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연대보증 덫’에 걸린 중소기업 미스터리

갑자기 날아온 12억 청구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남의 보증을 서면 고생하지만 보증을 꺼리면 안전하다’는 말이 있다.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상당수 직접 쓰거나 편집한 잠언에 나오는 구절이다. 기원전에도 보증에 대한 경고가 있었던 셈이다. 특히 연대보증은 ‘가정 파탄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위험수위가 높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대보증은 개인이나 기업이 금융기관서 돈을 빌릴 때 원래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대신 갚을 제3자를 미리 정해놓는 제도다. 채무자가 약속된 대출 만기일에 빚을 갚지 않거나 혹은 갚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연대보증인은 원래 채무자와 동일한 지급의무를 갖게 된다. 채무자가 없어지면 빚은 고스란히 연대보증인의 몫이 되는 셈이다.

보증 섰다
패가망신

가족이나 지인의 보증을 서줬다가 빚을 떠안게 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건은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난 2017년 울산의 한 공장서 근무하던 청년이 투병하는 친구 가족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수천만원의 빚을 이어받게 됐다. 청년은 어머니 치료비를 위해 은행서 대출을 받으려는 친구의 보증을 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구 어머니는 끝내 사망했고 친구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6000만원의 빚은 온전히 청년의 몫이 됐다. 모아놓은 돈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일부 갚긴 했지만 남은 빚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인터넷 사이트서 알게 된 20대 여성과 함께 세상을 등졌다.

정부는 연대보증 제도의 사회적 폐해를 우려, 제도를 폐지해 나가고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장관은 지난해 5월 정부기관과 시중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 정책금융 유관기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금융지원위원회서 연대보증 폐지를 금융계 전체로 확산하기 위해 금융업계의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력에 관계없이 정책금융기관의 신규 대출·보증에 대한 연대보증은 2018년 전면 폐지됐다. 중기부는 기본 대출·보증 입보를 단계적으로 없앴고, 기존 대출 보증의 연대보증은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박 장관이 민간금융서 연대보증 폐지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한 것.

연대보증 제도 폐지 움직임 많아
일부 공제조합 여전히 제도 고수

지난해 11일 기준으로 대부업체의 개인대출도 연대보증이 폐지됐다. 201810월 금융위원회는 신규 취급하는 개인과 개인사업자 대출 계약에 원칙적으로 연대보증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20183월말 기준으로 자산 500억원 이상 대형 대부업체 69개사의 연대보증 대출 잔액은 8313억원, 119000건에 이르렀다.

산업 분야별 공제조합도 연대보증 제도를 없애는 추세다. 공제조합은 동일 직업 또는 동일 직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가입, 상부상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공제조합은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를 적립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사용해 곤란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그간 조합의 연대보증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계속 지적해왔다. 주요 조합들은 정부의 지적에 공감, 최근 몇 년 새 연대보증 제도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분위기다.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은 2016년 개인 연대보증 제도를 폐지했고, 전문건설공제조합은 2017년 연대보증인 면제 대상을 확대했다.
 

▲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지난해 7월에는 소프트웨어공제조합(이하 SW공제조합)이 연대보증 제도를 20년 만에 폐지했다. SW공제조합은 사업에 수반되는 입찰, 계약, 하자보수, 선급금 등 보증이 필요한 경우 보증서를 발급했다. SW공제조합으로부터 보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법인등기부등본, 법인인감증명서 외에 연대보증인의 개인인감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사회적 흐름과 반대로 일부 공제조합에는 여전히 연대보증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실제 몇몇 중소기업들은 연대보증의 덫에 걸려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9월 정보통신공제조합(이하 통신공제조합)에 소속된 통신업체 A·B·C사 등 세 회사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돈 갚아”
청천벽력

A건설이 ‘S사의 계약 및 선금반환채무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보증금과 선급금 지급 보증금을 통신공제조합에 청구해온 것이다. 당시 S사와 A·B·C사 등 세 업체는 연대보증을 맺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통신공제조합은 A건설이 청구한 보증금을 지급할 예정이고, 이후 A·B·C사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통신공제조합에 소속된 개인사업자는 특정 기간에 한 번씩 보증약정을 갱신한다. 보증약정을 갱신하지 않으면 통신공제조합으로부터 보증서를 발급 받을 수 없다. 이때 연대보증인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통신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통신공제조합 조합원들은 공사를 따기 위해 서로 연대보증을 맺는다.

