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VS 나영석 ‘PD 전쟁 막후’

유재석-강호동 붙었다

[일요시사 연예부] 함상범 기자 = 예능인 유재석과 강호동이 데뷔 25년이 넘어서는 시점에 다시 양대산맥을 구축했다. <무한도전> 폐지 이후 ‘위기론’이 나왔던 유재석은 김태호 PD의 신작 <놀면 뭐하니?>로 완벽하게 부활했고, 탈세 논란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강호동은 나영석 PD의 tvN <신서유기> 시리즈와 <강식당>에 이어 <라면 끼리는 남자>(이하 <라끼남>)까지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최고의 위치에 있는 두 사람 뒤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방송 트렌드를 완벽히 이해한 두 PD가 존재한다. 침체돼있던 한국 예능 부활의 신호탄을 쏜 두 조합의 매력을 짚어봤다.
 

▲ 나영석 PD와 김태호 PD ⓒCJ ENM

유재석과 강호동, 두 사람은 1990년대 말부터 활약한 이른바 ‘예능 1세대’다. 유재석이 데뷔 28주년, 강호동이 26주년을 맞이했다. 기나긴 시간 동안 한국 예능의 선봉장이었던 두 사람은 김태호 PD와 나영석 PD로부터 중히 쓰임 받으며 국내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약 10여년 동안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두 사람은 한동안 변해가는 미디어 환경으로 인해 ‘예전만 못한’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김·나 PD와 재회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현재 최고의 주가를 누리고 있다.

먼저 유재석은 <무한도전> 폐지 이후 ‘지겹다’는 평가가 고개를 들었다. SBS <런닝맨>과 KBS2 <해피투게더4>,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등에서 그가 유발하는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호평을 받았지만, 재미보다는 감동이 포인트였다.

완벽한 시너지

위기론이 거듭됐던 유재석은 김태호 PD의 새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로 대중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다. 드럼을 쳤던 ‘유플래시’에 이어 ‘뽕포유’까지 완전히 흥행시키며 ‘2019 MBC 연예대상’의 가장 막강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맹활약 중인 유재석은 예능인과 가수의 영역을 허무는 것에 이어, MBC는 물론 KBS1 <아침마당>과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하는 등 방송사 간의 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

김태호 PD가 막무가내로 일정을 잡고 촬영하는 <놀면 뭐하니?>서 당황하는 모습을 역력히 드러내기는 하나, 금방 적응을 하고 유쾌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선보이는 중이다.


유재석의 부활은 최근 방송가를 위협하고 있는 유튜브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김 PD의 재능서 기인한다. <놀면 뭐하니?>는 기존의 방송 포맷에 ‘쌍방향 소통형’ 포맷을 적절히 버무려 방영 중이다. SNS 라이브나 팬 미팅을 진행하거나 보안을 철저히 유지해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쉽게 예측할 수 없는 행사로 대중과 유산슬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

김 PD는 방송과 현실, 예능과 다큐멘터리 사이를 오가는 과정서 대중이 궁금해하는 유재석 혹은 유산슬의 민낯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중은 김 PD가 과감한 설정을 쉽게 기획할 수 있는 배경에 ‘언제나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는 유재석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 ▲신서유기 ⓒ신서유기 페이스북

두 사람의 시너지가 빛나는 <놀면 뭐하니?>의 ‘뽕포유’로 인해 트로트도 부활하는 모양새다. 트로트계서 굵직하게 활약했던 ‘박토벤’ 박현우, ‘정차르트’ 정경천, ‘작사의 신’ 이건우 등 트로트 대가들과 함께 가수 김연자, 진성, 박상철, 홍진영 등과 같은 트로트 거장들까지 주목받고 있다. 앞선 ‘유플래쉬’에서는 이효리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진 이상순을 비롯해 이적, 유희열 등 국내 뮤지션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살아있는 레전드
예능의 두 아이콘

“유재석이 기획자와 출연자의 관계임에도 선후배처럼 방송에 대한 유의미한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밝힌 김 PD는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서 “20년 정도 옆에서 지켜보니 유재석은 처음 시작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기뻐하면 그걸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유재석은 늘 연탄 같은 삶을 산다. 성냥처럼, 연탄처럼 자신을 태우는 사람”이라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2011년 불명예스러운 논란으로 인해 방송 활동을 잠정 중단한 강호동은 과거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활약을 이어갔다. 지난 2012년 8월, 호기롭게 복귀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어느덧 자유롭고 편안하며 꾸밈없는 태도가 예능의 베이스가 된 가운데 다소 과한 액션으로 일관하는 강호동을 두고 시대의 흐름에 뒤처졌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KBS2 <달빛 프린스> <투명인간>, MBC <별바라기>, SBS <맨발의 친구들> 등 그가 맡은 프로그램이 줄줄이 폐지됐다. 대부분 시청률 부진이 이유였다. KBS2 <우리동네 예체능>만이 선전한 축에 속했다.


