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서 날개 단 폴리스 스토리

검찰·국정원보다 세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 들어 경찰이 날개를 달았다. 연일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검찰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숙원이던 독립적 수사권을 쟁취하면서 검찰과의 관계도 재정립될 가능성이 열렸다. 경찰 입장에선 지금이 화양연화일지도 모른다.
 

검찰과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뿌리가 깊다.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순위서 검찰과 경찰은 국회와 함께 최하위권을 다툰다. 세 기관은 지난해와 2018년 나란히 뒤에서 13등을 차지했다.

신뢰도
바닥인데…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는 지난해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2019년 국가사회기관 신뢰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국가사회기관은 대통령(25.6%)으로 나타났다. 가장 낮은 신뢰도를 기록한 세 기관은 검찰(3.5%), 국회(2.4%), 경찰(2.2%)이었다. 2018년 조사 역시 경찰(2.7%), 검찰(2.0%), 국회(1.8%) 순으로 낮게 나타났다.

검찰과 경찰, 한 세트처럼 묶였던 두 조직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 시점은 문재인정부 들어서다. 검찰은 앞선 정부서도 힘을 빼야할’ ‘개혁해야 할조직으로 여겨져 왔다. 이 같은 기조는 문정부 출범과 동시에 더욱 강해졌다. 문정부는 검찰에 적폐 청산을 위한 칼자루를 쥐어주면서 동시에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20175월 출범한 문정부는 같은 해 7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100대 과제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법무부 탈검찰화로 대표되는 정부의 검찰 개혁 청사진이 포함됐다.


당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수행 독립성이 훼손돼왔던 검찰을 개혁하고 고위공직자 부패 근절을 위해 공수처를 설치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찰권 분산과 인권친화적 경찰 확립 실행 방안 등과 연계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마련하고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719일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이, 같은 달 25일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 전 검찰총장이 취임하는 자리서도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언급했다. 문 전 검찰총장은 저에게 개혁을 추진할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잘하겠다고 화답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내용의 한시를 읊어 여러 해석을 낳았다.

당시 문 전 검찰총장이 읊은 한시는 대만의 저명 학자인 난화이진 선생이 자신의 저작 <논어별재>에 실은 것이다.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는데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며 뽕잎을 따는 아낙네는 흐린 하늘을 바라네라는 내용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통과
66년 만에 숙원 풀었다

하나의 하늘을 두고 요구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처럼 사람들 입장에 따라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요구한 검찰 개혁 방향에 우회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201712월 경찰개혁위원회는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전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검·경 수사권 분리 권고안을 내놨다. 검찰이 기소권은 물론 수사지휘권과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하고 있어 표적수사 등의 폐해가 일어난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다만 경찰관 관련 범죄일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2018년과 20192년 동안 검·경 수사권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은 물론 정치권서도 대립이 이어졌다. 이 과정서 청와대는 검찰의 권한을 줄이고, 그 권한을 경찰과 나눠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20181월 청와대가 발표한 문재인정부 권력기관 개혁방안에 따르면 검찰과 국정원의 권한은 축소된 데 반해 경찰의 권한은 강화됐다.
 

▲ 민갑룡 경찰청장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날 브리핑서 국정원의 핵심활동이던 간첩 등의 범죄에 관한 대공수사권을 경찰청에 신설하는 안보수사처(가칭)로 이관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역할은 대북·해외 업무로 줄어들었다. 또 경제나 금융 등 특별수사를 제외한 모든 1차 수사권은 경찰이 맡는다고 했다. 국정원과 검찰의 핵심 권한을 경찰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 전 검찰총장은 20183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검찰 패싱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문 전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서 검찰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안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각을 세웠다.

