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4대 대형사건 전조의 비밀

조국 나비효과 청와대 조를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모든 일에는 전조현상이라는 미리 나타나는 조짐이 있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 미세균열이 먼저 생기듯, 언뜻 보기엔 갑작스레 일어나는 사건에도 몇 차례의 전조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한국사회를 뒤흔든 대형사건 역시 시작은 작은 경고음이었다.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1931년 펴낸 책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을 통해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통계적 법칙을 밝혔다. 당시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 통제 부서에 근무 중이었다.

하인리히 법칙
사회적 사건도

업무 과정서 많은 사고를 접한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해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가 29, 부상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다는 사실이다.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하인리히 법칙은 큰 사고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대형사고는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나 재난 또는 사회적·경제적·개인적 위기나 실패에도 적용된다.

실제 국내외를 뒤흔든 이슈의 시발점을 되짚어 보면 작은 사건인 경우가 많다. 최근 국제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홍콩 시위는 살인 사건서 시작됐다. 지난해 2월 당시 대만으로 여행을 떠난 홍콩인 남성이 함께 여행하던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대만에 유기한 채 홍콩으로 도피 귀국하는 일이 있었다.


홍콩경찰은 그를 체포했지만 처벌에 어려움을 겪었다. 홍콩은 자국의 영역 내에서만 국가의 입법, 사법 집행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범인은 여자친구의 돈을 절도한 죄와 돈을 세탁한 혐의에 대해서만 2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항구로 운반 중인 세월호 잔해 ⓒ사진공동취재단

홍콩정부는 그를 대만으로 인도하길 원했지만, 홍콩과 대만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홍콩정부는 지난 43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홍콩시민들은 송환법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고 홍콩 시위는 대규모로 확산됐다.

버닝썬 게이트= 2019년이 마무리돼가는 시점에 올 한 해를 달군 최고의 이슈를 꼽으라면 ‘버닝썬 게이트’일 것이다. 강남의 한 클럽에 불과했던 버닝썬은 온 사회를 뒤흔드는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 과정서 정·재계는 물론 연예계, 수사기관 등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 마약, 물뽕, 성매매, 성폭력, 탈세, 경찰유착, 불법촬영 등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서 여성들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던 연예인들은 철창 신세를 졌고, 연예기획사 대표는 검찰에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됐다. 재벌 3세와 연예인들의 마약 투약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과정서 경찰이 뒤를 봐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 등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대형사고 뒤의 사소한 실수
감추고 덮어도 언젠가 ‘펑’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김상교의 신고였다. 클럽 직원이 손님을 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씨는 체포 과정서 경찰이 자신을 폭행했고 모욕성 발언을 퍼부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주장은 처음엔 관심을 받지 못했다. 경찰은 되레 김씨가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모든 상황은 버닝썬 클럽 주변에 있던 CCTV가 공개된 후에 반전됐다. CCTV에는 클럽 가드에게 끌려나온 김씨가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담겼다. 김씨의 주장 쪽으로 여론이 기울자 경찰과 클럽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버닝썬 측은 김씨가 여성을 성추행한다는 민원이 들어와 끌어낸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여론이 들끓으면서 사태가 커지기 시작했다. 일부 여성들이 클럽 내에서 겪었던 일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폭로하기 시작했다. 데이트 강간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뽕이 등장했고 마약류 유통 의혹이 불거졌다. 이 과정서 아이돌 빅뱅의 전 멤버 승리가 사건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후 버닝썬 사태는 게이트형태로 비화돼 온 사회를 뒤흔들었다.
 

▲ ‘버닝썬 사태’의 중심에 섰던 가수 빅뱅 멤버 승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2017310일 오전 11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한 주문은 국정 농단 사태의 끝이자 시작이었다. 201610월부터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우리 사회에 큰 상흔을 남긴 국정 농단 사태는 20167월 한 언론사의 보도로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폭발력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은 같은해 10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PC를 입수, 보도하면서다. 태블릿PC는 사태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작용했다. 보도 이후 국민들은 비선 실세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됐다는 사실을 인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국정 농단 사태는 나비효과를 제대로 실증했다.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서 기후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와 작은 사건이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국정 농단 사태서 나비의 날개짓에 해당하는 장면은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0·26사태로 세상을 떠난 이후 18년 동안 칩거했다. 그러다 1997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통령 후보를 지지선언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당선돼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폭행 건이
게이트로

그로부터 또 10년 뒤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서 이명박 전 대통령하고 맞붙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서 고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최태민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퍼스트레이드 대행 시절 위로와 격려를 보낸 분이라고 답했다. 이날의 답변은 10년 뒤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2차 청문회’를 통해 다시 언급된다.

