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어른의 자세
<박재희 칼럼> 어른의 자세
  • 박재희 노무사
  • 승인 2019.12.02 09:31
  • 호수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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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기술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경험은 곧 자산이었다. 가령 서울서 부산으로 가는 방법을 모른다면 주변의 아는 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교육 경험이 없는 대학생에게 중·고등학생이 과외수업을 받는 것도 대학입시서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경험을 신뢰한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인터넷이 널리 확산되고 이후 발전을 거듭하면서 개인의 경험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서울서 부산으로 가는 길을 교통 수단별로 자세히 알려준다. 심지어 미국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샌디에고서 로스엔젤레스로 가는 길과 소요시간을 찾을 수 있다.

온라인 교육의 보편화와 정보통신의 발달로 검증된 강사를 접하기 용이해지면서 대학생이 하는 과외는 크게 쇠퇴했다. 즉, 개인의 경험은 힘을 잃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연장자의 권위도 약화됐다.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하는 조언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돌아서서 ‘꼰대’라고 험담한다. ‘내가 대학생일 때’ ‘내가 신입사원일 때’로 시작하는 조언은 진부하기만 하다. 50대가 언급하는 ‘내가 신입사원일 때’는 1990년대 중반 이전이다. 지금 신입사원은 2020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30년의 간극을 개인 경험으로 메우기는 어렵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나 규율을 습득하는 미성년자에게나 간혹 훈계할 수나 있을까, 더 이상 어른의 역할은 없다. 나이가 많다고 하여 조언할 자격이 생기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이라면 서로 우위가 있는 분야를 교환하여 상호 성장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

연장자로서 긴 세월을 자신의 분야에 천착하고 학습해왔다면 고유의 강점을 지니게 마련이다. 굳이 조언하려 들지 않아도 먼저 물어올 것이니, 그에 답하면 족하다. 나이가 적은 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 연장자가 나이를 권위로 내세우지 않고 배우려는 자세로 묻는다면 요즘 청년들이 얼마나 훌륭한 지식과 참신한 관점을 갖고 있는지 금새 알게 된다. 

요즘의 어른에게는 연령을 권위로 내세우지 않고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지 않으며,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디. 연장자에 대한 예의는 공손한 인사와 존댓말로 충분하다. 지식과 의견 교환을 할 때는 대등한 관계여야 한다.

혹시 아랫사람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 불편한 감정이 든다면, 상대의 태도보다 자신 내면의 권위의식을 살펴봐야 한다. 부하직원이나 후배직원이라고 해서 알려주고 가르친다는 자세로 말하기 보다는 내가 아는 바와 나의 의견을 표현한다는 생각으로 말해 보자. 지식과 의견도 구분해야 한다. ‘내 경험’은 지식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이 지금도 통할 것이라는 개인의 판단에 가깝다. 

상대가 누구든지 지식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상대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내 의견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상대가 나보다 연장자라고 해 주눅 들지도 말자. 연장자와 대등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세와 아랫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은 서로 같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편하게 얘기해 봐”라는 의례적인 말보다 “이건 잘 모르겠는데 의견 줄 수 있어?”라고 묻는 편이 더 효과가 좋을 것이다. 부하나 후배 직원 앞에서 모른다고 하면서 도움을 청하면 자신을 무시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은연 중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잘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은 더 좋지 않다. 부하직원도 그 답을 모른다면 잘못된 결론에 따라 일이 진행된다. 부하직원이 답을 알고 있다면 상사의 권위는 훼손되고 부하직원은 지시를 따를 수도 없고 따르지 않는 것도 곤란해 비생산적인 고민만 하게 된다. 마음 속 권위의식을 내려놓을 때 진정으로 존중 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