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천국’ 돼버린 중고나라 피해담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2.17 11:16:07
  • 호수 12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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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 막히면 다른 계좌로 ‘먹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중고물품 거래 사기의 대부분은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를 통해 벌어지고 있다. 최근 피해자들 사이서 여러 명이 조직적으로 사기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해 중고물품 사기를 치는 일당들에 대해 파헤쳤다.
 

최근 3년 동안 사이버 사기가 46.9%(2017년 9만2636건→2019년 13만6074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검거 건수 역시 2만4911건(8만740건→10만5651건) 늘었으며 발생 대비 미검거 건수도 255%가량 증가했다.

늘어나는
사이버 사기

지난 9일 익명의 제보자 A씨는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조직적인 중고거래 사기’를 고발한다는 글을 게재했다.

A씨는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마스크와 생필품 및 가전제품들로 사기를 치는 사기조직을 고발한다”며 “해당 카페서 마스크를 검색해 거래를 진행하기로 했고 계약금 600만원을 송금했지만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아 사기인 걸 눈치챘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이와 관련한 피해자 약 60여명이 오픈채팅방에 모인 상태며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SBS서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수법과 유사하다고 했다.


그는 “중고거래 물품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수법이 비슷하다. 수십개의 휴대폰 번호와 계좌번호를 돌려가며 사용한다”며 “현재 파악한 전화번호는 33개, 계좌번호는 24개다. 소형가전인 아이패드, 카메라, 플레이스테이션부터 시작해서 영양제, 도서 전집, 마스크 등을 거의 모든 물건들을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기 치는 사람들은 울산, 장흥, 강릉 등 수도권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어주는 만큼 상당히 디테일하다”며 “계좌가 막히면 사설 사이트를 이용해 안전거래인 것처럼 속이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여성 구매자들에게는 희롱에 가까운 농락도 했고 경찰을 사칭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계약금 600만원 송금 후 감감무소식
소형가전·생활잡화 등 허위매물 판매

A씨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도 글을 올려 관련 피해자들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 A씨는 쪽지나 메일로 피해 인증사진을 확인한 후 관련된 피해자들만 오픈채팅방으로 입장시켰다. 사기 범행을 저지르는 일당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피해 인원은 점점 늘어났고 A씨는 일당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중고거래 사기꾼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7명이서 같은 핸드폰 번호와 계좌번호를 쓴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7명의 해당 사기꾼들의 이름은 중고나라에 공유됐다.  

그러자 이들 중 한 명인 B씨가 해당 카페에 글을 올렸다.

그는 “제 이름으로 사기 피해를 본 사람들이 이 글을 확인하길 바란다. 제 이름과 통장계좌로 사기를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고, 전화도 걸려 오게 되면서 글을 남기게 됐다”며 “카카오톡 내용이나 은행 거래 내역 전체가 필요하시면 댓글로 연락처나 카카오톡 내용을 남기겠다”고 장문의 글을 시작했다.
 


사건을 요약하겠다던 B씨는 “지난달 31일경 네이버 밴드를 통해 해외직구 대행업체서 재택 근무 가능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문의를 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고 회사 주소지와 대표이사 이름이 동일하게 기재돼있어 믿고 일을 진행하게 됐다”며 “나중에 알아보니 이 회사도 도용당한 회사였다. 피해당한 사람들은 관련 신고접수처에서 원하시면 원본 서류를 보내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는 단순했다. 입금 한 분 이름과 금액을 확인하고 계좌번호를 말해준 뒤 해당 금액을 담당자에게 이체해 주기만 하면 되는 업무였다”며 “(나는)2월4일, 5일 총 이틀 동안 진행한 상황이고 하루 급여만 받은 상황이었다”고 언급했다.

여기저기서
“나도 피해”

그러면서 “지난 6일 오전 12시30분경 제 명의로 사기를 당했다는 걸 인지한 어떤 한 분이 은행 고객센터로 신고접수를 했고 오전 7시20분 은행서 보이스피싱 등 기타 관련 사기 건으로 통장거래가 정지됐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생업에 사용하는 통장계좌다 보니 은행에 오전 9시에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거래 내용 등을 증거자료로 이의신청을 하라는 말뿐 은행서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억울해했다.

이후 중고나라서 사기를 당한 몇몇 피해자들이 B씨에게 연락했고 은행으로부터 이의신청서가 반송처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회사의 고객센터에 문의한 결과 그들은 그런 공고를 올린 적이 없고, 요즘 그런 사기 사건 연락이 많이 온다는 말뿐이었다.

