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4대 대형사건 전조의 비밀

조국 나비효과 청와대 조를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모든 일에는 전조현상이라는 미리 나타나는 조짐이 있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 미세균열이 먼저 생기듯, 언뜻 보기엔 갑작스레 일어나는 사건에도 몇 차례의 전조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한국사회를 뒤흔든 대형사건 역시 시작은 작은 경고음이었다.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1931년 펴낸 책 <산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을 통해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통계적 법칙을 밝혔다. 당시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 통제 부서에 근무 중이었다.

하인리히 법칙
사회적 사건도

업무 과정서 많은 사고를 접한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해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가 29, 부상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다는 사실이다.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하인리히 법칙은 큰 사고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다시 말하면 대형사고는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각종 사고나 재난 또는 사회적·경제적·개인적 위기나 실패에도 적용된다.

실제 국내외를 뒤흔든 이슈의 시발점을 되짚어 보면 작은 사건인 경우가 많다. 최근 국제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홍콩 시위는 살인 사건서 시작됐다. 지난해 2월 당시 대만으로 여행을 떠난 홍콩인 남성이 함께 여행하던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대만에 유기한 채 홍콩으로 도피 귀국하는 일이 있었다.


홍콩경찰은 그를 체포했지만 처벌에 어려움을 겪었다. 홍콩은 자국의 영역 내에서만 국가의 입법, 사법 집행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범인은 여자친구의 돈을 절도한 죄와 돈을 세탁한 혐의에 대해서만 2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항구로 운반 중인 세월호 잔해 ⓒ사진공동취재단

홍콩정부는 그를 대만으로 인도하길 원했지만, 홍콩과 대만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홍콩정부는 지난 43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홍콩시민들은 송환법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고 홍콩 시위는 대규모로 확산됐다.

버닝썬 게이트= 2019년이 마무리돼가는 시점에 올 한 해를 달군 최고의 이슈를 꼽으라면 ‘버닝썬 게이트’일 것이다. 강남의 한 클럽에 불과했던 버닝썬은 온 사회를 뒤흔드는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 과정서 정·재계는 물론 연예계, 수사기관 등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 마약, 물뽕, 성매매, 성폭력, 탈세, 경찰유착, 불법촬영 등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서 여성들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던 연예인들은 철창 신세를 졌고, 연예기획사 대표는 검찰에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됐다. 재벌 3세와 연예인들의 마약 투약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과정서 경찰이 뒤를 봐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 등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대형사고 뒤의 사소한 실수
감추고 덮어도 언젠가 ‘펑’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김상교의 신고였다. 클럽 직원이 손님을 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씨는 체포 과정서 경찰이 자신을 폭행했고 모욕성 발언을 퍼부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주장은 처음엔 관심을 받지 못했다. 경찰은 되레 김씨가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모든 상황은 버닝썬 클럽 주변에 있던 CCTV가 공개된 후에 반전됐다. CCTV에는 클럽 가드에게 끌려나온 김씨가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담겼다. 김씨의 주장 쪽으로 여론이 기울자 경찰과 클럽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버닝썬 측은 김씨가 여성을 성추행한다는 민원이 들어와 끌어낸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여론이 들끓으면서 사태가 커지기 시작했다. 일부 여성들이 클럽 내에서 겪었던 일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폭로하기 시작했다. 데이트 강간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뽕이 등장했고 마약류 유통 의혹이 불거졌다. 이 과정서 아이돌 빅뱅의 전 멤버 승리가 사건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후 버닝썬 사태는 게이트형태로 비화돼 온 사회를 뒤흔들었다.
 

▲ ‘버닝썬 사태’의 중심에 섰던 가수 빅뱅 멤버 승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2017310일 오전 11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한 주문은 국정 농단 사태의 끝이자 시작이었다. 201610월부터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우리 사회에 큰 상흔을 남긴 국정 농단 사태는 20167월 한 언론사의 보도로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폭발력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은 같은해 10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PC를 입수, 보도하면서다. 태블릿PC는 사태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작용했다. 보도 이후 국민들은 비선 실세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됐다는 사실을 인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국정 농단 사태는 나비효과를 제대로 실증했다.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서 기후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와 작은 사건이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국정 농단 사태서 나비의 날개짓에 해당하는 장면은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0·26사태로 세상을 떠난 이후 18년 동안 칩거했다. 그러다 1997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통령 후보를 지지선언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당선돼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폭행 건이
게이트로

그로부터 또 10년 뒤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서 이명박 전 대통령하고 맞붙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서 고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최태민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퍼스트레이드 대행 시절 위로와 격려를 보낸 분이라고 답했다. 이날의 답변은 10년 뒤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2차 청문회’를 통해 다시 언급된다.

