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 ‘총선 캠프화’ 논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2.03 11:26:26
  • 호수 12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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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데 또…위인설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총선용 직함’을 대거 살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해당 위원회는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의 중심에 있는 송철호 울산시장의 공약을 설계해줬다는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위원회 사무실은 최근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이야기다.
 

▲ 청와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현판식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이하 균형발전위)는 지역발전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관련 중요 정책에 대해 자문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제22조(균형발전위의 설치)를 보면 국가균형발전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관련 중요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도록 대통령 소속으로 균형발전위를 둔다고 명시한다. 지난 2003년에 출범한 균형발전위는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해 있다.

압수수색
자료 확보

총선을 앞두고 균형발전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 시작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이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해당 의혹의 주요 피의자인 청와대 출신 인사 등 전현직 공무원 13명을 전격 기소했다. 지난 6·13지방선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와 여권, 울산 지역 경찰과 공무원 등이 집단적으로 동원됐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공소 사실은 크게 세 가지로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송 시장의 당내 경쟁자 제거, 그리고 ▲송 시장의 공약 지원이다.

검찰은 균형발전위가 송철호 울산시장의 공약 설계에 관여한 정황을 포착하고 움직였다. 지난달 9일 검찰은 균형발전위 사무실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송 시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공공병원 설립 등에 균형발전위가 관여했는지가 핵심이다. 검찰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고문단 활동 내역과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10일에는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청와대의 거부로 자료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자치발전비서관실은 균형발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검찰은 장환석 전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지난달 29일 기소했다.

송 시장과 그의 핵심 측근인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은 2017년 10월 장 전 행정관을 만나 ‘산재모병원’ 예비타당성(이하 예타) 조사 발표를 연기해달라고 부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산재모병원 유치는 청와대로부터 하명 수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다. 반면 송 시장은 산재모병원 유치 공약에 대응해 ‘공공병원 유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검찰, 송철호 공약 설계 기소
공공병원 예타 면제 개입했나? 

김 전 시장이 건립에 공을 들였던 산재모병원은 지난 2018년 5월28일 예타에서 탈락됐다.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마감된 직후였다. 반면 송 시장의 공공병원 유치 공약은 ‘산재전문 공공병원’으로 이름이 변경된 후 지난해 1월 예타를 면제받았다. 송 시장의 다른 공약인 외곽순환고속도로 사업도 예타서 면제됐다.

검찰은 산재모병원의 예타 탈락과 공공병원의 예타 면제 과정에 균형발전위가 개입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예타 면제 등에 관여한 공무원들이 있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시장은 자신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예타 탈락 결과를 선거 직전까지 미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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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검찰은 송 부시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그의 업무수첩을 입수한 바 있다. 해당 업무수첩에는 “산재모병원이 좌초되면 좋다”는 등 송 시장 측의 계획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시장은 “예타 조사 결과 발표 7개월 전에 ‘좌초’로 미리 의견을 조율했다는 게 명확히 드러난다”고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6·13지방선거를 7개월여 앞둔 지난 2017년 11월 송 시장을 균형발전위 고문으로 위촉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곽상도 의원실이 입수한 2017년 위촉된 균형발전위 고문단 명단에는 송 시장 외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 김두관 의원,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11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가 균형발전위로부터 정식 위촉장을 받은 것은 2017년 12월이었다.


핵심 공약
지원했나?

검찰이 입수한 송 부시장의 2017년 10월17일자 업무수첩에는 송 시장이 장관급 직함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메모가 적혀 있다고 한다. 송 시장은 당시 변호사 신분이었다. 업무수첩 날짜를 기준으로 약 40여일 뒤 송 시장은 균형발전위 고문으로 위촉된 것이다. 

