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공천용’ 현역들의 꼼수 법안 논란
‘21대 공천용’ 현역들의 꼼수 법안 논란
  • 설상미 기자
  • 승인 2019.11.26 10:18
  • 호수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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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뭐하고…하루에 몰아치기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마지막 날이라서 어느 방은 수십 개를 접수하고 있다.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지난 달 31일 오후 8시, 국회 본청에 위치한 의안과서 한 보좌진이 한 말이다. 지난달 31일 접수된 대표발의안만 총 185건. 이 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안은 181건이었다. 왜일까.
 

▲ 지난달 31일, 내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몇몇 현역 의원들이 양치기 및 쪼개기 법안 발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의원들이 공천을 받기 위한 ‘꼼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내년 공천을 앞두고 현역의원에 대한 의정활동 평가 지표 중 하나로 ‘대표발의 법안 수’를 반영할 방침을 밝혀 의원들의 ‘양치기’ 법안 발의와 ‘쪼개기’ 법안 발의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양치기

민주당의 ‘제20대 국회의원 최종평가 시행에 관한 안내의 건’에 따르면 ▲의정활동 ▲기여활동 ▲공약 이행활동 ▲지역활동으로 구성된다. 이 중 총점의 1/3가량을 차지하는 의정활동에 2019년 10월까지의 대표발의 법안 수가 입법 수행 실적 점수로 포함된다.

만약 최종평가와 이전에 실시한 중간평가를 합산한 종합평가 점수가 하위 20%에 해당할 경우, 해당 의원은 내년 공천서 20%의 감점을 받게 된다. 경선 상대가 정치 신인이나 여성, 혹은 청년이라 가산점까지 받는다고 하면, 현역 의원이 밀릴 가능성이 높다. 평소 양질의 법안 발의에 초점을 맞춰 의정생활을 이어가던 의원들도 공천 시즌이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양치기’ 법안 발의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실제 현역 의원에 대한 공천 관련 평가에 법안발의 수가 집계되는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에는 법안이 185건 접수됐다. 이 중에는 의미 있는 법안보다 일부만 수정해 숫자를 부풀리려는 꼼수 법안이 다수로 발견됐다. 녹색당에 따르면 185건 중 181건의 법안을 민주당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달 28일부터 31일 사이에는 대표발의 법안이 급증했다. 해당 기간 동안 대표발의를 가장 많이 한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4일 동안 26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이 20대 국회 의정활동 기간 동안 대표발의한 87건 중 4분의 1을 넘어서는 건수다. 다음으로 같은 당 서영교 의원은 20대 국회 의정활동 기간 동안 대표발의한 140건 중 21건을 이 기간에 접수해 2위에 올랐다. 이 외에도 20대 국회동안 의원별로 대표발의한 건수 중 이 기간에 대표발의한 건수 비율이 5%가 넘는 의원들이 총 31명에 달했다.

이를 두고 바른미래당 노영관 대변인은 “밀린 방학 숙제하듯 말도 안 되는 법안이라도 내놓아 공천 받으려는 눈물 나는 집권당의 의원들의 행태가 우스울 뿐”이라며 “내실보다는 보여주기식 법안 발의가 곧 국회의원이 되는 길이 돼버린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부끄럽고 슬픈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어그러진 20대 국회의 진상”이라고 비판했다.

10월31일 185건 중 181건 민주당
공천심사 때문에…법안 수 채우기

단순히 대표발의 법안 수로 의원의 의정활동을 판단하는 정량평가는, 국회의 신뢰를 잃을 뿐 아니라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세경 법제관은 <대한변협신문>에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법안의 양에 치여, 양질의 법안을 검토하는 데 쏟아야 할 시간을 빼앗기는 경우도 많다”며 “의원 발의 건수는 폭증하고 있고, 그 법안을 검토할 수 있는 물리적인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입법 홍수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이때, 법안에 대한 질적 평가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양치기 법안 발의를 비판적으로 보는 당내 기류도 만만찮다.

국회 보좌진들이 활동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인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는 지난달 30일 “지금 각 의원실에선 공익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법들이 경쟁적으로 발의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좌진은 “법안 발의 개수로 의원들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현행 선출직 공직자 평가 방법에 대해 비판했다.
 

한 의원이 하나에 담아도 될 내용을 나눠 발의하는 법안 '쪼개기'도 이 시기에 집중됐다. 쪼개기 법안이 용이해 의원들에게 자주 남용돼 20대 국회서 가장 많은 법안 발의가 이뤄진 법률은 조세특례제한법(595건, 전체 법안 발의 건수 가운데 2.4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문 일부만 고쳐 쉽게 개정안을 만들 수 있는 법안의 특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녹색당은 “법률 내용 자체가 어떤 경우에 조세 특례를 준다는 것이기에 특정 사례를 담은 조문 한두 개만 고쳐 손쉽게 개정안을 만드는 방식은 남용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쪼개기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법안 쪼개기를 통해 한 건이 두 건, 세 건, 네 건이 돼 국회 사무처에 접수되면 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를 쓰고, 행정력이 낭비된다”며 법안 발의 건수 기준의 평가법에 대해 지적했다. 이어 “국회 차원서 경고해야 하고,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에 법안 쪼개기 금지와 위반 의원 제재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며 “법안 발의를 남발해 건수만 부풀리는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