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상반기 드라마 라인업 분석

여풍, 웹툰, 의학…안방 노린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각종 영상 플랫폼과 콘텐츠가 늘어나고,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촬영 현장에는 찬기가 불며 일부 방송사가 월화드라마를 잠정 중단하는 등 드라마 시장이 위축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드라마다. 시청자들은 일주일 내내 색다른 이야기로 생산되는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 좋은 이야기와 뛰어난 배우들을 보고 있자면, 어느덧 현실을 잊고 드라마 안으로 빠져들게 된다. 여전히 매력적인 드라마는 2020년에도 다양한 키워드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칠 전망이다.
 

▲ (사진 왼쪽부터)배우 김혜수·김희선·김태희

2020년 상반기 드라마의 키워드는 ‘여풍’ ‘스타 귀환’, 웹툰 드라마와 의학의 네 가지로 압축된다. 최정상 여배우들이 오랜만에 안방을 찾으며, 대부분 여성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아울러 ‘빅네임’의 배우들이 안방을 찾아 시청자들과 소통할 전망이다. 

톱 여배우 셋
‘여풍’ 주도

스타 배우들은 물론 메가 히트작을 가진 스타 제작진도 돌아온다. 이야기의 주요 기반으로 자리잡은 웹툰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드라마화될 전망이며, 언제나 타율이 높은 의학드라마 역시 올 상반기 시장의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2020년에는 그간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던 스타들이 대거 귀환한다. 배우 김혜수와 김희선, 김태희가 대표적이다. 세 배우는 올해 상반기 드라마시장의 ‘여풍’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문을 여는 배우는 SBS <하이에나>의 김혜수다. 2016년 <시그널> 이후 4년 만의 안방 복귀다. 변호사들의 물고 뜯고 찢는 하이에나식 생존기를 그린 작품으로 김혜수는 돈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 정금자로 나선다. SBS <뿌리깊은 나무>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PD의 신작이다. 

KBS2 드라마 <직장의 신>과 tvN <시그널>, 영화 <타짜> <차이나타운> <굿바이 싱글> <도둑들> <국가부도의 날> 등 인물이 밝든 어둡든 언제나 인상 깊고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해온 김혜수는 이번 작품을 통해 파격을 더할 계획이다. 상대 배우인 주지훈의 멱살을 잡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표정과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상처, 트레이닝 복에 정장을 걸친 패션 등 포스터를 통해 풍기는 이미지로는 그가 어떤 연기를 펼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관능적이면서도 유쾌하고, 강렬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소개된 정금자는 기존 문법에 없는 캐릭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비(정지훈)과 결혼한 뒤 방송활동을 잠정 중단하다시피 했던 배우 김태희가 2015년 SBS <용팔이> 이후 5년 만에 드라마로 나선다. 국내 대표적인 미인으로 오랫동안 군림해온 그의 복귀작은 tvN <하이바바, 마마>다. 죽은 아내가 사별의 아픔을 딛고 새 인생을 시작한 남편과 딸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약 49일간의 리얼 환생 스토리다.

박보영(<오 나의 귀신님>)과 신민아(<내일 그대와>)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유제원 PD와 KBS2 <고백부부>의 권혜주 작가가 뭉쳤다. 

김태희는 아이 한 번 안아보지 못한 아픔에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엄마 차유리로 분한다. 상대 배우는 tvN <비밀의 숲>과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에서 입지를 굳힌 이규형이다.

김혜수·김희선·김태희…여풍이 분다
김은숙·노희경·연상호 스타작가 복귀

제작진에 따르면 김태희는 2006년 월드컵서 붉은 악마로 응원하다 첫사랑을 느끼는 모습부터, 풋풋한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하는 모습 등 로맨틱한 면모를 보여준다. 연기적인 측면서 다소 아쉬운 평가를 받아왔던 김태희가 결혼 후 첫 작품인 이번 작품서 기존과 달라진 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제작진은 “김태희가 이규형과 함께 극중 인물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쌓아 올려나가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국내 미인 계보서 빠질 수 없는 미모의 김희선도 판타지 장르의 <앨리스>로 나선다. 이 드라마는 시간여행을 내세운 작품이다. 과거로의 첫발을 내딛는 공항이자 시간 여행자들만 머무는 호텔로 인해 비극이 일어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희선은 극 중 물리학자 윤태이를 맡는다. 시간여행의 비밀을 밝히게 될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형사 진겸(주원 분)과 만나 비밀을 풀어나간다. ‘방부제 미모’를 자랑하는 그는 20∼40대까지 나이대를 넘나드는 연기를 선보인다.


