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육상쟁 이후…’ 녹십자그룹 후계구도 막전막후

덕지덕지 봉합…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GC녹십자그룹은 작은아버지와 조카의 공동 경영체제다. 창업주의 타계로 그룹을 함께 일궈낸 작은아버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창업주의 두 아들은 현재 그룹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 대표다. 승계에 힘이 실리는 쪽은 후자다. 다만 여러 변수를 배제하기 어렵다. 왜일까?
 

▲ (사진 왼쪽부터)허일섭 녹십자 회장, 허은철 사장, 허용준 부사장

GC녹십자그룹(이하 녹십자그룹)은 국내 유수의 의약품 제조업체다. 주력 사업 분야는 혈액 제제와 백신 제제. 그룹의 모태는 지난 1967년 인수된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다. 사명은 1969년 ‘극동제약’으로 변경됐고, 2년 뒤 ‘녹십자’로 교체된 간판이 2004년까지 쓰였다. 이후 지주회사 전환에 따라 ‘녹십자홀딩스’로 개편됐고, 지난해 1월 ‘GC녹십자’로 최종 결정됐다.

혈액·백신
의약품 제조

녹십자그룹을 세운 인물은 고 허영섭 창업주다. 그는 부친(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으로부터 지분을 출자 받아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를 인수했다. 허 창업주는 자신의 동생과 함께 그룹을 키웠다. 허 창업주는 지난 2009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동생 허일섭 GC녹십자홀딩스 회장은 창업주의 뒤를 이었다.

창업주에겐 세 아들이 있다. 첫째는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 그는 지난 2005년부터 경영에 참여했지만 2년 만에 돌연 회사를 떠났다. 일각에선 부자 간 경영철학에 간극이 있었다는 말이 있었다.

둘째는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이다. 그는 지난 1998년 녹십자 경영기획실에 입사해 1년 동안 근무했다. 이후 목암생명과학연구소 기획관리실장에 이어 녹십자 R&D기획실 상무이사, 전무이사, 최고기술경영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허 사장은 지난 2015년 조순태 녹십자 대표이사와 함께 공동대표이사를 맡았고, 이듬해 녹십자 단독 대표가 됐다.


셋째는 허용준 GC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허 부사장은 2003년 녹십자홀딩스에 입사했다. 이후 경영기획실, 영업기획실을 거쳐 경영관리실장(부사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 2017년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다.

허 사장과 허 부사장은 허 회장 아래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앞서 회사를 떠난 첫째 허 전 부사장은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지분을 두고 모친과 갈등을 겪었다. 이른바 ‘녹십자 모자의 난’이다.

창업주 작고 후 숙부·조카 공동경영
그룹 수직계열화…핵심사 대표는 차남

당시 허 창업주는 녹십자홀딩스의 최대주주(12.37%)였다. 그의 유언장에 따르면 허 전 부사장의 부인과 허 사장, 허 부사장 등은 각 5만~5만5000주를 받게 됐다. 반면 허 전 부사장은 단 1주의 주식도 물려받을 수 없었다.

허 전 부사장은 모친에 의해 유언장이 조작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허 전 부사장은 “유언장이 작성될 때 부친은 뇌종양 수술 이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3년의 소송 끝에 허 전 부사장은 패소했다. 그는 유류분 청구 소송을 통해 약간의 지분을 확보했다. 허 전 부사장의 GC녹십자홀딩스 지분은 0.60%에 그친다.
 

녹십자그룹은 30개가 넘는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 중 6개사가 상장사다. ▲GC녹십자홀딩스 ▲GC녹십자 ▲GC녹십자엠에스 ▲GC녹십자랩셀 ▲GC녹십자웰빙 ▲GC녹십자셀 등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녹십자그룹은 GC녹십자홀딩스를 정점으로 수직 계열화를 구축했다.


GC녹십자홀딩스의 최대주주는 허 회장(11.88%)이다. 허 사장과 허 부사장은 각각 2.51%, 2.71%를 보유 중이다. 허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의 지분 합은 49.61%로 절반에 육박한다. 사실상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그룹 전체로 향하는 셈이다.

