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등치는’ 홍보관 천태만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1.13 12:09:14
  • 호수 1253호
  • 댓글 0개

전기장판 하나에 100만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최근 불법 홍보관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문제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노인들을 타깃 삼아 원래 가격보다 훨씬 더 비싸게 판매한다는 점이다. 노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물건을 판매하는 상술에 대해 파헤쳐봤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돈 벌려면 무조건 장사를 해라’라는 말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물건을 파는 행위다. 노인들에게 환심을 사 물건을 판매하는 행위는 예전부터 이어져 온 장사 수법이다.

저렴하게?

보통 장사꾼의 영업 기술을 상술이라 한다. 상술의 의미는 장사하는 재주나 꾀를 뜻하는 말로 ‘상술 좋은 장사꾼’이라 함은 장사를 잘하거나, 영업에 대해 재주가 있고 꾀가 능통한 사람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거상’이 많은 밑천으로 크게 하는 장사꾼이나 그런 장수를 표현했듯, 상술이라는 말은 한동안 좋은 뜻으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현재의 상술은 부정적 의미로 자주 쓰인다. 소비자들이 생각했을 때 상술은 얄팍한 수로 손님을 속이는 행위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노인들을 겨냥해 지나치게 비싼 제품을 판매하는 불법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 홍보관이란 사기꾼들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상품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파는 공간을 말한다. 다른 말로 ‘체험방’ 혹은 ‘지하방’이라고도 하고, 금방 영업을 했다가 바로 철수하는 ‘떴다방’도 이와 비슷한 경우다. 불법 홍보관에서는 여러 가지 수법을 동원한다. 


불법 홍보관의 특징은 서울, 경기 등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이 허전하고 지갑이 두둑한 노인들만 노린다는 점이다. 10년 전에도 노인을 상대로 한 불법 홍보관은 존재했다. 가을 단풍놀이철을 맞아 노인을 대상으로 ‘효도 관광’ ‘홍보관 체험’ 등을 빙자해 물품을 강매하고 폭리를 일삼았다.

첫째로 미끼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다. 귤 한 박스에 1만원, 갈비 1kg에 5000원 등 저렴하게 팔아 우선 노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홍보관 직원은 노인들에게 물품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호감을 산다. 

둘째는 유흥거리를 제공하는 방법이다. 외로운 노인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흥을 돋군다. 거기다 음식까지 주면서 먹거리와 놀거리를 함께 제공하며 유흥을 선사한다. 홍보관 직원들은 재롱을 부려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며 적적한 마음을 채워준다. 유흥거리를 이런 식으로 노인들 마음이 무장해제 되게 하는 것이다. 

셋째 경쟁심 부추기기다. 물건을 산 사람과 사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면서 경쟁심을 불러 일으킨다. A씨는 “노인들을 1, 2, 3반 대열로 나누는데 이럴 때 홍보관 직원이 ‘1반 어머니들이 많이 샀는데 2반 어머니들은 왜 안 사냐’ 이런 식으로 대놓고 면박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을 들은 2반 어머니들이 자식들이 준 용돈으로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끼상품 활용해 고가 제품 판매
가족보다 더 친해진 직원에 현혹

넷째는 경품 마케팅이다. 크고 작은 경품으로 노인들을 불러 모은다. 건강 강좌, 주방기기, 건강식품 등 다양한 경품으로 호객행위를 한다. 경품이란 소식을 듣고 노인들은 행사장에 참석하거나 다음 날에도 다시 찾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불법 홍보관을 찾는 것일까.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중·노년 여성들이 불법 홍보관에 중독된다. 판단력이 제대로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불법 홍보관서 시간 낭비 및 돈 낭비를 하지 않겠지만, 노인들은 끊지 못하고 계속 찾게 된다. 보통 노인을 돌봐주는 가족이 곁에 있다면 가는 것을 말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독거노인들이나 소외된 노인들은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찾는다.


공짜 선물을 계속 받는 만큼 자신이 이득을 본 것으로 생각하고 하루라도 참석 못하면 공짜 선물을 받지 못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수십만원씩 사기당하며 구매한 물건들은 품질 좋은 상품이라고 여길 뿐만 아니라, 친가족보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홍보관 직원들을 위해 당연히 구매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수십만 원씩 주고 아이돌 굿즈를 사는 여고생들의 팬덤과 유사하다.

그래서 홍보관에 다니는 노인들의 집에는 불필요한 식료품, 생필품, 가전제품들이 상자째로 수북이 쌓여 있으며 제품에는 하나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 상표가 붙어있다.

B씨는 “하루는 어머니가 50만원 상당의 전기장판을 사왔다. 인터넷에 아무리 찾아봐도 전기장판 하나에 50만원이나 하는 건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당장 환불하러 가서 피해를 막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불법 홍보관이 열린 첫날에는 큰 금액을 부른 다음 하루씩 지날 때마다 가격을 낮추는 수법을 쓴다”고 말했다.

이어 “첫날에는 전기장판이 100만원부터 시작했다고 들었다. 경찰이랑 구청에 연락해 신고했지만, 사업자등록증이 있어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들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환불하러 갈 때, 혹은 물건을 사지 못한 어머니들이 판매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적 문제는?

경찰 관계자는 “수사관들이 노인에 비해 어리기 때문에 현장에 가면 모두 숨어버려 수사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불법 떴다방 영업에 속수무책이다. 조사인력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데다 자체 수사권이 없어, 업체들을 일일이 조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눈 판 노인 반지 슬쩍∼

노인을 대상으로 “사회복지사가 상품권을 주는데 반지 끼고 있으면 상품권 안 줘요”라며 반지를 빼게 한 뒤 반지를 훔친 60대 남성이 징역형을 받았다.  

서부지법 형사3단독은 김모씨(68)에게 절도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고 지난해 10월24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2월 지나가던 A(78)씨에게 접근해 “사회복지사가 상품권을 주는데 반지를 끼고 있으면 상품권을 안 줄 것 같으니 반지를 빼서 넣어두세요”라며 미리 준비한 휴지에 금반지를 넣게 한 뒤 휴지만 피해자에게 건네준 혐의를 받고 있다.


휴지에는 3돈짜리 금반지 대신 동전이 들어 있었다.

같은 수법으로 김씨는 지난해 4월과 5월에도 노인을 대상으로 각각 3·5돈짜리 금반지를 절도했다.

김씨는 80대 노인들에게 접근한 다음 “동네 어려운 노인에게 상품권을 주려고 하는데 반지를 끼고 있으면 상품권을 받을 수 없으니 반지를 빼세요” “행사장서 선물을 주는데 고가의 반지를 끼고 있으면 안 된다”고 속인 뒤 휴지를 통해 금반지를 몰래 훔쳤다. 

재판부는 “범행에 취약한 고령의 노인들을 상대로 한 범행”이라며 “피고인이 의식주를 해결할 비용이 부족해 저지른 범행이고 일부 피해자와 합의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구>
 



배너

관련기사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