1990년대 찍었다 하면 화제몰이에 성공했던 김희선은 2007년 결혼 이후에도 SBS <신의> <참 좋은 시절> JTBC <품위있는 그녀> 등 출연 작품서 비교적 안정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비록 지난해 출연한 tvN <나인룸>이 주춤하긴 했으나 흥행력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한 방이 있는 배우로 평가된다.

세 작품 외에도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지난해 JTBC <스카이캐슬>을 시작으로 SBS <VIP>, KBS2 <99억의 여자>, tvN <블랙독>과 같은 여성 중심의 서사를 가진 드라마가 연이어 성공하고 있는 가운데 ‘여풍’을 선도하는 작품이 제작된다.
 

▲ (사진 왼쪽부터)낭만닥터 김사부2 하이에나 아무도 모른다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배우 김서형이 단독 주연을 맡은 SBS <아무도 모른다>다. 경계에 선 아이들의 사연과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감성 추적극이다. 김서형은 형사 차형진 역을 맡아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는 최연소 광수대 경감을 연기한다. 

또 최강희와 유인영, 김지영이 삼총사로 호흡을 맞추는 SBS <굿 캐스팅>도 여성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국정원서 밀려나 근근이 책상을 지키는 아줌마들이, 우연히 요원으로 차출돼 현장으로 위장 잠입하며 벌어지는 액션 코미디 드라마로 4월 첫 방송될 예정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탄탄한 연기력에 인지도 있는 여배우들이 드라마에 대거 출연하면서 여풍이 불고 있다. 아울러 최근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 흐름과 함께 드라마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공감을 받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여성 중심 서사
이어지는 시즌제

여배우들 못지않게 남자 배우들도 대거 안방 문을 두드린다. 특히 군에서 전역한 톱스타들이 눈에 띈다. 먼저 최근 군 전역한 김수현은 KBS2 <프로듀사> 이후 5년 만에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로 팬들을 만난다. 180만원 보건 의료 인력으로 살아가는 정신병동 보호자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앓는 동화 작가의 이야기다.

김수현은 정신병동 보호사 문강태를 연기한다. 훌륭한 피지컬과 탁월한 공감 능력 등 모든 매력을 갖춘 남성이다. 현재 서예지가 여주인공으로 결정된 가운데 최근 인기 급상승한 오정세도 합류했다.

배우 이민호는 김은숙 작가의 <더 킹:영원한 군주>로 복귀한다. SBS <상속자들>서 이미 한 차례 작업한 바 있는 이민호는 <더 킹:영원한 군주>서 대한제국 황제 이곤으로 분한다. <도깨비>를 통해 판타지 서사력을 입증한 김은숙 작가가 평행세계를 소재로 한 번 승부수를 던진 이 작품은 현재 촬영에 한창이다. 대한제국 황제 이곤과 누군가의 삶을 지키려는 대한민국 형사 장태을(김고은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외에도 배우 주원은 <앨리스>로 나서며, 2PM 출신 배우 옥택연은 MBC <더 게임:0시를 위하여>서 이미 얼굴을 비췄다.

스타 제작진도 올 한 해 브라운관을 달굴 전망이다.

노희경 작가는 신작 <히어>서 <미스터 션샤인>으로 스크린뿐 아니라 브라운관서도 저력을 발휘한 이병헌과 영화 <미쓰백> 이후 JTBC <눈이 부시게>, MBC <봄밤> 등에서 연기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한지민, <보좌관>의 히로인 신민아와 20대 배우 중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남주혁을 캐스팅했다.


엄청난 라인업을 구축한 이 드라마는 국제적 비영리 민간단체 NGO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다루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노 작가의 작품에 네 배우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뜨겁다. 

김은숙 작가와 노희경 작가 외에도 명성이 자자한 연출진이 드라마 시장에 진출한다. 영화 <부산행> 연상호 감독은 직접 집필한 오컬트 장르 tvN <방법>으로 안방을 노크한다. 10일 첫 방송 예정인 이 드라마는 한자 이름, 사진, 소지품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저주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10대 소녀와 정의감 넘치는 사회부 기자가 IT 대기업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배우 성동일과 엄지원, 조민수, 정지소가 밀도 높은 연기를 선보일 전망이다. 

뜨거운 지지
입증된 흥행

연 감독은 “영화를 하면서 드라마도 하고 싶었다. 대본을 쓸 때 다른 촬영을 하고 있어 스케줄을 맞추기가 힘들었는데도 제가 너무나도 <방법>을 재밌게 쓰고 있더라. ‘다음 화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 자체가 너무 재밌어 술술 썼다. 내가 드라마 작가에 소질이 있나 보다 싶어 다른 드라마를 써보려 했는데 안 되더라. <방법>은 제게 다시 오지 않을 드라마”라고 말했다.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로 재회한다. 역병으로 생지옥이 된 조선서, 더욱 거세진 조씨 일가의 탐욕과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돼버린 왕세자 창의 피의 사투를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첫 시즌부터 팬덤을 만드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시즌에는 배우 전지현이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기대감을 주고 있다.
 