실제 A사와 S사도 10여년에 걸친 연대보증 관계였다. 서로 연대보증을 맺는 일이 통신업계에선 워낙 흔한 일이었고, A사 관계자에 따르면 사업을 하는 동안 단 한 번의 사고(연대보증 문제)도 없었다. 그래서 보증약정 갱신 시에만 한 번씩 상기할 뿐 연대보증 관계를 맺은 것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낸다고 했다.

그러던 중 대형사고가 터졌다. S사는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2년여에 걸쳐 A건설과 6건의 통신공사 계약을 진행했다. A·B·C사 등 세 업체는 선급금 보증과 소사원시 복선전철 민간투자시설사업 제3공구 통신공사 소사원시 복선전철 민간투자시설사업 제4공구 통신공사 소사원시 복선전철 석수골 정거장 통신공사 등 총 7건을 나눠 선급금·공사보증을 선 상태였다.

계약금액은 약 113억원, 보증금액은 선급금 7억원을 포함해 약 183000만원이었다.

문제는 S사가 20171127~29일 A건설에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했다는 점이다. 당시 S사는 당사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공사를 수행할 수 없다잔여공사 일체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A건설에 전했다. A건설은 같은 달 30S사가 계약의무이행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단, 하도급 계약서와 특수조건 등의 조항을 들어 계약을 해지했다.

상황 끝나고
2년 지나서…

A건설과 S사가 맺은 계약의 특수조건 7(계약해제·해지)에 따르면 갑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해 공사의 정지기간이 전체 공사 기간의 50/100이상인 경우 갑이 지급키로 한 지급재료의 공급이 지연돼 공사 진행이 불가능한 경우 을이 정당한 이유 없이 특수조건 5(계약이행보증금의 납부)를 위반한 경우 을이 노무비·자재비·중기비·식대 등을 2회 이상 체불한 경우 계약을 전부 또는 일부 해지할 수 있다.

이때 일반조건(하도급계약서) 25조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있다.

A건설은 이 조항들을 근거로 S사에 보증서를 발급한 통신공제조합에 지난해 7월 보증금을 청구했다. 통신공제조합에 따르면 A건설이 청구한 보증금액은 약 12억원이다. 보증건수에 따라 12억원의 보증금은 A·B·C사 등 세 업체서 약 6억원, 4억원, 1억원씩 각각 떠안게 됐다.
 

▲ 정보통신공제조합

일부 업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B사 관계자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갑자기 돈을 갚으라는 문서가 날아왔다“(지난해) 9월 전까지는 S사나 A건설의 사정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항변했다. 이어 통신공제조합도 업체 측에 자초지종을 말해주지 않았다통신공제조합도 A건설이 보증금을 청구한 시점(지난해 7)에야 안 것 같다고 주장했다.

통신공제조합서 발급하는 보증서 계약·차액·손해배상 보증약관에 따르면 보증채권자는 보증사고가 발생한 경우 이를 지체 없이 조합에 알리도록 돼있다. A건설이 S사와 계약을 해지했을 때 통신공제조합에 이를 알렸어야 한다는 뜻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통신공제조합으로부터도 S사의 사정을 미리 전달 받은 게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포기는 2017년 했는데…
상황 전달은 2019년 9월에야

B사 관계자는 만약 S사가 공사를 포기하는 시점에 사정을 알았다면 공사보증을 선 업체들이 잔여공사를 마감하는 등의 대안을 강구했을 것이라며 “S사가 공사를 포기하고, 잔여공사까지 다 끝난 시점에야 보증금을 청구하면 연대보증 업체들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A건설서 통신공제조합에 청구한 보증금 액수가 과하다고 주장했다. B사 관계자에 따르면 A건설은 S사와 맺은 계약의 특수조건 8(위약금)를 근거로 약 12억원의 보증금을 통신공제조합에 청구했다.

