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창업전략

“자영업 점포도 컬덕을 창출해야”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컬덕의 시대’라고 예고했다. ‘컬덕(cult-duct)’은 문화(culture)와 상품(product)의 합성어로 ‘문화융합상품’을 뜻한다. 기업이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상품에 문화 컨텐츠를 융합한다는 개념이다. 컬덕이 추구하는 것은 상품을 통해 고객에게 새로운 삶의 스타일과 경험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고객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것이다.
 

▲ 한신치킨호프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아이폰, 스타벅스, 나이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가령 할리데이비슨은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문화를 판매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사명은 ‘모터사이클을 타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고객의 꿈을 실현해 나간다’이다. 

컬덕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만든 상품이 이전에 없었던 최초의 콘셉트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전 세계적으로 널리 판매되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스스로 그 상품에 대한 가치를 추종하면서 자생적인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융합상품

컬덕을 만들어내는 기업은 그 시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폰은 전 세계를 스마트폰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아이폰의 컨텐츠 마켓인 ‘아이튠즈’가 만들어지면서 트위트, 페이스북 등 SNS 기업의 시장도 활성화되었다. 아이폰은 침체한 미국 경제를 이끈 힘이 됐다. 

일본 소니사가 만들었던 ‘워크맨’도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다니는 풍경을 연출했었다. 그 시기에 일본 경제도 절정기를 맞았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 기업을 모방하기에 바빴다. 이제 컬덕을 창조해야 한다. 일본도 수많은 모방을 통해 기술을 축적하고, 디자인을 연구해 자신만의 컬덕을 만들어냈다. 워크맨에 이어 내놓은 ‘닌텐도’ 게임기 같은 상품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나라도 기술적인 면에서는 이미 가능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다만 컬덕을 만들려고 하는 창조적 사고가 부족할 뿐이다. 

창조적 사고는 머리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즉 IQ, EQ가 높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구성원 간의 이해심이 바탕이 된 자유로운 소통, 꿈의 실현 가능성 및 보상에 대한 사회적 믿음 등 다양한 가치와 철학을 배경으로 창조적 사고가 일어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컬덕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고, 우리 교육제도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스타일과 경험 제공
궁극적으로 고객의 꿈 실현

이제 자영업 점포도 컬덕을 만들어야 한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팔지 않는다. 문화를 판매한다. 할리데이비슨은 오토바이를 팔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삶의 스타일을 판매한다.’ 스타벅스가 제공한 문화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스타벅스 매장에 홀로 앉아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이의 모습은 더 이상 초라하지 않다. 길거리에서 커피를 들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낯설지도 않다. 오히려 멋지다. 스타벅스는 더 이상 단순한 상품이 아닌, 그것을 소유하고 영위함으로써 독특한 경험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서울 잠원동의 반원초등학교 옆 반원상가 내에 위치한 ‘한신치킨호프’는 1년 365일 고객들로 북적거린다. 주변 경쟁 점포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업종을 바꾸고 있지만, 이 점포는 십 수 년을 가족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장사가 잘 되는 이유는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지인 간의 편안한 만남의 장소 문화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잠원동 주민은 서울에서 중산층과 서민층이 공존하는 몇 안 되는 동네다. 비싼 아파트 소유자인 중상류층 주민도 있고, 상대적으로 강남권에서 전세비가 낮은 오래된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 자녀 교육을 하기 위해 이사 온 중산층 이하의 주민들도 많은 편이다. 이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동네가 바로 잠원동이다. 한신치킨호프는 이러한 인구 구성을 잘 간파해, 동네 주민 누구나 좋아하는 명소라는 문화를 창출했다. 

메뉴도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다양하다. 후라이드치킨, 바지락칼국수, 수제비, 오삼제육복음 등 일반 음식뿐 아니라 오징어회, 낙지회, 해삼, 멍게 등 다양한 해물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브랜드 경쟁력 키우기 위해 
상품-문화 컨텐츠 융합 개념

동네상권이지만 다양한 메뉴를 가족이나 동네 주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초등학생 학부모 엄마들의 모임 장소로 인기가 높고, 특히 동네에서 쉽사리 접할 수 없는 회와 해물요리를 이 점포에서는 싱싱하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 중장년 남성 고객들도 많이 찾는다. 

동네 주민이라면 한 번씩 들리는 점포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맛과 저렴한 가격이다.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고 해서 자칫 잘못 생각하면 비싼 음식만 팔아도 장사가 될 것 같지만, 사실 접대를 위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비싼 외식을 하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다.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저렴한 가격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는 것이, 이 점포의 성공이 펼쳐 보이는 하나의 명제다. 

또한 점포 앞에 포장마차처럼 파라솔이나 천막을 쳐서 간이 의자에 앉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말이나 휴일 저녁이면 가족이나 동네 지인, 가까운 친구끼리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웃 동네 주민들도 이 곳으로 많이 찾아올 정도다. 이처럼 굳이 도심으로 나가지 않아도, 집 앞에서 부담 없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구비하고 편안하고 친근한 외식 문화를 창출한다면 동네상권에서도 외식 수요를 충분히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 한·추(한잔의 추억)

서울 압구정동 가로수길 이면도로변 가까운 거리에 예쁜 옷가게와 세련된 건물이 즐비한 가운데, 고추튀김과 떡볶이, 후라이드 치킨 등을 파는 80여평 규모의 허름한 호프집이 있다. 한잔의 추억이라는 뜻을 지닌 ‘한·추’다. 

이 점포는 수십년간 1년 내내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강남뿐 아니라 강북에서도 찾아오는 대박 점포다. 고추가 들어간 안주를 컨셉트로 한 문화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주 고객도 20대에서 40대까지 골고루 분포돼 있고, 남녀 비율도 거의 비슷하다. 요즘 같은 불황에도 손님들로 북적이는데,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그 주변 점포들 중 이 점포만큼 장사가 잘 되는 점포가 거의 없을 정도다. 

더 맛있고, 인테리어 분위기도 더 좋은 점포들이 즐비하지만 결국, 편안하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문화를 창출한 이 점포가 항상 1등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수평적 소통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사랑방 문화가 추구했던 ‘수평적 소통’과 같은 가치를 페이스북과 같은 형태로 현대화할 수 있다.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정(情)’문화는 컬덕을 창조하는 새로운 문화 아이콘이 될 수 있다. 점포가 사랑방 문화를 창출하고 수평적 소통 문화를 접목해 나간다면, 소통과 평화를 전파하는 컬덕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대신 맛에만 의존한 나머지 문화를 만들지 못한 점포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