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2말3초’ 위기론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2.10 10:20:00
  • 호수 12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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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일만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에 대한 당내 불만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 검증 부실 논란과 하위 20% 비공개 역풍, 그리고 지역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수용 등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2말3초’에 이 대표에 대한 불만이 외부로 표출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민주당 경선이 진행되는 시기다. <일요시사>는 심상찮은 당내 목소리를 쫓았다.   
 

▲ 요즘 머릿속 복잡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나경식 기자

“경선만 하게 해달라. 지금 (선거에)뛰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도 전략공천을 밀어붙인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 한 예비후보의 바람이다. 현재 민주당은 전략공천에 대한 우려로 시끄럽다. 예비후보자는 물론이고 총선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들도 합세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전략공천
2차 발표

지난 5일 경기도 의정부시청에선 해당 지역의 민주당 소속 시·도의원들이 모였다. 민주당의 전략공천 방침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하기 위함이다. 당원들은 의정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자신들의 손으로 뽑고 싶어 한다는 성명이었다. 이들은 만약 보수세가 강한 의정부서 전략공천이 이뤄진다면 민주당의 총선 필패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했다. 

앞서 민주당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지역구인 의정부갑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했다. 이에 문 의장의 아들인 문석균 수석부위원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해당 지역 출마를 준비했지만, ‘세습 논란’이 불거지자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민주당은 제주시갑 역시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했다. 이 지역 현역은 4선의 민주당 강창일 의원이다. 그는 지난달 12일 제주 한라대 한라아트홀 대극장서 개최한 의정보고회를 열어 “박수 받을 때 떠나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 제주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한다”며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 기자회견 갖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2호’ 원종건씨

이 지역에는 송재호 전 균형발전위원장의 전략공천설이 파다한데 그는 지난 5일에 민주당으로 복당했다. 그는 기자회견서 “제주시갑의 강 의원이 불출마라는 큰 결단을 해주셔서 갑으로 갈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전략공천설에 다른 후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이 제주시 갑에 대한 전략공천 노선을 철회하고 100% 국민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요구다. 경선을 요구하는 예비후보들은 ‘기회는 평등학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현 정부의 기조를 민주당 지도부가 실천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예비후보들의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민주당 전략공천위원회는 곧 2차 전략공천 지역을 결정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달 17일 15곳의 전략공천 지역들이 발표된 바 있다. 1차가 규정에 따른 결정이라면, 곧 발표될 2차는 여론조사 등을 토대로 한 ‘판단’이 영향을 미쳐 논란이 예상된다.

전략공천설에 ‘토사구팽’ 불안 확산
‘험지’는 버리는 카드? 나 몰라라

“지역별로 상황이 다른데, 전국에 동일하게 (부동산 정책을) 적용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보들에게 돌아간다.” 

험지에 출마한 한 예비후보는 당정의 부동산 정책에 이같이 하소연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는 고가의 ‘1가구 1주택’ 부동산 실수요자에게 강력한 대출규제를 실시하겠다고 알렸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고, 9억∼15억원 주택에 대해서는 9억원 초과 금액에 대해 주택담보비율(LTV)을 40%서 20%로 축소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다.


또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주택거래허가제’ 검토 가능성까지 흘렸다. 민주당 지도부는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수도권으로 특히 고가 아파트가 밀집돼있는 서울 강남3구·양천, 경기 분당 지역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현역 의원들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고가 아파트 지역은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해 민주당 입장서 ‘험지’로 꼽힌다.

이에 수도권 험지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1가구 1주택자의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당에 공식 제안하기로 했다. 당 일각에선 당정청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소통을 활발히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과 의원들 사이에 엇박자가 나는 모양새다. 앞서 당 지도부는 부동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에 대한 심사를 보류한 사건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민주당 지도부가 험지 현역 의원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내다본다.

부동산 정책
어떡하나

“인재라고 데려오는 사람들을 보면 당에 대한 기여도는 전무하다. 기존에 당에서 노력한 사람을 좀더 신경써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총선에 첫 출전하는 예비후보의 목소리다. 최근 민주당은 영입된 인재들과 관련한 논란으로 시끄럽다. 원종건씨의 데이트 폭력 의혹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민주당이 야심차게 내놓은 2호 영입인재였다.

영입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트 폭력 의혹이 불거졌다. 원씨의 전 여자친구라고 밝힌 이는 교제기간 동안 원씨로부터 강제적 성관계, 불법촬영 등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여혐’ ‘가스라이팅’ 등 전 여자친구가 폭로한 글에 포함된 단어들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원씨는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논란은 사실이 아니지만, 이 자체가 당에 부담이 되기에 영입인재 자격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당사자들 사이서 반박과 재반박이 오갔다.
 

