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함께 떠나는 여행 ④충북 제천시

노래가 만든 전설, 제천 박달재

▲ 단풍이 곱게 물든 ‘울고 넘는 박달재’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 가을이 깊은 박달재엔 오늘도 어김없이 노래가 흐른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1절)’로 시작해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2절)’로 끝나는 노래.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재홍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다. 

1948년 발표된 이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영화와 악극으로도 만들어져, 박달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전국에 알렸다. 2005년에는 KBS-1TV 〈가요무대〉가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방송 횟수 1위곡’에 올랐다.

▲ 박달재 전설을 볼 수 있는 박달과 금봉 조각상

노랫말에 담긴 사랑 이야기는 조각으로 표현돼 ‘박달재조각공원’과 ‘박달재목각공원’ 곳곳에 있다. 금봉과 박달의 모습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각상 아래 박달재 이름의 유래를 새겨놨다. 때는 조선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다 박달재 아랫마을에 하룻밤 머물렀는데, 이곳에 사는 어여쁜 처녀 금봉과 첫눈에 반했다.

조각으로 표현

며칠간 사랑을 나눈 박달은 장원급제를 다짐하며 떠난 뒤 감감무소식. 절망한 금봉은 결국 숨을 거두고, 뒤늦게 달려온 박달은 금봉의 환영을 잡으려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박달재라 불렀다고 한다.

▲ 금봉의 환영을 좇는 박달

이야기를 읽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공원 곳곳의 작품도 달리 보인다. 박달의 손을 잡은 금봉, 한양에서 금봉을 그리는 박달, 금봉의 환영을 좇는 박달 등이 그대로 한 편의 스토리텔링이다. 박달재 이름의 유래를 새긴 조각상 옆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랫말을 담은 ‘박달재노래비’가 있다.


하지만 노래 첫머리에 등장하는 천등산은 박달재가 있는 산이 아니다. 박달재가 자리 잡은 산은 시랑산이고, 천등산은 제천과 충주를 잇는 산으로 그곳에는 다릿재가 있다.

▲ 박달과 금봉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

노랫말에 등장하는 금봉도 전설 속의 인물인지 확실치 않다. 오히려 노래가 전국적으로 히트한 뒤, 금봉을 주인공으로 삼은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19세기에 처음 등장한 아리랑이 일제강점기 동명의 영화가 크게 히트하며 전국으로 확산돼 여러 지방에서 아리랑이 생겨났고, 그 노랫말에 걸맞은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처럼 말이다(이는 문화재청의 공식 설명이기도 하다).

▲ 박달재목각공원에 박달과 금봉의 명복을 비는 사당이 있다.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 됐건, 울고 넘는 박달재 전설은 지금도 새로운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박달재조각공원 건너편에 있는 박달재목각공원은 불교 조각가 성각 스님이 새롭게 해석한 금봉과 박달의 모습으로 꾸몄다. 이곳에는 전설을 형상화한 조각뿐 아니라 박달과 금봉의 가묘, 이들의 명복을 빌고 영원한 사랑을 소원하는 사당도 있다.

▲ 조선 시대까지 산적이 출몰했다는 박달재 입구

박달재목각공원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정자 모양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박달재의 수려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이곳이라면 적은 숫자로 많은 적군을 물리칠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든다. 제천과 충주를 잇는 박달재는 옛날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1948년 발표된 공전의 히트 기록
박달재의 슬픈 사랑 이야기 담겨

지금이야 제법 넓은 도로가 뚫렸지만, 조선시대까지 산적이 출몰하는 험한 고갯길이었다. 1217년 고려 장군 김취려는 이곳에서 거란군 3만명을 맞았다. 그는 좁은 박달재 길목에 자리잡고 기다리다, 두 갈래로 나뉘어 올라오는 적군을 공격해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 박달재의 또 다른 명소가 된 목굴암 ▲ 성각 스님이 새긴 오백나한전

박달재목각공원은 성각 스님이 조성한 목굴암과 오백나한전으로 이어진다. 목굴암은 1000년 된 느티나무 안에 불상을 새겨 만든 법당이다. 느티나무는 어른 다섯 명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둘러싸는 굵기로,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 토굴이나 석굴 같은 느낌을 준다.


