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육상쟁 이후…’ 녹십자그룹 후계구도 막전막후

덕지덕지 봉합…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GC녹십자그룹은 작은아버지와 조카의 공동 경영체제다. 창업주의 타계로 그룹을 함께 일궈낸 작은아버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창업주의 두 아들은 현재 그룹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 대표다. 승계에 힘이 실리는 쪽은 후자다. 다만 여러 변수를 배제하기 어렵다. 왜일까?
 

▲ (사진 왼쪽부터)허일섭 녹십자 회장, 허은철 사장, 허용준 부사장

GC녹십자그룹(이하 녹십자그룹)은 국내 유수의 의약품 제조업체다. 주력 사업 분야는 혈액 제제와 백신 제제. 그룹의 모태는 지난 1967년 인수된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다. 사명은 1969년 ‘극동제약’으로 변경됐고, 2년 뒤 ‘녹십자’로 교체된 간판이 2004년까지 쓰였다. 이후 지주회사 전환에 따라 ‘녹십자홀딩스’로 개편됐고, 지난해 1월 ‘GC녹십자’로 최종 결정됐다.

혈액·백신
의약품 제조

녹십자그룹을 세운 인물은 고 허영섭 창업주다. 그는 부친(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으로부터 지분을 출자 받아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를 인수했다. 허 창업주는 자신의 동생과 함께 그룹을 키웠다. 허 창업주는 지난 2009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동생 허일섭 GC녹십자홀딩스 회장은 창업주의 뒤를 이었다.

창업주에겐 세 아들이 있다. 첫째는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 그는 지난 2005년부터 경영에 참여했지만 2년 만에 돌연 회사를 떠났다. 일각에선 부자 간 경영철학에 간극이 있었다는 말이 있었다.

둘째는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이다. 그는 지난 1998년 녹십자 경영기획실에 입사해 1년 동안 근무했다. 이후 목암생명과학연구소 기획관리실장에 이어 녹십자 R&D기획실 상무이사, 전무이사, 최고기술경영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허 사장은 지난 2015년 조순태 녹십자 대표이사와 함께 공동대표이사를 맡았고, 이듬해 녹십자 단독 대표가 됐다.


셋째는 허용준 GC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허 부사장은 2003년 녹십자홀딩스에 입사했다. 이후 경영기획실, 영업기획실을 거쳐 경영관리실장(부사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 2017년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다.

허 사장과 허 부사장은 허 회장 아래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앞서 회사를 떠난 첫째 허 전 부사장은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지분을 두고 모친과 갈등을 겪었다. 이른바 ‘녹십자 모자의 난’이다.

창업주 작고 후 숙부·조카 공동경영
그룹 수직계열화…핵심사 대표는 차남

당시 허 창업주는 녹십자홀딩스의 최대주주(12.37%)였다. 그의 유언장에 따르면 허 전 부사장의 부인과 허 사장, 허 부사장 등은 각 5만~5만5000주를 받게 됐다. 반면 허 전 부사장은 단 1주의 주식도 물려받을 수 없었다.

허 전 부사장은 모친에 의해 유언장이 조작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허 전 부사장은 “유언장이 작성될 때 부친은 뇌종양 수술 이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3년의 소송 끝에 허 전 부사장은 패소했다. 그는 유류분 청구 소송을 통해 약간의 지분을 확보했다. 허 전 부사장의 GC녹십자홀딩스 지분은 0.60%에 그친다.
 

녹십자그룹은 30개가 넘는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 중 6개사가 상장사다. ▲GC녹십자홀딩스 ▲GC녹십자 ▲GC녹십자엠에스 ▲GC녹십자랩셀 ▲GC녹십자웰빙 ▲GC녹십자셀 등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녹십자그룹은 GC녹십자홀딩스를 정점으로 수직 계열화를 구축했다.


GC녹십자홀딩스의 최대주주는 허 회장(11.88%)이다. 허 사장과 허 부사장은 각각 2.51%, 2.71%를 보유 중이다. 허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의 지분 합은 49.61%로 절반에 육박한다. 사실상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그룹 전체로 향하는 셈이다.

