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겨울 음식 ①예산 어죽

한겨울 뜨끈한 추억 한 그릇

▲ 예당호 ‘대흥식당’의 어죽과 튀김

본래 어죽이란 음식이 그렇다. 농사일 바쁜 한여름에 하루 짬을 내, 마을 사람들이 개울에 모여 물놀이도 하고 천렵도 좀 하다가, 커다란 솥단지 걸고 잡은 물고기에 대파, 양파, 생강,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 불린 쌀이랑 국수, 수제비까지 끼니 될 만한 것 몽땅 넣고, 푹푹 끓여서 흐물흐물해진 생선살에 밥과 국수, 수제비를 넣어 걸쭉해진 국물 한 사발 푸짐하게 나눠 먹는 것. 한겨울에는 얼음 깨고 물고기를 낚아 뜨끈한 국물 한 사발로 동장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 예산 어죽에는 밥과 국수, 수제비가 들어간다.

조선 팔도 어디나 물고기가 사는 곳이라면 어죽이 있었다. 된장을 푸는지 고추장을 푸는지 맑은 국물을 내는지, 밥만 넣는지 수제비도 넣는지, 국수까지 몽땅 넣는지에 따라 강원도식, 전라도식, 충청도식으로 나뉘었지만, 동네 사람 모여 맛있고 푸짐하게 영양 보충하는 건 어디든 같았다.

▲ 둘레 40km에 이르는 예당호 <사진제공: 예산군청>

충남 예산에서도 그랬다. 1964년 둘레 40km에 이르는 관개용 저수지를 준공하자, 동네 사람들이 농사 짓는 틈틈이 모여서 솥단지를 걸고 고기를 잡았다. 붕어, 메기, 가물치, 동자개(빠가사리) 등 잡히는 대로 푹푹 끓이다가, 고춧가루 풀고 갖은 양념에 민물새우 넣어 시원한 국물을 만든다.

어죽의 고장

불린 쌀에 국수와 수제비까지 넣어 죽을 끓인 뒤, 다진 고추와 들깻가루, 참기름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 먹었다. ‘충남식 어죽’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 무와 시래기를 넣은 붕어찜 ▲ ▲살이 향긋한 민물새우와 미꾸라지튀김

물론 민물고기로 만든 음식은 어죽뿐만 아니다. 제법 큰 붕어나 메기는 무와 시래기 잔뜩 넣어 찜으로, 동자개나 잡어는 칼칼한 매운탕으로, 살이 향긋한 민물새우와 미꾸라지는 튀김으로 먹었다. 동네 사람들끼리 혹은 집에서 별식으로 즐기던 어죽과 매운탕, 튀김은 경제성장과 함께 발전한 외식산업 붐을 타고 사 먹는 음식이 됐다.


지금 예당관광지로 개발된 예당호 일대에는 저마다 비법으로 만든 어죽과 붕어찜, 민물새우튀김 등을 파는 식당 10여곳이 있다. 여기도 ‘맛집’이 있어서 이름난 식당은 줄을 길게 서야 하니, 식사 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다.

▲ 한적한 예당호 풍경

어죽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웠다면 소화할 겸 아름다운 예당호를 느릿느릿 걸어보자. 때마침 지난해 402m의 길이를 자랑하는 ‘예당호 출렁다리’가 완공되고, 5.2km에 이르는 ‘느린호수길’도 개통했다. 산책은 예당호 출렁다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 느린호수길이 연결되고, 맞은편 언덕으로 주차장이 여럿이라 차를 대기도 편하다. 하지만 주말에는 차가 몰려 주차가 만만치 않으니 주의할 것.

▲ 국내 최장 길이(402m)를 자랑하는 예당호출렁다리

예당호 출렁다리는 입장료도, 매표소도 없으니 그냥 걸으면 된다. 다리 주변에 기념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 있고, 다리 중간에는 투명한 바닥에 전망대까지 갖춘 주탑이 있다. 주중에는 느릿느릿 여유롭게, 주말이면 사람 따라 흘러가듯 걷는다.

물고기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어
지역별 요리법 다르지만 영양은 ↑

그렇다고 인파에 치일 정도는 아니니 굳이 주말을 피할 이유는 없다. 사람 따라 흘러가느라 풍경을 제대로 못 봤다면 한 번 더 건너면 된다.

▲ 시시각각 변하는 무지갯빛 LED 조명이 환상적인 예당호출렁다리 야경 <사진제공: 예산군청>

다리가 생각보다 많이 출렁거린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예당호 출렁다리는 내진 설계 1등급을 받은 만큼 안전하고 튼튼해, 어른 3150명이 한꺼번에 올라가도 끄떡없으니까. 밤에는 형형색색 조명으로 출렁다리가 찬란하게 빛난다. 그러데이션 기법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무지갯빛 LED 조명이 환상적이라,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 코스로 그만이다.

