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철강업계 수십억 돈세탁 사건 전말

대기업 낀 비자금 리베이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철강업계서 수십억원의 사기사건이 발생해 이슈가 되고 있다. 피해자는 친형처럼 따르던 지인에게 수십억원의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한 회사의 대표에게 속아 철강재 구매대행을 시작하게 된 피해자. 알고 보니 망하기 일보 직전의 회사였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시점에 피해액은 이미 수십억원을 넘어섰다. 돌이킬 수 없는 배를 탄 두 사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텅 빈S사 자재창고

제보자 A씨는 철강재 수출입을 하는 작은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A씨는 사업이 풀리지 않던 2016년 8월경 B씨를 만나게 된다. B씨는 A씨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S사의 수입 구매대행을 권유했다. 톤당 7000원의 수수료를 주고 150일 후 결제해주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서 B씨는 “월급쟁이보다 더 안정적으로 돈을 벌수 있다. 연매출 50억을 만들어주겠다”고 장담했다.

믿었건만…
수십억원 피해

이후 두 사람은 일 주일에 1~2회의 만남을 지속하며 서로간의 신뢰를 쌓았다. B씨를 믿게 된 A씨는 2017년 하반기에 본인의 집을 담보로 맡기고 구매대행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100톤가량의 소규모 구매대행으로 일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B씨는 A씨에게 “담보를 키워야 수익이 많이 난다”며 담보 증액을 요구했다. 이미 B씨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A씨는 은행에 증액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B씨는 본인과 친한 모 은행 지점장 출신 C씨를 소개했다. A씨는 C씨의 도움으로 가까운 친척의 집을 담보로 B씨와 X씨가 지정해준 은행을 통해 한도 증액 승인을 받아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일이다.

얼마 후 B씨는 A씨에게 “다른 회사서 돈을 떼일 수도 있으니 매출채권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험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1월 A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S사가 망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S사는 지난해 12월31일 이미 지급불능상황이 돼있었다. B씨는 본인 회사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A씨의 법인으로 지난 4월 13억8000만원어치의 철강재를 중국서 수입하게 했던 것이다.

B씨는 지난 5월과 8월 A씨의 담보를 이용해 구매했던 12억원가량의 일본산 철근의 구매대금도 지불하지 않았다. A씨는 이 수입대금에 대한 결제금조차 받지 못해 은행에 담보로 넣은 자신의 집과 친척 소유의 집이 넘어갈 상황에 몰렸다. 

연매출 50억 장담했지만…뒤에선 파산 준비
수십억 피해자 속출 “외국 기업도 당했다”

B씨는 A씨와의 친분을 빌미로 개인적으로 돈을 빌리기도 했다. 지난해 7월, 8월 ‘한 달 후 상환’을 조건으로 각 1억원, 1억4000만원을 빌리고 그것마저 돌려주지 않았다. 이렇게 최 대표가 편취한 금액은 총 28억원 이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S사 직원 C씨와의 대화를 통해 밝혀졌다. C씨는 “S사가 지난해 6월부터 법정관리를 들어가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 4, 5곳에서 수많은 자문과 상담을 해왔다”고 말했다. 또 “S사는 지난해 5월 이미 T사에 38억원을 지급불능의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고 지난 9월, 10월에는 외국회사 2곳에 법정관리를 빌미로 15억원가량의 지급을 거절 통보했다”고 말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A씨에 따르면 두 외국회사의 경우 보험에 들어 있어 실제 피해는 크지 않았다. 타국의 회사, 그리고 이미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회사와 더 이상 엮여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외국회사는 이 일에서 손을 뗐다. A씨는 “B씨가 나에게 보험을 권유한 것도 외국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보험금이라도 타게 해서 입막음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S사는 지난 11월28일 법정관리 회생을 신청해 최종적으로 포괄적 금지명령이 서울회생법원에 의해 내려진 상태다. A씨는 “B씨는 실질적으로 파산을 원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회생을 시도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생 몰아주기?
발견되는 정황

A씨는 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A씨가 확인한 결과 2017년 12월부터 S사는 자체 재고(5000톤 이상)를 모두 동생 소유인 L사에 마이너스 마진으로 판매해왔고, L사는 이 재고를 팔아 수익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즉 L사가 돈을 벌게 만들고 S사는 고의로 매출을 줄여 부도를 내려고 했던 것이다.