영향력이 약해진 강호동은 장기인 보스형 카리스마 스타일을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tvN <신서유기>를 통해서다. 초반부에는 과거와 비슷한 맥락의 진행 방식으로 은지원, 이수근 등으로부터 핀잔을 받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새로운 방송환경에 적응한 듯 기존과는 다른 웃음을 이끌어냈다. <신서유기>의 성공을 기반으로 JTBC <아는 형님>과 <한끼줍쇼>, tvN <강식당> 등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고, 강호동을 향한 시청자들의 편견도 점점 옅어졌다.

강호동의 성공 기반에는 나영석 PD가 존재했다. 나 PD는 강호동의 캐릭터를 분명히 인지한 듯 그가 갖고 있는 숨은 매력을 <신서유기>와 <강식당>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꺼내 놓았다. <신서유기>에서는 브랜드를 과감하게 말하는 장면서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나 술을 먹으면서 방송하는 모습 등으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고, <강식당>에서는 이전처럼 윽박을 지르기보다 조곤조곤하게 ‘소통’을 강조하고 ‘평화’를 주장하며 동생들을 다독이는 등 이미지를 다각화했다.

그런 가운데 나 PD는 최근 유튜브 콘텐츠인 <라끼남>을 통해 강호동의 진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라끼남>은 강호동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기 위한 최적의 몸상태를 만드는 게 골자다. 특히 등산 뒤에 먹는 라면이라는 게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는 방송가서 기피해온 소재였다. 등산의 경우 출연자나 제작진 모두 체력 소모가 커 적절한 대화를 꺼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기 넘고 최고의 주가 
뉴 미디어 시대 연착륙

우려를 불식한 채 <라끼남>은 부적절한 장소서도 웃음을 뽑아내고 있다. 천왕봉서 먹을 라면 고르기부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힘든 등산 과정까지, 귤 하나 까먹으며 온갖 이야기로 주위를 사로잡는 강호동의 입담은, 진행 위주의 방송을 해온 강호동의 예전 모습과 다른 신선한 그림다. 아울러 씨름 선수 출신인 강호동이 만들어내는 ‘라면 먹방’은 보는 이들의 침샘을 유발한다.
 

▲ 놀면 뭐하니 ⓒMBC

 

특히 싱싱한 굴과 고춧가루, 후추를 잔뜩 넣은 라면, 지리산 등정에 나서 일출을 본 뒤 파채를 섞어 만든 일명 ‘파채라면’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강호동이 만든 라면에 대해 ‘못 참겠다’고 남기는 글들이 적잖이 보인다. 그저 라면만 먹는 이 콘셉트서 강호동의 본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약 30년 동안 꾸준하고 일관된 태도가 tvN <삼시세끼> <윤식당> <스페인 하숙> 등 음식을 만들고 먹고 파는 과정을 담아내고 그 안에서 출연자의 매력을 담담하게 꺼내는 나 PD의 재능을 통해 빛나고 있다. 앞서 나 PD는 “방송을 하다 보니까 강호동과 길게 일을 하게 됐다. 문득 녹화를 하다 보니 천하장사를 했던 사람이 국민 MC가 된 과정을 떠올리게 됐다. 예전에는 대단한 사람이 대단해 보였는데, 지금은 오랜 시간 꾸준한 사람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재석과 김 PD, 강호동과 나 PD의 조합은 미디어의 변화에 유일하게 연착륙한 조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간미 경쟁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에 소위 잘나갔던 PD들이 트렌드에 발맞추지 못하고 답보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변화의 흐름에 맞춘 PD가 김태호 PD와 나영석 PD다. 그 두 PD의 페르소나로서 활용되고 있는 예능인이 유재석과 강호동”이라며 “예전만 하더라도 각 스타의 개인기만으로 재미를 유발했으나 최근에는 포맷과 장르 등이 잘 기획된 예능만 살아남는다. 김 PD와 나 PD가 그 방면서 특출난 능력을 선보이고 있고, 두 사람 역시 그 안에서 새로운 방송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아이콘으로 맹활약 중”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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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