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육상쟁 이후…’ 녹십자그룹 후계구도 막전막후

덕지덕지 봉합…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GC녹십자그룹은 작은아버지와 조카의 공동 경영체제다. 창업주의 타계로 그룹을 함께 일궈낸 작은아버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창업주의 두 아들은 현재 그룹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 대표다. 승계에 힘이 실리는 쪽은 후자다. 다만 여러 변수를 배제하기 어렵다. 왜일까?
 

▲ (사진 왼쪽부터)허일섭 녹십자 회장, 허은철 사장, 허용준 부사장

GC녹십자그룹(이하 녹십자그룹)은 국내 유수의 의약품 제조업체다. 주력 사업 분야는 혈액 제제와 백신 제제. 그룹의 모태는 지난 1967년 인수된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다. 사명은 1969년 ‘극동제약’으로 변경됐고, 2년 뒤 ‘녹십자’로 교체된 간판이 2004년까지 쓰였다. 이후 지주회사 전환에 따라 ‘녹십자홀딩스’로 개편됐고, 지난해 1월 ‘GC녹십자’로 최종 결정됐다.

혈액·백신
의약품 제조

녹십자그룹을 세운 인물은 고 허영섭 창업주다. 그는 부친(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으로부터 지분을 출자 받아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를 인수했다. 허 창업주는 자신의 동생과 함께 그룹을 키웠다. 허 창업주는 지난 2009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동생 허일섭 GC녹십자홀딩스 회장은 창업주의 뒤를 이었다.

창업주에겐 세 아들이 있다. 첫째는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 그는 지난 2005년부터 경영에 참여했지만 2년 만에 돌연 회사를 떠났다. 일각에선 부자 간 경영철학에 간극이 있었다는 말이 있었다.

둘째는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이다. 그는 지난 1998년 녹십자 경영기획실에 입사해 1년 동안 근무했다. 이후 목암생명과학연구소 기획관리실장에 이어 녹십자 R&D기획실 상무이사, 전무이사, 최고기술경영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허 사장은 지난 2015년 조순태 녹십자 대표이사와 함께 공동대표이사를 맡았고, 이듬해 녹십자 단독 대표가 됐다.


셋째는 허용준 GC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허 부사장은 2003년 녹십자홀딩스에 입사했다. 이후 경영기획실, 영업기획실을 거쳐 경영관리실장(부사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 2017년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다.

허 사장과 허 부사장은 허 회장 아래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앞서 회사를 떠난 첫째 허 전 부사장은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지분을 두고 모친과 갈등을 겪었다. 이른바 ‘녹십자 모자의 난’이다.

창업주 작고 후 숙부·조카 공동경영
그룹 수직계열화…핵심사 대표는 차남

당시 허 창업주는 녹십자홀딩스의 최대주주(12.37%)였다. 그의 유언장에 따르면 허 전 부사장의 부인과 허 사장, 허 부사장 등은 각 5만~5만5000주를 받게 됐다. 반면 허 전 부사장은 단 1주의 주식도 물려받을 수 없었다.

허 전 부사장은 모친에 의해 유언장이 조작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허 전 부사장은 “유언장이 작성될 때 부친은 뇌종양 수술 이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3년의 소송 끝에 허 전 부사장은 패소했다. 그는 유류분 청구 소송을 통해 약간의 지분을 확보했다. 허 전 부사장의 GC녹십자홀딩스 지분은 0.60%에 그친다.
 

녹십자그룹은 30개가 넘는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 중 6개사가 상장사다. ▲GC녹십자홀딩스 ▲GC녹십자 ▲GC녹십자엠에스 ▲GC녹십자랩셀 ▲GC녹십자웰빙 ▲GC녹십자셀 등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녹십자그룹은 GC녹십자홀딩스를 정점으로 수직 계열화를 구축했다.


GC녹십자홀딩스의 최대주주는 허 회장(11.88%)이다. 허 사장과 허 부사장은 각각 2.51%, 2.71%를 보유 중이다. 허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의 지분 합은 49.61%로 절반에 육박한다. 사실상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그룹 전체로 향하는 셈이다.

