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변수’ LS그룹에 무슨 일이…

욕심이 없는 거야? 버린 거야?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구본혁 예스코홀딩스 부사장이 스스로 물러났다. 대표이사 취임 10일 만이다. LS그룹 장손이 이탈하면서 후계 경쟁력을 자랑했던 그다. 승계 구도가 한층 꼬이는 모양새다.
 

▲ (사진 왼쪽부터)구자철 LS그룹 회장, 구본혁 부사장, 구본권 상무

LS그룹은 3개사 중심 집단이다. LS(전선·전력), 예스코홀딩스(도시가스), E1(에너지)이다. 이들은 모두 지주사 역할을 한다. 구본혁 예스코홀딩스 부사장은 예스코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지난달 1일 취임했다. 회사는 꼭 열흘 만이었던 같은 달 10일, 대표이사 변경을 알렸다.

승진하고
바로 사퇴

구 부사장은 스스로 직에서 내려왔다. 이른바 ‘셀프 사퇴’다. 이제 막 승진한 후계자가 스스로 퇴진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요인은 ‘새로운 분야를 경영하는 어려움’으로 전해진다. 구 부사장 전문성은 ‘구리’에 있다. 그는 ‘한국 구리왕’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아들이다. 예스코홀딩스는 도시가스 공급업체다. 성격이 상이하다.

구 부사장은 LS전선 해외영업부문과 LS그룹 사업전략팀 부장을 거쳤다. 주요 무대는 LS니꼬동제련이었다. 구 부사장은 LS니꼬동제련서 전략기획부문장, 지원본부장, 사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지난 2017년 LS니꼬동제련 부사장에 오른 그는 사업 전반을 이끌었는데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구 부사장은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글로벌 경영 성과가 가시적이었고, 특히 해외 광물 구매계약 체결에 공을 세웠다.


예스코홀딩스는 부친이 일궈낸 회사기도 하다. 구자명 회장은 예스코홀딩스 전신 극동도시가스서 근무했다. 그는 회사를 키워내고 회장이 됐다.

구 부사장은 예스코홀딩스 미래사업본부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1년 정도 경험을 더 쌓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아버지가 일궈낸 회사서 감각 없이 움직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계제로’ 정주행? 역주행? 
셀프 사퇴 아직 때 아니다?

LS그룹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도시가스 사업 환경이 만만치 않다. 구 부사장은 기획·전략 분야서 커리어를 쌓았다”며 “기존 노하우를 가지고 연속성 있게 (경영)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작은아버지의 설득이 있었다”고 말했다.

빈자리는 구 부사장 작은아버지인 구자철 예스코홀딩스 회장이 채웠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으로 취임했다. 구 부사장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일선서 물러난 바 있다.

LS그룹은 ‘장자승계’와 ‘사촌경영’을 철저한 원칙으로 한다. LS그룹은 구인회 LG 창업주 셋째·넷째·다섯째 동생이 창립했다. 구태회·구평회·구두회 명예회장이다. 이른바 ‘태평두 3형제’다.
 

▲ LS그룹 사옥

2세들은 약속을 지키고 있다. 실제로 장자가 번갈아가면서 그룹을 경영한다. 먼저 구태회 회장 장남이 LS그룹 회장이 됐다.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이다. 재임 기간은 2004년부터 2013년까지다.

바통은 구평회 회장 장남이 받았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이다. 차기 회장은 구두회 회장 장남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이 유력하다. 큰 변수 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3세는 전직 세대와 궤를 같이 할 공산이 크다. 순번에 따라 구자홍 회장 장남이 승계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구자홍 회장 장남은 구본웅 포메이션그룹 대표다. 그는 그룹과 동떨어져 벤처캐피탈을 운영한다. 가지고 있던 LS 지분도 전부 팔아치웠다. 그야말로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장자승계
3세도?

지분은 지난해 전량 매각됐다. 그해 남은 17만4740주는 12월을 끝으로 ‘0’이 됐다. 세부적으로 ▲8월 1만1217주 ▲9월 3만1596주 ▲10월 2만6687주 ▲11월 7만주 ▲12월 3만5240주 순으로 소각됐다.

승계가 3세까지 넘어오기까지 긴 시간이 남았다. 10년 정도다. 다만 비교적 선명한 후계 구도가 흐릿해졌다.

