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복 벗고서 ‘총선 나가는’ 판·검사들 백태

서초동 찍고 여의도로 ‘고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5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로 선거 분위기는 뜨뜻미지근하지만 정치권은 이미 ‘총선모드’로 돌입한 지 오래다. 각 정당은 선거서 뛸 선수 선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법관들의 여의도행이다. 금배지를 목표로 법복을 벗는 판·검사들이 부쩍 늘었다.
 

▲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기자회견 갖는 김웅 전 검사 ⓒ나경식 기자

선거를 앞두고 정당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인재영입이다. 이미 4년 동안 국민의 눈에 각인된 낡은 정치인보다 정치를 한 번도 안 해본 뉴페이스가 각광받는다. 신선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같은 사람을 두고 여러 정당서 러브콜을 보내는 경우도 더러 있을 정도다.

뉴페이스
영입 경쟁

<아시아투데이>가 여론조사 전문업체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 3일 진행한 조사서 정치권의 인재영입을 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율이 과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를 막론하고 각 당이 인재영입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보여주기식 정치 쇼라는 의견이 44.6%였다. 새 인물이 정치권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응답은 42.1%였다.

영입된 인재들의 정치적 역량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응답자의 43.3%는 정당서 영입한 인재들이 역량이 없다고 답했다. ‘있다는 답변은 33.8%에 그쳤다. 30(52.3%)에서 과반이 넘는 응답자가 비판적인 의견을 냈다. 평가를 유보한다고 답변한 비율은 22.9%로 나타났다.

인재영입에 대한 다수의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투표할 때 사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10명 중 7(67.3%)은 지지 후보나 정당을 선택할 때 영입한 인재가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매우 영향 있다고 답한 비율도 27.9%에 달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에도 선거 때마다 정당서 인재영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실제 선거철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권의 문을 두드린다. 법조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 분야를 막론하고 금배지를 노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오는 415일 치러질 21대 국회의원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선거에는 특히 판·검사들, 법관들의 러시가 줄을 잇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번 인재영입 과정서 판사 출신 인사를 3명 영입했다. 지난 1일,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민주당의 영입인재 20호로 선정됐다. 최 전 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지낸 경력도 있다. 전남 영암 출신인 최 전 판사는 광주 살레시오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선거 다가오자 너도나도 
정당들도 법관 영입 경쟁

진보 성향 판사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서 활동했으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공개 비판한 적 있다. 최 전 판사는 광주 등 지역구서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입당식서 국민들이 법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사법제도를 만들고 싶다 인권 최우선 수사와 책임 있는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국민이 중심인 선진 사법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앞서 민주당은 이탄희 전 수원지법 안양지원 판사와 이수진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를 각각 인재 10, 13호로 영입했다. 이탄희 전 판사는 지난달 19일 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알린 인물이다.

서울 출신으로 2005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2008년 판사로 임용된 이 전 판사는 2017년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받은 후,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계획 문서 등의 존재를 알고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당시 사직서는 반려됐다.
 

▲ 민주당 인재영입 13호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는 이수진 전 판사가 이해찬 대표와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자 이 전 판사는 다시 사직서를 제출하고 법원을 떠났다. 이후 법무부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사법개혁의 정당성을 알리는 강연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재는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서 활동 중이다.

이날 기자회견서 그는 지난 1년간 재야서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한계를 느꼈다제도권에 다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민주당과 함께 현실정치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양승태 까기
트렌드 됐나?

이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 이웃 사람들, 이 평범한 우리 대부분을 위한 사법제도를 만들어야 한다사법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비위 법관 탄핵, 개방적 사법개혁기구 설치 등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재판을 받는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사법개혁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40년도 더 된 폐쇄적이고 제왕적인 대법원장 체제를 투명하게 바꿔나가는 사법개혁의 대장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수진 전 판사는 지난달 27일 영입인재로 민주당에 들어갔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2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로 임용됐다. 2018년 현직 판사 신분으로 방송 인터뷰서 양승태 대법원의 강제징용 사건 재판지연 의혹을 제기했다. 또 양승태 대법원이 추진했던 상고법원에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이수진 전 판사는 이날 영입인재 발표식서 개혁의 대상인 법원이 스스로 개혁안을 만들고 폐부를 도려내기란 쉽지 않다법원 내부 의견을 존중하면서 동반자적 관계로 협의할 수는 있지만 결국 외부서 건강한 동력을 만들어줘야 한다. 삼권분립의 또 다른 축인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말 총선 지역구 출마 의사를 밝히고 법원에 사표를 내 화제가 됐던 바 있다. 당시 언론 인터뷰서 최재성 민주당 의원의 집요한 영입 요청을 받았다법원서 오랫동안 노력해 온 사법개혁 과제를 국회 입법으로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5·18 형사사건 재판을 맡았던 장동혁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으로 갔다. 장 전 판사는 대전과 충남 지역서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공직 사퇴 시한(115) 이전인 지난달 10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충남 보령 출신인 그는 대전지법, 인천지법, 서울중앙지법서 근무했고 20162018년 국회 파견을 거쳐 지난해 2월 광주지법으로 왔다.

