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공무원 성추행 고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2.03 11:06:06
  • 호수 12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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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과 팔뚝에 침을 묻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경기도의 한 공무원이 계약직 여직원에게 수년간 성추행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피해자는 재계약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가 해당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아봤다.
 

국내 공공기관 및 민간사업체 직원 100명 중 8명은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피해자들은 10명 중 8명이 성희롱을 당하고도 특별한 대처 없이 참고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8년 4월6일부터 12월27일까지 전국 공공기관 400곳과 민간 업체 1200곳의 직원 9304명, 성희롱 방지 업무 담당자 1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를 지난해 발표했다. 일반 직원 가운데 지난 3년간 직장에 다니는 동안 한 번이라도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8.1%였다.

편지 주고
선물 공세

고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A씨는 2014년 경기도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동물보호센터 용역직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매년 동물보호소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직원들은 1년씩 계약을 하는 셈이다. 

지난 2016년 6월, 유부남인 6급 공무원 B 팀장이 동물보호팀으로 오면서부터 A씨의 악연은 시작됐다. 작업반장이었던 A씨는 B 팀장과 업무적으로 소통할 기회가 많았는데 B 팀장은 A씨에게 선물공세를 했다고 한다.

2017년 2월, B 팀장은 A씨에게 생일이라며 현금 20만원과 자필로 쓴 편지를 전달했다. B 팀장이 준 편지에는 ‘A를 볼 때 가슴이 설렜다. 식사 약속 때문에 하루하루가 그냥 좋다’ 등의 내용이 쓰여져 있었다.


A씨는 “편지를 받고 느낌이 이상했지만 특별히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며칠 뒤에도 아들의 졸업과 입학 선물이라며 30만원 상당의 상품권도 받았다. 그때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아 혼란스러웠고 무섭다는 느낌까지 받았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약 한 달 뒤 B 팀장은 A씨에게 “내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돈도 주고 애정공세를 하는데 넌 반응도 없고 나 혼자만 이러고 있으니, 더는 하지 않을 테니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A씨는 B 팀장으로부터 받았던 돈을 돌려줬다. 

이후 B 팀장은 잔업을 마치고 난 뒤 A씨를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A씨는 “차 안에서 강제로 손을 잡으려고 한다거나, 손에 입맞춤하고 손등과 팔뚝에 침을 묻히기도 했다. 강하게 화를 내고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B팀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람 없는 틈타 신체접촉 시도
재계약 앞두고 있어 고발 못해

이어 “이 상황이 너무 불쾌해 달리는 차 안에서 내리겠다고 문을 여는 시늉을 하면 그제야 안 한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처음 식사 때는 손만 잡는다고 하더니 지키지 않았으며, 거절의 의사를 밝혀도 무시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B 팀장의의 성추행이 점점 심해졌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차 안에서 B 팀장은 저를 안고 볼에 강제 입맞춤해 달라고 했었다. 싫다고 밀쳐내도 저를 안고 볼에 입을 맞추려 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여 완강히 거부하는 데도 머리카락에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7월 A씨는 작업반장서 구조팀 동물구조원으로 보직이 바뀌면서 야간 근무를 하게 됐다. 야간근무는 시간상 오후 10시나 돼야 퇴근이 가능했다. A씨가 관용차 열쇠를 1층 당직실에 반납할 때에도 B 팀장 당직일 때는 그가 손을 잡고 입맞춤하는 등 성추행이 지속됐다. A씨는 힘들고 괴로운 시기였지만 전업주부 13년 만에 얻은 직장이기에 참았다고 한다.


A씨는 “사랑하는 제 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참는 방법밖에 없었다”며 “공공기관 용역사업의 특성상 동물보호소 팀장의 직위는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용역업체 사장 용역직원들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런 상황서 수년에 걸쳐 강제추행과 강간미수 등 수치스러운 성적 범죄를 당했음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가슴 설렜다
그냥 좋다”

수치스러웠던 A씨였지만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는 처지였다. 시 보호소 직원으로 아무리 일을 잘하더라도 B 팀장의 눈밖에 날 경우 불이익당할까 봐 이렇다할 대응도 하지 못했다.

A씨는 섬뜩한 경험을 했다고도 털어놨다. 경기도 내 유기견 거리 캠페인 회의를 마치고 나서 B 팀장이 A씨의 주소를 말했다는 것이다.

A씨는 “등본상 주소와 다른 개인적인 주소를 알고 있다는 데 소름이 끼쳤다. 개인정보인 집주소까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으며, 인사기록부에 등록된 등본 주소와 다른 실제 거주지 주소까지 어떻게 알아냈는지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어 “B 팀장이 강제추행하려고 시도하면 누가 온다고 말한 뒤 재빨리 자리를 피하며 대처했다”고 덧붙였다. 