검 내리고
경 올리고

이후 20186월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서 이 전 총리는 ·경의 관계를 대등·협력적 관계로 개선해 권한을 분산하고 상호 견제하게 하는 내용은 수사권 조정 논의의 오랜 역사서 처음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경찰이 1차 수사서 보다 많은 자율권을 갖고 검찰은 사법통제 역할을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경찰은 모든 사건에 대해 1차적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가지고, 검찰은 기소권과 일부 특정사건에 대한 직접 수사권, 송치 후 수사권, 경찰수사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권, 경찰의 수사권 남용 시 시정조치 요구권 등 통제권을 갖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만드는 시기였다면 지난해는 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의 시간이었다. 지난해 4월에는 선거제와 공수처법, ·경 수사권 조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여부를 두고 여야 의원들 간에 충돌사태가 일어나는 등 말 그대로 국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지난해 429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사법경찰관에 1차 수사종결권을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에 보완수사와 시정조치 요구권 등을 부여했지만 이것도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경찰이 거부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경찰의 독립성이 확대됐다.

문 전 검찰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 패스트트랙 지정 직후 형사사법 절차는 반드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한다특정한 기관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정보권이 결합된 독점적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검찰 개혁
반사이익

민갑룡 경찰청장은 문 전 검찰총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민 청장은 수사권 조정은 현 정부 들어 바로 논의를 시작해 각 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총리까지 나서서 법무부·행정안전부장관과 함께 합의문을 만들었다경찰은 경찰개혁위를 통해, 검찰은 법무검찰개혁위를 통해서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합의안에 기초해서 국회 사개특위가 계속 열려 있었고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 수렴과 치열한 토론과정이 있었다패스트트랙 안건 지정 과정서도 수사권 조정 관련해서는 거의 쟁점이 없을 정도로 민주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전했다.

문 전 검찰총장은 2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이후 지난해 725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했다. 같은 해 8월 문 대통령이 조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검찰과 청와대의 갈등이 시작됐다. 검찰은 조 전 장관과 관련된 의혹을 두고 수사를 진행했고 청와대는 검찰개혁으로 맞섰다.
 

▲ 윤석열 검찰총장

지난해 12234+1(민주·바른미래·정의·평화+대안신당) 협의체가 마련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수정안이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경찰은 1차 수사권과 종결권 확보로 수사 재량권을 대폭 늘어났다. 그동안 수직 관계에 머물렀던 검찰과 경찰이 66년 만에 상호협력 관계로 거듭나게 됐다.

지난달 28일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개정안의 공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 시행을 위한 후속조치에 돌입했다.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때로부터 1년 이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점에 시행될 예정이다.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시행될 수도 있다.

수사종결권에 정보 수집까지
‘공룡경찰’ 막을 법안 나와야

문제는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 공룡경찰에 대한 우려다. ·경 수사권 조정안 통과로 경찰은 정보와 수사 기능을 모두 거머쥔 거대 권력기관으로 재탄생했다. 경찰 권력 분산을 위한 자치경찰제 추진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경찰 권력에 대한 충분한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간 민간인 사찰 등으로 비판을 받았던 정보 경찰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정보 수집 기능축소가 경찰개혁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지난해 3경찰관 직무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에는 경찰관의 정부 수집 기능에 대해 치안정보의 수집, 작성 및 배포로 규정돼있다.

하지만 치안정보에 대한 범위가 모호해 경찰이 자의적으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소 의원의 개정안에는 치안정보를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 및 대응을 위한 정보로 구체화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개정안으로도 모호성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대검찰청

더불어민주당은 공룡경찰을 막기 위한 후속 입법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개혁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만큼 이제 경찰 개혁 입법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 경찰 권한 비대화에 따른 우려가 나오자 민 청장도 경찰 지휘부와 연 화상회의서 국가수사본부 도입과 자치경찰제 입법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호소한다고 전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서 권력기관 개혁 후속조치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경 수사권 조정 후속 추진단을 문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치하는 동시에 경찰 권력 비대화를 견제하기 위한 경찰 개혁법 통과에 힘을 쏟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제는
경찰 개혁?

정 총리는 경찰 권력이 비대해지거나 남용되지 않도록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분리해 운영하겠다자치경찰은 보다 가까운 거리서, 보다 이른 시간 안에 학교와 가정폭력, 교통사고 등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고 설명했다국가수사본부 신설 등을 통해 경찰의 수사 능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보완하겠다경찰의 수사역량을 제고하고 관서장의 수사 관여를 차단함으로써 책임 있는 수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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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