남은 3세는 모두 4명이다. 구 부사장을 비롯해 구본규 LS엠트론 부사장, 구본권 LS니꼬동제련 상무, 구동휘 LS밸류매니지먼트 전무다.

차례로 구 부사장과 구본규 부사장, 구본권 상무는 모두 ‘구태회 일가’다. 구 부사장은 구리왕 구자명 회장 아들이다. 구본규 부사장은 구자엽 LS전선 회장 장남이다. 구본권 상무는 회사로 복귀한 구자철 회장의 아들이다.

구동휘 전무는 ‘구평회 일가’다. 아버지는 구자열 LS그룹 회장이다. ‘구두회 일가’는 사실상 차기 회장으로 낙점된 구자은 회장이다. 구자은 회장 슬하에 딸만 있다.
 

▲ 구동휘 LS그룹 전무

구 부사장은 3세 가운데 맏형으로 나이가 가장 많으며 직급도 가장 높다. 구 부사장은 구본웅 대표 퇴진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이번 자진 사퇴로 기세가 한풀 꺾이는 분위기다.

LS그룹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며 “그룹은 명예회장들의 원칙(장자승계)에 따라 조화와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고 전했다. LS 지분 보유량서 구 부사장은 2등이다. 1등은 구동휘 전무로 2.22%, 구 부사장은 1.42%다. 구본규 부사장은 0.64%, 구본권 상무는 0.13%다.


후보 4명
향배는?

구 전무는 지분 매입에 가장 적극적으로 지난해에만 5만3819주를 확보했다. ▲5월 2만3900주 ▲8월 2만9919주 등이다. 구 부사장은 그해 6월 4만5000주를 증여받았다.

올해 지분을 사들인 유일한 3세는 구 전무다. 지난달 10일 1500주, 14일 1000주를 매입했다. 모두 2500주다. 구 전무 지분 총합은 71만4799주다. 구 부사장은 45만7054주에 그친다.

LS그룹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지분은 자금이 있을 때, 자금이 필요할 때 사고팔 수 있는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지분 매입이 그룹 경영원칙을 흔들거나 영향을 미치는 구도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구 전무는 1982년생(한국 나이로 39세)으로 아직 40대가 아니다. 그는 지난 2013년 LS그룹 차장으로 입사 후 4년 만에 이사가 됐다. 지난 2018년에는 상무로 승진했다. 구 전무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초고속 승진을 밟고 있다. LS그룹 3세 중 유일하게 지주사서 근무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구 부사장은 1년을 기약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 임원 인사서 예스코홀딩스 대표이사로 돌아온다.
 


구 부사장은 추가 경영 수업을 받는다. 업무 파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는 지난 2018년부터 예스코홀딩스 비상근 등기 이사였다. 당시 구 부사장은 LS니꼬동제련 부사장으로 활약 중이었다.

그룹 장손은 지분 전량 매각 
3세 후계구도…점차 안갯속

구 부사장에게 예스코홀딩스는 전 직장과 다소 차이가 있다. 회사 규모부터 다르다. LS니꼬동제련은 지난 2018년 기준 연매출 7조4489억원을 기록했다. LS그룹 핵심 계열사다.

예스코홀딩스는 3년차 지주사다. 계열사로 사업회사 예스코(도시가스 공급업체)와 몇몇 자회사가 있다. 같은 기간 매출은 지분법상 1조954억원이다. 격차가 상당하다.

예스코는 일정 지역서 공급 권역을 확보했으며 수익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포화상태로 다양한 에너지원과의 경쟁도 간과하기 어렵다. 직책 역시 만만치 않다. 구 부사장은 예스코홀딩스 미래사업본부장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이 핵심이다.

수익성도 낮다. 지난 2018년 1조 매출 당시 영업이익은 252억원이었다. 영업이익률은 2.3%였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은 1.9%에 머물렀다. 결국 새로운 캐시카우 확보가 관건으로 풀이된다.

1년 뒤
복귀할까

LS그룹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구 부사장의 퇴임 결정은)개인 영달이 아니라 회사 입장서 생각한 것”이라며 “오너 자제라고 해서 직책을 뛰어넘지 않는다. 단계를 밟아가며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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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