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접수한 <기생충>의 아이러니

봉준호와 <기생충>이 만든 역설적인 현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한국 영화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사가 생겼다.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서 무려 4관왕을 차지한 것. 자본주의의 빈틈을 꼬집은 <기생충>은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제작부터 ‘오스카 캠페인’까지 지원한 국내 콘텐츠 분야 1위 기업인 CJ ENM이 있다. CJ ENM은 그간 줄곧 외쳐온 ‘해외 경쟁력’을 <기생충>을 통해 입증해보였다. 빈부격차의 아픔을 전달한 <기생충>이 결과적으로, 대기업이 내세운 주장의 결실이 된 아이러니한 현실을 짚어봤다.
 

▲ 오스카마저 접수한 봉준호 감독

지난해 5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기생충>은 전 세계 영화 관련 155개 시상식서 174개의 상을 휩쓸었다. <기생충> 이전 영화들이 유수의 영화제서 거둬들인 상의 총합(약 150개)보다도 월등히 많은 수치다. 전 세계 영화인은 물론 비평가들마저도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후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국제영화상과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석권했다. 

한국영화 
100년 쾌거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받은 작품은 1955년 <마티> 이후로 <기생충>이 두 번째다. 비영어권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도 최초며, 아시아계 최초 각본상 수상 등 최초로 세운 기록도 즐비하다. 전 세계적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기생충>이 남긴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전망이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영화의 힘에 있다. ‘익숙한 것에서 낯섦을 추구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의도가 영화 곳곳에 놓여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영화 전문잡지인 <카이에 뒤 시네마>서 ‘삑사리의 미학’이라고 할 정도로 영화 초반부터 후반까지 예측대로 흘러가는 부분이 없다. 영화의 중점적인 사건이 예고 없는 실수와 실책으로부터 시작해서, 또 다른 우연을 맞이하며 나아간다. 그런데도 개연성은 탄탄히 유지된다. 

모든 국가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부익부 빈익빈’을 주제로 한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도 깬다. 매우 중립적인 관점으로 부자와 빈자를 바라본다. 이전부터 부자는 옳지 못한 행위로 부를 축적하는 나쁜 인물로 묘사됐으며, 가난한 자는 선하거나 게으른 인물로 표현됐다.

하지만 극 중 부자로 나오는 박 사장(이선균 분)은 성실한 노력으로 부를 쌓았으며, 딱히 악한 면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아내 연교(조여정 분)는 누구보다 순진하다. 빈자로 등장하는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게으르지도 않다. 그러면서 문서를 위조하는 것이나 남을 속이는 것에 죄의식이 없다. 부자보다 악한 행동을 잘한다.

‘빈부격차’에 대한 기존 ‘영화적 질서’를 두 가족의 이야기로 완전히 무너뜨린 이 영화는 마치 축구 경기처럼 전·후반부로 나뉜 형태로 구성됐다.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의 가족 곁으로 투입되는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로 이어지던 전반부를 지나, 문광(이정은 분)이 돌아오는 기점부터 마지막까지 공포와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를 갖춘다.

<기생충>의 영화 같은 시작과 끝 
전 세계가 인정한 ‘봉준호 장르’ 

풍자와 해학, 드라마와 공포, 스릴러와 미스터리 등 장르의 혼종 형태를 보인다. <기생충>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돌자 한 외신 기자는 “<기생충>은 그냥 봉준호 장르다. 생각하지 말자”라는 말을 남겨 화제를 모을 정도로 <기생충>은 ‘이상한’ 영화다. 

독특한 구성과 장르, 완벽에 가까운 연기 앙상블에 이어 본질에 접근한 주제 의식, 기존 인식을 깬 빈부를 바라보는 관점, 아울러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빈부격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에 가까운 슬픈 엔딩까지, 이 영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완벽한 수준의 작품으로 꼽힌다.

또 봉준호 감독이 보였던 인간존중의 태도 역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각종 시상식서의 그의 수상 소감은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서 미국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를 존경한다는 소감은 전 세계 시청자를 감동시켰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유머와 해학을 섞어 촌철살인과 같은 핵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화법은 그의 영화와 닮아있다. 봉 감독과 함께 그의 뇌에서 나온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던 통역 담당자까지 덩달아 화제에 올랐다. 제작 초기부터 ‘오스카 작품상’으로 귀결되기까지, 그 긴 여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왔다. 