▲ JTBC &lt;이태원 클라쓰&gt;

<킹덤2>에 이어 시즌제 드라마가 탄생하는데, 다름 아닌 tvN <비밀의 숲2>다. 조승우와 배두나를 비롯해 이준혁, 윤세아 등이 그대로 출연하고 출연작마다 강인한 인상을 남긴 전혜진도 합류한다. 시즌 1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외톨이 검사 황시목(조승우 분)이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배두나)과 함께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시즌2 제작 소식과 함께 드라마 팬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이수연 작가가 그대로 참여하고 박현석 PD가 메가폰을 잡는다.


언제나 그렇듯 웹툰 드라마도 올 한 해 드라마 시장의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이미 방영을 시작한 JTBC <이태원 클라쓰>와 현재 캐스팅이 한창인 JTBC <쌍갑포차>, 이 외에도 3월 방송 예정인 OCN <루갈>, KBS2 <어서와> 등이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또 네이버 웹툰서 현재 연재 중인 동명의 인기 스릴러 웹툰 <스위트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며, 기억을 읽는 초능력 형사와 천재 프로파일러가 함께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인기 웹툰 <메모리스트>는 오는 3월 tvN으로 찾아온다.

유료 웹툰임에도 누적 조회수 5700만뷰, 구독수 4000만명을 넘어서는 <편의점 샛별이>는 글로벌 케이블 채널 라이프타임이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SBS <열혈사제>를 연출한 이명우 PD의 SBS 퇴사 후 첫 작품으로 지창욱과 김유정의 출연이 확정됐다. 올해 1/4분기에만 편성이 확정된 드라마만 총 네 편이며, 인기를 끈 작품 대부분이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을 맺는 등 웹툰의 드라마화 열기가 지속되고 있다.

1/4분기만 4편 웹툰 드라마 강세
‘흥행 보증수표’ 의학 드라마 눈길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순수 드라마 대본이나 시나리오가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올 정도로 웹툰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힘을 받고 있다. 그림으로 영상화돼있어 웹툰이 갖는 강점은 앞으로도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생사가 오가는 병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는 의학 드라마는 국내 드라마 시장서 ‘못해도 중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환자의 생명 앞에서 긴박해지는 상황은 물론 대형병원서 발생하는 의사들의 권력욕을 다루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올해도 의학 드라마는 드라마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할 전망이다. 지난달 6일 첫 방송된 <낭만닥터 김사부2>가 시청률 20%의 벽을 넘어서는 등 의학 드라마의 힘은 올해 시작부터 입증된 셈이다. 

그런 가운데 <응답하라> 시리즈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tvN 신원호 PD는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복귀한다. 이 드라마는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끝내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서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20년지기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조정석과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 등 연기력과 대중성을 모두 겸비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빠르면서도 공감이 가고, 예측을 조금씩 벗어나는 사건 전개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우정 작가의 필력에도 눈길이 모인다. 이미 워낙 많은 히트작을 내놓은 두 사람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행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평이 많다. 
 

▲ (사진 왼쪽부터)배우 김수현·신하균·이민호·주원

오는 5월 첫 방송 예정인 KBS2 <영혼수선공>도 기대되는 의학 드라마로 꼽힌다. 2011년 의학 드라마 <브레인>으로 성공을 맛본 신하균과 유현기 PD가 9년 만에 다시 손잡은 작품으로, <쩐의 전쟁> <동네변호사 조들호>로 집필 능력을 인정받은 이향희 작가의 신작이다. 신하균은 극 중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시준 역을 맡는다.

치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몸을 던지는 열혈 의사다. 뮤지컬계 라이징 스타 배우 한우주 역으로 정소민도 출연한다.

라이징 스타
신인 대방출

또 지난달 29일 처음 방송된 KBS2 <포레스트>는 의학 드라마는 아니지만, 특이하게도 의사가 등장한다. 조보아가 맡은 정영재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외과의사다. 극 자체는 판타지 로맨스지만 의사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의학 관련 에피소드도 선보이는 등 메디컬 분야에 발을 걸쳤다. 국내 존재하는 모든 과를 다루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숱하게 제작되는 의학 드라마가, 올해에도 강력한 경쟁작들을 상대로 승전고를 울릴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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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