이때 1만톤 이상의 T사 재고를 빼돌려 시장에 팔고 T사에는 재고를 분실했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여럿 있다. L사의 등기상 본점 소재지는 S사와 같은 영등포였다. 이후 2017년 10월 S사의 천안창고로 주소지를 이전하게 된다. 즉 L사는 S사의 창고역할을 했던 것. A씨가 확인한 결과 L사에는 직원이 없었고 S사의 직원들이 일을 도맡아 했다.

L사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대표는 동생 D, 그리고 S사의 차장이 등기임원으로 돼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대기업 D그룹과 S사와의 관계다. B씨는 D그룹의 E 과장을 통해 올해 초부터 S사의 철강재를 모두 D그룹에 일시 매도했다. 물론 이 물품은 A씨의 명의로 구매한 것이다. A씨에 따르면 이 과정서 S사는 A씨에게 물건을 넘겨받기 전, 허위로 서류를 작성해 자신들의 물건으로 속여 D그룹에 판매했다. 그에 대한 증거로 A씨가 물건을 넘겨주고 서류를 작성한 날짜가 11월1일, S사와 D그룹이 작성한 서류는 10월1일로 돼있다. 

D그룹은 이 물량을 다시 동생의 L사에 90일 안에 판매하기로 하는 ‘바이백 계약’(L사가 실 수요가들에게 선입금을 받아 D그룹에 필요한 만큼의 물량에 대해 원가를 들이지 않고 재구매해 판매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이 두 형제의 돈세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D그룹과 유착
감사 진행 중

심지어 이 계약서 D그룹은 시장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S사서 철근을 구매했고 L사에는 톤당 62만원으로 90일 동안의 고이자를 붙여서 되팔기로 돼있었기 때문에 D그룹으로서는 잃을 것이 하나도 없는 계약이었다. (현재 철근 시장가는 수입산의 경우 톤당 50만원이다.)

A씨가 이런 주장하는 이유는 또 있다. D그룹이 두 형제의 회사가 같은 회사임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D그룹과 최 대표를 이어줬던 E 과장은 S사에 대해 30억원 이상의 채권을 가지고 있던 회사서 S사 담당으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5월 D그룹으로 이직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S사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이렇게 S사는 33억원 이상을 D그룹으로부터 입금 받고 A씨에게 줘야 하는 돈조차 주지 않았다. 그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미궁에 쌓여있다. 

A씨는 “철강업계에 종사하는 그 누구도 현재 시황서 철근을 톤당 62만원, 그리고 고 이율까지 붙여 판매하는 계약이 불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대기업이 이런 식으로 부정하고 부당한 거래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D그룹 감사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해당 사안으로 감사가 진행 중이고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D그룹은 바이백 계약을 체결한 물건에 대해서는 거래를 중지시켜 놓은 상태다. D그룹 E 과장이 S사의 법정관리 직전에 전체 철강재를 일시에 사주고 범죄은닉 자금 35억원 이상을 만들어주는 이 부당하고 기이한 거래의 대가로 금전 8000여만원을 개인적으로 B씨로부터 받은 정황도 있다.

D그룹과 결탁해 세탁 의혹 “감사 진행 중”
‘배째라’ 대응에 전전긍긍…청원 올리기도

A씨가 이 모든 사기행각을 알아챈 것은 지난달 11일이다. B씨는 A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지난달 8일 점심식사 자리서 은행 결제일 11월26일 이후인 11월29일에 골프를 치러가자며 예약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서 백 대표는 11월 26일에 이상 없이 결제가 될 것으로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재 B씨는 본인은 가지고 있는 재산도 없으니 법대로 하라고 큰소리를 치는 상황이다. B씨가 거주하고 있는 주택은 그의 막내 동생 소유로 돼있었다. B씨가 법정관리신청을 한 11월28일까지도 본인의 급여는 연봉 2억5000만원, 월 급여 1800만원이 책정돼있었다고 한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B씨와의 거래를 통해 피해를 본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30억원 이상의 채권이 발생했고, B씨와 처음 거래를 시작할 때 팀장으로 있던 한 임원은 회사의 압박과 그에 따른 죄책감, 우울증으로 지난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이 모든 사실을 아는 B씨가 이전과 다름없이 매주 만나 웃으며 술을 함께 마시고 담보증액을 종용하고 은행까지 알선해가며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이 정말 소름끼친다”고 말했다. 

