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무리수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일진그룹이 안팎으로 어수선하다. 계열사 노조는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된 일감 몰아주기는 계속되고 있다.
 

▲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

2020년 일진그룹 경영방침은 ‘양적 확장’이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2일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 국내 산업계는 격변의 한 해를 보냈다”며 “일본 무역보복, 미중 무역분쟁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련 속에서도 목표를 달성하고자 지난 2년간 ‘생각과 행동을 바꾸자’며 쉼 없이 달려왔다”고 회고했다.

경자년
양적 확장

허 회장은 “올해 국내외 경영환경과 경기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며 국내 경제연구소 기관장들이 사자성어 ‘오리무중’을 선택한 점을 언급했다. 허 회장은 ‘매출 증대’ ‘중장기 먹거리 창출’ ‘경쟁을 통한 개인과 회사 발전 도모’ ‘새로운 일진문화’ 등을 주문했다.

그룹은 새해부터 소란스러웠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충북 지역 3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서 “일진다이아몬드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철회하고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룹 계열사 일진다이아몬드 음성공장 노동자들은 파업 200일을 넘겼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지난해 6월26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이 발단이었다.


노조측 주장에 따르면 사측은 2015년까지 기본급을 낮게 책정하는 대신 정기상여금 600%로 부족한 임금을 맞췄다. 문제는 2016년과 2018년이었다.

회사는 상여금 600% 중 400%를 기본급과 고정수당으로 변경했다. 최저임금 인상분은 상쇄됐다. 임금은 2014년부터 5년째 동결상태였다. 임금 수준은 크게 하락했다. 신입직원과 10년차 직원 임금 차이는 미미했다.

사측과 노조 측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금속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8억23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민주노총 등 단체는 “청구 내용은 본사 경비인력 추가, 보안시설물 설치, 로비 임대료 및 관리비, 입주 업체 피해, 조형물 훼손 등”이라며 “손해를 본 데 대한 배상 요구가 아니라 조합원들을 겁박하기 위한 소송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측은 열린 마음으로 성실한 교섭을 통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진다이아몬드, 올해도 파업 계속
장·차남 그룹 지배 승계 과정 ‘찝찝’

일진다이아몬드 영업이익률은 최근 5년간 한 해를 제외하고 모두 10% 이상이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일진다이아몬드 영업이익(2014∼2018년)은 ▲10.54% ▲16.12% ▲5.51% ▲15.08% ▲13.20% 등이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은 7.42%다.

그룹은 재계 50위권 중견기업으로 매출액만 조 단위다. 그룹 내에는 모두 40여개 계열사가 포진해있다. 일진은 2세 체제로 전환됐다. 창업주 허 회장 슬하에는 2남2녀가 있다. 이 중 장남과 차남이 큰 줄기를 쥐고 있다.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은 ‘일진홀딩스’ 최대주주다. 29.1% 지분이 있다. 사실 허 부회장은 절반 넘는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일진홀딩스 2대주주는 ‘일진파트너스’다. 24.6% 지분이 있다. 허 부회장은 이곳 최대주주다. 보유 지분만 100%다. 결국 허 부회장이 일진홀딩스서 차지하는 지분은 53.7%로 분석할 수 있다.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일진파트너스는 ‘그룹 2세 승계 창구’로 알려졌다. 허 부회장이 절반 넘는 지분을 보유할 수 있었던 배경 때문이다.

일진파트너스는 그룹 내부거래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이후 일진홀딩스 주식을 매입했다. 허 부회장은 간접적으로 일진홀딩스 지분을 쥐게 됐다. 결국 지배구조는 ‘허 부회장→일진파트너스→일진홀딩스→이하 계열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일진파트너스는 지난 1996년 설립됐다. 첫 시작은 금융 회사였다. 당시 주요 주주는 허 회장과 그룹 계열사였다. 이후 사명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주요 사업도 금융업에서 운송업으로 변경됐다.

본격적인 지분 변동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허 부회장은 그 해 일진파트너스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허 부회장 지분은 69.1%였다. 나머지 30.9%는 일진다이아몬드에게 있었다. 다음해인 2007년 허 부회장은 일진파트너스 지분 100%를 모두 보유하게 됐다.

노조 갈등
내부거래

비슷한 시기 매출도 상승했다. 2006년 일진파트너스 매출은 1억8000만원이었다. 허 부회장이 모든 지분을 소유했던 2007년에는 6억8000만원으로 뛰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8억원 정도로 비슷했다.

문제는 2010년부터였다. 일진파트너스 매출은 무려 33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 2011년에는 90억원으로, 2012년에는 135억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눈길이 가는 건 매출처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일진파트너스는 그룹서 매출을 보장 받았다. 3년간 내부거래 비중은 100%였다.

일진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정한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이 아니다. 결국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진파트너스가 일진홀딩스 주식을 매입한 때는 2013년이다. 일진파트너스는 허 회장 지분 전량(15.27%)을 매입했다. 일진파트너스는 일진홀딩스 지분 24.64%까지 소유하게 됐다.

이후 매출은 지난날과 비교했을 때 미미한 수준이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12억원, 18억원, 13억원, 15억원, 19억원 등이었다. 내부거래 비중 역시 78.73%, 74.27%, 65.80%, 78.48%, 43.61% 등으로 감소했다.

일진파트너스는 이후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유한회사는 외부 감사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 일각에선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유한회사로 바뀌었다고 해석한다.
 


잠잠하던 일진파트너스는 일진홀딩스 계열사를 품에 안았다. 일진홀딩스 자회사 ‘아트테크’는 지난해 4월 일진파트너스에 편입됐다. 아트테크는 부동산개발 및 매매임대 분양컨설팅을 영위하고 있다.

