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왕국’ 풍산그룹의 민낯

조상님 얼굴에 먹칠을…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동전의 왕국’으로 불리는 풍산그룹이 최근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국유지 특혜 의혹부터 2세 병역회피 논란까지 바람 잘 날 없다. 일각에선 류성룡 선생 일가 기업인 풍산그룹이 ‘징비록 정신’을 잊어버린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풍산그룹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풍산 탄약 ⓒ풍산 홈페이지

풍산그룹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자손이 창업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기업이다.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는 물론이고, 그의 아들이자 오너 2세인 류진 풍산그룹 회장도 이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기미다.

논란의 중심
국유지 특혜?

풍산그룹은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방위산업에 발을 들이고 직접 소구경 총탄서 포탄에 이르기까지 한국군이 쓰는 탄약 국산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첨단 탄약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국내 굴지의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류찬우 창업주는 1976년 징비록에 기록된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의 뜻을 계승하고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류진 회장은 2001년 7월, 서애전서 국역본을 발행했고 2003년에는 징비록 영역본을 출간했다.

2015년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을 후원하기도 했다. 풍산그룹이 징비록 정신을 이어 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풍산그룹이 최근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서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부산시 센텀2지구 개발사업 관련 특혜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국방부로부터 헐값에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는 공식문서가 공개됐고, 개발이 진행될 경우 토지보상금이 5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 

1981년 당시 27만평 규모의 조병창(현 풍산 부지) 부지였던 이 땅은 3년 거치 후 7년 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모두 259억원에 풍산에 매각됐다.

국유지 헐값에 매입…보상금 5000억원이나?
방산기업·국방부 밀착한 관계? 특혜 의혹

이 과정서 국유지를 비롯한 부동산, 각종 장비 및 운영자재 등의 동산, 사업권이 수의계약을 통해 풍산에 매도된 것이다. 해당 부지는 국방부가 헐값에 국유지를 매각했다는 특혜 의혹이 제기돼왔다. 

방위산업 목적의 국유지인 이 땅은 풍산의 공장부지 및 건물 30여개를 제외하면 절반 이상이 개발제한에 묶여 있다. 하지만 이 부지는 2015년 부산시와 풍산이 맺은 센텀2지구 첨단산업단지 MOU에 따라 현재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어 파장을 낳고 있다.

공개된 매매계약서 8조7항에는 매매 계약 이후 지정된 군수 산업 목적을 폐기했을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특약사항도 있었지만 1999년 4월9일 이유 없이 삭제됐다.
 

▲ ▲풍산그룹 사옥

일각서 “방산기업인 풍산그룹이 기업 특성상 국방부와 밀착한 관계를 맺고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단 풍산그룹 논란은 이 뿐만이 아니다. 류 회장의 아내 노혜경씨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호화 콘도를 1125만5500달러에 매입해 뉴욕시 등기소에 등기를 마쳤으며, 노씨는 지난 2002년에 로스앤젤레스 소재 1000만달러에 달하는 호화주택을 구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호화주택 구입
아들 군대는?

이 같은 주택 구입 사실을 숨기기 위해 대외적으로 정확한 주소를 공개하지 않고, 회계사 명의 등을 통해 이름만 바꿔 계약서를 작성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풍산그룹 일가는 해당 주택에 대해 매매계약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왔으나 “동일한 소유자지만 명의만 변경했다”며 양도세마저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해당 콘도를 매입할 당시 총 812만달러를 밸리내셔널뱅크를 통해 대출받았다. 당시 대출을 받으며 모기지계약서를 작성했고 계약서 상 자신의 주소를 권리증서에 기재한 주소와는 다른 ‘비벌리힐스’로 기재했다.

일각서 노씨가 정확한 주소지를 숨기기 위해 주소를 바꿔 기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벌리힐스에 위치한 저택은 노씨가 2002년부터 은닉해온 1200만달러 상당의 차명재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의 장남이자 풍산그룹의 후계자로 예상되는 류성곤씨는 지난 2014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당시 류 회장은 류씨에게 보유 주식 2만5400주를 증여했는데 그 과정서 아들 류씨의 이름이 영문(Royce Ryu)으로 기재돼있었고 국적마저도 미국으로 표기돼있었다.