그는 사건접수를 위해 가까운 경찰서로 방문했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접수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은 관련 증거자료를 모아서 갖고 있으라고 했고 피해자들이 직접 접수한 후 특정인물에 대한 추적이 이뤄지면 사건을 이관받아 진행할 수 있다고 해서 글을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은행 거래내역을 수집해서 파일로 만들 예정이며 사기꾼이라고 소개된 글들을 보니 참 어이가 없고 황당해했다. 지인 중 변호사가 있어 사건 의뢰도 해둔 상태라고 했다.
 

B씨는 “이유 불문하고 제 불찰로 인해 제 명의의 통장에 사기를 당하신 분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신고와 관련해 필요한 서류 등 제가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준비하겠다. 전체 원본이 필요하시면 댓글로 카톡이나 메일,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덧붙였다. 기자는 B씨에게 쪽지를 보내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재택근무에
일당 25만원

해당 게시글에 트****는 “일당 25만원이 재택근무하면서 받을 수 있는 돈이라 생각하고 했냐, 적지 않은 나이에 그걸 인지 못했다는 건 거짓말 같다. 많은 페이에 혹했어도 그건 본인 잘못이고 같이 동조한 것”이라며 “분명 책임 묻고 처벌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피해자라고 말하기엔 사기당해서 피해 보신 분들이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사****는 “재택근무에 25만원이란 게 말이 안 된다. 계약서 작성은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면담 후 결정한다. 또 통장을 톡으로 보내는 건 세상 천지에 없다 범죄가 연류된 만큼 일처리 잘 되길 바라지만, 몰라서 그랬다는 것으로 범죄를 덮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되지만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합당한 처벌 받으시고 다시는 이런 일 없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B씨는 해외 직구대행 C 업체와 카카오톡을 통해 채용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C 업체는 B씨에게 “간편하고 쉽게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업무는 아주 간단하며 시급 2만5000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소통이 가장 중요하며, 두 번째는 회사서 B씨에게 입금을 하면 우리가 선택한 상품을 구매대행해주는 것이다. 구매대행 알바를 구하는 이유는 하루 구매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기에 많은 상품을 공급하기 한 것이다. 일당 25만원이 보장되며, 당일 지급된다”고 안심시켰다. 

B씨가 “하루 평균 근무시간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묻자 해당 업체는 “문제 될 일은 전혀 없으며,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7시30분 전후로 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며 “수습기간에는 하루 25만원 정도이고, 그후 35만원이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근무에 앞서 C 업체는 B씨에게 본인인증을 위해 신분증을 들고 본인 얼굴과 함께 나온 사진을 요구했다. 주 업무는 입금확인 및 이체 업무였다.

원하는 대로 사진 찍어주고 안심 시켜
경찰 행세·사진 해킹 등 피해자 도발

제보자 A씨는 “한 명의 이름으로만 피해 본 사람이 60명이 넘는다. 확인해보니 7명이 여러 개의 핸드폰과 계좌번호를 바꿔가면서 사용했다. 사기친 한 사람 이름으로만 된 계좌 내역을 확인하니 한 계좌당 88명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사기 일당 중 한 명의 이름을 파악해보니 2012년에 검거됐었다는 것도 알아냈다. 지금 계좌를 살펴보니 총 10개의 계좌를 사용하고 있으며 피해 인원만 최소 500명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파악된 7명 일당의 수법이 다 똑같다. 물건도 다 있고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사진도 다 찍어준다. 다만 신분증과 사람, 물건이 다같이 나오게 하는 건 못 찍는다. 이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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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부분의 피해자가 경찰서에 신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기를 친 한 명을 카카오톡으로 추가하니 갑자기 정보가 홍콩으로 떴다”며 “해외에 있는 것 같다. 카톡으로는 피해자에게 약 올리는 듯한 내용을 보냈다. 잡아 볼 테면 잡아보란 식으로 말했다. 외국에 있지 않고서야 그런 식으로 대응을 하기는 쉽지 않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사기 일당들의 이름은 중고나라나 더치트에 검색하면 나오지만, 소용이 없다. 더치트는 3개월마다 갱신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2월인데 5~6월쯤에 또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를 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사기 일당 중 한 명은 일부 피해자에게 경찰행세를 했다. 또 여성 피해자의 부모를 욕하거나 ‘선물 줄게’ ‘무릎이 까졌구나 왜 까졌을까’와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피해자들의 클라우드 계정을 해킹해 사진까지 확보한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피해 구제
어려움 많아

박용철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터넷 사기 이용 계좌 지급정지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서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하되’ 항목을 삭제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전체 유통시장서 전자상거래가 일반상거래를 추월한 것은 오래전 일로, 전기통신금융사기범죄도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전기통신금융사기범죄의 다수·소액 피해라는 특성으로 인해 실질적 피해구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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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