이후에도 A씨는 B 팀장과 업무상 부딪혀야 했다. 업무상 대화, 업무 회의 등 B 팀장을 피하는 건 쉽지 않았다. B 팀장은 지속적으로 A씨에게 성적인 이야기를 건넸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A씨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2019년 초 A씨는 동료 C씨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C씨의 업무태도로 인해 A씨가 과도한 업무를 떠맡게 됐고 해당 사실을 B 팀장에게 알렸다. 

A씨는 “C씨는 예전부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다. 10개의 일을 갖고 있으면 서너개씩 동료에게 넘기면서 자기는 여섯, 일곱 개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받아줘도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B 팀장에게 해당 사실을 전했지만, C씨는 징계를 받지 않았고 서로 화해하는 방향으로 처리됐다. A씨는 “이 과정서 B 팀장은 내게 거짓말하면서 징계를 주겠다는 액션만 취했다”고 토로했다. 

머리카락에 
강제 입맞춤

같은 해 A씨는 B 팀장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화가 나 성추행을 당했다는 문서를 B 팀장에게 전달했다. B 팀장은 퇴근 후 A씨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사과했으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B 팀장은 A씨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해당 문자메시지에는 과거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도 함께 담겨있었다. 사건은 이대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4월 A씨 앞으로 한 장의 촉구서가 전달됐다. 해당 촉구서에는 ‘귀하는 고양시서 사양관리에 관한 모기업의 관리원으로 재직하던 중 고양시 동물보호 팀장인 B팀장에게 업무관계로 교류하던 중 먼저 포옹하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B 팀장은 당황했으나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여 A씨를 업무적으로 도와주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쓰여 있었다.
 

이어 ‘그러던 중 수신인 A씨는 다른 직원을 해고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B 팀장에게 공갈행위를 하고 있다. 수신인이 먼저 다가와 포옹했고 유지했기 때문에 식사를 하는 와중에 B 팀장이 A씨의 손을 잡았던 사실이 있다. A씨는 먼저 포옹을 해왔기 때문에 손을 잡았던 행위는 스스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강제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A씨가 B 팀장에게 먼저 다가와 포옹을 한 사실은 목격자도 있다. (중략) 권한에 해당하지 않는 요구를 하면서 이를 들어주지 아니하자 존재하지도 않는 성추행을 주장하며, 3년치 연봉 1억원을 요구하는 행위는 형법상 공갈행위에 해당한다. 더 이상의 공갈행위를 멈춰달라’고 적혀 있었다.

“3년 연봉…직장에 대한 보상”
성추행 인정 징계위원회 회부


이에 대해 A씨는 “B 팀장이 어떻게 해야 신고하지 않겠냐고 묻자, 1억원을 말했다. 1억원을 요구한 건 피해 보상금으로 요구한 게 아니라, 직장에 대한 보상이다. 내 연봉을 책정해보니 3년을 계산하면 1억원이 나왔다”며 “그것도 내가 다 갖겠다는 게 아니라 1년 재계약을 할 때마다 3분의 1을 다시 되돌려주겠다는 것인데 매년 재계약을 통해 일하는 것만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했지만 B 팀장은 빚도 많고 돈도 없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고 지난해 10월 말 용역회사로부터 계약이 만료됐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부당해고를 주장했고, 성관련 범죄 역시 수사기관에 의뢰했다.

결국 12월6일 여성가족부와 감사과로부터 성추행이 성립된다는 안내를 받았으며, 고양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계에 고소장이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 관계자는 ”예전에 성범죄 관련 사안이 있다고만 들었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개인정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기도 징계위원회에 징계 요청을 한 상태다. 성희롱으로 성립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경기도 징계위원회가 징계 수위를 조절하는 데 감사나 징계에 관한 것은 말씀드리기 어렵다. 우리는 불법이나 위법 사항에 대해 전달만 할 뿐”이라며 “성범죄는 굉장히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용역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에 부당 근로계약 종료라고 해서 노동부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서 성추행 신고를 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장서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이후에 성추행 관련한 내용을 알게 됐고, 이전부터 현장서 신고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돈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징계에 관해서는 “보통 공무원들이 (성 관련)범죄가 일어날 경우 해고되지 않을까 싶다. 상식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해고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불이익 
당할까 봐…


이어 “중징계위원회서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가벼운 중징계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B 팀장은 현재 다른 부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며 A씨에 부당해고 건에 대해서는 인정이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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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