당시 류씨는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할 나이대인 22세였음에도 세간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국적을 변경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류씨가 국방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국방의 의무를 중요시하는 한국 국민들의 문화적 특성상 풍산그룹의 병역회피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류씨가 풍산그룹의 유력한 후계자로 점쳐지고 있는 만큼 추후 그룹의 경영을 맡게 된다면 해당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수익성 악화
계열사 청산

또 풍산그룹은 탄약 등을 제조하는 방위업체며 ‘사업보국’이라는 창업 이념을 가진 기업임에도 그룹 회장 장남이 군 면제를 위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했다는 모순으로 더욱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풍산그룹 측 관계자는 “회장의 사모와 관련된 의혹은 회사 차원의 이슈가 아닌 개인적인 일이라 아는 바가 자세히 없다”며 “류성곤씨의 미국 국적 취득은 사실이긴 하나 마찬가지로 회사와는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사항”이라고 밝혔다. 

최근 풍산그룹은 핵심 계열사의 수익성 악화에 고심하고 있다. 영업환경 급변과 전방산업 침체로 그룹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계열사를 청산하기로 하고 대규모 부동산을 처분하는 등 경영 효율성 향상에 분주한 모습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풍산그룹은 지난달 2일 티타늄 및 스테인리스관 제조·판매 계열사 풍산네오티스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관련 업계 불황으로 풍산네오티스의 재무 및 경영 상태가 악화돼 청산이 그룹 경영 효율성 제고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풍산네오티스는 2016년을 제외하면 2014년부터 당기순손실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20억원, 2018년 18억원의 적자를 냈다.

미국에 호화주택 구입…숨긴 이유는?
아들의 병역 회피…제2의 스티븐 유

또 다른 계열사 풍산특수금속은 내년 3월 1595억원 규모의 인천 효성동 공장 부지를 제일건설에 매각할 계획이다. 소음·분진으로 인한 주민 민원을 해소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풍산특수금속은 2018년부터 순이익이 급감하고 금융비용은 늘어 잉여현금흐름(FCF)이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다. 2018년 잉여현금흐름은 248억원 마이너스였다.

더 큰 문제는 핵심 계열사 풍산의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풍산은 동판, 동봉, 소전 등 신동(伸銅·구리 가공) 제품 분야서 국내 1∼2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국방부에 독점적으로 탄약을 공급하는 등 방산 사업도 한다.

신동 부문은 기계, 건축 내외장재, 동전 등 전방산업 업황 둔화에 따른 제품 판매량 감소로 수익성이 크게 꺾였다. 채산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방산 부문도 지난해 실적이 주저앉았다. 지난해 초 한화 대전공장 폭발 사고로 탄약 제조에 필요한 원료 조달에 6개월 정도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풍산의 순이익은 2017년 1507억원서 2018년엔 621억원으로 감소한 데 이어 작년 1∼3분기엔 98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현금 창출력을 보여주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도 2017년 3295억원, 2018년 1995억원, 작년 1∼3분기 984억원으로 급격하게 줄고 있다.

다만 재무안정성 지표는 아직까지 양호한 편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풍산의 부채비율과 순차입금의존도는 연결 기준으로 각각 93%, 31.2%에 머물고 있다.

공정위 제재
사각지대 끝

풍산그룹 관계자는 “신동과 방산 부문이 부진해 작년 실적이 저조했다”며 “올해는 수출과 판매량 확대에 주력하고 원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업장 자동화도 전사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올해 실적은 지난해에 비해 상당히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풍산그룹을 향한 최근 공정위의 칼날도 걱정거리다. 자산총액 5조원 이하 기업이라는 점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강하게 고삐를 당기면서 규제 사각지대로 지적돼오던 풍산그룹의 내부거래도 역시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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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