창업주 타계
지분 다툼

GC녹십자홀딩스는 GC녹십자의 최대주주(51.17%)다. 녹십자는 4개 상장사를 비롯해 여러 계열사들을 품고 있는 그룹 핵심사다. 결국 ‘오너 일가→GC녹십자홀딩스→GC녹십자→이하 계열사’ 등으로 이어지는 그림이다.

GC녹십자홀딩스는 GC녹십자의 최대주주면서 자체적으로 국내외 법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GC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이엠(100%/기계설비공사) ▲지씨웰페어(70.00%/기타 서비스업) ▲녹십자헬스케어(69.01%/의료서비스) ▲녹십자홍콩(77.35%/기타 서비스) 등의 최대주주다.

이 중 녹십자홍콩은 녹십자중국을 100% 지배하고 있다. 다시 녹십자중국은 중국 소재 5개 해외법인을 100% 지배한다. 녹십자 중국과 이들 5개 회사는 의약품 제조·판매를 맡고 있다. ‘녹십자홀딩스→녹십자홍콩→녹십자중국→이하 해외 법인’의 구조다.

그룹 핵심 계열사 GC녹십자는 4개 상장사의 최대주주다. ▲GC녹십자엠에스(42.07%/의약품 제조·판매) ▲GC녹십자랩셀(24.46%/혈액진단업) ▲GC녹십자웰빙(30.01%/의약품 제조) ▲GC녹십자셀(24.46%/의약품 제조·판매) 등이다.

GC녹십자는 이 외에도 ▲인백팜(92.55%/축산업) ▲녹십자지놈(51.85%/유전자 분석) ▲녹십자메디스(36.85%/의료기기) ▲메디진바이오(50.00%/혈장 연구)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허 사장은 GC녹십자를 이끌고 있다. 그룹 핵심 계열사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승계의 ‘무게 추’는 허 사장에게 쏠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단순 지분 구조’에 따라 후계 구도를 살펴보면 여러 가능성이 관측된다.

핵심사 녹십자
차남 단독대표

허 회장은 꾸준히 GC녹십자홀딩스의 지분을 매입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두 차례의 매입이 있었다.

가장 최근 매입 시기는 지난 9월이다. GC녹십자홀딩스는 그 달 20일 허 회장의 장내매입을 알렸다. 공시에 따르면 허 회장은 모두 네 차례 (11일·16일·18일·20일)에 걸쳐 보통주 2만주를 사들였다.

허 회장은 지난 5월과 6월에도 GC녹십자홀딩스 지분 4만7123주를 장내매입했다. 올해만 7만주 가까운 지분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는 창업주 별세 이후 매년 지분을 꾸준히 확보했다. 2010년 3만2000주를 사들인 뒤 2011년 무상증자 시기를 거쳤으며 이후로 ▲2012년 25만2380주 ▲2013년 14만500주 ▲2014년 10만주 ▲2015년 5만6주 ▲2016년 5만주 ▲2017년 7만3001주 ▲2018년 8만4877주 등을 확보했다.
 


허 회장의 지분 매입으로 허 사장·허 부사장 형제와 지분 격차는 더 벌어졌다. 허 사장과 허 부사장의 GC녹십자홀딩스 지분 합은 5.22%에 불과하다. 허 회장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GC녹십자홀딩스에 지분이 있다. 허 회장은 슬하에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허진성 녹십자바이오테라뷰틱스(GCBT) 상무다. 차남은 허진훈씨, 장녀는 허진영씨다.

허 상무는 0.65%를, 차남과 장녀는 각각 0.61%, 0.27%의 지분을 갖고 있다. 부인 또한 마찬가지다. 허 회장의 부인 최영아씨에겐 0.43%의 지분이 있다. 허 회장 일가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13.19%다.

