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 ‘총선 캠프화’ 논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2.03 11:26:26
  • 호수 12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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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데 또…위인설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총선용 직함’을 대거 살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해당 위원회는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의 중심에 있는 송철호 울산시장의 공약을 설계해줬다는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위원회 사무실은 최근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이야기다.
 

▲ 청와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현판식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이하 균형발전위)는 지역발전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관련 중요 정책에 대해 자문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제22조(균형발전위의 설치)를 보면 국가균형발전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관련 중요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도록 대통령 소속으로 균형발전위를 둔다고 명시한다. 지난 2003년에 출범한 균형발전위는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해 있다.

압수수색
자료 확보

총선을 앞두고 균형발전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 시작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해당 의혹의 주요 피의자인 청와대 출신 인사 등 전현직 공무원 13명을 전격 기소했다. 지난 6·13지방선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와 여권, 울산 지역 경찰과 공무원 등이 집단적으로 동원됐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공소 사실은 크게 세 가지로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송 시장의 당내 경쟁자 제거, 그리고 ▲송 시장의 공약 지원이다.

검찰은 균형발전위가 송철호 울산시장의 공약 설계에 관여한 정황을 포착하고 움직였다. 지난달 9일 검찰은 균형발전위 사무실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송 시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공공병원 설립 등에 균형발전위가 관여했는지가 핵심이다. 검찰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고문단 활동 내역과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10일에는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청와대의 거부로 자료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자치발전비서관실은 균형발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검찰은 장환석 전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지난달 29일 기소했다.

송 시장과 그의 핵심 측근인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은 2017년 10월 장 전 행정관을 만나 ‘산재모병원’ 예비타당성(이하 예타) 조사 발표를 연기해달라고 부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산재모병원 유치는 청와대로부터 하명 수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다. 반면 송 시장은 산재모병원 유치 공약에 대응해 ‘공공병원 유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검찰, 송철호 공약 설계 기소
공공병원 예타 면제 개입했나? 

김 전 시장이 건립에 공을 들였던 산재모병원은 지난 2018년 5월28일 예타에서 탈락됐다.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마감된 직후였다. 반면 송 시장의 공공병원 유치 공약은 ‘산재전문 공공병원’으로 이름이 변경된 후 지난해 1월 예타를 면제받았다. 송 시장의 다른 공약인 외곽순환고속도로 사업도 예타서 면제됐다.

검찰은 산재모병원의 예타 탈락과 공공병원의 예타 면제 과정에 균형발전위가 개입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예타 면제 등에 관여한 공무원들이 있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시장은 자신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예타 탈락 결과를 선거 직전까지 미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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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검찰은 송 부시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그의 업무수첩을 입수한 바 있다. 해당 업무수첩에는 “산재모병원이 좌초되면 좋다”는 등 송 시장 측의 계획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시장은 “예타 조사 결과 발표 7개월 전에 ‘좌초’로 미리 의견을 조율했다는 게 명확히 드러난다”고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6·13지방선거를 7개월여 앞둔 지난 2017년 11월 송 시장을 균형발전위 고문으로 위촉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곽상도 의원실이 입수한 2017년 위촉된 균형발전위 고문단 명단에는 송 시장 외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 김두관 의원,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11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가 균형발전위로부터 정식 위촉장을 받은 것은 2017년 12월이었다.


핵심 공약
지원했나?

검찰이 입수한 송 부시장의 2017년 10월17일자 업무수첩에는 송 시장이 장관급 직함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메모가 적혀 있다고 한다. 송 시장은 당시 변호사 신분이었다. 업무수첩 날짜를 기준으로 약 40여일 뒤 송 시장은 균형발전위 고문으로 위촉된 것이다. 

