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바둑판 떠난’ 풍운아 이세돌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1.27 08:35:16
  • 호수 12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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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처럼 등장해 바람같이 떠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국 바둑의 간판 ‘쎈돌’ 이세돌 9단이 지난 19일,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프로생활을 시작한 지 24년4개월의 현역 기사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이세돌은 인공지능 AI ‘알파고’를 이긴 인류 유일의 프로기사다.
 

▲ 프로 바둑계를 떠난 이세돌 9단

이세돌이 지난 19일 전문 기사직서 사퇴했다. 이날 그는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한국기원은 “이세돌 9단이 현역서 은퇴한다”고 밝혔다. 이세돌의 은퇴는 여러 차례 예견됐던 바 있다. 

은퇴하는 
바둑 황제 

이세돌은 지난 3월 기사 사직 의사를 한 차례 밝힌 바 있다. 지난 3월 그는 중국 커제 9단과 겨룬 ‘3·1운동 100주년 기념 대국’서 완패한 직후 회견서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사이에 프로기사직을 내려놓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몇 년 전부터 사석서도 지인들에게 “조만간 은퇴할 생각”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하곤 했다.

그는 계획보다 일찍 사퇴서를 냈다. 한국기원과의 오랜 불화가 한몫했다.

이세돌은 “프로기사회가 권한을 남용하고 적립금을 부당하게 뗀다”며 2016년 5월 기사회 탈퇴를 단행했다. 한국기원은 이 문제를 3년 넘게 미루다 새 집행부가 들어선 직후인 지난 7월 이사회를 소집해 “본원 주최 기전엔 기사회 소속 기사만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새 정관을 통과시켰다.


이세돌은 당초 성적 하락으로 은퇴를 생각했는데, 기사회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대국도 불가능해져 은퇴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추측되는 대목이다. 

이세돌은 은퇴 후에도 한국기원과 적립금을 둘러싼 법적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적립금은 이세돌이 기사회를 탈퇴한 뒤 한국기원이 기사회의 요청에 따라 이세돌에게 지급하지 않고 보관해온 상금 공제액을 뜻하는데 약 32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세돌은 현역 생활을 하면서 18차례의 세계대회 우승과 32차례의 국내대회 우승 등 모두 50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기원 공식 상금 집계로 98억원에 가까운 수입을 벌어들였다. 

한국기원에 프로기사 자격 사직서 제출
24년 4개월간 활동했던 현역 생활 마감

2014년엔 라이벌 구리와의 10번기가 지구촌을 달궜고, 6승2패로 승리한 그는 상금 500만위안(약 8억5000만원)의 주인이 됐다. 2000년 76승을 올려 한국기원 최다승의 주인공이 되면서 최우수기사상도 획득했다. 통산 8차례의 MVP, 4번의 다승왕과 연승왕, 3번의 승률왕에 올랐다.  

1995년 입단한 이세돌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스타 기사였다. 그의 은퇴는 한국 바둑이 배출한 최고 ‘풍운아’의 퇴장을 의미한다. 변화무쌍한 착점 못지 않게 그의 언행도 화제를 낳곤 했다. 특유의 직설적 화법과 외골수 행동으로 찬사와 비판은 항상 평행선을 달렸다.

초년병이던 2000년 이미 32연승을 내달렸던 그는 대선배들을 제치고 최우수기사로 선정되면서 승단대회 폐지를 이끌었다. 2009년에는 한국바둑리그에는 불참하고 중국리그에 참여하려 했다가 기사회와 마찰을 빚어 ‘휴직계’를 내고 잠적하기도 했다.
 

▲ 알파고와 대결서 1승4패로 패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이세돌 9단 ⓒ한국기원

2016년 5월에는 프로기사회가 탈퇴 회원이 한국기원 주최·주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하고, 회원의 대국 수입서 3∼15%를 일률적으로 공제해 적립금을 모으는 정관 조항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며 “프로기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에 동조할 수 없다”고 친형인 이상훈 9단과 함께 기사회서 탈퇴했다.

이세돌은 1983년 3월2일생으로 전남 신안군 비금도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광주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목포서 초등학교 교사로 10여년간 교편을 잡다가 비금도로 귀향해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을 키웠다. 아마 5단의 실력을 가진 그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성적 하락
한기 불화

이세돌은 2012년 발간된 자서전 첫 머리에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 배웠다”고 단언했다. 그는 1989년 조훈현의 ‘응씨배’ 우승을 보며 프로기사가 되겠다고 다짐했고 9세에 서울로 바둑유학을 떠났다. 이후 이세돌은 형 이상훈과 함께 1995년 입단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12세였다. 

친형 이상훈 9단이 어렸을 때부터 바둑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동생을 보며 ‘나는 이세돌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은퇴해야겠다’고 바둑을 접었을 정도다. 이후 동생 이세돌의 지원에 전념해오고 있다. 

