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논란’ 어느 목사의 항변
‘거짓 논란’ 어느 목사의 항변
  • 장지선 기자
  • 승인 2020.02.17 14:13
  • 호수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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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과천선 했어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외다리 보험왕’ ‘희망전도사로 불렸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10여년 전 쓴 책에서 거짓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후 4년여 동안 그에 대한 소식은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요시사>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조용모 목사 ⓒ문병희 기자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조용모 목사 ⓒ문병희 기자

지난 4일 오후, 자신을 조용모 목사라고 밝힌 이가 <일요시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2016811<일요시사>서 보도한 기사(조용모 목사, 희망전도사 맞아?)를 언급하면서 인터뷰를 자청했다. 자신이 이제 개과천선했으니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지난 11일 서울 양평동의 한 카페서 조 목사를 만났다.

거짓말 딛고

조 목사는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 목발을 둘러매고 한 발로 자전거를 탄다. 인터뷰를 위해 카페로 들어오는 조 목사의 걸음은 느렸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쏟아내는 그의 말은 빨랐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 목사가 되기까지 여정, 그리고 4년 전 밝혀진 거짓말에 대한 항변이 1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4년 전 <국민일보>서 조 목사에 대한 인터뷰를 준비하던 중 그가 학력과 경력을 속였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2005년 조 목사가 쓴 책 <백만 번의 프로포즈> 내용 중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기관의 사무관으로 일했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 조 목사의 책 머리말에는, ‘1953년 전북 익산서 태어나 간신히 초등학교,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하기까지 독학으로 공부했다. 한때 국가기관의 촉망받는 사무관이었던 그의 인생이 느닷없이 항로를 바꾸게 된 건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뺑소니차에 치이면서였다는 내용이 있다.

<국민일보> 확인 결과 조 목사는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한 적도, 국가기관의 사무관으로 일한 적도 없었다. 전부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이번 인터뷰 과정서 27세에 뺑소니차에 치여 왼쪽 다리를 절게 됐다는 내용도 거짓말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장애는 사고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 갑자기 마비가 오면서 생긴 것이었다.

거짓 학력·경력으로 사직 
뺑소니 사고도 ‘없던 일’

그가 뺑소니차에 치여 장애를 갖게 되고 3년여의 시간 동안 좌절하고 절망해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조 목사에 대한 신문기사, 방송 영상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됐다.

<백만 번의 프로포즈>는 조 목사의 학력·경력 논란이 불거지고 절판되기 전까지 24쇄를 찍을 정도로 스테디셀러였다. 조 목사는 첫 번째 인세로 당시 1300만원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아직도 그 책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내용의 후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조 목사는 “(그런 부분은)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과정서 좀 더 기교 있게 분위기를 잡으려고 업그레이드한 내용이다. 책 쓸 당시 다른 작가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에게 그렇게 써달라고 한 적은 없다. 책이 팔려서 들어오는 인세나 확인했을 뿐이지 <국민일보>서 문제 삼기 전까지 책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도 두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 조용모 목사
▲ 조용모 목사 ⓒ문병희 기자

이어 지금까지 나는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줘왔다. 그게 결실을 맺어 사람들 인정을 받게 된 것이지 학력과 경력을 내세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았다그 부분을 제외하고 보험업계서 일하던 때의 내용은 보태고 덜어낼 것도 없이 다 진짜다. 정말 피 흘리고 땀 흘리고 눈물 흘리면서 일했다고 덧붙였다.

조 목사는 2012년 편도암 4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이후 목사의 길을 걷게 됐다고 했다. 편도암을 치료하는 과정서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50년 동안 믿어온 원불교에 대한 회의가 그를 목사의 길로 이끌었다. 학력·경력 거짓 논란은 그가 막 목사로서 첫발을 떼는 시점에 불거졌다. 조 목사는 그 길로 사직서를 냈다.

그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드러난 만큼 다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에 매달렸다. 하루에 1015시간씩 작은 책상서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공부했다고 전했다.

출간 과정서 ‘업그레이드’
내용 수정해서 복간 예정

고등학교를 중퇴한 조 목사는 20174월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 바로 다음 달인 5월 총회 신학교에 입학했다. 내친 김에 같은 해 8월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예장 합동개혁 신학교에 진학, 1년을 더 다녀 3년 과정을 마쳤다. 예장 합동개혁 총회가 인준하는 목회학 박사 과정도 마무리했다. 방통대는 7학기 졸업을 앞두고 있다.

예배가 없는 날 그의 하루는 단촐하다. 아침 기상 후 식사와 30분의 운동 시간, 뉴스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돈 관리는 가족들이 할 뿐 조 목사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교회에 헌금으로 내는 돈도 아내가 봉투에 담아 챙겨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개혁총회는 지난해 627일 총회 징계위원회를 열어 조 목사의 복직을 승인했다. <백만 번의 프로포즈><고난수업> 등 조 목사의 저서를 출판한 다산북스서도 책을 복간하기로 했다. 조 목사의 징계 사유가 해소됐고 책이 절판된 이후에도 독자들이 계속해서 복간을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조 목사는 다산북스에 내 상황을 전달했다. 책 내용은 수정될 것이라고 했다.
 

▲ 인터뷰 갖는 조용모 목사 ⓒ문병희 기자
▲ 인터뷰 갖는 조용모 목사 ⓒ문병희 기자

조 목사는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목사로서 인격적인 부분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왜 나이 60에 목사의 길을 걷고자 했는지,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주목해줬으면 한다앞으로 20년 동안 현역으로 살고 싶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실된 삶을 살겠다고 강조했다.

목사의 길로

그러면서 70세가 되지만 목사로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이 길로 들어왔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다. 어디든지 하나님 말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찾아가서 말씀을 전하고 그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죽는 날까지 목사로 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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