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유산슬 메이커’ 유벤져스 3인방 직격 인터뷰

“트로트 전성기, 눈물이 날 지경”

[일요시사 연예부] 함상범 기자 = 트로트에 ‘ㅌ’도 몰랐던 신인 가수 유산슬(본명 유재석)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그가 부른 ‘합정역 5번 출구’는 전 연령대의 모닝콜이자 18번이다. 유산슬을 국내 최고의 트로트 스타로 만든 세 사람이 있다. 대중은 유벤져스라고 한다. 스스로를 박토벤이라 칭하는 박현우 작곡가(이하 박토벤)와 천재 편곡가 정경천(이하 정차르트), 이 두 사람을 살피며 늘 중재하는 60세 막내 이건우 작사(이하 작신)가 그 이름이다. 가요시장의 변두리에 있던 트로트를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반백 살을 훌쩍 넘어 인기의 정점에 오른 대가들의 진심을 들어봤다.
 

▲ ⓒ문병희 기자

“아이고 죄송합니다.” 막내 이건우 작사가가 뒤늦게 동묘역 인근에 위치한 박현우 작곡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막내가 제일 늦어서 부끄럽네”라며 미안함을 표한 그는 “광고며 방송이며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그거 처리하다가 늦었다”며 고개를 연신 굽혔다. 이어 “형님들, 우리 대박났어”라며 최근에 들어온 출연 요청 관련 내용을 쫙 읊는다. 광고만 무려 10개가 넘고, 지상파 예능과 각종 인터뷰, 웹 예능까지 온갖 미디어서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대박이네 대박” “우리가 매니저를 잘 뒀어”라는 형님들의 추임새도 이어진다. 

세 사람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갑작스럽게 투입된 뒤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5분 만에 곡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가 하면, 쉬우면서도 시적인 가사에 포인트를 딱딱 짚어내는 편곡 실력으로 대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거기에 조금도 꾸밈없이 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들의 활약 덕에 트로트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TV조선 <미스트롯>을 발판으로 유산슬까지 이어지면서 트로트는 약 50년 만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대중의 사랑에 따라 스케줄이 워낙 몰아닥친 탓에 박토벤은 ‘링거 투혼’을 발휘해가며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고, 정차르트는 자제로부터 ‘스타 아버지’라는 대우를 받고 있으며, 작신은 환갑의 나이에 매니저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유지하며, 솔직하고 유쾌한 세 사람의 입담은 카메라가 없는 인터뷰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놀면 뭐하니?> 이후 삶이 완전히 바뀌신 것 같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박토벤(이하 박): 예능 프로그램 이후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이렇게 바쁘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적이 없었다. 작곡해달라는데도 시간이 없어서 처리를 못 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작신(이하 작): 저는 개인적으로 행복하고 또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다. 길거리서 많이 알아보고 사인도 해달라고 하는데,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기분은 좋다. 

▲박: 작신은 요번에 CF할 때 춤을 잘 춰 가지고 춤 선생으로도 소문났다.

▲정차르트(이하 정): 내가 집에서만 일하니까 애들은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유명한 사람으로 보고 있더라. 음식점 갔는데 돈을 안 받아서 곤란할 때도 있다. 나나 형(박)이나 70대가 넘었는데 남들이 시기를 할 정도로 대박이 나서 기쁘고 좋다. 

- 세 사람을 두고 ‘유벤져스’라고 하는데, 마음에 드나?

▲작: 원래 어벤져스인데, 유산스를 만들어줬다고 해서 유벤져스라고 하는데, 그 마음이 정말 좋다. 원래 교통방송서 시작한 말이라는데 고맙다. 

▲박: ‘최일구의 허리케인’이라 하는데 11월에 한 게 13만 조회수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1월 6일에 또 했고. 


- 세 분 덕분에 트로트가 다시 완전한 전성기에 돌입한 것 같다. 트로트의 전성기를 보는 마음이 남다를 것 같다.

▲작: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다. 사실 가요시장이 성인가요와 젊은 층의 가요로 양분됐는데, 최근 들어 성인가요도 젊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트로트였다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완전히 갈라졌다. 다시 기회가 온 만큼 작곡가나 작사가들끼리 정말 좋은 노래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 TV조선 <미스트롯>이나 <놀면 뭐하니?>한테 정말 감사하다지.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으로 트로트를 알려줬으니 정말 고맙다. 

▲정: 좋은 노래들을 많이 만들어서, 이 인기를 잘 유지해야 한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을 거다. 

스타덤에 오른 6070 ‘음악의 대가’
“‘뉴스타’가 있어야 바람이 분다”

- 성인가요가 왜 인기가 없어진 것 같나? 이렇게 듣기 좋은 노래가 많은데.

▲작: 어떤 영역서든 바람이 불려면 뉴스타가 필요하다. 트로트는 새로운 스타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미스트롯>의 영향이 대단히 큰 것이다. 스타가 확대 재생산이 돼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고정적인 사람들만 매일 보게 됐다. 스타가 없으니 인기도 시들고 프로그램도 폐지됐다. 콘서트는 꿈도 못 꿨는데 <미스트롯>은 미어터진다. 트로트도 점차 콘서트나 버스킹으로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 트로트와 성인가요의 대가들인데, 원래 세 분이 친했나?