숙부 일가 지분 창업주 형제보다 높아
공익법인, 차남 우호지분으로 통할까

특히 허 회장의 장남 허 상무는 지난해 GC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팀 부장서 상무로 승진했다. 허 상무는 지난 2014년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실 부장으로 입사한 바 있다. 그가 몸 담고 있는 녹십자바이오테라뷰틱스는 캐나다 법인으로 혈액 제제 공장을 운영한다. 혈액 제제는 녹십자그룹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미약한 지분이지만 GC녹십자홀딩스 최대주주이자 그룹 회장인 허 회장의 장남이라는 점, 녹십자그룹 핵심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의 상무로 승진한 점 등으로 후문은 계속될 전망이다.

반대로 허 사장의 승계가 공고하다는 분석도 있다. 창업주가 사재 출연한 공익법인이 배경으로 꼽힌다.

GC녹십자홀딩스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3개의 공익법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상당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차례로 ▲목암생명과학연구소(9.61%) ▲미래나눔재단(4.31%) ▲목암과학장학재단(2.06%) 등이다. 지분의 합은 15.98%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지난 1983년 설립된 국내 제1호 순수 민간연구법인이다. 미래나눔재단은 2009년 북한동포와 새터민과 같이 소외된 계층에게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목암과학장학재단은 2005년 과학도 육성을 위해 설립됐다.

앞서는 숙부
공익법인 역할?

이들은 모두 허영섭 창업주가 사재로 출연한 공익법인이다. 허 사장에게 우호지분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눈길이 가는 건 법인들마다 각각 ‘대표권 제한 규정’이 있다는 것. 이들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허 회장과 허 사장은 목암생명과학연구소의 이사로 등기돼있다. 하지만 대표권 제한 규정에 따라 ‘이사 허일섭 외에’ 대표권은 없다. 나머지 공익법인들도 같은 맥락이다. 미래나눔재단은 허 부사장이, 목암과학재단은 허 사장이 대표권 제한 규정에 따라 대표권을 쥐고 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녹십자 창업주는?

GC녹십자는 지난달 15일 경기도 용인시 본사서 창업주 고 허영섭 회장의 10주기 추모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GC녹십자 임직원들은 자율적으로 참배와 헌화에 참여, 국내 바이오산업의 발전과 필수의약품 국산화에 헌신했던 고인의 뜻을 기렸다.

특히 이번 10주기 추모식에는 ‘목암, 그를 다시 만나다’를 주제로 고인의 생전 활동을 담은 사진전과 육성을 들을 수 있는 공간 등이 마련돼 고인의 발자취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창업주는 생명과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서 ‘만들기 힘든, 그러나 꼭 있어야 할 의약품 개발’에 매진, 필수의약품의 국산화를 이룩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후 B형간염백신, 유행성출혈열백신, 수두백신, 유전자재조합 혈우병치료제 등이 개발됐고, 이는 GC녹십자가 혈액 분획 제제와 백신 분야서 세계적 제약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특히 지난 2009년 전 세계를 공포로 내몰았던 신종플루 예방백신을 개발하고 적시에 전량을 국내 공급해 우리나라의 백신 자주권을 확보하는 등 국가 보건안보에도 큰 공적을 남겼다.

창업주는 회사의 성장을 통해 거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며 환자중심주의도 실현했다. 지난 1990년 선천성 유전질환인 혈우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와 재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한국혈우재단’이 대표적이다.

앞서 창업주는 1983년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그는 “먼지가 쌓여도 이 땅에 쌓이게 해야 한다”며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다른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민간 연구재단을 설립해 국내 생명과학 연구기반 조성과 후학양성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재계와 업계 관계자들은 고인에 대해 “경제적인 득실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가치관이 강했던 분”이라며 “자신에게는 엄격하리만큼 검소했지만 공익을 위한 일에는 그 누구보다 아낌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창업주는 한국제약협회 회장, 사단법인 한독협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이사장,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 외에도 국민훈장 모란장,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독일정부로부터 십자공로훈장 수훈과 인촌상을 받는 주인공이 됐으며 올해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에 선정됐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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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