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송구영신 특집> 국민이 바라는 재계발 2020 희망가

가시밭길…무소의 뿔처럼 돌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저성장 국면을 넘기 위한 재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예전 같지 않은 업황 속에서 저마다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도 어렵다’는 말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좌고우면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신발 끈을 묶어 내달리는 형국이다.
 

▲ (사진 왼쪽부터)구광모(LG그룹)·박정원(두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난 12월8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20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를 발표했다. 응답 기업의 64.6%는 현재 경기상황을 장기형 불황이라고 봤다. 47.4%는 경영계획 기조로 ‘긴축경영’을 꼽았다. 이 중 300인 이상 기업은 50%, 300인 미만 기업은 46.5%였다.

불황 지속
극복 갈망

재계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말에 다다르면서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한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CJ그룹은 재무 안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비상경영을 시작했다. 그룹은 CJ헬로와 투썸플레이스에 이어 조 단위의 부동산을 처분,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각설에 휩싸이던 이스타항공은 누적적자로 비상경영을 선포한 뒤, 제주항공의 인수 궤도에 올랐다. 보험업계도 실적 악화로 인해 인원 감축과 부서 간 통폐합을 시행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2월17일 ‘2020년 경제전망 세미나’를 개최했다. 서영경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 원장은 “2020년 성장률은 세계교역 여건과 정보기술·조선 등 주력산업 업황 개선을 고려하면 올해보다는 높을 것”이라면서도 “민간부문 부진이 지속되면서 잠재성장률(2.5%)을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장이 더딘 한 해를 보내면서 재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재계별 불황 타개책들이 이목을 끈다. 당면한 상황이 저마다 다른 만큼 가지각색이다.

가장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곳은 ‘유통업계’다. 온라인·모바일 시장의 활성화로 인한 오프라인 시장의 침체가 가시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통 빅3’로 불리는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이 대표적이다.

변화의 폭이 컸던 곳은 롯데쇼핑이다. 롯데쇼핑은 백화점·마트·슈퍼·e커머스·롭스 등으로 나뉘어 있던 사업부문을 하나의 통합 법인으로 재편했다. 각자 대표체제도 ‘원톱’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

2020년 경제 전망 부정적 기류 강해
불황 타개책 구비…전념하는 기업들

신동빈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다. 구조 개편은 곧 실적 개선을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롯데쇼핑은 올해 연결기준 3분기 매출액 4조4047억원과 영업이익 87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5.78%, 56% 하락한 수치다.

신 회장은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장의 틀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돼라”고 주문했다.

현대백화점은 ‘세대교체’를 꺼내들었다. 그룹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의지다. 현대백화점은 주요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50대 인사’로 채웠다.


그룹은 “그동안 50년대생 경영진의 오랜 관록과 경륜을 통해 회사의 성장과 사업 안정화를 이뤄왔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경영 트렌드 변화에 보다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겸비한 60년대생 젊은 경영진을 전면에 포진시켜 미래를 대비하고 지속경영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신세계백화점은 ‘대표 맞트레이드’로 관심을 샀다. 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를 맞바꾼 것. 사측은 미래 준비 강화와 성장 전략 추진에 초점을 맞춰 성과주의, 능력주의 인사를 강화했다는 설명을 내놨다.

이마트의 경우 첫 외부 인사 수혈로 눈길을 끌었다.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내며 업계 안팎의 우려를 샀다. 이마트는 경영 컨설턴트 출신이자 ‘전략통’으로 유명한 강희석 사장 체제에 안착, 본격적인 수술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기존 점포 리뉴얼을 통해 수익성 중심의 사업 전략을 재편할 계획이다.

변화와 혁신
과감한 결단

화학 업계는 부진을 거듭했지만 반등 모멘텀이 비교적 선명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가 감소했지만 사업 구도 다각화를 통한 탈출로 모색이 눈길을 끈다. ‘화학 3사’ 한화케미칼과 LG화학, 롯데케미칼이 그 주인공이다.

한화케미칼은 신사업 분야의 지속적 투자로 시황 악화 속에서 호실적을 내놨다. 한화케미칼은 ‘태양광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바 있다. 회사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1524억원. 지난해와 비교해봤을 때 62.56%가 증가한 값이다. 이 중 태양광 부문이 6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성장을 견인했다.

태양광은 한화케미칼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점쳐진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태양광 사업 실적은 주력 지역인 미국·유럽의 설치 수요 호조로 견조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미국의 캘리포니아 신축 주택에 대한 태양광 패널 설치 의무화 등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적극적이다. LG화학은 올해 3분기 전지 사업 부문서 직전 분기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전지사업은 LG화학이 꼽은 신성장 동력이다. 지난해 회사의 연구개발(R&D) 비용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이중 30% 이상이 배터리 분야에 투자됐다.