이세돌은 조훈현·이창호·조혜연·최철한에 이어 역대 최연소 5위(12세 4개월)로 입단했고, 그 뒤로 2단이 되는 데 3년이 걸렸다. 1999년에 3단이 된 뒤로 한국 바둑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32연승이라는 역대 연승 3위 기록을 세우며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당시 최우수기사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세돌의 단수는 올라가지 않았다. 승단을 위해 치러야 하는 승단대회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식에 젖어 과도한 대국 수로 스타급 기사를 혹사시키는 승단대회의 문제점은 이전에도 지적되고 있었다. 그 제도에 최초로 반기를 들었던 기사가 바로 이세돌이었다. 

 

당시 3단에 불과했던 이세돌은 메이저 세계대회인 ‘후지쯔배’서 우승하고 ‘LG배’ 결승에 진출하면서 승단대회 무용론을 몸소 보여줬다. 이때 여론의 지지도 받았다. 결국 한국기원은 2003년부터 승단 규칙에 ‘세계대회 우승 시 3단 승단, 준우승 시 1단 승단’ 항목을 추가했다. 이세돌은 이후 각종 대회서 우승하며 단 5개월  만에 9단까지 올랐다.

말도 많고 
탈 많았다

이후에도 2009년 5월까지 국내랭킹 1위, 10번째 세계대회 우승을 하는 등 정상급 기사의 면모를 보여줬다. 하지만 바둑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지적하면서 한국기원에 ‘괘씸죄’로 찍혀 징계를 받았다. 이에 반발하면서 2009년 6월30일부터 2010년 12월31일까지의 18개월 간의 휴직계를 제출하기도 했다.

한국기원과 기보 저작권과 대국료 문제로 마찰을 빚었던 이세돌은 휴직 6개월 만인 2010년 1월11일 복직했다. 한국기원이 이세돌의 복직 조건에 합의하면서 휴직을 끝냈다. 

한국기원과의 앙금을 청산하고 복직하자마자 파죽지세로 24연승과 함께 덤으로 ‘제2회 BC카드배’ 결승서 창하오 9단을 3:0으로 압살하면서 세계 타이틀 하나를 더 추가했다. 세 판 모두 불계승을 거뒀다. 불계승은 대국 도중 한 쪽이 패배 의사를 표명하면 계가까지 가지 않고 상대방의 승리를 선언하고 대국을 끝낸다.


이 대회 16강전에는 당시 중국 랭킹 1위이던 콩지에를 상대로 초반에 대마가 잡혀 85집 정도를 잃은 상태서도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인터뷰서 이세돌은 “초반에 밀려서 그냥 두는 데 의의를 뒀다”고 말해 화제를 뿌렸다.

알파고 대결 등 파란만장 이력
통산 50승 거둔 바둑계 대스타

2011년 4월 ‘제3회 BC카드배’ 결승서 라이벌로 여겨지는 구리 9단을 상대로 3:2 신승을 거두고 동 대회 2회 연속 제패에 성공한다. 이듬해 12월13일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서 구리 9단을 2:1로 다시 물리치고 통산 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구리 9단과 전적도 10승 1무 14패로 좁혔다. 2014년 구리 9단과의 인생승부 10번기를 시작했다. 

10번기는 제한시간이 4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월드컵 기간인 6월을 제외하고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개최되며 먼저 6승자가 나오면 종료된다. 승자는 우승상금 500만위안(약 8억4000만원)을 패자에게는 20만위안(약 3500만원)의 여비가 지급된다. 단, 최종 성적이 5승5패일 경우 상금을 절반씩 나눈다. 이 대회서 이세돌은 6승2패로 승리했다. 
 

▲ ⓒ한국기원

하지만 이세돌이 30대에 접어든 이후부턴 메이저 세계대회서 준우승만 내리 거두며 서서히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2016년 2월엔 한국 랭킹도 2위로 떨어졌다. 당시 1위인 박정환 9단은 세계무대에선 국내무대만큼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항상 ‘국내용’이라는 오명이 뒤따랐다. 

2016년은 ‘몽백합배’ 결승전서 커제와 접전 끝에 준우승했다. 이세돌은 중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바둑기사 중 한 명이다. 평소 언론과 인터뷰서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곤 했기 때문이다. “중국서 열리는 대회인데 내가 우승해서 미안합니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 “이름도 잘 모르는데 그들의 바둑 실력을 어떻게 아나요?” 등이 대표적인 이세돌의 어록이다. 


알파고 이긴
유일한 인간

2016년에는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대결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국에선 1승4패로 패했으나 당시 이세돌의 승리는 이후 알파고를 상대로 인간이 따낸 유일한 승리로 남아있다. 3패 후 4번째 대국서 알파고의 허점을 제대로 짚은 백 78수는 ‘신의 한 수’로 상징되고 있다. 이세돌은 알파고와 대결서 패배한 뒤에는 “내가 패배한 것이지 인류가 패배한 것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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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