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무리수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일진그룹이 안팎으로 어수선하다. 계열사 노조는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된 일감 몰아주기는 계속되고 있다.
 

▲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

2020년 일진그룹 경영방침은 ‘양적 확장’이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2일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 국내 산업계는 격변의 한 해를 보냈다”며 “일본 무역보복, 미중 무역분쟁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련 속에서도 목표를 달성하고자 지난 2년간 ‘생각과 행동을 바꾸자’며 쉼 없이 달려왔다”고 회고했다.

경자년
양적 확장

허 회장은 “올해 국내외 경영환경과 경기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며 국내 경제연구소 기관장들이 사자성어 ‘오리무중’을 선택한 점을 언급했다. 허 회장은 ‘매출 증대’ ‘중장기 먹거리 창출’ ‘경쟁을 통한 개인과 회사 발전 도모’ ‘새로운 일진문화’ 등을 주문했다.

그룹은 새해부터 소란스러웠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충북 지역 3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서 “일진다이아몬드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철회하고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룹 계열사 일진다이아몬드 음성공장 노동자들은 파업 200일을 넘겼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지난해 6월26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이 발단이었다.


노조측 주장에 따르면 사측은 2015년까지 기본급을 낮게 책정하는 대신 정기상여금 600%로 부족한 임금을 맞췄다. 문제는 2016년과 2018년이었다.

회사는 상여금 600% 중 400%를 기본급과 고정수당으로 변경했다. 최저임금 인상분은 상쇄됐다. 임금은 2014년부터 5년째 동결상태였다. 임금 수준은 크게 하락했다. 신입직원과 10년차 직원 임금 차이는 미미했다.

사측과 노조 측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금속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8억23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민주노총 등 단체는 “청구 내용은 본사 경비인력 추가, 보안시설물 설치, 로비 임대료 및 관리비, 입주 업체 피해, 조형물 훼손 등”이라며 “손해를 본 데 대한 배상 요구가 아니라 조합원들을 겁박하기 위한 소송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측은 열린 마음으로 성실한 교섭을 통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진다이아몬드, 올해도 파업 계속
장·차남 그룹 지배 승계 과정 ‘찝찝’

일진다이아몬드 영업이익률은 최근 5년간 한 해를 제외하고 모두 10% 이상이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일진다이아몬드 영업이익(2014∼2018년)은 ▲10.54% ▲16.12% ▲5.51% ▲15.08% ▲13.20% 등이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은 7.42%다.

그룹은 재계 50위권 중견기업으로 매출액만 조 단위다. 그룹 내에는 모두 40여개 계열사가 포진해있다. 일진은 2세 체제로 전환됐다. 창업주 허 회장 슬하에는 2남2녀가 있다. 이 중 장남과 차남이 큰 줄기를 쥐고 있다.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은 ‘일진홀딩스’ 최대주주다. 29.1% 지분이 있다. 사실 허 부회장은 절반 넘는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일진홀딩스 2대주주는 ‘일진파트너스’다. 24.6% 지분이 있다. 허 부회장은 이곳 최대주주다. 보유 지분만 100%다. 결국 허 부회장이 일진홀딩스서 차지하는 지분은 53.7%로 분석할 수 있다.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일진파트너스는 ‘그룹 2세 승계 창구’로 알려졌다. 허 부회장이 절반 넘는 지분을 보유할 수 있었던 배경 때문이다.

일진파트너스는 그룹 내부거래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이후 일진홀딩스 주식을 매입했다. 허 부회장은 간접적으로 일진홀딩스 지분을 쥐게 됐다. 결국 지배구조는 ‘허 부회장→일진파트너스→일진홀딩스→이하 계열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일진파트너스는 지난 1996년 설립됐다. 첫 시작은 금융 회사였다. 당시 주요 주주는 허 회장과 그룹 계열사였다. 이후 사명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주요 사업도 금융업에서 운송업으로 변경됐다.

본격적인 지분 변동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허 부회장은 그 해 일진파트너스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허 부회장 지분은 69.1%였다. 나머지 30.9%는 일진다이아몬드에게 있었다. 다음해인 2007년 허 부회장은 일진파트너스 지분 100%를 모두 보유하게 됐다.

노조 갈등
내부거래

비슷한 시기 매출도 상승했다. 2006년 일진파트너스 매출은 1억8000만원이었다. 허 부회장이 모든 지분을 소유했던 2007년에는 6억8000만원으로 뛰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8억원 정도로 비슷했다.

문제는 2010년부터였다. 일진파트너스 매출은 무려 33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 2011년에는 90억원으로, 2012년에는 135억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눈길이 가는 건 매출처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일진파트너스는 그룹서 매출을 보장 받았다. 3년간 내부거래 비중은 100%였다.

일진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정한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이 아니다. 결국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진파트너스가 일진홀딩스 주식을 매입한 때는 2013년이다. 일진파트너스는 허 회장 지분 전량(15.27%)을 매입했다. 일진파트너스는 일진홀딩스 지분 24.64%까지 소유하게 됐다.

이후 매출은 지난날과 비교했을 때 미미한 수준이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12억원, 18억원, 13억원, 15억원, 19억원 등이었다. 내부거래 비중 역시 78.73%, 74.27%, 65.80%, 78.48%, 43.61% 등으로 감소했다.

일진파트너스는 이후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유한회사는 외부 감사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 일각에선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유한회사로 바뀌었다고 해석한다.
 


잠잠하던 일진파트너스는 일진홀딩스 계열사를 품에 안았다. 일진홀딩스 자회사 ‘아트테크’는 지난해 4월 일진파트너스에 편입됐다. 아트테크는 부동산개발 및 매매임대 분양컨설팅을 영위하고 있다.