현재 한국 사회 전체가 <기생충>의 쾌거에 취해있다. 하지만 한국 영화 미래는 그리 밝지 않으며 다소 암울하기까지 하다. 박 사장의 잔디밭이 받아내는 태양광과, 기택의 반지하에 겨우 떨어지는 빛의 양처럼 닮았다. ‘포스트 봉준호는 누구인가’라고 했을 때 기대되는 인물이 없다. 이는 감독 개개인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해석된다.

세계가 감동
매력에 흠뻑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개봉한 2003년도에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 식사>,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등이 함께 개봉했다.

이들 감독들은 현재 한국 영화의 거장으로 대표되고 있다. 흥행과 무관하게 당시 영화들은 지금까지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수작으로 회자된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영화 제작자들이 작가주의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일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필성 감독은 유튜브 채널 ‘직격탄’과의 인터뷰서 “그때를 생각하면 서부개척시대 같은 느낌이다. 뭔가 새로운 이야기와 배우, 장르의 영화를 감독이나 제작자, 배우, 투자사 모두가 만들어 내보자는 폭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희 세대 수많은 감독이 데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대기업 중심의 거대 자본 투입과 함께 수많은 멀티플렉스가 생겨나고 국내 영화산업서 경제적 파이가 늘어나면서, 영화는 제작자 중심서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옮겨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작품을 중시하는 풍토서 흥행을 중시하는 풍토로 그 흐름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소위 ‘양산형 영화’로 불리는 클리셰로 점철된 영화들이 한국 영화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는 늘어났지만, 200만서 500만 관객을 모으는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들은 줄어들고 있다. 호평을 받는 영화도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받은 영화는 <기생충>과 <극한직업> <엑시트> <사바하> 정도에 그친다. <벌새>와 <메기> 등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은 대부분 저예산 독립영화계서 탄생했다.

봉 감독이 엄청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한국 영화 위기론’은 지속될 전망이다. 

‘제2의 봉’
찾아보니…

작품 중심서 흥행 중심으로 변화된 풍토 속에서 영화인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대목은 수직 계열화다. 국내에서는 CJ와 롯데가 해당한다. CJ는 영화 유통 플랫폼 CGV와 투자·배급을 하는 CJ ENM을 갖고 있다. 롯데는 롯데시네마와 롯데컬처웍스를 보유하고 있다. 

1938년 미국서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로 세계적으로 제작·배급과 상영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독과점을 막기 위해 스크린 15∼27개를 보유한 멀티플렉스서 한 영화는 최다 4개 스크린만 점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스크린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가 완전 무방비 상태다. 

실제로 4대 배급사로 불리는 영화들은 첫 주에 상영점유율과 좌석점유율이 50%에 육박한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반독과점 영대위)에 따르면 <백두산>은 개봉일 상영점유율 44.5%, 좌석점유율 50.6%를 기록했다. 이는 총 상영작 128편의 상영 횟수 중 44.5%를, 좌석 수 중 50.6%를 차지한 것.
 

반독과점영대위는 “올해만 해도 영화 13편이 스크린을 독과점했고 3사 극장 체인이 매출 97%를 독차지하는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산업 내에서 자율적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정부와 국회가 법과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영화산업은 개봉 후 극장서 벌어들이는 수입 외에는 다른 수입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개봉 후 관람 비용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별히 입소문을 얻고 역주행을 하지 않으면 첫 주에 흥행 여부가 판가름난다. 대다수 스타가 출연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4대 배급사 작품은 작품성과 별개로 각종 영화관으로부터 수많은 스크린을 확보한다.

약 2600개의 스크린서 한 영화가 1800개까지 확보한 예도 있다. 반대로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다양성 영화관으로 밀려나거나, 새벽과 심야에만 대관이 되는 일명 ‘퐁당퐁당 상영’을 하게 된다. <기생충>의 박 사장과 기택 가족처럼 영화계 내 양극화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기대하기 힘든 ‘포스트 봉’ 
영화계 양극화 짚어야 할 시점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CJ와 롯데를 향한 수직계열화 관련 지적은 이전부터 지속됐다. 그럴 때마다 두 기업은 ‘해외경쟁력’을 내세워 수직계열화의 명분을 찾으려 했다. 2016년 열린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서 당시 CGV 대표였던 서정 CJ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사 대표는 “영화는 문화이자 산업적인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물론 문화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서 더욱 산업적인 시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CJ의 이 같은 방침은 4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빈부격차의 슬픈 현실을 노골적으로 직시한 <기생충>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영화계 내 빈부 격차를 더 벌리고 있는 CJ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원받아 자본의 중심에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서 작품상을 수상함으로, 그동안의 CJ 측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우려를 낳게 됐다. 일각에선 이번 수상이 이재현 CJ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지속적인 투자로 인해 얻어진 결실이라는 분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것이 ‘봉준호의 역설’이 함의하는 핵심이다. 
 