롯데케미칼은 사업 다각화에 힘을 싣고 있다. 회사는 1월1일부터 롯데첨단소재와 합병할 예정이다. 대표 체제는 ‘통합케미칼’ 대표이사 아래 기초소재사업 대표와 첨단소재사업 대표체제로 첫 발을 내딛는다. 롯데케미칼은 두 사업 분야의 특성이 상이한 만큼 각 영역서 핵심 역량을 효과적으로 강화, 사업 포트폴리오를 탄탄하게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 최태원(SK)·허태수(GS그룹) 회장

동시에 롯데케미칼은 비핵심 사업 구조조정 등을 정리하며 체질 개선에 나선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0월 흑자를 기록하던 영국 자회사를 중장기 비전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매각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내수시장의 침체와 글로벌 경제 불황으로 판매 부진을 거듭했다. 업계는 신차를 출시해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는 모두 10개의 신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현대·기아는 해외 시장에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의 하이브리드차는 이스라엘서 9년 연속 판매 1위의 고지를 바라보는 등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역시 신차 계획을 앞두고 있다. 연말까지 노조의 절반가량이 출근했지만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의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의 르노삼성 부산공장 일대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지정 검토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4월 전북 군산이 한국GM 공장 폐쇄 등으로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쌍용차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이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기존 대출 상환 연장을 요청했다. 쌍용차는 1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다만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지원으로 반등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 잡힌 것은 아니지만 아난드 마힌드라 마힌드라그룹 회장은 투자 의향을 밝힌 바 있다.

준비 사업
하나둘 정비

2020년을 앞두고 재계 그룹 총수들의 메시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위기 극복을 위한 변화와 혁신, 쇄신을 당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1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32주기 추도식에 참여해 ‘경영위기 타개’와 ‘사업 보국’ 등을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선대 회장님의 사업보국 이념을 기려 우리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며 “지금의 위기가 미래를 위한 기회가 되도록 기존의 틀과 한계를 깨고 지혜를 모아 잘 헤쳐나가자”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은 2019년을 내우외환과 함께했다. 국내에선 이 부회장의 국정 농단 관련 재판으로, 대외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등과 함께했다. 또 노조 와해 의혹으로 임원들이 법정 구속된 것과 관련, 이례적인 대국민 사과문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사실상 무노조 원칙을 폐기한 셈이다. 반성과 사회 가치에 부합하는 노사관계 형성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LG그룹 4세 경영 시대를 열고 있는 구광모 회장은 ‘디지털 전환’을 화두로 꺼내 들었다. 구 회장은 새해부터 임직원들과 디지털을 통해 소통하기로 했다. 디지털 시무식은 LG그룹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구 회장은 저성장 국면에 취임해 소탈과 실용주의라는 키워드를 대표했다. 그룹 임원인사서 그 단면이 여실히 드러났다. 구 회장은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적 인사를 단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그룹 체질 개선과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인사라는 분석도 있었다.

구 회장은 잔뼈가 굵은 원로 부회장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경영을 이끌어가면서도 파격 인사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LG그룹은 지난 12월14일 구자경 명예회장의 별세로 2020년은 ‘구광모 체제’가 더욱 공고하게 될 공산이 크다.

성장 동력 확보 그룹 총수 고심↑ 
각양각색 전략…새해부터 총력전

SK그룹에선 ‘행복 경영’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최태원 SK 회장은 2019년 한 해를 ‘행복 토크’로 마무리했다. 최 회장은 지난 12월19일 행복 토크 100회를 마무리 했다. 이동한 거리만 4만여km에 달한다. 1회 평균 2시간30분 정도의 시간을 들일 만큼 최 회장은 행복 경영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제주도서 열린 ‘2019년 CEO(최고경영자) 세미나’ 폐막연설서 “성공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해지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행복 경영의 가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행복전략을 언급하며 “행복을 추구할 때도 정교한 전략과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각 계열사가 수립 중인 행복전략의 고도화를 주문했다. 실제로 SK그룹의 연말 임원인사는 행복경영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조직의 재설계라고 알려졌다.

두산그룹은 일찌감치 연초 일정을 잡아뒀다. 두산그룹은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열리는 ‘CES 2020’에 참가한다. 두산의 CES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은 지향하는 새로운 미래상을 선보이고,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 널리 알리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또한 미래 성장의 해법을 전통 제조업과 정보기술 간 업종 경계가 무너지는 최첨단 기술로부터 찾겠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지난 10월 면세점 사업에 손을 떼면서 전자 소재와 신성장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점을 드러낸 바 있다.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분야는 과감히 정리하고, 신성장 동력으로 발판을 다듬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의 부진으로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내세운 셈이다.

GS그룹은 허창수 회장의 용퇴 이후 ‘디지털 혁신’을 맞게 됐다. 허 회장은 “지금은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리더와 함께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해 GS가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솟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도전하는 데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며 물러났다.

성장 동력
구비 마쳐

허태수 GS그룹 신임회장은 ‘디지털 혁신 전도사’ ‘트렌드 전도사’로 불린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회사 GS랩스를 설립, 그룹 혁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 등 4차 산업과 관련된 최신 경향들을 그룹 전반에 소개하기도 했다. 허 회장은 GS홈쇼핑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실리콘밸리 혁신기업의 업무방식을 가장 먼저 적용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신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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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