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송구영신 특집 일요초대석> ‘노래로 나누는 가수’ 강민주

“잘되고 베푼다? 지금 당장 다가가세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찬바람 부는 계절이다. 몸과 마음이 추운 사람들에겐 특히 혹독한 시기다. 이들에게는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작은 나눔은 훈훈한 사회의 시발점이 된다. 가수 강민주는 주변에 나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봉사 전도사. <일요시사>가 연말연시를 맞아 강민주가 전하는 온기를 조명했다.
 

▲ ▲ 트로트 가수 강민주가 &lt;일요시사&gt;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문병희 기자

지난 6일 집에 들어서자마자 네 마리 강아지가 일제히 짖기 시작했다. 핑키·공주·하나·두나라는 이름의 강아지들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낯선 방문객을 경계했다. 강민주는 기자를 향해 달려드는 강아지를 진정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의 조카가 강아지들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 뒤에야 조용해졌다.

고난의 연속

인터뷰는 그 후 한참 뒤에야 시작됐다. 강민주는 주방서 과일과 차를 준비하느라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에도 연신 칼을 들고 과일을 깎아 접시를 채웠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닥으로 내려앉은 그녀는 품에 파고드는 강아지들을 쓰다듬으며 지나온 삶을 천천히 풀어놓았다.

1987KBS신인가요제서 대상을 받고 1989년 본격적으로 방송생활을 시작한 강민주는 데뷔한 지 30년이 넘는 트로트계의 중견가수다. 데뷔 전에는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면서 긴 무명시절을 겪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가수였던 그녀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군내 노래대회에 나가 오빠 생각으로 3등을 했다. 부상으로 받은 공책 150권은 전교생이 나눠 가졌다.

어린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막내인 강민주를 두고 언니와 오빠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강민주는 당장 중학교도 다니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그런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당시 웅변으로 이름을 날리던 강민주를 자산가 한 명이 돕겠다고 나선 것.


돈이 없어서 학교도 못 다닐 형편이었는데, 그 분의 도움으로 그래도 졸업은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때 느낀 감사함이 커요. 언젠가 나도 크면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시작은 2012KBS 재능나눔 봉사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강민주는 처음 봉사단으로 활동할 때는 그래도 KBS라는 타이틀이 있으니까 내가 여기 있으면 뭔가를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얄팍한 마음이 있었어요. 보답을 바란 거죠라며 그런데 활동을 하다 보니 나는 주러 갔는데 받아오는 일이 많아진 거예요라고 회상했다.

“평생 좋은 일만 하고 싶어요”
데뷔 30년 베테랑 트로트 가수

그에겐 여주교도소서의 공연이 전환점이 됐다. 이전에도 공연을 가긴 했지만 단체 소속으로 봉사를 간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공연이 거듭되면서 강민주는 봉사에 중독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왜 좋은 일을 하는지, 봉사를 하는지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같이 활동한 봉사단원들의 열정과 착한 마음씨는 강민주의 마음에 큰 불씨를 남겼다.

목포교도소에 갔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교도소는 실내서 공연을 진행하는 반면, 목포교도소는 수형자들이 운동장에 타원형으로 앉아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실외 공연인 만큼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이날 공연서 강민주는 무대서 내려가 수형자들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나눴다.
 

▲ ‘봉사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는 트로트가수 강민주씨 ⓒ문병희 기자

무서운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안는 동안 제가 안아준 기억이 이 사람이 출소한 이후 좋은 일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신지체 아동들을 위한 공연을 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강민주는 주최하는 분들은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봐 아이들을 일일이 제지했어요. 하지만 무대서 일어나는 일은 제가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지 말라고 했죠. 아이들은 흥이 정말 많아요. 손잡고 함께 노래하는 걸 좋아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콘서트 수익금도 전액 기부했다. 지난달 11일 강민주는 데뷔 30년 만에 처음으로 콘서트를 열었다. 올해 초 지인들과의 모임 자리서 가볍게 나왔던 말이 정말 성사된 것이다. 지인들이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 전까지 강민주는 그에 대해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콘서트를 할 자격이 있는 걸까 끊임없이 걱정했어요. 나만을 위해 콘서트에 와주시는 분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도 계속 들었고요. 객석을 채우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컸어요. 텅텅 빈 객석을 보면 정말 상처받을 것 같아서 중간에 하지 말까하는 생각도 엄청나게 많이 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서울 양재동 더K호텔 아트홀서 강민주, 사랑 하나 이별 둘이라는 타이틀로 진행한 단독콘서트는 강민주만을 위한 팬들로 가득 찼다. 국민MC 김병찬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김정택 단장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다. 가수 배동성, 마라토너 이봉주 등 가까운 지인들이 강민주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다.

2012년 봉사단 활동 시작으로 
첫 콘서트 수익도 전액 기부해

트로트 예능 <미스트롯>에 출연해 강민주의 곡 회룡포를 부른 강혜민도 콘서트장을 찾았다. 강민주는 TV에 출연해 자신의 곡을 부르는 15세 소녀 강혜민을 보고 먼저 연락을 취해 할머니와 함께 만났다. 강민주는 이 자리서 강혜민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등록금을 일체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얼마 전에 혜민이한테 문자가 왔어요.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문자를 보는데 정말 너무 기분 좋았어요. 제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콘서트 수익금의 일부는 한중친선협회 홍보대사를 맡으면서 알게 된 중국의 심장병 어린이 2명을 위한 수술비로 전해졌다.
 

▲ 인터뷰 도중 활짝 웃어보이는 트로트가수 강민주 ⓒ문병희 기자

한중치맥축제 홍보대사로 발탁돼 중국 칭다오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받는 어린이들을 보게 됐어요. 콘서트를 하면 수익금으로 그 애들의 수술을 도와주겠다고 결심했죠.

서울 양재동에 오랫동안 거주한 그녀는 소방대원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는 소방대원들의 자녀들을 돕기 위해 콘서트 수익금의 일부를 들고 소방서를 찾았지만 마음만 받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남은 수익금 중 1000만원을 모교인 광천고에 기부했다. 양재동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 2명도 현재 강민주의 후원을 받고 있다.

베푸는 삶

강민주는 평생 좋은 일만 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먼저 잘되고 난 뒤에 남을 돕겠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 당장 조금씩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년보다 올해, 올해보다 내년, 이렇게 조금씩 더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