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함께 떠나는 여행 ④충북 제천시

노래가 만든 전설, 제천 박달재

▲ 단풍이 곱게 물든 ‘울고 넘는 박달재’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 가을이 깊은 박달재엔 오늘도 어김없이 노래가 흐른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1절)’로 시작해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2절)’로 끝나는 노래.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재홍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다. 

1948년 발표된 이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영화와 악극으로도 만들어져, 박달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전국에 알렸다. 2005년에는 KBS-1TV 〈가요무대〉가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방송 횟수 1위곡’에 올랐다.

▲ 박달재 전설을 볼 수 있는 박달과 금봉 조각상

노랫말에 담긴 사랑 이야기는 조각으로 표현돼 ‘박달재조각공원’과 ‘박달재목각공원’ 곳곳에 있다. 금봉과 박달의 모습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각상 아래 박달재 이름의 유래를 새겨놨다. 때는 조선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다 박달재 아랫마을에 하룻밤 머물렀는데, 이곳에 사는 어여쁜 처녀 금봉과 첫눈에 반했다.

조각으로 표현

며칠간 사랑을 나눈 박달은 장원급제를 다짐하며 떠난 뒤 감감무소식. 절망한 금봉은 결국 숨을 거두고, 뒤늦게 달려온 박달은 금봉의 환영을 잡으려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박달재라 불렀다고 한다.

▲ 금봉의 환영을 좇는 박달

이야기를 읽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공원 곳곳의 작품도 달리 보인다. 박달의 손을 잡은 금봉, 한양에서 금봉을 그리는 박달, 금봉의 환영을 좇는 박달 등이 그대로 한 편의 스토리텔링이다. 박달재 이름의 유래를 새긴 조각상 옆에는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랫말을 담은 ‘박달재노래비’가 있다.


하지만 노래 첫머리에 등장하는 천등산은 박달재가 있는 산이 아니다. 박달재가 자리 잡은 산은 시랑산이고, 천등산은 제천과 충주를 잇는 산으로 그곳에는 다릿재가 있다.

▲ 박달과 금봉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

노랫말에 등장하는 금봉도 전설 속의 인물인지 확실치 않다. 오히려 노래가 전국적으로 히트한 뒤, 금봉을 주인공으로 삼은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19세기에 처음 등장한 아리랑이 일제강점기 동명의 영화가 크게 히트하며 전국으로 확산돼 여러 지방에서 아리랑이 생겨났고, 그 노랫말에 걸맞은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처럼 말이다(이는 문화재청의 공식 설명이기도 하다).

▲ 박달재목각공원에 박달과 금봉의 명복을 비는 사당이 있다.

역사적 사실이야 어찌 됐건, 울고 넘는 박달재 전설은 지금도 새로운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박달재조각공원 건너편에 있는 박달재목각공원은 불교 조각가 성각 스님이 새롭게 해석한 금봉과 박달의 모습으로 꾸몄다. 이곳에는 전설을 형상화한 조각뿐 아니라 박달과 금봉의 가묘, 이들의 명복을 빌고 영원한 사랑을 소원하는 사당도 있다.

▲ 조선 시대까지 산적이 출몰했다는 박달재 입구

박달재목각공원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정자 모양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박달재의 수려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이곳이라면 적은 숫자로 많은 적군을 물리칠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든다. 제천과 충주를 잇는 박달재는 옛날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1948년 발표된 공전의 히트 기록
박달재의 슬픈 사랑 이야기 담겨

지금이야 제법 넓은 도로가 뚫렸지만, 조선시대까지 산적이 출몰하는 험한 고갯길이었다. 1217년 고려 장군 김취려는 이곳에서 거란군 3만명을 맞았다. 그는 좁은 박달재 길목에 자리잡고 기다리다, 두 갈래로 나뉘어 올라오는 적군을 공격해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 박달재의 또 다른 명소가 된 목굴암 ▲ 성각 스님이 새긴 오백나한전

박달재목각공원은 성각 스님이 조성한 목굴암과 오백나한전으로 이어진다. 목굴암은 1000년 된 느티나무 안에 불상을 새겨 만든 법당이다. 느티나무는 어른 다섯 명이 손을 맞잡아야 겨우 둘러싸는 굵기로,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 토굴이나 석굴 같은 느낌을 준다.


