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송구영신 특집> 2019·2020 영화계, 못다한 이야기와 하고픈 이야기

충무로를 돌아보고 내다보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2019년 기해년은 임시정부 수립 기념 100주년인 동시에 한국 영화 100주년이었던 한 해였다. 그 시작은 미비했을지 모르나 10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 강국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프랑스를 넘어 미국서도 각광 받고 있으며, 1000만 영화는 무려 5편이나 나왔다. 새로운 감독들이 혜성같이 충무로에 나타났고, 독립영화 역시 성장세다. 하지만 빛이 밝은 만큼 그림자는 더 짙은 법. 한국 영화는 ‘양산형 영화’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해결되지 못하는 독과점 논란,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깎아내리는 평점 테러,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인한 역사 왜곡 등 고질병도 앓고 있다. <일요시사>가 영화계의 한 해를 결산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2020년의 영화계를 내다봤다.
 

▲ 봉준호 감독의 &lt;기생충&gt;

2019년 한국 영화계의 가장 빛난 업적은 봉준호 감독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한 것이다. 앞서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2위 격인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바 있으나, 황금종려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대의 빈틈을 통찰한 이 영화는 전 세계 외신과 영화평론가들의 압도적 호평으로 세계 최고의 권위의 황금종려상의 선택을 받았다.

이 영화는 국내서 10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하는 등 대중성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프랑스, 스위스, 호주, 베트남, 독일, 벨기에, 미국 등 세계 30개국 이상서 개봉됐다. 일부 국가에선 역대 한국 영화 가운데 흥행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생충>의 금자탑은 여전히 갱신 중이다. 현재 미국서도 각종 영화제의 최고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등 낭보가 이어지고 있으며, 오는 2020년 1월5일 미국서 열리는 제77회 골든글로브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도전한다.

금자탑 올린
 <기생충>

2013년 이후 2억명 관객 시대를 맞이한 한국 영화는 꾸준히 현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도 2억2000만명 수준의 관객을 유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가운데 마약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위장 수사로 치킨집을 여는 내용의 <극한직업>은 1626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역대 흥행 2위에 올랐으며, 신예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가 색다른 코미디 재난 영화로 942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독립영화의 발전도 눈에 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115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규모를 넓혔으며 <벌새> <메기> <윤희에게>와 같은 저예산 영화들이 ‘규모의 한계’를 이겨내고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성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 유수 영화제서 무려 40관왕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이 영화는 91회차 관람객을 비롯해 팬덤이 생기는 등 독립영화 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김 감독을 포함해 <말모이>의 엄유나 감독, <돈>의 박누리 감독, <메기>의 이옥섭 감독,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 등은 임순례, 방은진, 변영주, 노덕 등 일부 유명 여성 감독 외에는 빛을 보지 못했던 한국 영화계서 여성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배우들도 약진했다. <기생충>의 송강호와 최우식, 조여정을 비롯한 배우들과 <벌새>의 박지후 등은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한국판 드웨인 존슨으로도 일컬어지는 배우 마동석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서 사랑받는 마블스튜디오(이하 MCU)에 합류했다. 길가메시로 캐스팅된 그는 새 영화 <이터널스>(감독 클로이 자오) 촬영에 한창이다.

1000만 영화 무려 5편
<기생충> 한국영화 100년 결실

빛나는 업적도 많았지만, 한계도 분명했던 한 해였다.

올해 국내 개봉 영화 흥행 10위에 한국 영화는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 <봉오동 전투>가 전부다. 나머지 6편은 외국 영화가 차지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안방을 내준 격이다. 2015년 10위 내에 속한 외화가 4편, 2016년에는 2편, 2017년에 3편에 비해 초라한 성적이다. 일부를 제외하곤 국내 영화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겨울왕국2> <어벤져스:엔드게임> <알라딘>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 <캡틴 마블> <조커> 등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에 한국 영화들은 맥없이 밀려났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은 ‘그 영화만의 미덕’이 아닌 흥행한 영화의 공식만 답습한 ‘양산형 영화’의 확산 때문이라는 게 영화계의 중론이다. <봉오동 전투>와 <나쁜 녀석들:더 무비> <82년생 김지영> <돈> <악인전>은 비록 흥행을 거둔 편임에도 평단의 평가는 좋지 못했다. 그 가운데 올해 최악의 영화로 꼽히는 <자전차왕 엄복동>은 150억여원이 투입됐음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CG와 앞뒤가 맞지 않는 개연성, 애국심에 의존한 ‘국뽕’으로 점철됐다는 혹평을 받았고, UBD(17만, 관객 단위)라는 신조어로 대중의 조롱을 받기도 했다.
 

▲ 엑시트

주춤한 한국 영화들 사이서 분전한 월트디즈니컴퍼니는 국내 관객 점유율 1위 배급사로 올라섰다. 영화진흥위원회의 ‘11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11월 배급사별 관객 점유율서 CJ ENM은 23.3%를 기록, 26.9%를 차지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에 밀려 2위다.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24.5%의 점유율로 디즈니(24.4%)에 0.1% 앞섰지만, 겨울철부터 결국 1위 자리를 내줬다.

두 배급사가 역 4000억원대 매출액을 기록한 가운데 롯데컬처웍스, 쇼박스, NEW 등은 1000억원대 전후의 매출로 턱없이 부족한 성적을 받았다.

세계로 쭉쭉
한계도 분명

역사 왜곡 논란이나 평점 테러 등 이전에도 발생해온 문제들이 올해에도 불거졌다. <나랏말싸미>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한글 창제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세종이 아닌 신미 스님이 한글을 창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설에 집중했다가 평점 테러 등을 당하며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82년생 김지영>은 국내서 가장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젠더 문제서 악의적인 평점 테러를 받았다.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367만 관객을 돌파했으나, 고질병은 여과 없이 드러났다.