국정 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비선 실세는 최순실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보다 앞선 201411월 한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다. 비선 실세는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가 아니라 배후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민간인을 뜻한다. 당시 최순실의 남편인 정윤회가 박근혜정부의 비선 실세로 떠올랐다.

언론은 청와대 특정인물들이 정씨에게 청와대 문건 몇몇을 무단으로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이다. 이 파동은 청와대 공직기강팀의 기강해이로 결론나면서 조용히 묻혔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관비서관실서 이 문건을 조사했던 박관천 전 경정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때 박 전 경정은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폭로했다. 이 뚱딴지 같은 말은 2년 뒤에 사실로 드러났다.
 

정윤회 문건이 조용하게 처리되면서 가라앉은 진실은 201510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100억원대 도박 혐의로 구속되면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국정 농단 사태에 등장한 새로운 나비의 날갯짓이다.

정 대표의 해외 불법 도박 사건의 변호를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맡았는데, 최 변호사가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로비를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 민정수석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불거졌지만 박근혜정부는 이를 감싸기에 급급했다.


당시에는
아니었지만…

이후 20169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됐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재학생과 졸업생 할 것 없이 집단시위에 나섰다. 입시에 민감한 한국 사회는 정유라의 부정입학 문제를 두고 끓어올랐다.

법조계, 대학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불거져 나온 의혹에 여전히 반신반의하던 국민들은 20161024JTBC의 태블릿PC 보도 이후 폭발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순실의 존재를 인정했다. 201610292만명(주최측 추산)으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누적인원 1300만명이라는 거대한 횃불로 변했다.

세월호 참사= 2014416일 인천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서 침몰했다. 전체 탑승자수 476명 중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됐다. 탑승자들 중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대거 포함돼있었다. 1718세 어린 학생들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세월호 트라우마를 남겼다.
 

▲ 박근혜 탄핵 논의 중인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사고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침몰 원인을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201410월 대검찰청은 무리한 구조 변경과 과적으로 복원성이 약화된 상태서 조타 미숙으로 세월호가 한쪽으로 기울었고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화물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침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54월 광주고법은 조타미숙이 아닌 기관 고장으로 세월호가 침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제대로 된 결론 없이 강제 해산됐다. 그리고 출범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두 가지 결론을 내놨다. 기계 결함 등의 이유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내인설, 충돌 등 외력에 의한 침몰 가능성 등을 추가로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설 등이다.


작은 사건서 시작된 일
정권 위협하는 칼 되기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박정부 시절의 규제 완화가 하나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청해진해운이 2012년 선령 18년의 일본 퇴역 여객선을 도입해 세월호로 취항시킬 수 있던 배경에 이명박정부 시절 규제 완화가 있었다는 것.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지난 2008년 이명박정부서 고가의 선박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명목 아래 해운법 시행규칙에 20년으로 돼있던 선령 제한을 30년까지 완화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985년까지 20년으로 묶여 있던 여객선 선령은 1991년 엄격한 조건을 달고 5년 범위 내에 연장이 가능하도록 완화됐다가 200930년까지 늘어났다. 세월호의 경우 청해진해운이 사들인 시점에는 이미 18년 동안 운행한 상태였다. 완화된 해운법이 아니었다면 청해진해운서 세월호를 구입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조 의원은 노후된 선박은 고장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이 높은 만큼 선령 제한을 완화하면 해상 사고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실제 세월호는 사고 전에도 조타기, 레이더 등의 잦은 고장 등 사고 선박의 기계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국 논란=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리고 9월 조 전 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조 전 장관과 관련한 논란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특히 딸, 부인, 조카 등 친인척이 연루된 의혹이 정치권은 물론 교육계까지 달궜다.

조 전 장관의 딸이 단국대 2주 인턴 이후 논문 1저자로 등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시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정시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후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서 정시 확대를 언급하면서 교육부와 대학은 발 빠르게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조 전 장관 딸의 논란으로 대학 입시제도가 변화한 셈이다.

개인 논란이
청와대까지?

이제 검찰의 칼끝은 조 전 장관의 측근이나 개인 비리가 아닌 문재인정부 자체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일 당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청와대로서는 바람 잘 날이 없는 상태다. 문제는 4개월 전 조 전 장관의 임명, 앞서 10여년 전 조 전 장관 딸 논문 저자 등재로 시작된 이 사태의 끝이 어디일지다. 일각에선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조국 논란이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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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