▲ 남녀노소 모두 걷기 편한 느린호수길

출렁다리부터 ‘예당호중앙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느린호수길에선 훨씬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언덕에 올라 발아래 기다란 출렁다리를 조망하거나, 벤치에 앉아 바다처럼 넓은 예당호 풍광을 즐기거나, 정자에 들러 운치를 느껴도 좋다. 대부분 나무데크로 이어지고 가파르지 않아, 어린이와 노인도 걷기 쉽다.

▲ 수덕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어죽의 고장’ 예산을 대표하는 사찰은 수덕사다. 근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경허선사와 만공선사를 배출한 수덕사는 대웅전(국보 49호)을 중심으로 삼층석탑과 부도전, 성보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절 입구에 자리한 수덕사 ‘선(禪)미술관’은 2010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불교 전문 미술관이다.

바로 옆 ‘수덕여관’은 20세기 한국 미술을 전 세계에 알린 고암 이응로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한 곳이다. 고암이 1944년 구입한 수덕여관(이응로선생사적지, 충남기념물 103호) 앞에는 바위에 새긴 그의 추상 부조가 있다.

▲ 고암 이응로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한 수덕여관 ▲ 국내 고건축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고건축박물관

‘한국고건축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강릉객사문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정문을 지나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표 사찰과 탑, 궁궐 모형 100여점이 있는 제1전시관, 국보급 문화재 축소 모형을 전시한 제2~3전시관이 이어진다. 전흥수 한국고건축박물관 관장은 대목장(국가무형문화재 74호) 보유자다. 문화재 보수·복원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국내 고건축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 윤봉길 의사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 입구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사적 229호)도 꼭 들러봐야 한다. 이곳에는 윤 의사의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 그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윤봉길의사기념관’, 생가와 중국으로 가기 전까지 농민운동과 독립운동을 한 집 등이 있다. 윤 의사가 의거 직전에 김구 선생과 바꿨다는 시계, 마지막 순간에 묶인 사형틀, 거사에 사용한 물통폭탄과 자살용으로 준비한 도시락폭탄 등도 볼 수 있다.

▲ 예산군청이 무료로 운영하는 덕산온천족욕장

수덕사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다리가 아프다면 덕산온천족욕장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 <세종실록지리지>에 등장하는 ‘덕산온천’은 일제강점기에 근대식 온천으로 개발됐다. 탄산수소나트륨 온천물에 게르마늄 성분이 포함돼 근육통,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 최근 새로 단장한 족욕장은 예산군청이 무료로 운영한다. 본격적인 온천욕을 즐기려면 주변의 온천장이나 호텔을 이용해도 좋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예당호 어죽→예당호출렁다리→느린호수길→수덕사→덕산온천족욕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예당호 어죽→예당호출렁다리→느린호수길→수덕사→덕산온천족욕장
둘째 날: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한국고건축박물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예산군 문화관광 www.yesan.go.kr/tour.do
- 수덕사 www.sudeoksa.com
- 한국고건축박물관 www.ktam.or.kr

문의 전화
- 예산군관광안내소 041)339-8930
- 수덕사 041)330-7700
- 한국고건축박물관 041)337-5877
-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윤봉길의사기념관) 041)339-8238

대중교통
버스: 서울-홍성,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2회(06:40~21:30) 운행, 약 2시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2회(09:50, 18:40)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홍성종합버스터미널에서 예당호까지 택시 이용, 약 25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 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hticket.co.kr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자가운전
서해안고속도로→당진영덕고속도로 예산수덕사 IC→국사봉로 응봉·대흥 방면→예당관광로 광시 방면→예당호 


숙박 정보
- 풍덕고택(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20-17, 041)541-0023, www.pungduck.com
- 파라다이스 호텔(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아산시 음봉면 아산온천로157번길 7-7. 041)543-4900, www.asanparadise.co.kr
- 봉수산자연휴양림: 대흥면 임존성길, 041)339-8936, www.foresttrip.go.kr
- 스플라스리솜: 덕산면 온천단지3로, 041)330-8000, www.resom.co.kr/spa
- 덕산싸이판대온천: 덕산면 온천단지3로, 041)338-8862, https://blog.naver.com/deoksansaipan

식당 정보
- 대흥식당(어죽·붕어찜): 대흥면 노동길, 041)335-6034
- 산마루가든(어죽·메기매운탕): 대흥면 예당긍모로, 041)334-9235
- 내가조선의한우다(한우 생고기): 광시면 예당로, 041)333-3188

주변 볼거리
예산 임존성, 김정희선생고택, 슬로시티대흥, 예산황새공원, 봉수산수목원, 남연군의 묘와 예산 가야사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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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