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LG '기술유출' 진실공방 전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7.23 11: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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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사람은 있는데 도둑은 없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도둑맞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도둑질 했다는 사람은 없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기술유출 공방을 한 마디로 줄인 말이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법정에서 자연스럽게 밝혀질 텐데 삼성과 LG는 제품보다는 말로써 경쟁사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다. '빼앗겼다는 자'와 '안 빼앗았다는 자'가 서로에 대한 민형사상 법적조치를 예고한 상태에서 이 둘의 난타전은 어느 때보다 강도가 셀 전망이다.

수원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최길수)는 지난 13일 삼성의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산업기술유출방지법 위반)로 조모씨 등 삼성 전현직 연구원 6명과 정모씨 등 LG디스플레이 임직원 4명, LG협력업체 임원 1명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 관계자들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퇴사한 조씨를 통해 관련기술을 컨설팅 방식으로 넘겨받았다. LG디스플레이는 이 과정에서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OLED TV 제조기술을 담은 보고서도 함께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OLED기술 유출 공방
법정 싸움 예고

이에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LG디스플레이의 책임있는 조치와 사과,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심재부 삼성디스플레이 커뮤니케이션팀장(상무)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수사결과를 접하고 LG디스플레이 전사 차원의 조직적 범죄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피해사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번에 유출된 기술개발을 위해 1조2000억원을 투입했다"며 "피해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OLED 기술력 부족을 단기간에 만회하기 위해 고위 경영진이 삼성의 기술과 핵심인력 탈취를 조직적으로 주도했다"고 밝혔다.


LG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이방수 LG디스플레이 전무는 기자회견을 통해 "독자적 기술을 통해 55인치 TV용 OLED 패널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해당 패널이 들어간 TV가 대통령상을 받는 등 기술력을 공인받고 있다"며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른 삼성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에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 TV의 핵심 기술은 TFT 위에 유기물질을 고정시키는 증착기술이며 유기물질을 증착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정이 필요하고, 공정별로 수십번 이상의 시행착오를 거쳐 취득한 삼성의 노하우가 담겨 있는 보고서가 유출됐다"며 "이는 화이트(W) OLED TV에서도 꼭 필요한 핵심기술"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LG디스플레이는 삼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증착 등 OLED 관련 핵심 기술을 가져 온 증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업계나 시장에 알려진 수준 정도의 경쟁사 동향을 영업비밀이라고 해서 기소한 것은 비즈니스 세계의 경쟁 현실을 외면한 처사로 부당한 결정이라고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삼성은 아직까지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확정된 범죄인 것처럼 자료까지 배포하면서 경쟁사를 흠집 내고 있다"며 "적절한 시점에 삼성디스플레이 측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에 유출된 자료는 논문 등 학술자료를 통해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일반적인 수준이었다"면서 "경찰수사에선 LG쪽 임직원이 총 10명이 입건됐는데 최종 검찰기소에선 6명으로 줄어든 것만 봐도 이번 사건은 삼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OLED 기술유출 두고 '진흙탕 싸움' 본격화
가전·IT소품·광고 등 끝없는 '감정싸움'

이에 대해 삼성디스플레이는 "생산기술센터 전무와 OLED 사업전략 담당 임원이 직접 전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원에게 수차례에 걸쳐서 문자와 이메일 등을 통해 삼성에서 정보를 빼낼 것으로 요청했다"며 "널리 알려진 정보라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빼낼 필요가 있었는가"라고 반문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또 "명백한 부정행위인 만큼 사법당국에서 나올 결과를 자신한다"며 "그 결과에 따라 민사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OLED 기술은 현 LCD를 대체할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다. 지난 2007년 삼성이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했고, 10인치 이하 중소형 패널을 생산하며 전 세계 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TV용 55인치 대형 패널 개발에 나섰고 올초 시제품을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에 LG디스플레이도 55인치 패널 시제품을 선보이며 치열한 선점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LG는 삼성의 RGB(적농청 색을 내는 유기물을 얇게 유리판에 입혀 색을 내는 기술)방식과는 달리 W-OLED(유기물 위에 컬러필터를 덧씌워 색을 내는 기술)방식으로 대형화가 쉬운 것으로 개발에 성공했다.

이 와중에 삼성은 LG가 공정 기술을 훔쳐 개발 기간을 단축시켰다고 의심하고 LG는 삼성 측 기술과는 방식부터 다르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 둘은 2년 전에도 비슷한 다툼을 벌인 바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2010년 AMOLED 핵심공정 책임자로 근무하다가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긴 A씨 등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금지 및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삼성 "소송불사"
LG "과장됐다"

당시 삼성 측은 "A씨가 퇴사 후 2년 이내에 다른 경쟁업체에 취직하지 않을 의무가 있지만 이를 어겼다"며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한 AMOLED 기술이 경쟁사에 들어가면 막대한 손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원은 "A씨는 중요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던 만큼 신청인 회사는 A씨의 전직을 금지할 이유가 있다"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소비자가전 분야에서도 양사는 끊임없이 부딪쳐 왔다. 최근에는 냉장고에서 '10ℓ 크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두 회사는 2010년 3월부터 본격적인 냉장고 크기 대결을 벌여왔다. 당시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800ℓ를 돌파하는 대용량 냉장고를 선 보였고 같은해 9월 삼성전자는 840ℓ를 출시해 맞불을 놨다.