국정 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비선 실세는 최순실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보다 앞선 201411월 한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다. 비선 실세는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가 아니라 배후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민간인을 뜻한다. 당시 최순실의 남편인 정윤회가 박근혜정부의 비선 실세로 떠올랐다.

언론은 청와대 특정인물들이 정씨에게 청와대 문건 몇몇을 무단으로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이다. 이 파동은 청와대 공직기강팀의 기강해이로 결론나면서 조용히 묻혔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관비서관실서 이 문건을 조사했던 박관천 전 경정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때 박 전 경정은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폭로했다. 이 뚱딴지 같은 말은 2년 뒤에 사실로 드러났다.
 

정윤회 문건이 조용하게 처리되면서 가라앉은 진실은 201510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100억원대 도박 혐의로 구속되면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국정 농단 사태에 등장한 새로운 나비의 날갯짓이다.

정 대표의 해외 불법 도박 사건의 변호를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맡았는데, 최 변호사가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로비를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 민정수석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불거졌지만 박근혜정부는 이를 감싸기에 급급했다.


당시에는
아니었지만…

이후 20169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됐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재학생과 졸업생 할 것 없이 집단시위에 나섰다. 입시에 민감한 한국 사회는 정유라의 부정입학 문제를 두고 끓어올랐다.

법조계, 대학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불거져 나온 의혹에 여전히 반신반의하던 국민들은 20161024JTBC의 태블릿PC 보도 이후 폭발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순실의 존재를 인정했다. 201610292만명(주최측 추산)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누적인원 1300만명이라는 거대한 횃불로 변했다.

세월호 참사= 2014416일 인천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서 침몰했다. 전체 탑승자수 476명 중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됐다. 탑승자들 중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대거 포함돼있었다. 1718세 어린 학생들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세월호 트라우마를 남겼다.
 

▲ 박근혜 탄핵 논의 중인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사고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침몰 원인을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201410월 대검찰청은 무리한 구조 변경과 과적으로 복원성이 약화된 상태서 조타 미숙으로 세월호가 한쪽으로 기울었고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화물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침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54월 광주고법은 조타미숙이 아닌 기관 고장으로 세월호가 침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제대로 된 결론 없이 강제 해산됐다. 그리고 출범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두 가지 결론을 내놨다. 기계 결함 등의 이유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내인설, 충돌 등 외력에 의한 침몰 가능성 등을 추가로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설 등이다.


작은 사건서 시작된 일
정권 위협하는 칼 되기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박정부 시절의 규제 완화가 하나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청해진해운이 2012년 선령 18년의 일본 퇴역 여객선을 도입해 세월호로 취항시킬 수 있던 배경에 이명박정부 시절 규제 완화가 있었다는 것.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지난 2008년 이명박정부서 고가의 선박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명목 아래 해운법 시행규칙에 20년으로 돼있던 선령 제한을 30년까지 완화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985년까지 20년으로 묶여 있던 여객선 선령은 1991년 엄격한 조건을 달고 5년 범위 내에 연장이 가능하도록 완화됐다가 200930년까지 늘어났다. 세월호의 경우 청해진해운이 사들인 시점에는 이미 18년 동안 운행한 상태였다. 완화된 해운법이 아니었다면 청해진해운서 세월호를 구입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조 의원은 노후된 선박은 고장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이 높은 만큼 선령 제한을 완화하면 해상 사고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실제 세월호는 사고 전에도 조타기, 레이더 등의 잦은 고장 등 사고 선박의 기계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국 논란=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리고 9월 조 전 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조 전 장관과 관련한 논란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특히 딸, 부인, 조카 등 친인척이 연루된 의혹이 정치권은 물론 교육계까지 달궜다.

조 전 장관의 딸이 단국대 2주 인턴 이후 논문 1저자로 등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시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정시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후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서 정시 확대를 언급하면서 교육부와 대학은 발 빠르게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조 전 장관 딸의 논란으로 대학 입시제도가 변화한 셈이다.

개인 논란이
청와대까지?

이제 검찰의 칼끝은 조 전 장관의 측근이나 개인 비리가 아닌 문재인정부 자체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일 당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청와대로서는 바람 잘 날이 없는 상태다. 문제는 4개월 전 조 전 장관의 임명, 앞서 10여년 전 조 전 장관 딸 논문 저자 등재로 시작된 이 사태의 끝이 어디일지다. 일각에선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조국 논란이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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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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