▲ 회의 갖는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민주당의 부실검증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민주당 대변인은 원씨 사태 후 “당에서 검증을 하긴 했는데, 본인 소명과 설명 중심으로 듣다 보니 상세 내용을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역시 “검증이 부족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영입인재와 관련한 논란은 원씨만이 아니었다. 5호 영입 인재인 소방관 오영환씨는 입당 당시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의 입시비리 의혹과 관련해 당시 학부모들이 하던 관행이라고 주장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논문표절 의혹도 불거졌다. 11호 영입 인재인 최기일 건국대 산업대학원 겸임교수가 표절로 논문이 취소된 적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방위사업청의 군수품 조달 전문지인 <국방획득저널>은 최 교수가 게재한 논문이 국내서 이미 발표된 논문의 관련 문장을 인용·출처 표시 없이 작성했다며 논문 취소 공고를 낸 바 있다.


부실한 검증
형평성 논란

논란이 일자 최 교수는 공동연구자가 해당 논문을 단독으로 다른 학술지에 먼저 투고해 발생한 사건으로, 자신은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논문표절이 현 정부가 밝힌 인사배제 원칙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14번째 영입 인재인 청년창업가 조동인씨는 ‘스펙용 창업’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015년 기업 3곳을 비슷한 시기에 창업했다가 2년여 사이에 동시 폐업한 사실이 알려졌다. 

조씨는 입장문을 통해 “디바인무브는 경영이 어려워 폐업했고, 다이너모토는 진행했던 유통사업서 성과가 나지 않아 종료를 결정했다. 플래너티브는 창업교육 사업을 미텔슈탄트로 이관하기로 했다”며 폐업 사유를 설명했다.

13호 영입 인재인 이수진 전 부장판사는 입당 당시 했던 주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그는 ‘양승태 사법부 블랙리스트’ 피해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해당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여야 간 공방이 벌어졌다.
 

▲ 이수진 전 판사

이 대표가 밝힌 시스템 공천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에는 인재영입위원회(이하 영입위)와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가 별개로 구성돼있다. 영입 인재에 대해서는 검증위가 아닌 영입위서 자체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영입위서 하는 검증의 부실함이 드러난 것이다. 


김경협 검증위원장은 지난달 30일 BBS <이상휘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서 “영입인재는 일단 검증 대상서 제외돼있다. 시스템에 의한 검증은 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당규 제3장은 ‘영입위를 통해 영입했거나 최고위 의결을 거친 인사는 검증위 심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예비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서류심사부터 꼼꼼히 진행되는 데 반해, 영입 인재는 평판 조회와 면접 등만 거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형평성’에 있다. 검증 과정은 물론, 선거서도 영입인재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당 곳곳서 들려온다. 이미 출마 선언을 한 민주당 소속 예비후보자들은 영입인재가 전략공천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충신보다 새 얼굴 중용
경선 후폭풍 몰아치나?

민주당은 현역 의원 평가서 하위 20%에 속한 대상자와 영입인재를 서로 경선을 붙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직 공식 기구서 절차를 밟고 있지는 않지만, 당 지도부가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영입인재 대다수가 지역구 출마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도 가능성을 높인다. 하위 20% 평가를 받은 의원들 중 불출마 선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위 20% 의원과 영입인재가 맞붙는다면 영입인재들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 하위 20%로 평가된 현역 의원은 경선서 총점의 20% 감점이라는 페널티를 받는 반면, 영입 인재는 정치신인으로 분류돼 10∼20%의 가산점을 얻기 때문이다. 

또 하위 20% 의원에 대해서는 정성평가(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하는 평가)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정체성(15%)·기여도(10%)·의정활동(10%)·도덕성(15%)·면접(10%) 등이 평가 항목이다. 선거판서 정성평가는 모호한 기준과 원칙으로 항상 논란을 불러왔다.  
 

▲ 정봉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기존 하위 20% 명단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당 지도부의 결정도 후폭풍을 낳았다. 지라시(각종 소문을 담은 정보지)가 돌면서다. 지라시에 이름을 올린 현역 의원의 경선 경쟁자 중 일부는 지라시를 흑색선전 용도로 활용했다. 

이에 지라시에 이름을 올린 현역 의원들은 지역구 유권자와 언론에 문자를 보내며 진화에 나서는 등 한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당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앞서 결정한 비공개 방침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다는 말이 나온다.

정성평가
독 되나

민주당의 눈은 총선을 향해 있는 가운데 당 경선은 2월 말 내지는 3월 초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은 ‘2월 말, 3월 초’에 이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외부로 터져나올 것이라 예상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는 ‘승자독식’ 아닌가. 경선도 마찬가지다. 원래 집안싸움이 무섭다. 역대 경선만 봐도 조용히 넘어갔던 적이 없다. 아무리 (이)대표가 시스템 공천을 한다고 해도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잡음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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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