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창업 입출구 전략

장사는 6시부터!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OECD 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취업자의 25~30%가 자영업자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처럼 자영업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한국인들이 대개 저녁 이후 밤 시간대에, 집 안이 아닌 외부에서 활동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6시 이후에는 집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나라는 6시부터 바깥에서 시작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한국은 자영업 시장 규모가 큰 편이다.
 

인구밀도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고, 도시가 발달됐고 아파트도 많아, 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생활하는 환경 때문에, 한 점포를 방문할 수 있는 소비자가 많은 편이다. 즉, 웬만한 동네에서도 장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부모가 직장을 그만두면 장사나 해서 먹고 살면 된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고, 실제로 장사해서 큰 부자가 된 부모들도 많았다. 최근에는 배달문화가 발달하면서 집안으로 찾아가는 서비스 자영업 업종이 증가하는 추세다. 

레드오션

이와 같은 요인들이 한국의 생활문화와 인구통계학적인 수요 측면에서 바라본 자영업 비중이 높은 이유라면, 공급자 측면에서 자영업 비중이 높은 이유는 IMF 사태를 겪으면서 실업자들이 대거 자영업 시장으로 뛰어들었고, 근자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고 있어 이들이 또한 자영업 시장으로 진입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후 대책이 부족한 이들은 자영업으로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기불황과 증가하는 청년 실업률은 만만해(?) 보이는 자영업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게 한다.

한 마디로, 수요도 풍부하나 상대적으로 공급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자영업 시장이 레드오션 시장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자영업 창업자들이 이러한 레드오션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은 뭘까?    
 

▲창업자 마인드셋= ‘안 되면 장사나 하지’라는 부모 세대의 마음 자세로 자영업에 뛰어들면 실패한다. 모든 자영업이 직장생활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다. 상대적으로 운영이 쉽다고 생각되는 편의점이나 커피숍 역시 아르바이트 직원 채용 및 관리 등 결코 쉽지 않은 일이 산적해 있다. 직장 생활과 달리,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하는 골치 아픈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성실성과 끈기로 무장돼 있어야 하고,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의지와 무던함은 전제 조건이다. 이전까지의 자존심과 권위의식, 명예는 과감히 던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창업자는 모든 이에게 ‘을’ 또는 ‘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갑’인 소비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창업 전 철저한 준비= 한국의 자영업 실패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창업 전 사전 준비가 허술하다는 점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창업 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경솔한 준비로 시작한 창업의 실패율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우선 창업의 이론 및 실무 교육을 충분히 이수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의 무료 창업교육 프로그램도 많고, 인터넷 등에서 창업 정보를 어렵지 않게 수집할 수 있고, 각종 박람회도 자주 열린다. 1차적으로 본인이 창업에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창업하고자 하는 업종의 현장에서 실전체험을 해봐야 한다. 아르바이트도 괜찮고, 무료 봉사나 위장 취업도 좋다.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6개월 이상 현장 경험을 해보면 어느 쪽이 본인이 감당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업종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겉으로만 보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도 실전 창업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사전에 판단을 잘못하고 들어간 창업은 얼마 못 가 포기로 이르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포기하면서 하는 말은 “좋은 경험 했다” “수업료 많이 치렀다” 등등이다. 이 같은 낭비와 후회를 사전에 예방하는 길은 이론적 실무적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길이다.

한 점포 방문하는 소비자 많아
집으로 찾아가는 서비스 증가

▲프랜차이즈 가맹점 창업이냐, 독립점포 창업이냐= 자영업 창업자들이 직면하는 선택의 문제 중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창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독립점포 창업을 할 것인가이다. 브랜드 창업을 하려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고 창업비용도 더 들어가 부담이다. 그렇다고 독립점포 창업을 하려니 초보 창업자들에게는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창업 경험과 경력이 많은 창업자는 독립창업으로 그럭저럭 꾸려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보자가 독립창업을 하려면 억세게 운이 좋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도입기에서 성장기로 넘어가는 업종으로 소비자들이 ‘묻지마 소비’를 할 정도로 바람이 부는 업종은 그나마 장사가 잘 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시시각각 변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과 진입 및 탈퇴가 자유로운 자영업 시장의 속성상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하고 금방 트렌드가 바뀌거나 과당경쟁에 빠질 수 있다. 심지어 창업 전문가들은 장사 베테랑도 요즘은 변화무쌍한 국내 창업시장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어서 프랜차이즈 기업의 집단지성을 믿는 게 더 안정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프랜차이즈 브랜드나 업종은 어떤 게 좋을까. 업종이 성장하는 중이고, 브랜드 또한 경쟁력이 있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업자 각자의 사정과 판단에 따라서 꼭 그러한 브랜드를 선택 못할 수도 있다. 이때 브랜드 선택의 기준은 변화와 혁신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브랜드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산업 분야가 다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프랜차이즈산업이라고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가맹점의 부담을 최소화 하면서 지속적으로 브랜드 업그레이드를 해나가는 가맹본부는 장기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과거 브랜드 명성에만 의존하고, 투자를 하지 않는 이름난 브랜드에 가맹하면 서서히 점포가 죽어간다는 점이다. 명성에 의존하는 브랜드보다 혁신하는 브랜드가 더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진리다.

▲출구전략= 자영업은 출구전략도 잘 세워야 한다. 입구전략이 성공적이거나 실패하거나 관계없이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입구전략이 성공적이어서 투자금을 회수한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선택 기준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권리금을 받고 매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세를 몰아서 계속 점포운영을 하는 것이다. 

자영업도 이익을 내기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든 좋다. 다만 장사를 계속한다고 결정했다면,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간혹 장사 잘 되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초심을 잃고, 나태하고 겸손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경우 6개월도 못 가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성실, 겸손, 끈기, 지속적 혁신은 초지일관해야 하는 절대적 진리다.

실전 들어가면 완전히 달라
최소의 비용으로 업종 전환

만약 입구전략이 실패했다면 출구전략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오픈 후 한 달이 지나도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면 분명 점포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반드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책도 없이 더 이상 기다려봐야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 창업시장의 진리다. 업종의 제품 및 상품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서비스가 나쁜지 등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대체로 업종 경쟁력이 있다면 문제 해결이 쉽다. 이 때는 서비스 개선과 광고홍보를 강화해 매출증대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업종 경쟁력에 근본적 문제점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도 잘 해결되지 않는다. 이 때는 과감하게 손절매를 하는 선택이 유리하다. 결단 없이 시간이 계속 가면 적자가 누적될 것이다. 큰 손해 없이 점포 매각이 된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결과다. 이 때문에 기존 점포 인테리어를 살려서 할 수 있는 대안 업종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어느 정도 추가 투자도 감수해야 한다. 

리스크

다행히 최근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중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업종전환을 해주는 곳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으니 잘 찾아보면 의외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출구전략을 결론적으로 말하면, 힘들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이 가면 해결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점이다. 실패하더라도 대책을 세우는 것이 리스크를 줄일 확률을 훨씬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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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