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미국서 꽃 피운 LPGA

19세기 말 미국으로 건너간 골프는, 여성들을 옥죄었던 영국과는 달리 초창기부터 남녀평등의 분위기 속에서 대중들에게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남자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차별 규정 없어

골프에 관한 한 미국은 여성들에게 불평등을 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여성들이 골프장에 나오도록 독려했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았다. 일부 골프장은 영국처럼 남성 회원만을 고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차별의 규정은 없었다.

<뉴욕타임즈>는 ‘여자들이 골프를 치게 되면 신체가 건강해지고 피부 미용에도 좋아 여성들에게 권장할 만한 운동이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남자 US OPEN 아마추어대회와 프로 US OPEN이 열린 1895년에, 여자 US아마추어 대회가 한 달 뒤 함께 열린 사실만으로도, 미국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골프를 장려했는지 입증된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미국에서 여성들의 골프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1888년 존 리드의 집. 스코틀랜드의 톰 모리스 공방에서 클럽을 주문한 지 3개월 후, 골프클럽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최초로 골프를 치기 위한 일련의 친구들이 존 리드집에 모였다. 모두들 골프채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이런 광경을 눈여겨보는 여인이 있었다.


존 리드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친구들을 극진히 대접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별도의 구상을 하고 있었다. 리드 부인은 함께 방문한 부인들을 뒤뜰로 불러 모았다. 

19세기 말, 초창기부터 남녀평등 분위기
남성 전유물? 스코틀랜드 사고와 차이

“바깥양반들이 미국 최초의 골프클럽을 결성하려고 합니다. 우리 부인들도 이를 도와야겠지요. 우리 여자들도 이 기회에 동참을 했으면 합니다. 여성골프클럽도 함께 만들어나가면 어떨까요?”

리드 부인의 제안에 부인들 모두 찬성을 했다. 존 리드, 존 업햄 등 남편들과 조를 맞춘 7명의 부부들은 함께 골프를 쳤다. 리드 부인의 실력은 남편을 이길 정도였다.

1891년 뉴욕의 쉬네콕힐스가 문을 열게 되자 1893년 이들 7명의 부인들은 여성 전용 9홀 코스를 별도로 오픈했다. 뉴저지 모리스타운에서는 여자들이 골프 클럽을 조직한 뒤 7홀짜리 골프장을 만들고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의 골프대회에 대해 <뉴욕 썬> 신문은 이렇게 써나갔다. 

‘대회가 끝나고 모두들 클럽하우스에 모여 티와 커피, 와인 등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들은 여자골프가 나갈 길에 대해 신중하게 토론했으며 새로운 방향 제시에 대해 논의도 했다.’

미국에서의 초창기 골프는 분명 남녀가 평등한 위치에서 함께 붐을 일으켰다. 물론 일부에서는 남자들의 불만도 만만치는 않았다. 일부 골프장에서는 여성골퍼 출입금지의 팻말이 공공연히 나붙었는가 하면, 여자들에게 골프 치는 날짜를 토요일과 공휴일 오후 2시 이후로 제한하는 등 차별도 분명 있었다.


시네콕힐스는 여성들이 사용했던 코스를 폐쇄시켰고, 시카고 에반스톤 시에 서부 최초로 만들어졌던 여성전용 코스는 남자들에 의해 아예 없어졌다. 

오히려 골프장 나오도록 독려
여 골프 인구 폭발적으로 늘어

여성 골프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골프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남자들이 묘수를 꾸며낸 것이었다. 여성들을 내몰고 대신 남자들만의 골프장을 확보하자는 발상이었다. 미국의 여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싸워 이기면서 권리를 찾아나갔다. 그러면서도 우아함만은 잃지 않았다.

여성 골퍼들은 깃털 장식이 된 모자에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와 허리가 잘록하고 단추가 많은 빨간 재킷을 입었다. 하의는 코르셋을 입은 채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착용했다.

골프 코스를 건설하는 맹렬 여성들도 있었다. 1892년 보스턴의 7홀짜리 골프장은 식당과 침실, 볼링장, 테니스장, 말 경주 코스, 음악 감상실 등 리조트 형식으로 지어져 사교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1930년 이후부터 여성 프로선수가 생기기 시작하고, 여자웨스턴오픈은 1941년에 우승자에게 500달러의 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여성 골퍼들 중에서 으뜸은 베이브 디드릭슨 자하리아스였다. 그녀는 1935년 혜성처럼 등장했다.

보기 드물었던 만능 스포츠우먼이었던 베이브는 야구, 농구, 육상은 물론,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창던지기와 80미터 허들경기의 우승으로 금메달까지 따냈다. 그녀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23세였다. 골프에 흥미가 없었던 그녀였지만, 스포츠에 관한 한 만능이었던 베이브는 정작 골프채를 잡은 뒤부터 연습벌레가 됐다.

하루 14시간 골프채를 잡았던 베이브는, 손이 까져 감았던 붕대사이로 피가 새어나와 흰 붕대가 붉은 색이 될 때까지 연습을 했다. 골프 시작 2년 만인 1934년 처녀 출전한 텍사스 아마추어 타이틀전에서 드라이버샷을 250야드까지 때리며 우승을 했다.

거침없이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17연승의 기록과 함께 총 41승을 올리며 각종 골프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베이브는 남성 골프대회에 쉬지 않고 도전해 1945년 피닉스오픈 남자대회에서는 3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몇년간 미셀 위 선수가 남자 PGA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을 베이브는 이미 70여년 전에 시행한 것이었다.

베이브가 미국골프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1949년 그녀를 중심으로 13명의 여성골퍼들이 플로리다에 모여 협의를 했다. 패티 버그, 루이스 서그스, 알리스 바우어 등 당시 여자골프를 주름잡던 전설적인 골퍼들이었다. 이들은 이듬해인 1950년 여자프로골프협회를 발족시킨다. 

여자프로골프협회, LPGA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888년 존 리드의 집에서 7명의 부인들이 골프회동을 한 이후 62년 만의 일이었다.

50년 협회 발족


LPGA의 탄생으로 미국의 여자골프는 돈과 명성을 함께 쌓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미국에서 꽃을 피우던 여성골프는 100년이 흐른 21세기를 넘어 아시아 대륙으로 이어졌고, 특히 한국 여성 프로들이 세계 여성 골프계의 주역이 되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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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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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