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수상권 오스카 레이스 관전포인트

골리앗과 붙는 다윗 ‘개봉박두’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봉준호 감독 연출작 <기생충>의 ‘오스카 레이스’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미국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으로 불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오스카상)이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것. 현재까지 <기생충>은 세계 유수 영화제 및 시상식서 180개 이상의 수상 이력을 남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오스카상 수상을 통해 한국 영화 100년의 기념비적인 사건을 일으킬지 관심이 뜨겁다. 현재 영국 전쟁영화 <1917>과 2파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작품상’ 수상 가능성을 내다봤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지난해 5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서 최고상 격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와 시상식을 돌며 광폭 행보를 이어나갔다. 이후 지난해 10월 북미 지역서 <기생충>을 개봉하면서 오스카상 수상을 위한 홍보 및 경쟁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예측 불가능

이후 뉴욕과 토론토 영화제는 물론 각종 비평가협회서 주어지는 상을 휩쓸었고, 심지어 미국 내 2위 시상식으로 불리는 골든글로브서도 작품상을 받았다. 결국 오스카상의 국제장편영화상, 미술상, 편집상,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영화로서는 모든 것이 최초인,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국내서 1000만 관객 동원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후, 모든 활동은 ‘즐거운 소동’이라고 밝힌 봉 감독 역시 오스카상의 작품상을 내다보는 현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던 듯하다. 일반적으로 일부 심사위원들이 수십편의 작품을 감상한 후 모여서 결정하는 게 영화제 및 시상식의 최고상을 가리는 심사방식인 데 반해 오스카상은 미국 내 영화 관계자 총 8000여명이 투표하는 방식으로 수상 여부를 가린다. 

국내에선 CJ그룹 이미경 부회장과 배우 이병헌, 봉준호 감독 등에게 투표권이 있다. 오스카 레이스는 일종의 선거운동과 비슷한 행태를 띤다. 따라서 막대한 예산도 투입되며, 인종과 성별, 지역 등 각종 정치적인 사안이 수상에 영향을 끼친다. 투표제도 역시 복잡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봉 감독 역시 이 모든 것을 알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익스트림 무비와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북미 배급사와 홍보팀이 광란의 환호 내지 충격과 환희를 드러냈던 건 미국배우조합상(SAG)의 앙상블상에 노미네이트가 됐을 때였다. 사람들이 울고불고 그랬다. 오히려 나를 비롯한 한국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고 밝혔다. 

북미 지역 프로모션 관계자들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인 이유는 오스카상 투표권자 대부분이 현역 또는 은퇴한 영화 업계 종사자이며, 이들은 감독 및 프로듀서, 촬영, 배우 조합 등에 소속돼있고, 이 중 가장 인원수가 많은 게 SAG라는 것. SAG서 관심을 받는 영화가 곧 오스카 레이스서 유리함을 갖는다. 이때부터 캠페인 분위기가 확 바뀌었고, 예산도 더 투입됐다고 봉 감독은 전했다. 

▲오스카 ‘바로미터’ 셋 = 오스카상의 최고상 격인 작품상에는 현재 9개 작품이 경쟁 중이다. <기생충>을 비롯해 <포드 V 페라리> <아이리시맨> <조조 래빗> <조커> <작은 아씨들> <결혼이야기>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등이다. 그 가운데 <기생충>과 <1917>의 각축전이 예상된다. 

이 배경에는 ‘미국제작자조합상’(이하 PGA)과 ‘미국감독조합상’(이하 DGA), ‘미국배우조합상’(이하 SAG)이 있다. 이 세 조합의 수상 여부가 오스카상의 바로미터로 평가된다. 세 조합은 할리우드 주요 직군을 대표하는 단체라는 점에서 오스카상 뿐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계에 영향력이 높다.

▲골리앗 VS 다윗 = 1월30일 기준 세 조합의 주인공이 결정됐다. <기생충>은 SGA의 최고상 격인 캐스팅 앙상블상을 수상했고, <1917>은 PGA와 DGA를 가져갔다. 통계적으로 PGA와 DGA를 받은 <1917>이 <기생충>보다 우세하다는 평이 나온다. 

지난 30년 동안 PGA서 작품상을 받은 21개 작품이 오스카서도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무려 70%의 높은 확률이다. 최근 10년간 PGA를 받고도 아카데미서 작품상을 따내지 못한 영화는 <빅쇼트>와 <라라랜드> 단 두 편이다. 

한국영화 100년 금자탑 쌓을까?
다양성 부문 ‘독식’ 가능할까?


아울러 PGA는 오스카상과 같이 선호투표제 방식으로 진행됐다. 선호투표제란 아카데미 회원들이 후보작에 모두 순위를 매기고, 1순위가 절반을 넘기면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방식이다. 만약 절반을 넘기지 못하면 최하위 영화를 후보서 빼고 최하위 영화 투표자의 2순위 표가 1순위가 되는데, 이렇게 1순위가 과반을 넘기는 영화가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곧 작품상 후보 중 하위권 영화에 투표하는 회원의 2∼3순위 영화가 캐스팅보트를 갖는다. 동일 방식서 <1917>이 <기생충>을 따돌렸다는 것은 <기생충>을 응원하는 국내 팬들에게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다.

또 영화감독들이 대거 포함된 DGA는 PGA보다 더욱 확률이 높다. DGA 최고상 수상작이 오스카서 작품상을 수상하지 못한 경우는 72년 동안 단 17번에 불과하다. 실제로 많은 감독들이 <기생충>을 칭찬하면서도 정작 투표는 <1917>에 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PGA와 DGA를 수상한 <1917>이 <기생충>에 비해 한발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 영화 1017

DGA 투표 결과로 인해 오스카 감독상은 <1917>의 샘 멘더스 감독으로 확정된 분위기다. 또 <기생충>은 드라마 형식의 작품인데 반해 <1917>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전쟁 영화라는 점, 통상적으로 감독상은 큰 스케일의 작품 연출자가 차지한다는 점에서 봉 감독이 감독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기생충> 호재는? = <1917>이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비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세 조합 중 가장 많은 아카데미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SAG서 <기생충>이 수상했기 때문이다. 지난 24년간 SAG에 후보 지명조차 없이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브레이브 하트>(1996)와 <더 셰이프 오브 워터>(2018), <그린 북>(2019) 등 3편뿐이다. 

아울러 지난 1일 개최된 작가 조합상(WGA)에서는 <기생충>이 받았다. 작가 조합상 역시 다수의 아카데미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로써 <기생충>은 외국어 영화상과 함께 각본상도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기생충>은 외국어 영화라는 점과 함께 수천억원을 제작비로 투자하는 미국의 관점으로 봤을 때 블록버스터가 아닌 다양성 영화에 해당한다. 올해에는 여성이나 흑인, 라틴 계열 등 정치적 성향을 포괄한 다양성 영화가 거의 없어 <기생충>이 다양성 영화를 선호하는 회원들의 표를 독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1라운드서 <1917>이 절반 이상 표를 가져가지 못할 경우, 다양성 영화를 선택한 회원들의 2∼3순위 표가 <기생충>으로 흘러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최근 오스카 주요부문서 기존 예측을 무너뜨리고 비백인 영화들의 선전이 돋보였던 만큼, 유일한 비백인 영화인 <기생충>이 ‘로컬’(Local)과 국제 영화제의 기로에 놓인 오스카로부터 어떤 선택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높은 벽

오스카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 시점으로 보면 <1917>이 가장 유력한 게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뚜껑을 열 때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사람들은 언더 독에게 동정심을 갖고 있어, 강력한 대항마인 <기생충>이 마지막 반전을 일으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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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