▲정: 박토벤 형하고 나하고는 50년 정도 됐다. 가깝게 지냈다기보다는 항상 잊지 않고 지내고 있다가 <놀면 뭐하니?>를 통해서 더 가까워지고 친해지고, 싸움도 많이 하게 됐다.

▲작; 별로 안 친했다가 방송하는 거다. 방송하는 중에 (서로 안 친한 게) 나오지 않나. 은연 중에. (하하)

▲박: 작신은 한국저작권협회 이사직 역임했고, 난 현 이사고, 정차르트도 3선이다. 작신하고 나는 4선 이사다. 원래 잘 아는 사이다. 

▲정: 여기서 중요한 건 나나 자신은 박토벤을 찍었는데, 박토벤은 우리를 안 찍었다는 거다.(하하)


- 박토벤은 왜 두 분을 안 찍었나?

▲박: 그건 또 그렇게 되더라고. 

- 박토벤은 예술가 기질이 탁월하다. 느낌이 오면 바로 내달린다. 집중력이 어마어마한 것 같다. 두 사람이 보기에 박토벤은 어떤 사람인 것 같나. 

▲정: 박토벤을 평소에 생각했을 때 얌전하고 점잖고, 말이 없는 사람이고 후배를 사랑하고 아낄 줄 안다고 생각했다. 평상시에 존경해왔다. 그런데 나를 막 깐다. 앞으로는 잘 모르겠다.

▲박: 나는 까는 게 아니고, 이 양반이 나를 까. 형이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정을 가리키며) 못됐다고. 으잉.(하하)
 

▲ ▲▲ ⓒ문병희 기자

▲작: 음악하는 사람들 사이서 박토벤은 엄청 유명하다. 시청자들이 몰랐을 뿐. 예술가적인 기질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대가쯤 되면 자기 일에 진지하고 철두철미하지 않나. 박토벤은 대가니까.


- 정차르트는 주변을 잘 살피고 눈치도 빠르다. 말도 재밌게 하는 편이다. 두 사람이 보기엔 어떤가. 

▲박: 이 양반 뒷북치는 스타일이다. 

▲작: 형수님한테 레슨을 받고 나온다. 거울 보고 연습하고. 그러지 않고서는 그런 멘트가 나올 수 없다. 

▲정: 전혀 안 그렇다.

▲박: 코드도 제수씨가 해준다고. 

▲작: 방송 분량이 20회가 넘게 있다. 

▲박: 정차르트는 음흉해. 솔직하지 못하고. 나는 가슴을 탁 터는데, 가슴을 안 털어내. 가만히 있다가 엉뚱하게 탁 튀어나와. 예측을 못 한다.

▲정: 이거 봐. 날 또 까고 있잖아. 난 존경한다고 했는데.

- 박토벤이 앞을 보고, 정차르트가 주위를 보면, 작신은 두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막내로서 특화된 것 같다. 두 형님은 후배를 어떻게 보나. 

▲박: 작신은 평소에도 그렇고 얌전하고 남을 배려한다. 정말 정말 내가 예뻐한다. 이 동생의 이런 좋은 점을 정차르트가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건우 아우는 모든 선배들한테 다 잘한다. 우리한테만 잘하는 게 아니다. 괜히 4선 한 게 아니다. 
 

- 지금도 티격태격을 하는데, 방송하다가 진짜로 화가 난 적 있나?

▲작: 많다. 나는 확실히 안다. 그런데 참고 방송을 하는 거다. 두 분다 기분이 엄청 나쁜데 참고 방송하는 거다.(하하)

▲정: 확실히 기분 나빴던 것은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내가 주의를 한다. 그러니까 박토벤이 나를 까기 시작했다.

▲박: 내가 60년에 데뷔를 했고, 그 후에 한참 뒤에 데뷔한 게 정차르트다. 그런데 내보고 작곡 공부하라니까 내가 열이 안 나나?

▲정: 나는 순전히 재밌으려고 한 얘긴데, 그렇게 기분 나쁠 줄 몰랐지.

▲박: 지는 재미지만, 나는 안 좋지. 

▲작: ‘인생라면’ 투표 때 분명히 김태호 PD가 비밀투표라 그랬는데, 우리를 속였다. 제일 아름다운 그림은 정차르트는 박토벤 찍고, 박토벤은 정차르트 찍고, 나는 박토벤 찍으면 좋았는데, 서로 자기를 찍었다. 원래는 내가 무효표를 찍었다. 그러니까 김 PD한테 연락와서 ‘이거 비밀투표인데 이렇게 하면 어떡하냐’고 해서 박토벤 찍은 건데, 그렇게 방송이 됐다. 

▲박: 김태호가 진짜 무서운 사람이야. 

“티격태격? 방송 중에 진짜로 화내”
“유재석은 선하고, 김태호는 무서워”

- 세 사람이 보기에 김태호 PD는 어떤 사람 같나?

