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송구영신 특집> 국민이 바라는 재계발 2020 희망가

가시밭길…무소의 뿔처럼 돌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저성장 국면을 넘기 위한 재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예전 같지 않은 업황 속에서 저마다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도 어렵다’는 말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좌고우면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신발 끈을 묶어 내달리는 형국이다.
 

▲ (사진 왼쪽부터)구광모(LG그룹)·박정원(두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난 12월8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20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를 발표했다. 응답 기업의 64.6%는 현재 경기상황을 장기형 불황이라고 봤다. 47.4%는 경영계획 기조로 ‘긴축경영’을 꼽았다. 이 중 300인 이상 기업은 50%, 300인 미만 기업은 46.5%였다.

불황 지속
극복 갈망

재계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말에 다다르면서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한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CJ그룹은 재무 안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비상경영을 시작했다. 그룹은 CJ헬로와 투썸플레이스에 이어 조 단위의 부동산을 처분,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각설에 휩싸이던 이스타항공은 누적적자로 비상경영을 선포한 뒤, 제주항공의 인수 궤도에 올랐다. 보험업계도 실적 악화로 인해 인원 감축과 부서 간 통폐합을 시행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2월17일 ‘2020년 경제전망 세미나’를 개최했다. 서영경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 원장은 “2020년 성장률은 세계교역 여건과 정보기술·조선 등 주력산업 업황 개선을 고려하면 올해보다는 높을 것”이라면서도 “민간부문 부진이 지속되면서 잠재성장률(2.5%)을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장이 더딘 한 해를 보내면서 재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재계별 불황 타개책들이 이목을 끈다. 당면한 상황이 저마다 다른 만큼 가지각색이다.

가장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곳은 ‘유통업계’다. 온라인·모바일 시장의 활성화로 인한 오프라인 시장의 침체가 가시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통 빅3’로 불리는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이 대표적이다.

변화의 폭이 컸던 곳은 롯데쇼핑이다. 롯데쇼핑은 백화점·마트·슈퍼·e커머스·롭스 등으로 나뉘어 있던 사업부문을 하나의 통합 법인으로 재편했다. 각자 대표체제도 ‘원톱’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

2020년 경제 전망 부정적 기류 강해
불황 타개책 구비…전념하는 기업들

신동빈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다. 구조 개편은 곧 실적 개선을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롯데쇼핑은 올해 연결기준 3분기 매출액 4조4047억원과 영업이익 87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5.78%, 56% 하락한 수치다.

신 회장은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장의 틀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돼라”고 주문했다.

현대백화점은 ‘세대교체’를 꺼내들었다. 그룹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의지다. 현대백화점은 주요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50대 인사’로 채웠다.


그룹은 “그동안 50년대생 경영진의 오랜 관록과 경륜을 통해 회사의 성장과 사업 안정화를 이뤄왔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경영 트렌드 변화에 보다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겸비한 60년대생 젊은 경영진을 전면에 포진시켜 미래를 대비하고 지속경영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신세계백화점은 ‘대표 맞트레이드’로 관심을 샀다. 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를 맞바꾼 것. 사측은 미래 준비 강화와 성장 전략 추진에 초점을 맞춰 성과주의, 능력주의 인사를 강화했다는 설명을 내놨다.

이마트의 경우 첫 외부 인사 수혈로 눈길을 끌었다.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내며 업계 안팎의 우려를 샀다. 이마트는 경영 컨설턴트 출신이자 ‘전략통’으로 유명한 강희석 사장 체제에 안착, 본격적인 수술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기존 점포 리뉴얼을 통해 수익성 중심의 사업 전략을 재편할 계획이다.

변화와 혁신
과감한 결단

화학 업계는 부진을 거듭했지만 반등 모멘텀이 비교적 선명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가 감소했지만 사업 구도 다각화를 통한 탈출로 모색이 눈길을 끈다. ‘화학 3사’ 한화케미칼과 LG화학, 롯데케미칼이 그 주인공이다.

한화케미칼은 신사업 분야의 지속적 투자로 시황 악화 속에서 호실적을 내놨다. 한화케미칼은 ‘태양광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바 있다. 회사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1524억원. 지난해와 비교해봤을 때 62.56%가 증가한 값이다. 이 중 태양광 부문이 6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성장을 견인했다.

태양광은 한화케미칼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점쳐진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태양광 사업 실적은 주력 지역인 미국·유럽의 설치 수요 호조로 견조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미국의 캘리포니아 신축 주택에 대한 태양광 패널 설치 의무화 등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적극적이다. LG화학은 올해 3분기 전지 사업 부문서 직전 분기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전지사업은 LG화학이 꼽은 신성장 동력이다. 지난해 회사의 연구개발(R&D) 비용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이중 30% 이상이 배터리 분야에 투자됐다.