창업주 타계
지분 다툼

GC녹십자홀딩스는 GC녹십자의 최대주주(51.17%)다. 녹십자는 4개 상장사를 비롯해 여러 계열사들을 품고 있는 그룹 핵심사다. 결국 ‘오너 일가→GC녹십자홀딩스→GC녹십자→이하 계열사’ 등으로 이어지는 그림이다.

GC녹십자홀딩스는 GC녹십자의 최대주주면서 자체적으로 국내외 법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GC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이엠(100%/기계설비공사) ▲지씨웰페어(70.00%/기타 서비스업) ▲녹십자헬스케어(69.01%/의료서비스) ▲녹십자홍콩(77.35%/기타 서비스) 등의 최대주주다.

이 중 녹십자홍콩은 녹십자중국을 100% 지배하고 있다. 다시 녹십자중국은 중국 소재 5개 해외법인을 100% 지배한다. 녹십자 중국과 이들 5개 회사는 의약품 제조·판매를 맡고 있다. ‘녹십자홀딩스→녹십자홍콩→녹십자중국→이하 해외 법인’의 구조다.

그룹 핵심 계열사 GC녹십자는 4개 상장사의 최대주주다. ▲GC녹십자엠에스(42.07%/의약품 제조·판매) ▲GC녹십자랩셀(24.46%/혈액진단업) ▲GC녹십자웰빙(30.01%/의약품 제조) ▲GC녹십자셀(24.46%/의약품 제조·판매) 등이다.

GC녹십자는 이 외에도 ▲인백팜(92.55%/축산업) ▲녹십자지놈(51.85%/유전자 분석) ▲녹십자메디스(36.85%/의료기기) ▲메디진바이오(50.00%/혈장 연구)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허 사장은 GC녹십자를 이끌고 있다. 그룹 핵심 계열사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승계의 ‘무게 추’는 허 사장에게 쏠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단순 지분 구조’에 따라 후계 구도를 살펴보면 여러 가능성이 관측된다.

핵심사 녹십자
차남 단독대표

허 회장은 꾸준히 GC녹십자홀딩스의 지분을 매입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두 차례의 매입이 있었다.

가장 최근 매입 시기는 지난 9월이다. GC녹십자홀딩스는 그 달 20일 허 회장의 장내매입을 알렸다. 공시에 따르면 허 회장은 모두 네 차례 (11일·16일·18일·20일)에 걸쳐 보통주 2만주를 사들였다.

허 회장은 지난 5월과 6월에도 GC녹십자홀딩스 지분 4만7123주를 장내매입했다. 올해만 7만주 가까운 지분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는 창업주 별세 이후 매년 지분을 꾸준히 확보했다. 2010년 3만2000주를 사들인 뒤 2011년 무상증자 시기를 거쳤으며 이후로 ▲2012년 25만2380주 ▲2013년 14만500주 ▲2014년 10만주 ▲2015년 5만6주 ▲2016년 5만주 ▲2017년 7만3001주 ▲2018년 8만4877주 등을 확보했다.
 


허 회장의 지분 매입으로 허 사장·허 부사장 형제와 지분 격차는 더 벌어졌다. 허 사장과 허 부사장의 GC녹십자홀딩스 지분 합은 5.22%에 불과하다. 허 회장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GC녹십자홀딩스에 지분이 있다. 허 회장은 슬하에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허진성 녹십자바이오테라뷰틱스(GCBT) 상무다. 차남은 허진훈씨, 장녀는 허진영씨다.

허 상무는 0.65%를, 차남과 장녀는 각각 0.61%, 0.27%의 지분을 갖고 있다. 부인 또한 마찬가지다. 허 회장의 부인 최영아씨에겐 0.43%의 지분이 있다. 허 회장 일가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13.19%다.