허 부회장은 일진홀딩스를 정점으로 이하 계열사에 지배력을 갖게 됐다. 계열사는 ▲일진전기 ▲일진다이아 ▲알피니언 ▲일진디앤코 ▲전주방송 ▲마그마툴 ▲일진복합소재 ▲매직드림 등으로 압축된다.

장·차남
그룹 지배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는 ‘일진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간접 지배한다. 허 대표는 일진머티리얼즈 최대주주(53.30%)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일진유니스코 ▲일진건설 ▲아이알엠 ▲삼영지주 ▲오라진앤코 등을 지배하고 있다. 결국 일진그룹은 일진홀딩스와 일진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셈이다.

허 회장 장녀와 차녀도 계열사 지분이 있다. 장녀는 허세경 일진반도체 대표다. 허 대표는 조명장치 제조·판매 기업 ‘루미리치’ 최대주주(25.54%)이기도 하다. 차녀 허승은씨는 일진자동차 최대주주(55.56%)다. 나머지는 남편 지분이다. 사실상 일진자동차는 허씨 부부회사라고 볼 수 있다.

일진그룹은 최근까지 일감 몰아주기 논란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 일진파트너스 뿐만 아니라 여러 계열사서 내부거래가 이어진다. ▲일진다이아몬드 ▲일진디앤코 ▲일진반도체 등이 대표적이다.


일진다이아몬드 최대주주는 일진홀딩스다. 50.07% 지분이 있다. 다시 말해 허 부회장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계열사 중 하나다. 최근 5년간 일진다이아몬드 별도 기준 매출액은 2014년 802억원, 2015년 869억원, 2016년 856억원, 2017년 925억원, 2018년 985억원 등으로 매년 증가세다.

이 중 상당한 매출이 그룹 내부서 발생했다. 같은 기간 일진다이아몬드 내부거래액과 내부거래 비중은 2014년 458억원(57.12%), 2015년 498억원(57.28%), 2016년 545억원(63.68%), 2017년 630억원(68.13%), 2018년 705억원(71.66%) 등이다.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지난 3분기 54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내부거래에서 비롯된 매출은 408억원이다. 비중은 75.46%에 달한다. 직전년도 3분기 일진다이아몬드 매출은 750억원이었다. 이 중 내부거래 매출은 539억원. 비중은 71.85%였다. 내부거래는 소폭 상승한 셈이다.

그룹 일감 몰아주기 여전
공정위 내부거래 제재 강화

일진디앤코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는 부동산업과 건설업을 영위한다. 최대주주는 일진홀딩스(100%)다. 일진디앤코 역시 허 부회장 지배력을 받고 있다. 최근 5년간 일진디앤코 매출액은 2014년 67억원, 2015년 68억원, 2016년 70억원, 2017년 75억원, 2018년 73억원 등이다.

매년 매출이 상승할 때마다 내부거래도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진디앤코 내부거래 매출과 비중은 2014년 26억원(38.46%), 2015년 27억원(40.05%), 2016년 30억원(42.82%), 2017년 31억원(41.23%), 2018년 31억원(42.23%) 등이다.

일진반도체는 허 회장 장녀 회사다. 최근 5년간 일진반도체 매출액은 2014년 10억원, 2015년 11억원, 2016년 5억원, 2017년 7억원, 2018년 6억원 등이다. 2014년과 2015년 매출 100%는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이후 2016년 3억원(62.66%), 2017년 3억원(47.92%) 등으로 감소했다. 2018년에는 8500만원(12.75%)까지 줄었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범위를 중견기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자산 5조원 미만 중견기업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은 부당지원금지 규제를 적용받는다. 다만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제재는 받지 않는다.

조 위원장은 그달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서 열린 CEO 조찬 간담회서 ‘공정한 시장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정위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5조원 미만 기업집단서 사익편취 내지는 일감 몰아주기, 부당한 내부지원이 더 많이 일어난다”며 “5조원 미만 기업집단에 과거보다 많은 자료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부당한 내부지원이 있는 경우 법 집행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임 공정위원장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 해 3월 업무계획 발표서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거래에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설 것”이라며 “특히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을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익편취와 부당 내부거래를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 기조
계속될 듯

실제로 공정위는 중견그룹을 대상으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나섰다.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아모레퍼시픽과 SPC에 검찰 기소장와 유사한 성격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아모레퍼시픽과 SPC 등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정상 가격보다 비싼 비용을 치른 혐의다.

<일요시사>는 일진그룹 측 입장을 듣기 위해 홍보팀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진그룹 재계 50위권인데 기부엔 ‘짠돌이’

일진그룹은 지주사인 일진홀딩스와 전기차 2차전지 소재를 주력으로 하는 일진머티리얼즈를 비롯해 일진디스플레이, 일진전기, 일진다이아, 일진복합소재 등 국내외 4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재계순위 50위권의 중견그룹이다.

연매출은 3조원대인데 기부는 얼마나 할까.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그룹 지주사인 일진홀딩스는 2018년 1억2000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이는 매출액(72억원) 대비 1.67%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2017년엔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당시 일진홀딩스는 매출 48억원을 올렸다.

일진전기는 2018년 매출(7341억원)의 0.006%인 4040만원만 기부했다.

2017년에도 매출 대비 기부율은 0.006%(매출 7622억원-기부금 4480만원)에 그쳤다.

일진다이아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매출 985억원을 낸 2018년 기부금은 고작 180만원(0.002%)뿐이다.

2017년에도 180만원(0.002%)을 기부했는데, 매출은 926억원이나 됐다.

나머지 3사의 경우 기부 내역이 없다. 일진머티리얼즈, 일진디스플레이, 일진복합소재 모두 2018년 기부금은 ‘0원’이었다.

이들 계열사는 같은 기간 각각 3189억원, 2064억원, 286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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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