정부 비판
직접 국회로

검사 출신들의 총선 출마 선언도 늘고 있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책 <검사내전>의 저자이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한 검사로 알려진 김웅 전 부장검사는 지난 4일 새로운보수당(이하 새보수당)에 입당했다. 유승민 새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직접 영입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지난달 14일 오전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날인 13일에는 경찰에게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이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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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부장검사는 국민에게는 검찰 개혁이라고 속이고 결국 도착한 곳은 중국 공안이자 경찰공화국이다. 철저히 소외된 것은 국민이라며 수사권 조정안이란 것이 만들어질 때, 그 법안이 만들어질 때, 패스트트랙에 오를 때, 국회를 통과할 때, 도대체 국민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어 이 법안들은 개혁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가장 혐오스러운 음모이자 퇴보다. 서민은 불리하고 국민은 더 불편해지며 수사기관의 권한은 무한정으로 확대돼 부당하다. 이른바 3불법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후 김 전 부장검사는 검찰을 떠났다.

김 전 부장검사는 지난 7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새보수당 입당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왜 새보수당으로 갔느냐는 노영희 변호사의 질문에 그는 큰 당이나 세가 있는 곳에 간다고 해서 제 가치관이나 제 주장이 다 관철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오히려 새보수당 같은 경우에는 각각의 의원님들 숫자는 적어도 다 자기 주장을 하는 곳이라며 그런 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직접 만나 뵙고 나니 새보수당에 계시는 의원님들이 되게 진실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20대 국회도 법조인 많았는데 …
“정치적 중립성 훼손될까” 우려

앞서 김 전 부장은 지난 5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제가 정치를 하려는 이유는 로 메이커(Law maker, 국회의원), 법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그걸 위해선 국회로 입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은 한국당 소속으로 청주 상당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윤 전 검사장은 지난달 21일 공식 출마선언을 하면서 조국서 시작된 청와대의 부정과 비리는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오죽하면 조국이 무섭다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돌아서겠느냐면서 건전하고 건강한 보수, 가슴 뜨겁고 함께 잘사는 보수를 꿈꾼다고 말했다.


유상범 전 창원지검 검사장도 한국당 소속으로 이번 총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유 전 검사장은 지난 2014년 정윤회 문건을 수사했다. 그는 지난 10“(정윤회 사건은)부끄러움 없는 수사였지만 적폐 검사로 몰아세운 문재인정부를 심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정권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정윤회 문건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나선 뒤 나를 적폐 검사로 낙인찍어 연거푸 좌천인사를 냈다면서 애초부터 그들의 관심은 검찰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들로 채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정권을 상대로 한풀이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현 정부가 극단적인 편 가르기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시장 경제질서를 망가뜨리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향인 강원 태백·횡성·영원·평창·정선 한국당 지역구 예비후보로 등록,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에 따르면 1차 영입인재 20명 가운데 법조인은 소병철 전 검사장, 이소영·홍정민 변호사 등 6(30%)에 달한다. 한국당도 전체 영입 인사 30명 중 8(26.7%)이 법조인이다. 참고로 20대 국회서 법조인 출신은 295명 중 49(16.6%)이었다.

판검사들의 총선 출마 러시를 보는 법조계의 시각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법관이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데 따른 우려가 나온다. 정욱도 대전지법 홍성지원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법복 정치인 비판이라는 제목의 글로 법관들의 정치권 진출을 비판했다.

부장판사
작심 토로

그는 법관의 정치성은 가급적 억제돼야 하고 불가피하게 드러낼 때조차 지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이런 자제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어떤 파국이 오는가를 우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안을 통해 똑똑히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관이 악덕을 체현하며 다른 국가기관의 통치에 참여하는 삼권분업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이미 월권이라고 생각한다법관은 통치에 대한 위임을 받았을지언정 통치에 대한 참여를 위임받은 바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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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