목굴암 옆에는 크기가 비슷한 느티나무에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오백나한과 삼존불을 새긴 ‘오백나한전’이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절로 탄성이 나오는 목굴암과 오백나한전은 박달재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됐다.

▲ 제천한방엑스포공원 내 한방생명과학관에는 다양한 체험 전시물이 있다.

제천은 약초의 고장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3대 약령시 중 하나인 제천은 지금도 대한민국 약초의 30%를 생산한다. 지난 2010년에 제천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를 개최하며 산학연 한방 산업 클러스터를 갖춘 한방 치료 관광도시가 됐다. 국제 행사가 열린 제천한방엑스포공원은 한의학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하는 공간이다.

걷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약초허브식물원, 다양한 체험 전시물이 돋보이는 한방생명과학관 등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즐거운 곳이다.

▲ 청풍호의 절경이 한눈에 보이는 청풍호반케이블카

‘청풍호반케이블카’는 2019년 봄에 개통했다. 봉황이 나는 모양을 닮은 비봉산 정상까지 2.3km 구간을 이동하는 동안 ‘내륙의 바다’ 청풍호를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최신형 캐빈은 안전하고 쾌적하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을 이용하면 더 짜릿하게 즐길 수 있다.

케이블카의 종점인 비봉산역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청풍호의 절경과 다양한 조형물이 찍으면 그림이 되는 포토존이다.
 

▲ 청풍문화재단지 입구인 팔영루

청풍호반케이블카와 이웃한 청풍문화재단지는 ‘청풍호반의 작은 민속촌’이다. 1978년 충주다목적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를 옮겨 조성했다. 청풍 한벽루(보물 528호)와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을 비롯해 팔영루, 금남루, 청풍향교 등 충북유형문화재와 각종 생활 유물 수천 점이 모여 청풍문화재단지를 이룬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의 중심이자 교통의 요지였던 중원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 능강솟대문화공간에서 바라본 청풍호

청풍호반케이블카

조금 색다른 볼거리를 원한다면,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멀지 않은 능강솟대문화공간이 좋다. 이곳은 솟대를 테마로 한 미술관으로, 고조선 때부터 마을 어귀에 세웠다는 솟대 400여점을 전시한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던 솟대에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 예약하면 솟대 만들기 체험(유료)도 가능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박달재→제천한방엑스포공원→청풍호반케이블카→청풍문화재단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박달재→제천한방엑스포공원→청풍호반케이블카→청풍문화재단지
둘째 날: 능강솟대문화공간→옥순봉→청풍호자드락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제천 문화관광 http://tour.jecheon.go.kr
- 제천한방엑스포공원 www.expopark.kr
- 청풍호반케이블카 www.cheongpungcablecar.com
- 능강솟대문화공간 http://blog.daum.net/hanguk73

문의 전화
- 박달재관광안내소 043)642-9398
- 제천한방엑스포공원 043)647-1011
- 청풍호반케이블카 043)643-7301
- 청풍문화재단지 043)647-7003
- 능강솟대문화공간 043)653-6160


자가운전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 JC→감곡톨게이트→가곡로 양성·제천 방면→북부로 충주·제천 방면→박달로 박달재 방면→박달재

숙박 정보
- 청풍리조트: 청풍면 청풍호로, 043)640-7000, www.cheong pungresort.co.kr
- ES제천리조트: 수산면 옥순봉로, 043)648-0480, http://clubes.co.kr/app/jecheon 
- 청풍게스트하우스: 제천시 의림대로6길, 070-8621-5886, www.jecheonguesthouse.com 

식당 정보
- 박달재휴게소(더덕구이): 제천시 북부로, 043)652-6502
- 청풍황금떡갈비(떡갈비): 청풍면 청풍호로, 043)647-6303
- 마이락(약채피자): 제천시 청전대로10길, 043)642-8887

주변 볼거리
청풍랜드, 청풍호관광모노레일, 의림지, 제천 배론성지, 월악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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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