창업주 타계
지분 다툼

GC녹십자홀딩스는 GC녹십자의 최대주주(51.17%)다. 녹십자는 4개 상장사를 비롯해 여러 계열사들을 품고 있는 그룹 핵심사다. 결국 ‘오너 일가→GC녹십자홀딩스→GC녹십자→이하 계열사’ 등으로 이어지는 그림이다.

GC녹십자홀딩스는 GC녹십자의 최대주주면서 자체적으로 국내외 법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GC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이엠(100%/기계설비공사) ▲지씨웰페어(70.00%/기타 서비스업) ▲녹십자헬스케어(69.01%/의료서비스) ▲녹십자홍콩(77.35%/기타 서비스) 등의 최대주주다.

이 중 녹십자홍콩은 녹십자중국을 100% 지배하고 있다. 다시 녹십자중국은 중국 소재 5개 해외법인을 100% 지배한다. 녹십자 중국과 이들 5개 회사는 의약품 제조·판매를 맡고 있다. ‘녹십자홀딩스→녹십자홍콩→녹십자중국→이하 해외 법인’의 구조다.

그룹 핵심 계열사 GC녹십자는 4개 상장사의 최대주주다. ▲GC녹십자엠에스(42.07%/의약품 제조·판매) ▲GC녹십자랩셀(24.46%/혈액진단업) ▲GC녹십자웰빙(30.01%/의약품 제조) ▲GC녹십자셀(24.46%/의약품 제조·판매) 등이다.

GC녹십자는 이 외에도 ▲인백팜(92.55%/축산업) ▲녹십자지놈(51.85%/유전자 분석) ▲녹십자메디스(36.85%/의료기기) ▲메디진바이오(50.00%/혈장 연구)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허 사장은 GC녹십자를 이끌고 있다. 그룹 핵심 계열사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승계의 ‘무게 추’는 허 사장에게 쏠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단순 지분 구조’에 따라 후계 구도를 살펴보면 여러 가능성이 관측된다.

핵심사 녹십자
차남 단독대표

허 회장은 꾸준히 GC녹십자홀딩스의 지분을 매입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두 차례의 매입이 있었다.

가장 최근 매입 시기는 지난 9월이다. GC녹십자홀딩스는 그 달 20일 허 회장의 장내매입을 알렸다. 공시에 따르면 허 회장은 모두 네 차례 (11일·16일·18일·20일)에 걸쳐 보통주 2만주를 사들였다.

허 회장은 지난 5월과 6월에도 GC녹십자홀딩스 지분 4만7123주를 장내매입했다. 올해만 7만주 가까운 지분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는 창업주 별세 이후 매년 지분을 꾸준히 확보했다. 2010년 3만2000주를 사들인 뒤 2011년 무상증자 시기를 거쳤으며 이후로 ▲2012년 25만2380주 ▲2013년 14만500주 ▲2014년 10만주 ▲2015년 5만6주 ▲2016년 5만주 ▲2017년 7만3001주 ▲2018년 8만4877주 등을 확보했다.
 


허 회장의 지분 매입으로 허 사장·허 부사장 형제와 지분 격차는 더 벌어졌다. 허 사장과 허 부사장의 GC녹십자홀딩스 지분 합은 5.22%에 불과하다. 허 회장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GC녹십자홀딩스에 지분이 있다. 허 회장은 슬하에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장남은 허진성 녹십자바이오테라뷰틱스(GCBT) 상무다. 차남은 허진훈씨, 장녀는 허진영씨다.

허 상무는 0.65%를, 차남과 장녀는 각각 0.61%, 0.27%의 지분을 갖고 있다. 부인 또한 마찬가지다. 허 회장의 부인 최영아씨에겐 0.43%의 지분이 있다. 허 회장 일가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13.19%다.