▲작: 예능의 신이다. 정말 상상을 못 하겠다. 처음에는 성격이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인사도 안 했다. ‘여기는 PD가 인사도 안하냐’면서 우리끼리 얘기했는데, 계속 앞에 있었던 거다. 자기를 알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샤이’한 성격이 있는 것 같다. 

▲박: 김태호는 천재다.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뭐가 터질지 모르겠다.

▲작: 추진력이 좋은 건지 그림을 잘 그리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는 박토벤도 한 번만 하고 끝나는 건데, 계속 나오고 버스킹에 콘서트까지 갔다. 

▲박: 옆에 PD들도 엄청 칭찬하더라. 그리고 뭐든 말을 안 한다. 유재석 올 때도 유재석 온다고 안 했다. 그냥 신인가수 온다고 했지. 

- 세 사람 다 유재석이 왔는데 전혀 의식을 안 하고 편하게 대하더라. 그 대목이 이 프로그램의 신호탄이었던 것 같다. 

▲박: 내는 선생하고 제자라는 식으로만 생각했지. 스타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래서 막 다뤘다. 신인가수라서 감정도 못 넣으니까 내가 막 보여주고 그랬지. 그게 색다르게 보인 게 아닌가 싶다.

▲작: 유재석이 그쪽에서 대가이긴 하지만, 우리도 조용필, 나훈아랑 술 먹고 자는 사이다. 스타로서 의식이 안 된다. 유재석이 가수도 아니고 나이도 어리지 않나. 그러니까 편하게 되더라. 그냥 유명한 애였다. 

▲박: 그 다음에 정차르트가 오면서 팍팍 재밌어진 거지. 완성품이 된 거다.

- 세 사람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탈권위’에 있다고 본다. 권위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 같다. 2030은 그 지점에 열광하는 것 같다. 

▲작: 그게 맞다. 일에는 냉정하지만, 사회생활에는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작곡이나 편곡, 작사는 사실 대가다. 그때는 철저하게 하지만, 사람 살 때는 더불어 살고 싶은 거다. 셋 다 그런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 작신이 작사가라 그런가, 말을 잘하긴 잘한다. 
 

- ‘합정역 5번 출구’는 대박이 터졌다. 유산슬의 ‘인생라면’ 어떻게 보는가.  

▲작: ‘인생라면’은 슬로우다. 슬로우를 하려면 세월이 더 가야된다. ‘인생라면’은 진짜 도전이다. 녹음도 더 정교하고 노래도 많이 해야 한다. 야단치고 혼나고 그러다가 울고 그런다. 유산슬한테 그렇게 할 수 없지만,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합정역 5번 출구’는 90% 마음에 들었는데, ‘인생라면’은 아무리 잘해봐야 60% 만족스러울 것 같다. 

▲정: 슬로우라도 멜로디가 쉬워서 잘 따라 부를 거다. 괜찮다. 

- 옆에서 보기에 유재석은 어떤 사람인 것 같나? 

▲정: 참 착하다. 선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인간성 하나는 정말 훌륭하다. 그래서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인사성도 밝다. 

▲작: 차이나타운서 버스킹 할 때 사람들하고 악수하는데 ‘손이 참 차가우시네요’라고 하더라. 그거는 콘셉트로 하긴 힘든 건데 하더라. 사람을 대하는 좋은 애티튜드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도전정신이 있다. ‘뽕짝’을 하든 드럼을 치든 도전정신이 있다. 욕심이 있다. ‘못해요’라고 하지만 악다구니가 있어서 어떻게든 해낸다. 예능이더라도 프로페셔널에 근접하지 않나. 대단한 것 같다.

- 세 분 다 스스로를 대가라 칭하고,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내놓았다. 음악을 만드는 가치관이 있나.

▲박: 가사에 따라서 곡이 다 변해버린다. 가사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러면서 쉽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합정역 5번 출구’도 국민가요가 됐지. 

▲정: 곡과 가사를 보면 솔직히 알아서 떠오른다. 곡이 안 좋으면 좋은 편곡이 안 나온다.

▲작: 작사와 작곡은 엄마와 아빠다. 편곡은 옷을 입히는 건데, 어떤 옷을 입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허접스럽게 입히면 히트가 안 된다. 이번에 편곡의 힘을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작사를 할 땐 위로를 주고 싶다. 슬프면 슬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어떤 감정이든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사를 쓴다.

- 대가들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이 있나.

▲박: 인기가 많으니께네,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담배도 함부로 버리면 안 되고, 남들의 모범이 돼야 한다.

▲정: 원래 나는 남들 지적을 잘했다. 누가 꽁초를 버리면 뭐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러면 안 된다. 옷도 막 입었는데, 신경을 쓰고 살아야겠더라. 

▲작: 원래 유명해지는 걸 그리 바라지 않았는데, 이미 호랑이 등에 타 버렸다. 아모르파티라고 ‘내 운명을 사랑하자’라는 뜻인데, 어떤 길로 가진 모르지만 앞으로도 운명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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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