허 부회장은 일진홀딩스를 정점으로 이하 계열사에 지배력을 갖게 됐다. 계열사는 ▲일진전기 ▲일진다이아 ▲알피니언 ▲일진디앤코 ▲전주방송 ▲마그마툴 ▲일진복합소재 ▲매직드림 등으로 압축된다.

장·차남
그룹 지배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는 ‘일진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간접 지배한다. 허 대표는 일진머티리얼즈 최대주주(53.30%)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일진유니스코 ▲일진건설 ▲아이알엠 ▲삼영지주 ▲오라진앤코 등을 지배하고 있다. 결국 일진그룹은 일진홀딩스와 일진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셈이다.

허 회장 장녀와 차녀도 계열사 지분이 있다. 장녀는 허세경 일진반도체 대표다. 허 대표는 조명장치 제조·판매 기업 ‘루미리치’ 최대주주(25.54%)이기도 하다. 차녀 허승은씨는 일진자동차 최대주주(55.56%)다. 나머지는 남편 지분이다. 사실상 일진자동차는 허씨 부부회사라고 볼 수 있다.

일진그룹은 최근까지 일감 몰아주기 논란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 일진파트너스 뿐만 아니라 여러 계열사서 내부거래가 이어진다. ▲일진다이아몬드 ▲일진디앤코 ▲일진반도체 등이 대표적이다.


일진다이아몬드 최대주주는 일진홀딩스다. 50.07% 지분이 있다. 다시 말해 허 부회장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계열사 중 하나다. 최근 5년간 일진다이아몬드 별도 기준 매출액은 2014년 802억원, 2015년 869억원, 2016년 856억원, 2017년 925억원, 2018년 985억원 등으로 매년 증가세다.

이 중 상당한 매출이 그룹 내부서 발생했다. 같은 기간 일진다이아몬드 내부거래액과 내부거래 비중은 2014년 458억원(57.12%), 2015년 498억원(57.28%), 2016년 545억원(63.68%), 2017년 630억원(68.13%), 2018년 705억원(71.66%) 등이다.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지난 3분기 54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내부거래에서 비롯된 매출은 408억원이다. 비중은 75.46%에 달한다. 직전년도 3분기 일진다이아몬드 매출은 750억원이었다. 이 중 내부거래 매출은 539억원. 비중은 71.85%였다. 내부거래는 소폭 상승한 셈이다.

그룹 일감 몰아주기 여전
공정위 내부거래 제재 강화

일진디앤코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는 부동산업과 건설업을 영위한다. 최대주주는 일진홀딩스(100%)다. 일진디앤코 역시 허 부회장 지배력을 받고 있다. 최근 5년간 일진디앤코 매출액은 2014년 67억원, 2015년 68억원, 2016년 70억원, 2017년 75억원, 2018년 73억원 등이다.

매년 매출이 상승할 때마다 내부거래도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진디앤코 내부거래 매출과 비중은 2014년 26억원(38.46%), 2015년 27억원(40.05%), 2016년 30억원(42.82%), 2017년 31억원(41.23%), 2018년 31억원(42.23%) 등이다.

일진반도체는 허 회장 장녀 회사다. 최근 5년간 일진반도체 매출액은 2014년 10억원, 2015년 11억원, 2016년 5억원, 2017년 7억원, 2018년 6억원 등이다. 2014년과 2015년 매출 100%는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이후 2016년 3억원(62.66%), 2017년 3억원(47.92%) 등으로 감소했다. 2018년에는 8500만원(12.75%)까지 줄었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범위를 중견기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자산 5조원 미만 중견기업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은 부당지원금지 규제를 적용받는다. 다만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제재는 받지 않는다.

조 위원장은 그달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서 열린 CEO 조찬 간담회서 ‘공정한 시장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정위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5조원 미만 기업집단서 사익편취 내지는 일감 몰아주기, 부당한 내부지원이 더 많이 일어난다”며 “5조원 미만 기업집단에 과거보다 많은 자료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부당한 내부지원이 있는 경우 법 집행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임 공정위원장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 해 3월 업무계획 발표서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거래에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설 것”이라며 “특히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을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익편취와 부당 내부거래를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 기조
계속될 듯

실제로 공정위는 중견그룹을 대상으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나섰다.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아모레퍼시픽과 SPC에 검찰 기소장와 유사한 성격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아모레퍼시픽과 SPC 등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정상 가격보다 비싼 비용을 치른 혐의다.

<일요시사>는 일진그룹 측 입장을 듣기 위해 홍보팀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진그룹 재계 50위권인데 기부엔 ‘짠돌이’

일진그룹은 지주사인 일진홀딩스와 전기차 2차전지 소재를 주력으로 하는 일진머티리얼즈를 비롯해 일진디스플레이, 일진전기, 일진다이아, 일진복합소재 등 국내외 4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재계순위 50위권의 중견그룹이다.

연매출은 3조원대인데 기부는 얼마나 할까.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그룹 지주사인 일진홀딩스는 2018년 1억2000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이는 매출액(72억원) 대비 1.67%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2017년엔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당시 일진홀딩스는 매출 48억원을 올렸다.

일진전기는 2018년 매출(7341억원)의 0.006%인 4040만원만 기부했다.

2017년에도 매출 대비 기부율은 0.006%(매출 7622억원-기부금 4480만원)에 그쳤다.

일진다이아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매출 985억원을 낸 2018년 기부금은 고작 180만원(0.002%)뿐이다.

2017년에도 180만원(0.002%)을 기부했는데, 매출은 926억원이나 됐다.

나머지 3사의 경우 기부 내역이 없다. 일진머티리얼즈, 일진디스플레이, 일진복합소재 모두 2018년 기부금은 ‘0원’이었다.

이들 계열사는 같은 기간 각각 3189억원, 2064억원, 286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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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