숙부 일가 지분 창업주 형제보다 높아
공익법인, 차남 우호지분으로 통할까

특히 허 회장의 장남 허 상무는 지난해 GC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팀 부장서 상무로 승진했다. 허 상무는 지난 2014년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실 부장으로 입사한 바 있다. 그가 몸 담고 있는 녹십자바이오테라뷰틱스는 캐나다 법인으로 혈액 제제 공장을 운영한다. 혈액 제제는 녹십자그룹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미약한 지분이지만 GC녹십자홀딩스 최대주주이자 그룹 회장인 허 회장의 장남이라는 점, 녹십자그룹 핵심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의 상무로 승진한 점 등으로 후문은 계속될 전망이다.

반대로 허 사장의 승계가 공고하다는 분석도 있다. 창업주가 사재 출연한 공익법인이 배경으로 꼽힌다.

GC녹십자홀딩스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3개의 공익법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상당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차례로 ▲목암생명과학연구소(9.61%) ▲미래나눔재단(4.31%) ▲목암과학장학재단(2.06%) 등이다. 지분의 합은 15.98%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지난 1983년 설립된 국내 제1호 순수 민간연구법인이다. 미래나눔재단은 2009년 북한동포와 새터민과 같이 소외된 계층에게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목암과학장학재단은 2005년 과학도 육성을 위해 설립됐다.

앞서는 숙부
공익법인 역할?

이들은 모두 허영섭 창업주가 사재로 출연한 공익법인이다. 허 사장에게 우호지분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눈길이 가는 건 법인들마다 각각 ‘대표권 제한 규정’이 있다는 것. 이들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허 회장과 허 사장은 목암생명과학연구소의 이사로 등기돼있다. 하지만 대표권 제한 규정에 따라 ‘이사 허일섭 외에’ 대표권은 없다. 나머지 공익법인들도 같은 맥락이다. 미래나눔재단은 허 부사장이, 목암과학재단은 허 사장이 대표권 제한 규정에 따라 대표권을 쥐고 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녹십자 창업주는?

GC녹십자는 지난달 15일 경기도 용인시 본사서 창업주 고 허영섭 회장의 10주기 추모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GC녹십자 임직원들은 자율적으로 참배와 헌화에 참여, 국내 바이오산업의 발전과 필수의약품 국산화에 헌신했던 고인의 뜻을 기렸다.

특히 이번 10주기 추모식에는 ‘목암, 그를 다시 만나다’를 주제로 고인의 생전 활동을 담은 사진전과 육성을 들을 수 있는 공간 등이 마련돼 고인의 발자취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창업주는 생명과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서 ‘만들기 힘든, 그러나 꼭 있어야 할 의약품 개발’에 매진, 필수의약품의 국산화를 이룩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후 B형간염백신, 유행성출혈열백신, 수두백신, 유전자재조합 혈우병치료제 등이 개발됐고, 이는 GC녹십자가 혈액 분획 제제와 백신 분야서 세계적 제약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특히 지난 2009년 전 세계를 공포로 내몰았던 신종플루 예방백신을 개발하고 적시에 전량을 국내 공급해 우리나라의 백신 자주권을 확보하는 등 국가 보건안보에도 큰 공적을 남겼다.

창업주는 회사의 성장을 통해 거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며 환자중심주의도 실현했다. 지난 1990년 선천성 유전질환인 혈우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와 재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한국혈우재단’이 대표적이다.

앞서 창업주는 1983년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그는 “먼지가 쌓여도 이 땅에 쌓이게 해야 한다”며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다른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민간 연구재단을 설립해 국내 생명과학 연구기반 조성과 후학양성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재계와 업계 관계자들은 고인에 대해 “경제적인 득실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가치관이 강했던 분”이라며 “자신에게는 엄격하리만큼 검소했지만 공익을 위한 일에는 그 누구보다 아낌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창업주는 한국제약협회 회장, 사단법인 한독협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이사장,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 외에도 국민훈장 모란장,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독일정부로부터 십자공로훈장 수훈과 인촌상을 받는 주인공이 됐으며 올해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에 선정됐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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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