B씨는 A씨와 가깝게 지내던 내수시장을 잘 아는 사람마저 일부러 멀어지게 했다. A씨에게 험담을 늘어놓으며 자연스럽게 멀어지게끔 A씨의 눈과 귀를 모두 막았다. 이런 상황서 A씨에게 B씨는 하나의 종교처럼 마음으로 의지하는 대상이 됐고, A씨는 B씨가 이런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A씨는 “평생 아플 수밖에 없는 자식 이야기를 꺼내며 위로해주고 도와주겠다는 말에 속았던 내 자신이 한없이 한심하고 미울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

A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A씨의 청원은 현재 1698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A씨는 “철강업계에 이런 사악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제보를 결정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과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고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B씨가 변호사를 통해 전해온 답변

▲2018년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위한 상담과 지급불능상황임에도 2019년 A씨에게 철강재 수입을 요청한 사실이 있습니까?
= 2018년 7월 업황 및 고정비 문제로 선제적 차원서 대륙아주서 기업회생 관련 상담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기업회생에 들어갔을 경우 기존 거래처와의 거래관계 유지를 고려해 자구노력을 좀 더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아래 따로 진행은 하지 않았습니다. 또 2017년도 A씨의 회사에 대해 철강재 대행 당시에는 지급불능상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철강제 대행 역시 A씨 측에서 먼저 제의한 것입니다.

▲2019년 4월, 5월 A씨에게 수차례 수입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까?
= 2019년 3월부터 12월 현재까지 총 21억5413만2580원의 외상매입금을 지급해왔고, 현재 나머지 잔존 상거래채권은 14억2335만5686원입니다. 그 중 7억9000만원은 A씨 업체서 별도의 매출채권보험에 가입돼있음을 감안할 때(해당 매출채권의 보험료도 당사가 지출했음), 실제 A씨의 피해 금액은 이보다 적을 것으로 보이며, 또 A씨 요청에 따라 당사 보유 창고에 별도의 10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으므로 향후 창고가 원활히 매각되면 많은 부분 변제 가능하리라 사료됩니다.

▲2018년 ‘한달 후 상환’을 조건으로 1억원, 1억4000만원을 빌리고 돌려주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까?
= A씨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를 통해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있었는데 이자만 계속 나가자 당사에 요청해 일정 이자를 주고 대여를 받을 수 있겠냐고 문의했습니다. 당시 A씨는 연리 24%를 요청하기에 이를 거절했으나 최종 협의해 연리 12%의 이자로 정하고, 2019년 12월까지 지급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당사는 상환요청을 하려면 자금준비를 해야 하니 미리 한 달 전 정도에는 알려달라고 말한 것이 전부이며, A씨로부터 특별히 상환 요청을 받은 바도 없습니다. 

▲2018년 외국회사 2곳에 법정관리로 지급불능/거절 통보한 사실이 있습니까?
= 아닙니다. 외국회사 2곳에 지급불능을 통보한 것은 2019년 12월 3일 회생절차개시 전 보전처분이 내려진 이후입니다. 

▲A씨가 대행으로 수입한 철강재를 D 그룹에 매도하고 결제금액을 은닉한 사실이 있습니까?
= 없습니다. 회사의 은행 및 거래처 결제 자금과 운영자금으로 정상적으로 사용됐습니다. 

▲D 그룹서 D씨의 동생 회사로 바이백 계약을 체결해 재판매 한 사실이 있습니까?
= 예컨대 A업체가 물건을 보유하고 있지만, 당장 현금화가 필요하고, B업체는 해당 물건이 필요하지만, 그 물건을 당장은 일시에 구매할 정도로 충분한 현금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자금력이 되는 C업체는 B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시적으로 A업체로부터 위 물건을 매수한 뒤 추후 B업체가 대금을 마련하는 경우 이를 B업체에게 매각하는 일종의 구매대행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이에 따라 C업체는 B업체로부터 계약이행보증금 및 추후 이자와 수수료를 징수합니다) 따라서, 이는 실질적으로는 C업체가 B업체에게 일종의 금융을 제공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위와 같은 구매대행계약은 철강업계서 많이 존재하며, D 그룹과의 계약 역시 위와 같은 형태입니다. 따라서, 당사 대표의 동생이 운영하는 별도 법인(위의 예에서 B업체)서 D 그룹과 위와 같은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법정관리신청을 한 11월28일까지도 연봉 2억5000만원으로 책정, 월급여 1800만원을 수령한 사실이 있습니까?
= 2019년 11월 전에는 그와 같이 보수가 책정돼있었으나 11월 이후 및 회생절차 개시 신청 이후에는 무급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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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