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로드숍 신화 풀스토리

재기 앞두고 발목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국내 로드숍 신화로 불리는 스킨푸드가 난관에 봉착했다. 조윤호 전 대표가 쇼핑몰 수익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회생절차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악재가 겹치는 형국이다.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스킨푸드는 국내외 상당한 브랜드 인지도를 자랑한다. 스킨푸드는 지난 2004년 설립된 국내 최초 ‘푸드 코스메틱 브랜드’다. 모기업 아이피어리스가 60여년간 축적한 화장품 제조기술 등을 토대로 제품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스킨푸드는 2010년 국내 로드숍 브랜드에서 매출 3위를 기록했다. 2012년에는 18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1세대 대표 뷰티 브랜드로 등극했다.

1세대 브랜드

스킨푸드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점포망을 구축했다. 국내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미국 등 해외시장까지 진출하면서 ‘K뷰티’ 열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스킨푸드는 곧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스킨푸드는 지난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적자를 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중국법인과 미국법인이 자본잠식에 빠졌다. 스킨푸드는 가맹점 제품 공급에도 차질을 빚는 등 경영난에 시달렸다.

실적 악화의 배경으로 ‘노 세일(No Sale)’ 정책의 실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와 중국의 사드(THAAD) 경제보복으로 인한 중국 관광객 감소 여파 등이 제기됐다. 결국 스킨푸드는 지난해 10월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스킨푸드는 회생절차 끝에 구조조정 전문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파인트리파트너스에 인수됐다. 서울회생법원 제3파산부(서경환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6월 파인트리파트너스의 스킨푸드와 아이피리어스에 대한 인수합병(M&A) 투자계약 체결을 허가했다. 스킨푸드와 아이피리어스의 인수대금은 각각 1776억원, 224억원으로 책정됐다.

스킨푸드 조윤호 배임 혐의 구속
쇼핑몰 수익금 50억 빼돌린 의혹

스킨푸드는 이후 경영정상화를 공식 발표했다. 스킨푸드는 지난 5월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스킨푸드는 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망했다는 소문으로 사재기와 쟁임을 동요해 금전적 부담을 안겨 드렸기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스킨푸드는 MOU체결을 통해 정상화됐다”며 “임직원 전원이 화장품 산업에 이바지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영정상화를 발표한 지 몇 개월 뒤, 조윤호 전 스킨푸드 대표가 구속됐다.

조 전 대표는 화장품 기업 조중민 전 피어리스 회장의 장남이다. 조 전 대표는 지난 2004년 ‘먹는 화장품’이라는 콘셉트로 스킨푸드를 선보이며 11년간 꾸준히 기업을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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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달 28일 검찰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등의 혐의로 청구한 조 전 대표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조 전 대표가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 전 대표는 쇼핑몰 수익금 수십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JTBC는 매각 수순을 밟게 된 스킨푸드가 가맹점들에게 재고가 없다며 제품을 제공하지 않은 채 인터넷서 판매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해당 온라인몰 판매 수익이 모두 조 전 대표 개인에게 돌아갔다고도 했다.


지난 1월18일 보도 내용에 따르면 스킨푸드 본사는 지난해 3월부터 재고가 없다며 물건을 주지 않았지만 인터넷서 제품을 팔고 있었다. 해당 공식 온라인몰은 조 전 대표의 것이었다. 직원들의 월급과 배송비 등 온라인 몰에 들어가는 운영비용은 스킨푸드 본사서 부담했다.

하지만 수익금은 모두 조 전 대표의 개인계좌로 입금됐다. 같은 방법으로 조 전 대표는 지난 2006년부터 지난 1월초까지 온라인몰 수익을 챙겼다. 최근 3년간 온라인몰 매출은 약 53억원이었다.

스킨푸드 가맹점주와 협력업체 등으로 구성된 ‘스킨푸드 채권자 단체’는 같은 달 조 전 대표를 횡령·배임 등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했다. 이들은 조 전 대표가 자사 온라인 쇼핑몰 수익금 50억여원을 부당하게 챙겼다고 주장했다. 서울서부지검은 해당 사건을 형사4부(부장검사 변필건)에 배당하고, 조 전 대표의 범죄 혐의를 수사했다.

회생절차 밟고 지난 5월 경영정상화
깜깜이 재무…감사보고서 의견거절

스킨푸드 가맹점주와 협력업체 대표 등은 지난 1월21일 스킨푸드 체권자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 조 전 대표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스킨푸드가 회생절차 개시에 접어들었을 때다.

대책위는 이날 서울역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킨푸드 조윤호 대표는 지금까지 사기 경영 정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후 사과하고 당장 경영권을 내려놓고 대표이사직을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조 전 대표가 스킨푸드의 온라인쇼핑몰 수익을 챙기는 횡령을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쇼핑몰 운영비를 스킨푸드가 부담하는 대신 쇼핑몰 수익을 조 대표가 가져갔다는 것이다. 대책위의 주장에 따르면 조 전 대표는 온라인쇼핑몰을 개인사업자로 등록, 9개월간 최대 53억원의 부당 이익을 취했다고 봤다.
 

대책위는 “스킨푸드 회생절차를 담당하는 서울회생법원은 조 대표를 즉시 채권자협의회 관리인서 해임하고 채권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후 대책위는 서울서부지방검찰청으로 이동해 조 전 대표를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스킨푸드는 지난해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을 정도로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 의견거절은 회계감사서 감사의견을 내는 데 있어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했을 때, 감사의견을 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장기업의 경우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한다. 스킨푸드는 비상장사다. 다만 비상장사라 하더라도 의견거절은 회사 존립에 의문을 품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후 경영은?

안세회계법인은 지난 4월8일 스킨푸드 연결감사보고서를 통해 의견거절을 냈다. 회계법인 측은 “스킨푸드로부터 경영자가 서명한 경영자 확인서와 연결재무상태표, 연결손익계산서, 연결자본변동표, 연결현금흐름표 및 주석을 포함한 재무제표와 관련된 회계기록 및 증빙자료를 제시받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회계감사기준서 요구하는 감사절차를 수행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감사를 받지 않은 스킨푸드의 별도 기준 매출액은 652억원이었다. 반면 197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지난해에 비해 매출액은 48.5% 줄었고, 손실은 50.69% 늘어난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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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