롯데케미칼은 사업 다각화에 힘을 싣고 있다. 회사는 1월1일부터 롯데첨단소재와 합병할 예정이다. 대표 체제는 ‘통합케미칼’ 대표이사 아래 기초소재사업 대표와 첨단소재사업 대표체제로 첫 발을 내딛는다. 롯데케미칼은 두 사업 분야의 특성이 상이한 만큼 각 영역서 핵심 역량을 효과적으로 강화, 사업 포트폴리오를 탄탄하게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 최태원(SK)·허태수(GS그룹) 회장

동시에 롯데케미칼은 비핵심 사업 구조조정 등을 정리하며 체질 개선에 나선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0월 흑자를 기록하던 영국 자회사를 중장기 비전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매각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내수시장의 침체와 글로벌 경제 불황으로 판매 부진을 거듭했다. 업계는 신차를 출시해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는 모두 10개의 신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현대·기아는 해외 시장에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의 하이브리드차는 이스라엘서 9년 연속 판매 1위의 고지를 바라보는 등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역시 신차 계획을 앞두고 있다. 연말까지 노조의 절반가량이 출근했지만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의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의 르노삼성 부산공장 일대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지정 검토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4월 전북 군산이 한국GM 공장 폐쇄 등으로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쌍용차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이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기존 대출 상환 연장을 요청했다. 쌍용차는 1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다만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지원으로 반등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 잡힌 것은 아니지만 아난드 마힌드라 마힌드라그룹 회장은 투자 의향을 밝힌 바 있다.

준비 사업
하나둘 정비

2020년을 앞두고 재계 그룹 총수들의 메시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위기 극복을 위한 변화와 혁신, 쇄신을 당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1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32주기 추도식에 참여해 ‘경영위기 타개’와 ‘사업 보국’ 등을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선대 회장님의 사업보국 이념을 기려 우리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며 “지금의 위기가 미래를 위한 기회가 되도록 기존의 틀과 한계를 깨고 지혜를 모아 잘 헤쳐나가자”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은 2019년을 내우외환과 함께했다. 국내에선 이 부회장의 국정 농단 관련 재판으로, 대외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등과 함께했다. 또 노조 와해 의혹으로 임원들이 법정 구속된 것과 관련, 이례적인 대국민 사과문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사실상 무노조 원칙을 폐기한 셈이다. 반성과 사회 가치에 부합하는 노사관계 형성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LG그룹 4세 경영 시대를 열고 있는 구광모 회장은 ‘디지털 전환’을 화두로 꺼내 들었다. 구 회장은 새해부터 임직원들과 디지털을 통해 소통하기로 했다. 디지털 시무식은 LG그룹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구 회장은 저성장 국면에 취임해 소탈과 실용주의라는 키워드를 대표했다. 그룹 임원인사서 그 단면이 여실히 드러났다. 구 회장은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적 인사를 단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그룹 체질 개선과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인사라는 분석도 있었다.

구 회장은 잔뼈가 굵은 원로 부회장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경영을 이끌어가면서도 파격 인사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LG그룹은 지난 12월14일 구자경 명예회장의 별세로 2020년은 ‘구광모 체제’가 더욱 공고하게 될 공산이 크다.

성장 동력 확보 그룹 총수 고심↑ 
각양각색 전략…새해부터 총력전

SK그룹에선 ‘행복 경영’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최태원 SK 회장은 2019년 한 해를 ‘행복 토크’로 마무리했다. 최 회장은 지난 12월19일 행복 토크 100회를 마무리 했다. 이동한 거리만 4만여km에 달한다. 1회 평균 2시간30분 정도의 시간을 들일 만큼 최 회장은 행복 경영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제주도서 열린 ‘2019년 CEO(최고경영자) 세미나’ 폐막연설서 “성공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해지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행복 경영의 가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행복전략을 언급하며 “행복을 추구할 때도 정교한 전략과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각 계열사가 수립 중인 행복전략의 고도화를 주문했다. 실제로 SK그룹의 연말 임원인사는 행복경영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조직의 재설계라고 알려졌다.

두산그룹은 일찌감치 연초 일정을 잡아뒀다. 두산그룹은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열리는 ‘CES 2020’에 참가한다. 두산의 CES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은 지향하는 새로운 미래상을 선보이고,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 널리 알리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또한 미래 성장의 해법을 전통 제조업과 정보기술 간 업종 경계가 무너지는 최첨단 기술로부터 찾겠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지난 10월 면세점 사업에 손을 떼면서 전자 소재와 신성장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점을 드러낸 바 있다.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분야는 과감히 정리하고, 신성장 동력으로 발판을 다듬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의 부진으로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내세운 셈이다.

GS그룹은 허창수 회장의 용퇴 이후 ‘디지털 혁신’을 맞게 됐다. 허 회장은 “지금은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리더와 함께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해 GS가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솟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도전하는 데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며 물러났다.

성장 동력
구비 마쳐

허태수 GS그룹 신임회장은 ‘디지털 혁신 전도사’ ‘트렌드 전도사’로 불린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자회사 GS랩스를 설립, 그룹 혁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 등 4차 산업과 관련된 최신 경향들을 그룹 전반에 소개하기도 했다. 허 회장은 GS홈쇼핑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실리콘밸리 혁신기업의 업무방식을 가장 먼저 적용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신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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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