지난해에는 LG전자가 850ℓ, 삼성전자가 860ℓ를 출시하면서 10ℓ 전쟁이 시작됐고 지난 4일 삼성이 세계 최대 용량이라면서 900ℓ급 지펠냉장고를 내놨다. 이후 12일 만에 LG전자가 910ℓ 디오스 냉장고로 응수하면서 세계 최대 용량 타이틀을 다시 가져갔다. 삼성은 국내 최초 상(上)냉장·하(下)냉동 방식을 처음 도입하고 910ℓ냉장고를 신규 출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닐 텐데 양사는 왜 크기를 두고 다투는 걸까? 전문가들은 크기가 곧 기술력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부에서 보는 냉장고 크기는 mm 단위로 최소한으로 늘리면서 냉장고 내벽의 두께를 최대한 줄여 숨어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러면서 업체들은 벽이 얇아지는 만큼 고효율의 단열재를 써야하고 구석구석 냉기 전달력을 높이기위해 보다 나은 컴프레셔를 개발해야 한다. 즉 크기 전쟁이 기술력 전쟁이라는 것이다.


양사가 주력 TV로 키우고 있는 3D TV 광고와 관련해서도 세계시장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고 ?기는
대용량 냉장고 경쟁

첫승은 LG가 챙겼다. LG전자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자사 TV 기술인 액티브 3D 방식이 LG전자의 기술인 패시브 3D 방식보다 우수하다'는 내용의 광고를 미국에서 반영하자 전미광고국(NAD)에 이의를 제기해 광고영상 사용중단을 권고하는 결정을 받아냈다.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도 LG전자가 미국에서 '3DTV 테스트에서 소비자 5명 중 4명이 소니와 삼성보다 LG를 선택했다'는 문구의 광고를 반영하자 NAD에 이의를 신청했고 NAD는 LG전자에 광고영상 사용중단을 권고했다.

영국에서는 LG전자가 'LG 시네마 3D TV'가 풀HD 3D, 풀HD 1080p 영상을 제공하며, 어느 각도에서나 같은 수준의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인쇄광고, 웹사이트, 세일즈 프로모션 등을 진행하자 삼성전자가 영국 광고심의위원회(ASA)에 LG전자를 허위광고혐의로 제소, ASA는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06년에는 LG전자가 삼성전자가 홍보물을 통해 자사의 "하드디스크 내장형 PDP TV에 대해 허위·비방광고를 펴고 있다"며 법원에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승소를 받아냈다.


지난 2월에는 호주에서 삼성전자의 광고 중단이 결정되기도 했다. 당시 호주 광고심의위원회(ACB)는 LG전자가 삼성전자의 버블세탁기 광고를 상대로 제기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광고 중단을 결정했다.

ACB는 삼성전자의 버블세탁기 광고가 과장광고에 해당 된다며 TV, 전단지, 언론홍보 등에 관련 표현을 사용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삼성 "피해사실 규명하고 응분의 책임 물을 것"
LG "경쟁사 흠집 내기, 명예훼손 고소예정"

LG전자는 삼성전자의 버블세탁기 광고 중 일부가 소비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광고에서 버블세탁기가 절전효과, 탁월한 세탁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LG전자가 근거 없는 과장광고로 이의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차세대 첨단 IT소품이 될 무선충전기를 놓고 벌이는 전쟁도 가관이다. 이번에는 LG전자가 삼성전자를 향해 ‘선빵’을 날렸다. 무선충전기 분야에서 LG가 삼성에 비해 앞서있으며 현재 삼성이 추진 중인 무선충전기술이 안전하지도 않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것.

무선충전은 전기를 전파를 통해 전송하는 방식으로 접촉식인 자기유도 방식과 근거리 전송 방식인 자기공진 방식이 있다.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자기공진 방식은 패드와 스마트폰이 일정거리 떨어져 있어도 충전이 가능하다. LG전자가 상용화한 자기유도 방식은 충전패드 내부의 코일이 자기장을 만들어 충전패드 위의 휴대폰에 유도전류를 흘려주면서 배터리가 충전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 LG전자 관계자는 "공진방식이 상용화되려면 충전패드와 휴대폰의 거리가 최소 1~2m는 떨어져 있어도 충전이 돼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공진방식이 지원하는 거리는 여기에 크게 못 미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기유도 방식은 충전 효율성이 기존 케이블 대비 약 90% 수준으로 높다"며 "유해성 문제도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공진방식에 대해서는 "충전 효율성도 문제지만 공진방식은 충전패드와 휴대폰의 주파수를 동일하게 맞춰야만 하고 국제 표준이 없다 보니 아직 유해성 측면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무선충전
LG-삼성 '티격태격'

삼성은 기술력으로 맞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LG가 사용하는 자기유도 방식은 예전부터 있던 방식이라 표준 제정이 먼저 진행된 것일 뿐"이라며 "자기유도 방식은 지난 2010년 7월에 확정됐고 삼성의 공진유도 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방식이라 표준화가 조금 늦어진 것인 뿐"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의 공진유도 방식은 올 4월에 무선충전협회(WPC) 확장 표준으로 확정됐다"며 "최신 방식인 만큼 기술적으로는 더 우수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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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