목굴암 옆에는 크기가 비슷한 느티나무에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오백나한과 삼존불을 새긴 ‘오백나한전’이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절로 탄성이 나오는 목굴암과 오백나한전은 박달재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됐다.

▲ 제천한방엑스포공원 내 한방생명과학관에는 다양한 체험 전시물이 있다.

제천은 약초의 고장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3대 약령시 중 하나인 제천은 지금도 대한민국 약초의 30%를 생산한다. 지난 2010년에 제천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를 개최하며 산학연 한방 산업 클러스터를 갖춘 한방 치료 관광도시가 됐다. 국제 행사가 열린 제천한방엑스포공원은 한의학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하는 공간이다.

걷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약초허브식물원, 다양한 체험 전시물이 돋보이는 한방생명과학관 등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즐거운 곳이다.

▲ 청풍호의 절경이 한눈에 보이는 청풍호반케이블카

‘청풍호반케이블카’는 2019년 봄에 개통했다. 봉황이 나는 모양을 닮은 비봉산 정상까지 2.3km 구간을 이동하는 동안 ‘내륙의 바다’ 청풍호를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최신형 캐빈은 안전하고 쾌적하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을 이용하면 더 짜릿하게 즐길 수 있다.

케이블카의 종점인 비봉산역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청풍호의 절경과 다양한 조형물이 찍으면 그림이 되는 포토존이다.
 

▲ 청풍문화재단지 입구인 팔영루

청풍호반케이블카와 이웃한 청풍문화재단지는 ‘청풍호반의 작은 민속촌’이다. 1978년 충주다목적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를 옮겨 조성했다. 청풍 한벽루(보물 528호)와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을 비롯해 팔영루, 금남루, 청풍향교 등 충북유형문화재와 각종 생활 유물 수천 점이 모여 청풍문화재단지를 이룬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의 중심이자 교통의 요지였던 중원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 능강솟대문화공간에서 바라본 청풍호

청풍호반케이블카

조금 색다른 볼거리를 원한다면,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멀지 않은 능강솟대문화공간이 좋다. 이곳은 솟대를 테마로 한 미술관으로, 고조선 때부터 마을 어귀에 세웠다는 솟대 400여점을 전시한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던 솟대에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 예약하면 솟대 만들기 체험(유료)도 가능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박달재→제천한방엑스포공원→청풍호반케이블카→청풍문화재단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박달재→제천한방엑스포공원→청풍호반케이블카→청풍문화재단지
둘째 날: 능강솟대문화공간→옥순봉→청풍호자드락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제천 문화관광 http://tour.jecheon.go.kr
- 제천한방엑스포공원 www.expopark.kr
- 청풍호반케이블카 www.cheongpungcablecar.com
- 능강솟대문화공간 http://blog.daum.net/hanguk73

문의 전화
- 박달재관광안내소 043)642-9398
- 제천한방엑스포공원 043)647-1011
- 청풍호반케이블카 043)643-7301
- 청풍문화재단지 043)647-7003
- 능강솟대문화공간 043)653-6160


자가운전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 JC→감곡톨게이트→가곡로 양성·제천 방면→북부로 충주·제천 방면→박달로 박달재 방면→박달재

숙박 정보
- 청풍리조트: 청풍면 청풍호로, 043)640-7000, www.cheong pungresort.co.kr
- ES제천리조트: 수산면 옥순봉로, 043)648-0480, http://clubes.co.kr/app/jecheon 
- 청풍게스트하우스: 제천시 의림대로6길, 070-8621-5886, www.jecheonguesthouse.com 

식당 정보
- 박달재휴게소(더덕구이): 제천시 북부로, 043)652-6502
- 청풍황금떡갈비(떡갈비): 청풍면 청풍호로, 043)647-6303
- 마이락(약채피자): 제천시 청전대로10길, 043)642-8887

주변 볼거리
청풍랜드, 청풍호관광모노레일, 의림지, 제천 배론성지, 월악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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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