
1984년 나산그룹을 설립한 안 전 회장은 1990년대 신흥재벌로 등극했다. 하지만 안 전 회장은 1994∼2000년 부도난 ㈜나산의 자금 40억원을 차명계좌로 빼돌리는 등 회삿돈 290억원을 횡령하고 계열사 등에 2359억원을 부당 지원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역시 지난해 8월 사면된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도 부활의 날갯짓을 쉽사리 접지 않고 있다. 나 전 회장 역시 1990년대 재계 샛별로 등장했지만, 1998년 한남투신을 인수한 뒤 2945억여원을 부당 지원한 혐의로 구속,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나 전 회장 일가의 재기 노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의 가족과 가신들은 이미 기린과 서현개발 등의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나 전 회장도 모 코스닥업체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김영진 전 진도그룹 회장, 엄상호 전 건영그룹 회장,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 김선홍 전 기아차 회장,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등 한때 재계를 호령하다 일장춘몽으로 강퇴당한 재계 범털들도 온갖 논란 속에서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크 또 노크’
두드리면 열릴까

권력형 비리인 이른바 ‘게이트’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풍운아들의 복귀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다시 주목받고 있는 최규선, 이용호, 진승현 씨 등이 주인공이다. 권력의 그늘 밑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모두 저마다 ‘복귀 히든카드’를 쥐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인물은 최규선 씨다. 국민의 정부 때 ‘최규선 게이트’의 장본인 최씨는 2002년 DJ의 3남 홍걸 씨와 정치권 커넥션을 동원해 온갖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2006년 2월 만기출소했다.
이후 지난해 국내 굴지의 기업들과 함께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마당발 인맥’이 총동원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측근들도 그의 해외 거물 네트워크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자원 외교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지만, 최씨는 “아직은 전면에 나설 단계가 아니다”라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용호 게이트’당사자인 이용호 씨도 이미 재기를 위한 물밑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G&G그룹 회장 당시 이씨는 계열사의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주가를 조작한 뒤 수사 무마를 위해 검찰, 국가정보원, 정치인 등에게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2005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이 확정됐지만, 2007년 3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이씨 측근에 따르면 그는 출소 직후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았다. “돈을 댈 테니 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이다. 또 “경영자나 자문으로 와 달라”는 제의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그의 거처는 확실치 않다. ▲서울 미아동 A호텔 나이트클럽을 소유하고 있다 ▲코스닥상장사 I사의 실질적 오너다 ▲황우석 박사 등과 접촉해 신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등 그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진승현 게이트’ 진승현 씨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진씨는 2000년 2300여억원을 불법대출 받는 과정에서 정·관계에 로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씨는 이 사건으로 2002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예정대로라면 출소해야 할 시점. 그러나 수용과 병원 치료를 반복해 형기가 늘어난 그는 올해 출소를 앞두고 있다.
진씨는 앞서 형집행정지 상태에서 코스닥 상장사의 배후 실세로 활동하며 문어발식 기업인수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됐던 측근들을 통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진씨 회사에 몸담았던 인물들이 여러 코스닥 상장사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진씨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며 “진씨가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국내 주식시장과 해외시장에서 조달해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고 귀띔했다.

현직에서 ‘화려한 부활’을 노리는 거물들도 적지 않다. 바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이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사장 출신인 진 전 장관은 ‘삼성 신화’를 일궈낸 국내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 삼성의 옷을 벗은 것은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2006년 3월까지 3년 동안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사임 뒤 2006년 5·31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진 전 장관은 같은해 11월 속칭 ‘진대제 펀드’로 불리는 IT 전문 투자사인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SIC)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진 전 장관의 행보는 재계 최대 관심거리였다. 여러 기업들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냈다. 친정인 삼성 복귀 가능성도 고개를 들었고, 하이닉스 사장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다. 진 전 장관은 2007년 5월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하이텍 경영고문 역할을 맡았지만 불과 7개월 만에 물러나기도 했다.
진 전 장관은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 참여해 경제참모 역할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진 전 장관의 올해 행보가 더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박 부회장도 부활을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가 1991년 설립한 팬택계열은 2005년 매출 3조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도 잠시. 2006년 말부터 자금난이 불거지더니 급기야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지금 사정은 다르다. 팬택계열은 당시의 위기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듯 보인다. 박 부회장은 경영 효율화를 위해 뼈를 깎는 자구책을 동원했다. 사옥을 팔았고, 1000여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임금 삭감, 상여금 반납, 담보 제공 등 허리띠도 졸라맸다. 박 부회장도 2500억원 상당의 지분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 결과 팬택계열은 2007년 3분기부터 연속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조원을 넘어섰고, 휴대전화를 1000만대나 팔았다. 놀라운 실적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말 팬택계열 대표이사로 재선임된 박 부회장은 “팬택계열의 기업개선작업이 2011년까지 예정돼 있지만 이르면 내년 워크아웃 조기 졸업이 자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기 앞두고 정중동
컴백 비난도 쏟아져

재계 범털들의 컴백에 대해 비난도 적지 않다. 불법과 부실화 장본인이란 우려에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복귀나 재기를 노리는 대부분의 전직 총수들은 거액의 지방세를 미납하거나 추징금을 아직 납부하지 않았다”며 “일부는 거액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을 부도내거나 각종 혐의로 구속된 오너들이 사면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방만경영 또는 부실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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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