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커지는’ 키즈 뷰티 현주소

엄마 화장품 몰래 바르던 시대는 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장난감 시장에 어른들이 침투했다. 어른들의 세계인 뷰티 시장에 아이들이 끼어들었다. 상품 가짓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소비층이 확장되는 모습이 시장 곳곳서 나타나는 중이다. 이 과정서 키즈 뷰티시장이 틈새서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키덜트족은 대중문화 시장의 큰손으로 꼽힌다.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다.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뜻한다. 이들은 장난감이나 만화, 의복 등 유년시절 즐기던 물건에 향수를 느끼고 상품을 구입한다.

키덜트와
어덜키즈

지난 2005910<동아일보>에 키덜트 문화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당시 기사엔 키덜트 문화가 순수·대중문화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다사실 예전엔 키덜트 문화라고 하면 정신적 퇴행이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강해 소수의, 미성숙한, 비주류 문화로 간주됐다. 하지만 이젠 당당히 순수와 대중예술 전반에 걸쳐 주류 문화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 추세라고 소개됐다.

그로부터 15년 뒤 키덜트 시장은 1조원이 훌쩍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 온라인 시장이 성장하며 매출이 점차 쪼그라들고 있는 백화점서 키덜트 상품은 새로운 동력으로 성장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태도)’ 등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가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키덜트 시장의 주요 고객은 경제력이 있는 3040대다. 이들은 자신의 취미활동을 위해 비용을 아낌없이 지불한다. 키덜트족은 시장서 하나의 문화집단이자 소비집단으로 자리잡았다. 그러자 유통업계는 키덜트족을 겨냥해 전자제품이나 주방용품에 접목하는 등 다양한 상품을 내놨다.


최근에는 키덜트와 상대되는 개념인 어덜키즈가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어른(Adult)과 아이(Kids)의 합성어로, 어른처럼 화장을 하고 옷을 입으며 어른 흉내를 내는, 어른 같은 아이를 가리킨다. 어덜키즈의 소비 품목이 점차 다양해지면서 시장 역시 커지고 있다.

어린시절 엄마 옷을 입어보거나 화장품을 발라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친구끼리 역할놀이를 하며 어른 흉내를 내보기도 했을 것이다. 과거에는 놀이에만 이용했던 옷이나 화장품 등에 대한 아이들의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단순히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가 아니라 꾸미는 아이가 늘어났다. ‘키즈 뷰티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 소비 연령도 낮아지는 추세다.

<겨울왕국2> 흥행 몰이
드레스·화장도구 불티

#1. A씨는 4, 6세 딸들과 함께 지난달 21일에 개봉한 <겨울왕국2>를 보러 영화관에 갔다. 영화관은 <겨울왕국2>를 보러 온 가족들로 꽉 차 있었다. 영화를 다 본 뒤 A씨의 딸들은 극 중 엘사와 안나가 입었던 드레스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러 온 몇몇 아이들은 이미 엘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영화관 한편에서 엘사와 안나 드레스를 파는 중이었다.

#2. 어린이집을 운영 중인 B씨는 최근 학부모들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다. <겨울왕국2> 개봉 이후 아이들이 하나둘씩 엘사 드레스를 입고 등원하면서 경쟁에 불이 붙어버린 것. 학부모들은 드레스 등원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B씨는 2014<겨울왕국> 1편 때보다 심해졌다고 귀띔했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딸이 있는 배우가 나와 영화 <겨울왕국>에 대해 언급했다. 이 배우는 이번에는 그들(엘사와 안나)이 뭘 입고 나올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우스갯소리처럼 지나갔지만 배우의 말에 공감을 표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실제 <겨울왕국2>에서는 캐릭터들이 화려한 드레스의 향연을 벌였다.

<겨울왕국> 1편에 나왔던 엘사 드레스를 입은 아이들을 이미 길거리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옷가게는 물론 영화관 내에서도 드레스를 종류별로 걸어뒀다. 한 유튜브 영상에는 아이의 눈을 가린 채 드레스가 진열된 길을 달리는 아빠의 모습이 올라오기도 했다. 엘사 드레스가 겨울 패딩에 이어 새로운 등골 브레이커로 떠올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겨울왕국> 1편은 20141월 개봉한 이후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13억달러에 달하는 흥행수익을 거둬 말 그대로 초대박을 쳤다. 이 과정서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인형의 대명사였던 바비 인형보다도 더 팔렸다고 한다.

<겨울왕국> 등
유통업계 특수

<겨울왕국2>의 흥행세는 1편보다 더 엄청나다. 지난달 21일 개봉 이후 엿새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첫 주 토요일에는 160만명, 일요일에는 150만명의 관객을 합치면 주말 이틀 동안에만 300만명이 <겨울왕국2>를 본 셈이다. 그러자 유통업계서도 <겨울왕국2>의 흥행 열풍에 발 빠르게 숟가락을 얹었다.