균형발전위는 송 시장이 고문이 되고 약 한 달 뒤 근거 규정을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보수 야권은 청와대와 민주당이 송 시장을 울산시장에 당선시킬 목적으로 고문단을 구성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위인설관(필요도 없는데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직책이나 벼슬을 만드는 것)’으로 지방선거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균형발전위는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근거 규정을 뒤늦게 만들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균형발전위 측은 “지난 2017년 11월27일 간담회를 통해 정책방향을 논의할 고문단을 구성하기로 하고, 송 시장을 포함한 고문단의 역할과 향후 절차에 대해 논의했다”며 “송 시장 등의 고문단 위촉장 발부는 같은 해 12월18일 고문단 근거규정 마련 이후인 12월26일에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송 시장은 균형발전위 고문단 첫 회의에 참석해 “울산의 균형발전을 위해 특단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국립병원, 외곽순환도로를 설립하기 위해 고문단의 의견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국립병원과 외곽순환도로 역시 송 시장의 공약이다. 만약 균형발전위 핵심 관계자들이 송 시장 공약 설계에 대해 서로 논의했다면,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11→350
조직 확대

검찰은 송 시장을 관련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송 시장은 이 같은 검찰의 결정에 “정치적 목적을 가진 왜곡·짜맞추기 수사, 무리한 기소에 분노한다”며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나에 대한 혐의는 전면 부인한다”며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에게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위 수사를 청탁했고, 산재모병원 건립 사업의 예타 발표를 (청와대 행정관에게) 연기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검찰의 혐의 내용은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억울해했다.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균형발전위는 지난해 10월, 기존 11명이었던 ‘국민소통특별위원’을 350여명으로 늘렸다. 이들 중 일부는 4·15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야권은 균형발전위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사실상 ‘총선용 직함’을 대거 나눠줬다고 의심한다. 특별위원 중 야당 측 인사가 한 명도 없는 점도 총선용 직함에 무게를 싣는다는 주장이다.
 

조직이 확대될 당시 균형발전위원장은 송재호 전 위원장이었다. 그는 제주 지역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달 21일 사퇴했다. 당시 그는 ‘사임의 변’을 통해 “국가균형발전 완성을 위한 정부와 지방의 가교가 되고자 한다”며 출마를 공식화했다. 지역 정가에선 송 전 위원장이 4선인 민주당 강창일 의원의 불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제주갑에 전략공천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사퇴 과정서도 논란이 있었다. 송 전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사퇴했는데 이는 총선 출마자 공직 사퇴시한인 지난달 16일을 넘긴 시점이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의 경우 선거 90일 전 사퇴를 규정하고 있다. 

맞춤형 특혜직 제공 의혹
선거 앞두고 조직 확대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송 전 위원장이 이 조항의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위촉위원 등은 선거 90일 전 사퇴해야 하는 공직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선관위의 유권해석에도 송 전 위원장이 ‘현직 프리미엄’을 활용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송 전 위원장의 출격이 예상되는 제주갑 예비후보의 불만이 높다. 이곳에 출마하는 한국당 김영진 예비후보는 송 전 위원장의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그는 “균형발전위가 총선 캠프로 변질됐다”며 “송 전 위원장이 자신의 정계 진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한 것이고, 이에 대한 대가로 전략공천을 획득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송 전 위원장을 비롯한 균형발전위의 이 같은 태도에 강력히 경고를 보낸다”며 “청와대의 안락한 그늘에 숨은 채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것을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양지로 나와 제주도민과 유권자에게 무릎 꿇고 사죄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내부에선 송 전 위원장에 대한 전략공천설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민주당 박희수 예비후보는 “지역 정서와 지역주민의 결정 권한을 무시하고 중앙서 일방적으로 특정인을 지정해 지역의 후보로 내세운다면, 지난 지방선거서의 패배를 재현할 수밖에 없으며, 제주도 국회의원 선거 전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문윤택 예비후보도 “선거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도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며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으로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공정한 경선을 촉구했다.


위원장 출마
지역 시끌

검찰은 지난달 29일 송 시장과 송 부시장, 황 전 청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등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또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 전 선임행정관, 문 모 전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등 김 전 시장 주변 수사와 송 시장 선거공약 논의에 참여한 혐의가 있는 청와대 인사들도 대거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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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