숙부 일가 지분 창업주 형제보다 높아
공익법인, 차남 우호지분으로 통할까

특히 허 회장의 장남 허 상무는 지난해 GC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팀 부장서 상무로 승진했다. 허 상무는 지난 2014년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실 부장으로 입사한 바 있다. 그가 몸 담고 있는 녹십자바이오테라뷰틱스는 캐나다 법인으로 혈액 제제 공장을 운영한다. 혈액 제제는 녹십자그룹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미약한 지분이지만 GC녹십자홀딩스 최대주주이자 그룹 회장인 허 회장의 장남이라는 점, 녹십자그룹 핵심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의 상무로 승진한 점 등으로 후문은 계속될 전망이다.

반대로 허 사장의 승계가 공고하다는 분석도 있다. 창업주가 사재 출연한 공익법인이 배경으로 꼽힌다.

GC녹십자홀딩스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3개의 공익법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상당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차례로 ▲목암생명과학연구소(9.61%) ▲미래나눔재단(4.31%) ▲목암과학장학재단(2.06%) 등이다. 지분의 합은 15.98%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지난 1983년 설립된 국내 제1호 순수 민간연구법인이다. 미래나눔재단은 2009년 북한동포와 새터민과 같이 소외된 계층에게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목암과학장학재단은 2005년 과학도 육성을 위해 설립됐다.

앞서는 숙부
공익법인 역할?

이들은 모두 허영섭 창업주가 사재로 출연한 공익법인이다. 허 사장에게 우호지분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눈길이 가는 건 법인들마다 각각 ‘대표권 제한 규정’이 있다는 것. 이들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허 회장과 허 사장은 목암생명과학연구소의 이사로 등기돼있다. 하지만 대표권 제한 규정에 따라 ‘이사 허일섭 외에’ 대표권은 없다. 나머지 공익법인들도 같은 맥락이다. 미래나눔재단은 허 부사장이, 목암과학재단은 허 사장이 대표권 제한 규정에 따라 대표권을 쥐고 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녹십자 창업주는?

GC녹십자는 지난달 15일 경기도 용인시 본사서 창업주 고 허영섭 회장의 10주기 추모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GC녹십자 임직원들은 자율적으로 참배와 헌화에 참여, 국내 바이오산업의 발전과 필수의약품 국산화에 헌신했던 고인의 뜻을 기렸다.

특히 이번 10주기 추모식에는 ‘목암, 그를 다시 만나다’를 주제로 고인의 생전 활동을 담은 사진전과 육성을 들을 수 있는 공간 등이 마련돼 고인의 발자취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창업주는 생명과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서 ‘만들기 힘든, 그러나 꼭 있어야 할 의약품 개발’에 매진, 필수의약품의 국산화를 이룩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후 B형간염백신, 유행성출혈열백신, 수두백신, 유전자재조합 혈우병치료제 등이 개발됐고, 이는 GC녹십자가 혈액 분획 제제와 백신 분야서 세계적 제약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특히 지난 2009년 전 세계를 공포로 내몰았던 신종플루 예방백신을 개발하고 적시에 전량을 국내 공급해 우리나라의 백신 자주권을 확보하는 등 국가 보건안보에도 큰 공적을 남겼다.

창업주는 회사의 성장을 통해 거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며 환자중심주의도 실현했다. 지난 1990년 선천성 유전질환인 혈우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와 재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한국혈우재단’이 대표적이다.

앞서 창업주는 1983년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그는 “먼지가 쌓여도 이 땅에 쌓이게 해야 한다”며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다른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민간 연구재단을 설립해 국내 생명과학 연구기반 조성과 후학양성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재계와 업계 관계자들은 고인에 대해 “경제적인 득실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가치관이 강했던 분”이라며 “자신에게는 엄격하리만큼 검소했지만 공익을 위한 일에는 그 누구보다 아낌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창업주는 한국제약협회 회장, 사단법인 한독협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이사장,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 외에도 국민훈장 모란장,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독일정부로부터 십자공로훈장 수훈과 인촌상을 받는 주인공이 됐으며 올해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에 선정됐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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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