이마트는 겨울왕국 캐릭터를 이용해 레고와 인형 등 신상 완구 50여종을 준비했다. 롯데마트도 아렌델 궁전세트등을 한정 판매하며 고객 유치에 나섰다. 홈플러스 역시 주인공의 모습이 담긴 이불과 쿠션, 베개 등 침구류와 식기, 핫팩, 욕실화 등 관련 상품 50여종을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엘사 특수, 겨울왕국 특수다. 특히 수능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겨울왕국2>의 흥행이 장기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와 함께 매출 성수기 또한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겨울왕국2> 열풍이 굿즈 판매로 이어지는 것을 두고 키즈 뷰티 시장이 확장됐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유통업계서 단순 캐릭터 상품이 아닌 아이들이 직접 입고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을 집중적으로 내놓는 게 그 방증이다. 드레스는 물론 메이크업 세트, 액세서리, 구두 등의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메이크업 세트는 아동 모델이 직접 나와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만큼 몇 년 새 화장하는 아이들, 꾸미는 아이들이 늘어난 것. 과거에는 화장을 하거나 액세서리를 달고 다니는 아이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대중매체서 메이크업을 하는 아이들을 공부하지 않고 놀러 다니거나 일탈하는 이미지로 그리곤 한 것도 그런 인식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어린이 화장이 흔한 일로 자리잡고 있다. 키즈 산업은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체 규모는 20028조원서 201434조원, 20184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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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키즈 뷰티, 어덜키즈 시장 역시 급속도로 확장됐다. 대한화장품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영유아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141200억원서 20172000억원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미 3000억원 규모로 늘어났다는 추정도 나온다.

초등학생도
사고 바르고

2017년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소속 녹색건강연대는 전국 초··고등학생 4736명을 대상으로 색조화장 여부 색조화장 빈도 구매 경로 정보획득 경로 등을 조사한 어린이·청소년 화장품 사용 행태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눈화장, 입술화장 등 색조화장을 해본 경험이 있는 초등학생은 24.2%였다. 초등학생 5명 중 1명이 색조화장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

이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의 12.1%는 매일 색조화장을 한다고 답했다. 42.2%는 주 1회 색조화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의 경우 화장품을 직접 구매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38.5%에 이르렀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전문 로드숍서 화장품을 구매했다.


또 색조화장을 한다고 답한 아이들은 대부분 주변인과 SNS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었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화장에 대한 또래집단의 영향이 매우 컸다. 녹색건강연대는 이러한 결과는 화장품 사용이 본격화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화장품에 대한 정보획득은 체계적이지 못한 어린이·청소년의 현실을 드러내는 지표라고 분석했다.

실제 화장을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한 반의 절반 이상이 메이크업 도구를 가지고 다니고 유튜브를 통해 화장법을 공유하며 쉬는 시간에는 화장을 고치는 일이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 문화를 아이들의 놀이로 봐야 할지, 시대 변화로 봐야 할지를 두고 혼란을 겪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서도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는 쪽과 적정선을 알려주는 게 낫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다.

한 학부모는 어른이 되면 하기 싫어도 화장을 해야 하는 날이 올 텐데, 왜 벌써부터 화장을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엄마는 무작정 못하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차라리 순한 화장품을 사주고 화장법을 알려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화장하고 학교 가는 학생 크게 늘어
피부트러블·외모지상주의 부작용도

일선의 교사들은 이미 시대의 흐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초등학생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시대에 SNS와 유튜브에는 화장과 관련된 영상이 널려 있다. 유튜버의 연령대도 낮아지는 추세라 아이들이 제 눈높이에 맞춰 화장을 배울 수 있는 경로도 무궁무진하다. 학교와 집에서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상황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


실제 유튜브서 키즈 메이크업으로 검색하면 영상이 쏟아진다. 영상의 주인공은 어린이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화장품을 가지고 직접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성인이 등장해 키즈 메이크업과 성인 메이크업을 비교한 영상은 조회수가 1300만회를 훌쩍 넘었다. 엄마가 등장해 아이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해주는 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그럼에도 어린이 화장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대부분의 걱정은 안전성에서 비롯된다. 한창 자랄 시기에 피부 트러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피부가 연약하고 피지 분비가 활발한 어린이나 청소년은 화장품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화장품 업계에선 어린 손님을 잡기 위해 유아용 화장품을 쏟아내고 있다. 어린이 화장품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빠진 성인 화장품 시장서 또 다른 동력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성이 보장된 제품이라고 해도 얼굴에 바르는 제품인 만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서 외모지상주의를 답습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일부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선 탈코르셋(corset)’ 문화가 번지고 있다. 탈코르셋은 사회서 여성스럽다고 정의해온 것들을 거부하는 움직임이다. 화장이나 렌즈, 긴 생머리, 과도한 다이어트 등을 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화장 인구가 늘고 있는 10대와는 상반되는 움직임이다.

미취학 아동도
키즈 뷰티살롱

화장을 하는 연령대는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미취학 아동도 화장 열풍에 가세하는 모양새다. 성인처럼 마사지와 화장을 체험할 수 있는 키즈 뷰티살롱도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5세 아이가 키즈 뷰티살롱서 마사지를 받고, 메이크업과 손톱 손질을 받는 식이다. 주말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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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