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28) 인연

사명당이라는 고승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허균이 어머니께 그리고 갓 혼인한 부인에게 초시 급제를 핑계로, 더 많은 공부를 위해 형에게 지도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길을 나섰다.

스승인 이달을 통해 허봉이 포천의 한 산, 백운산에 기거한다고 전해 들었다. 그곳에서 여러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곁들였다.

백운산으로

길을 가면서 형을 생각해보았다.

스승인 이달의 말에 따르면, 형은 문재와 관련하여서는 이달을 최고로 평가했었지만, 형이 조선 땅에서는 감히 그 벽을 넘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경지에 올라 있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허균이 바라본 형의 행동은 매사에 유별나게 보였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못했었다.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하고 현재의 틀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런 연유로 자연스럽게 동인의 입장에 서게 되고 기존의 관습을 중시 여기던 서인들의 행태를 참지 못했다.

아니, 단순히 동인과 서인의 견해차 문제가 아닌 듯했다.

형의 열려 있는 사고를 이 사회가 수용하지 못하고 그런 요인들로 인해 형은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전개하며 스스로 고립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순간 누나의 삶의 방식과 겹쳐 그려지고 있었다.


자신만의 성을 쌓고 그 안에서 홀로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누나의 방식과 동일한 흐름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에 이르자 고개를 세차게 가로로 저었다.

형까지 그런 삶을 살면 안 될 일이다 싶었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는 형은 이 사회 가운데에 서서 형이 지니고 있는 재질을 십분 발휘해야 할 일이었다.

또 충분히 그럴 자격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형과 관련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다보니 저녁 무렵이 되어 이달이 이야기한 백운산의 조그마한 움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먼발치에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으며 움막을 바라보았다.

흡사 거렁뱅이들이 거주하는 장소처럼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움막을 바라보자 팔봉이 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이제 다 왔거늘 서두를 이유가 무엇이냐.”

“도련님, 어깨가 무너져 내리는 모양입니다.”

“내 등에 있는 책은 가벼울 거 같으냐.”

“그거야 도련님 양식이잖아요. 그러니 무거운들 무겁게 느껴지겠어요.”

“이놈이, 아니 이놈아 그럼 네 놈 등에 달라붙어 있는 것은 양식이 아니란 말이냐.”


어머니와 부인이 형과 같이 기거하는 친구들을 위해 산골 구석에서는 구경하지 못할 음식들을 바리바리 챙겨 팔봉의 등에 실었던 터였다. 

“문제는 이 음식이 제 음식이 아니란 점이지요. 도련님 등에 있는 책들은 도련님만의 양식이니 무거울 리 없다는 말씀입니다.”

초시 급제 핑계로 길을 나서다
허봉 거처 도착…이상한 분위기

허균이 팔봉의 이야기가 일리 있다는 듯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 놈의 잔머리는 발달해서 잔수는 부리는데. 이놈아, 이 책이 어찌 나만의 양식이란 말이냐. 향후 너 같은 놈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터이거늘.”

“그거야 두고 봐야 알 일 아니옵니까.”


“두고 봐야 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팔봉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팔봉의 이야기가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머무른다면 자신만의 양식이 될 터였다.

반드시 세상을 향해 이롭게 쓰일 수 있어야 할 일이었다.

“그놈 참, 바른 말 할 때도 있구먼.”

피식하고 웃으며 움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움막에 당도한 팔봉이 대문 아니 얼기설기 엮은 싸리를 제치고 마치 제 집 들어가듯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아마도 저 놈의 눈에도 성에 차지 않으니 저리 행동하리라 생각하며 뒤를 이어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이 조용했다.

방문을 바라보았다.

신발이 있는지 여부도 살폈다.

집안이 조용하듯 신발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허균이 급히 방문을 열었다.

탁한 기운이 방에서부터 밀려나왔다.

흙냄새와 나무가 썩어서 나는 쾨쾨한 냄새였다. 

희미한 어둠속에 가라앉아 있는 방안은 단출했다.

세 개의 상이 있고 그 곁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책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를 확인하고 등에 지고 온 보따리를 풀러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가슴 속으로부터 뭉클한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솟구치고 있었다.

“그래, 해보자!”

고개를 돌리자 팔봉도 지고 온 짐을 방문 앞에 내리고 소매로 머리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리, 빈집 아닌지요.”

“이 놈아, 너는 사람의 온기가 이곳에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냐?”

“사람의 온기요?”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 말이야.”

팔봉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코를 벌름거렸다.

“제 코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가 아니라 흡사…….”

“흡사 뭐란 말이냐.”

“이게 어찌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마치 송장의…….”

“예라, 이놈아.”  

더 이상 팔봉도 대꾸하지 않았다.

허균도 잠시 집안을 둘러보려다 그만두고 싸리문을 제치고 밖으로 나서 숲을 바라보았다.

저만치 숲 어디에선가 형이, 아마도 형을 포함해서 몇 사람이 함께 뭔가를 하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방안에 상이 세 개가 놓여있는 모습으로 보아 세 사람이 함께 기거하는 듯했다.

어둠이 내리고 있는 숲을 잠시 바라보며 형을 찾아 숲으로 들어갈 것인지 망설였다.

숲으로 향했던 시선을 팔봉에게 돌렸다.

“왜요, 도련님.”

“왜요는 무슨 왜요냐. 밥 때가 되지 않았느냐. 그러니 형님 일행이 오시기 전에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자.”

“만약 오시지 않으면 어쩌려고요.”

“그 놈 별걸 다 걱정하네. 그러면 네 놈과 내가 다 먹으면 될 거 아니냐.”

팔봉이 그 말은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입을 한번 해죽 벌리고는 부엌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팔봉을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일었으나 그냥 팔봉에게 모두 맡겨두기로 하고 다시 방으로 움직였다.

염주와 목탁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전에는 어둠속에서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한 상 옆에 있는 이상한 물건이 시선에 들어왔다.

가만히 손을 뻗어 그 물체를 집어 들었다. 허균의 시선을 가득 채운 물체는 반질거리는 염주와 목탁이었다.

그 물건의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이달로부터 형과 함께 기거하는 사람 중에 사명당이라는 고승이 있다고 들었었다.

이달의 스승인 박순 대감과 가까운 사이로 봉은사 주지로 초빙되었으나 그를 사양하고 도를 닦기 위해 산천을 떠돌아다니다가 잠시 백운산에 기거한다고 했다.

한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자 허봉이 백운산을 찾아들어간 것이라고도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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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