또 매년 불거지고 있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 역시 해결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엄청난 인기를 얻는 외화가 등장할 때마다 재점화되는 ‘독과점 논란’은 해결책이 미궁 속에 빠져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스크린 상한제’ 관련 법안을 수 차례발의했지만, 상정된 법안은 없다.

그런 가운데 2020년 한국 영화는 다시 한번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 새로운 장르의 작품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보겠다는 심산이다. 또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거머쥔 스타 감독들 역시 대거 귀환하며, 단편영화 등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신예 감독들도 비교적 큰 규모의 자본을 투자 받아 신선한 이야기를 써낼 준비를 하고 있다.

2020년은 명성이 자자한 특급 감독들의 작품이 매달 이어지며, 극장가를 풍성하게 채울 전망이다. 500만 관객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 감독들이 즐비하다. 대부분이 스타 배우들과 손을 잡았다. 라인업만 봐도 한국 영화의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한맨 파워
미 브랜드 파워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은 이병헌과 다시 뭉친 <남산의 부장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은 강동원, 이정현과 함께 <부산행> 이후 좀비들이 득세한 한반도를 그린 <반도> <관상>과 <더 킹>의 한재림 감독은 송강호와 이병헌을 주축으로 한 <비상선언>, 류승완 감독은 김윤석, 조인성과 함께 작업한 <탈출:모가디슈>로 충무로를 휘저을 전망이다.

이 외에도 <변호인> <강철비>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양우석 감독은 <정상회담>을 제작하며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은 <1947, 보스턴>을, <신세계>와 <마녀>의 박훈정 감독은 엄태구, 전여빈 등 신예를 앞세운 <낙원의 밤>을,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은 박보검의 첫 주연 영화 <서복>으로 나선다.
 

▲ 윤희에게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소위 ‘불한당원’이라는 팬덤을 구축한 변성현 감독은 설경구와 손을 맞잡고 <킹메이커:선거 판의 여우>로 돌아온다. <변산>으로 아쉬운 성적을 남긴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를, <말죽거리 잔혹사> <쌍화점>으로 흥행했으나 <하울링> <강남1970>으로 연이은 쓴맛을 본 유하 감독은 <파이프 라인>으로 재기에 도전한다.

영화계서 흔히 입봉작을 두고 ‘영혼을 갈아 만든다’는 말을 쓰곤 한다. 2020년에는 단편영화 및 예술 영화로 두각을 나타낸 신예 감독들의 데뷔작도 무수해 기대감을 준다.


2012년 <파수꾼>으로 파란을 일으킨 윤성현 감독이 당시의 주역인 이제훈과 박정민 등을 캐스팅한 <사냥의 시간>과, 14분짜리 단편영화 <몸값>으로 최고 유망주로 떠오른 이충현 감독은 박신혜, 전종서를 앞세운 스릴러 영화 <콜> 그리고 <극한직업> 개봉 직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한 류승룡이 선택하면서 화제를 모은 조은지 감독의 <입술은 안돼요>가 기대작으로 꼽힌다.

디즈니에 빼앗긴 한국 안방
위상 되찾을 스타 감독은?

특히 배우 출신이자 단편영화 <이만원의 효과>로 호평을 받은 조 감독은 첫 상업영화에 도전하며 문소리, 김윤석에 이어 배우 출신 감독으로 메가폰을 잡는다.

2020년에는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뮤지컬 영화가 두 편이나 개봉한다. 또 한국서 성공한 적 없는 SF영화도 개봉 예정이다. 먼저 <히말라야>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안중근 열사를 소재로 한 <영웅>을 뮤지컬 영화로 제작 중이다. 1909년 10월 하얼빈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사형 판결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린 동명의 국내 오리지널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에 빼앗겼다시피 한 뮤지컬 영화 장르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첫 작품이다.
 

▲ 코미디 영화로 1000만 관객의 위업을 달성한 극한직업

뮤지컬서도 무대를 압도한 정성화가 주연을 맡았다. 류승룡과 염정아가 캐스팅된 <인생은 아름다워>도 기대되는 뮤지컬 작품이다. <국가부도의 날>의 최국희 감독과 <완벽한 타인>과 <극한직업>을 통해 충무로 원탑 각색 작가로 떠오른 배세영 작가의 합작품이다. <늑대소년>과 <탐정 홍길동>으로 연이은 흥행을 거둔 조성희 감독은 송중기를 앞세운 SF영화 <승리호>를 영화관에 건다.


지난해와 올해 아쉬운 성적을 받아들인 한국 영화계가 유명 감독들의 ‘맨 파워’를 보여주는 준비를 하는 가운데 외화는 앞서 성공한 작품 또는 시리즈물로 거대한 한국 영화 시장을 노린다.

스타 감독 
대거 귀환

먼저 한국서 꾸준히 사랑받는 <스타워즈: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시작으로, 윌 스미스 주연의 <나쁜 녀석들:포에버>, 샤를리즈 테론과 니콜 키드먼 주연의 <밤쉘>, 소리 없는 공포 영화로 주목받은 <콰이어트 플레이스2>, DC코믹스를 실사화한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 다니엘 크레이그가 마지막으로 제임스 본드 역을 소화하는 <007 노 타임 투 다이>, MCU 페이즈 4의 첫 영화이자 스칼렛 요한슨의 <블랙 위도우>, 국내서 연이어 흥행에 성공한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등이 그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국내 감독들의 면면과 외국 영화들의 제목이 2020년 영화계의 문을 두드리는 가운데 영화팬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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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