▲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직후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봉준호 감독

그런 가운데 봉 감독과 기생충 팀의 쾌거가 순기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영화계에 존재하는 양극화 문제를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봉준호 감독이 일궈낸 쾌거는 한국 영화 역사상 다시 보기 힘들 쾌거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제2의 봉준호 등장이 가능해지려면 영화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환경과 생태계, 곧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영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계급의 문제를 다룬 이 영화가 대기업과 대자본의 후원으로 세계 영화계에 알려진 건 의미 있고, 반가운 현실이지만, 영화산업의 문제나 왜곡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돼야 하지 않겠냐고 여긴다. 쾌거 이면에 독립예술 영화계나 창작자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측면서 다시 한 번 짚어봐야, 봉 감독의 쾌거가 순기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일 뿐?
순기능 하려면…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서 “제작과 투자, 배급이 모두 1000만 관객에 매달리는 현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제2, 제3의 봉준호를 못 만든다”며 “왜곡된 시장과 독점 상황을 바로잡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게 혈맥을 뚫어주는 제도가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화적 화법’ 봉준호의 말말말 

영화를 만드는 능력만큼 봉준호 감독은 뛰어난 언변을 갖고 있다. 전 세계를 비롯해 미국 전역을 돌면서 수백번의 수상 소감 발표 및 기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국 MC들의 수많은 질문에 위트와 재미, 존중과 배려, 솔직한 진심을 담은 그의 말솜씨는 감동적이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이 스피치 강사로도 손색없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으며, 시사평론가 김어준은 TBS <뉴스공장>서 “영화감독이라 그런지 말하는 것도 영화적”이라고 평가했다. 듣기만해도 미소가 번지는 봉 감독의 어록들을 모아봤다. 

▲BAFTA 영국 아카데미 백스테이지 인터뷰 = “어느 나라나 가난한 자와 부자들이 있고 그들 사이에 되게 가파른 계단이 있다. 여기 로얄 앨버트 홀에도 계단이 많아서 땀이 나려고 한다.(웃음) <기생충>도 계단에 관한 영화다. 스토리를 요약하면 계단을 올라가려던 한 가난한 남자가 오히려 계단을 내려가면서 끝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우리 시대가 담고 있는 슬픈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

▲HCAA 할리우드 비평가협회 각본상 수상소감 = “습관이 이상하게 들어 시나리오를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커피숍서 쓴다. 영화가 개봉할 때쯤에 가보면 그 커피숍이 망해서 없어졌다.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는데 조용하다는 것은 장사가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해준 그 커피숍 주인 분들께 이 상을 바친다. 또 저의 파트너가 있다. 오늘 약간 변호사나 회계사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변태적인 아이디어로 가득찬 저의 멋진 공동작가 한진원씨를 소개한다.”

▲피트 해먼드와의 인터뷰 = “정치적인 주제나 사회적인 코멘트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장르적인 흥분 내지는 재미가 있는 영화를 하려고 하는데, 대신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까, 인물들에 대해 파내려갈수록 사회, 역사와 저절로 연결되는 것 같다. 무인도서 평생 사는 사람이 영화를 찍지 않는 이상, 자연스러운 것 같다.” 

▲산타바바라 영화제 감독상 수상 후 인터뷰 = “이 영화와 함께 한국서 혁명이 시작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혁명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혁명은 부숴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혁명의 대상이 뭔지 파악하기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기생충>은 그런 복잡한 상황을 표현하는 영화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소감 = “어렸을 때 영화 공부하며 계속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은 마틴 스코세이지다.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내가 상을 받게 될 줄 몰랐다. (중략) 오스카 측이 허락한다면 오스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개로 나누고 싶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