8조는 갑과 을은 각각의 귀책사유로 일반조건 제25조 제1항 및 특수조건 제7조 제1항에 의거 계약이 해제·해지된 경우 상대방에게 계약금액의 10%를 위약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문제를 제기한 업체 관계자들은 “A건설은 기성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계약금 전체에 대한 보증금을 청구했다“S사는 공사를 어느 정도 진행하고 포기 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A건설이 갑의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계약을 맺었다는 것.

이들은 배상청구가 진행되더라도 기성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성금은 건설과정서 공사 중간에 공사가 이뤄진 만큼 계산해주는 돈을 말한다. 그러면서 “201711월말 경 S사가 A건설에 공사포기 각서를 낸 시점의 기성율은 74.3%”라며 “107억원의 계약금 중 80억원이 이미 기성금의 형태로 S사에 지불됐다고 주장했다.

사정 얘기해도
“법대로 하라”

통신공제조합은 A건설이 청구한 보증금을 이미 지급한 상태다. 연대보증 업체들은 통신공제조합이 제기한 구상권 청구에 따라 5(60개월)에 걸쳐 돈을 갚아야 한다. 이들은 돈을 아예 갚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기성금 등을 고려해 금액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통신공제조합에 얘기했고, A건설에도 찾아가 사정을 해봤지만 법대로 하라는 말만 돌아왔다고 토로했다통신공제조합 측은 “A건설이 청구한 보증금을 지급했다면서도 연대보증 업체 관련 얘기는 할 말이 없다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A건설 측 입장 들어보니…

-에스엔아이가 공사를 포기한 시점은 201711월 말이고, A건설이 정보통신공제조합을 상대로 보증금을 청구한 것은 20197월로 약 18개월의 시차가 나는데.

관련법(건설산업기본법 제674)에 따라 보증기간 만료일로부터 2년 이내 보증금을 청구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A건설이 정보통신공제조합에 청구한 보증금의 액수는 약 12억원인데, 이 금액이 산출된 근거는 무엇인가? 에스엔아이가 공사를 포기하는 시점에 지급된 기성금이 전체 공사금액의 70%가 넘는다는 주장이 있다. 공사의 남은 부분에 대해 보증금을 청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인데...

관련법(건설산업기본법 342 1)에 따라 하도급계약시 계약금액의 10% 해당하는 금액을 보증하는 계약이행보증서를 징구했다. 에스엔아이의 귀책(공사포기)에 따라 하도급계약을 해지했으며, 계약불이행으로 인해 보증사고가 발생해 내부절차에 따라 보증금을 청구했다.

정보통신공제조합에서는 보증약관에 명시된 주계약 또는 관련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증금을 지급한 사항이다.

-A건설과 에스엔아이가 맺은 건설공사 하도급계약서이외에 특수조건이라고 또 다른 조항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도급 계약서는 공식문서로 볼 수 있는 표식이 군데군데 있는 데 반해 특수조건은 그와 스타일이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특수조건은 하도급계약서에 따라 특약으로 정한 사항으로 하도급계약서에 포함된 문서다.

-에스엔아이가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한 이후, 잔여공사를 어떻게 진행됐는지

에스엔아이의 자금사정 악화 등으로 공사 수행이 불가해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에스엔아이의 공사 포기 이후 내부절차에 따라 현장별로 직영 또는 다른 협력회사를 선정해 공사를 진행했다.

-정보통신공제조합에 에스엔아이의 공사포기 내용이 전달됐는지

보증금 청구 시 정보통신공제조합에 공사포기각서 사본을 제출했다.

 

<기사 속 기사> S사는 지금

A건설과 6건의 통신공사 계약을 맺었던 S사는 공사포기 각서를 제출한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S사 사장 정모씨 역시 개인 연대보증을 선 상태다.

일반적으로 공사를 진행할 때 사업자의 대표가 개인 연대보증을 선다.

연대보증 업체들은 S사 관계자를 백방으로 찾고 있는 상황이다.

S사의 대표 정씨는 20122013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을 지낸 정창영씨의 동생이다.

정창영씨는 2016년부터 모 통신업체 대표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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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