균형발전위는 송 시장이 고문이 되고 약 한 달 뒤 근거 규정을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보수 야권은 청와대와 민주당이 송 시장을 울산시장에 당선시킬 목적으로 고문단을 구성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위인설관(필요도 없는데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직책이나 벼슬을 만드는 것)’으로 지방선거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균형발전위는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근거 규정을 뒤늦게 만들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균형발전위 측은 “지난 2017년 11월27일 간담회를 통해 정책방향을 논의할 고문단을 구성하기로 하고, 송 시장을 포함한 고문단의 역할과 향후 절차에 대해 논의했다”며 “송 시장 등의 고문단 위촉장 발부는 같은 해 12월18일 고문단 근거규정 마련 이후인 12월26일에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송 시장은 균형발전위 고문단 첫 회의에 참석해 “울산의 균형발전을 위해 특단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국립병원, 외곽순환도로를 설립하기 위해 고문단의 의견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국립병원과 외곽순환도로 역시 송 시장의 공약이다. 만약 균형발전위 핵심 관계자들이 송 시장 공약 설계에 대해 서로 논의했다면,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11→350
조직 확대

검찰은 송 시장을 관련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송 시장은 이 같은 검찰의 결정에 “정치적 목적을 가진 왜곡·짜맞추기 수사, 무리한 기소에 분노한다”며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나에 대한 혐의는 전면 부인한다”며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에게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위 수사를 청탁했고, 산재모병원 건립 사업의 예타 발표를 (청와대 행정관에게) 연기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검찰의 혐의 내용은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억울해했다.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균형발전위는 지난해 10월, 기존 11명이었던 ‘국민소통특별위원’을 350여명으로 늘렸다. 이들 중 일부는 4·15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야권은 균형발전위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사실상 ‘총선용 직함’을 대거 나눠줬다고 의심한다. 특별위원 중 야당 측 인사가 한 명도 없는 점도 총선용 직함에 무게를 싣는다는 주장이다.
 

조직이 확대될 당시 균형발전위원장은 송재호 전 위원장이었다. 그는 제주 지역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달 21일 사퇴했다. 당시 그는 ‘사임의 변’을 통해 “국가균형발전 완성을 위한 정부와 지방의 가교가 되고자 한다”며 출마를 공식화했다. 지역 정가에선 송 전 위원장이 4선인 민주당 강창일 의원의 불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제주갑에 전략공천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사퇴 과정서도 논란이 있었다. 송 전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사퇴했는데 이는 총선 출마자 공직 사퇴시한인 지난달 16일을 넘긴 시점이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의 경우 선거 90일 전 사퇴를 규정하고 있다. 

맞춤형 특혜직 제공 의혹
선거 앞두고 조직 확대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송 전 위원장이 이 조항의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위촉위원 등은 선거 90일 전 사퇴해야 하는 공직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선관위의 유권해석에도 송 전 위원장이 ‘현직 프리미엄’을 활용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송 전 위원장의 출격이 예상되는 제주갑 예비후보의 불만이 높다. 이곳에 출마하는 한국당 김영진 예비후보는 송 전 위원장의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그는 “균형발전위가 총선 캠프로 변질됐다”며 “송 전 위원장이 자신의 정계 진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한 것이고, 이에 대한 대가로 전략공천을 획득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송 전 위원장을 비롯한 균형발전위의 이 같은 태도에 강력히 경고를 보낸다”며 “청와대의 안락한 그늘에 숨은 채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것을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양지로 나와 제주도민과 유권자에게 무릎 꿇고 사죄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내부에선 송 전 위원장에 대한 전략공천설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민주당 박희수 예비후보는 “지역 정서와 지역주민의 결정 권한을 무시하고 중앙서 일방적으로 특정인을 지정해 지역의 후보로 내세운다면, 지난 지방선거서의 패배를 재현할 수밖에 없으며, 제주도 국회의원 선거 전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문윤택 예비후보도 “선거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도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며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으로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공정한 경선을 촉구했다.


위원장 출마
지역 시끌

검찰은 지난달 29일 송 시장과 송 부시장, 황 전 청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등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또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 전 선임행정관, 문 모 전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등 김 전 시장 주변 수사와 송 시장 선거공약 논의에 참여한 혐의가 있는 청와대 인사들도 대거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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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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