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수’ 황교안 단식의 진짜 노림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11.25 10:30:32
  • 호수 12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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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해도 투쟁처럼, 굶어도 황제처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버티기 모드에 들어갔다. 최근 당 내부에서는 황 대표에 대한 사퇴 여론이 드세다. 황 대표는 이 같은 사퇴 여론에 선을 그은 직후,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은 드센 사퇴 여론에도 황 대표를 버티게 하는 세 가지 ‘전가의 보도’가 있다고 이구동성하고 있다.
 

▲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 중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장소는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으로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고발하고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그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하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갑자기
단식을?

황 대표는 지난 20일 청와대 앞에서 발표한 ‘단식 투쟁을 시작하며 드리는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를 막기 위해 저는 이 순간 국민 속으로 들어가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하겠다. 죽기를 각오하겠다”고 선언했다.

황 대표의 단식투쟁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당 안팎에서는 단식을 순수한 의미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지난 20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여권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등을 강행하려는 움직임과 외교·안보 등에서 나타나는 국정 실패에 항의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현역 의원의 지원사격도 있었다. 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00석 남짓밖에 되지 않는 의석을 가진 한국당이 이들의 패스트트랙 강행 폭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당 대표가 나서 목숨을 걸고 국민들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전향적인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당 일부를 제외하고는 황 대표의 단식을 순수한 의미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안신당 박지원 의원은 “황 대표가 21세기 정치인이 하지 않아야 할 세 가지 ‘단식, 삭발, 의원직 사퇴’ 중 두 개를 이행했다”며 “의원이 아니기에 의원직 사퇴는 불가능하지만 당 대표직 사퇴 카드는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주변 만류에도 단식 시작
‘황’ 견제할 잠룡이 없네

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도 “황 대표의 단식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도, 은폐된 진실에 대한 진상규명의 목표도, 국민적 공감대도 없는, 감동 없는 ‘단식 투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당과 같은 보수야당인 바른미래당의 최도자 수석대변인 역시 “문재인정부의 국정 난맥이나 지소미아 연장이 황 대표 한 명의 단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리더십 위기에 정부를 걸고 넘어져서 해결하려는 심산을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 김무성(사진 오른쪽)·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

비판을 종합하면, 황 대표가 자신의 리더십 위기를 돌파하는 데 단식투쟁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최근 황 대표에 대한 사퇴 여론이 거세다. 당 리더십서도 ‘여진’이 발생했다. 황 대표는 최근 박찬주 전 육군대장을 영입하려다 당 안팎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고, 그토록 공언하던 보수통합마저 답보상태에 있다.

여진이 ‘강진’으로 바뀐 시점은 같은 당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 직후다. 김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황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동반 퇴진을 요구했다. 이후 김 의원은 “현 직책서 사퇴할 것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창조적인 파괴’를 통한 쇄신론에 불을 지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곳곳서 황 대표에 대한 사퇴론이 터져 나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김 의원의 결단으로)한국당에 기회가 왔다. 그런데 그 절호의 기회가 공중분해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쇄신론 후
단식 돌입

홍준표 전 대표는 보수단체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야당을 얕잡아보고 있는데 단식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인가”라며 “문 대통령은 코웃음을 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이같이 말한 이유에 대해 “김 의원이 제기한 당 쇄신론에 중지를 모아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황 대표는 사퇴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는 김 의원의 쇄신론이 불거지고 난 후 최고위원회의서 “이번 총선서도 우리가 국민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면 저부터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총선 전 사퇴는 없을 것이라는 의사 표시였다.

황 대표는 거센 사퇴론에도 꿈쩍하지 않는 모습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당 안팎에서는 황 대표가 자신에 대한 어떤 사퇴론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세 가지 ‘전가의 보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잠룡 부재론 ▲장수교체 불가론 ▲친박(친 박근혜) 대세론이 바로 그 세 가지다.

황 대표는 복수의 여론조사서 야권 1위에 올라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전체 1, 2위를 다투는 형국이다. 이에 반해 홍준표·오세훈·유승민 등 야권의 내노라하는 대권주자들은 황 대표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황 대표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상황서 사퇴론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한국당은 민주당과 전면전을 앞두고 있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놓고 여의도에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 선거법 개정안은 오는 27일 본회의에 부의되고, 공수처법을 포함한 검찰개혁 법안은 다음달 3일 본회의로 넘어간다. 황 대표가 내세운 단식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공수처 설치법안 및 선거법 개정안 저지’다.

민주당은 여차하면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공조해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하는 일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제2의 패스트트랙 사태가 예상된다.

주류 업고
내 맘대로

물론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1일 문희상 국회의장의 주재로 패스트트랙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4당 대표가 모인 자리에 황 대표만 불참했다. 단식이라는 황 대표의 초강수에 정국이 꽉 막힌 모양새다. 이렇듯 민주당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한 상황서 장수를 교체하면 자칫 기세서 민주당에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한국당 내에서 감지된다. 


황 대표는 친박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주요 당직을 모두 친박계가 장악했다. 박맹우 사무총장, 추경호 사무부총장, 김도읍 비서실장, 김명연 수석대변인 등이 대표적인 친박계이자 친황(친 황교안)계로 꼽힌다.

황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서 당선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친박의 지원이었다. 박근혜정부서 공직을 맡거나, 박 전 대통령에 의해 당에 발탁된 의원들이 그를 측면 지원했다. 이 때문에 전당대회 직후, 나 원내대표의 당선에 이어 친박계가 여전히 한국당의 주류임을 재확인한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내대표 경선과 전당대회를 거치며 다시금 성장한 친박계가 황 대표 주변의 핵심 보직과 주요 조언 그룹에 포진하면서 쇄신론을 뭉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쇄신 대상인 영남권 의원들 중 쇄신에 화답한 사람은 김무성 의원과 김세연 의원이 전부다. 영남 의원들은 지역 민심에만 매몰돼 쇄신론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내 주류인 영남·친박계가 황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상, 사퇴론은 탄력을 받기 힘들다.

황 대표의 단식은 진정성서 의심을 받고 있다. 리더십 위기, 분출하는 쇄신 요구를 돌파하기 위한 ‘대내용’ 단식이라는 비판에 이어, 나 원내대표와 파워게임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패트에 ‘숟가락’ 얹으려?
황 vs 나 파워게임 조짐도

두 사람의 갈등이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것이 당내 중론이다. 나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 여부를 놓고 황 대표가 원칙론을 고수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최근 들어 더욱 좋지 않다는 것. 황 대표가 갑자기 패스트트랙 저지를 꺼내든 이유도 나 원내대표와의 파워게임 때문으로 보인다.  
 

▲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던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

패스트트랙 협상을 도맡아 온 사람은 나 원내대표였다. 만약 여야 원내대표 간 협상이 극적으로 이뤄진다면 황 대표의 존재감은 옅어질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황 대표가 단식에 들어간 날 오전 나 원내대표는 민주당 이인영,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와 함께 미국 워싱턴DC로 떠났다. 이들 3당 원내대표들은 4박5일간 미국에 있으며,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한 우리 측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 기간 자연스레 패스트트랙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양제 단식’ ‘황제 단식’ 논란도 일었다. 영양제 단식은 황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기 전 서울 강남의 한 병원서 영양제를 맞았다는 주장이 불거지면서 제기됐다. 병원 측은 “개인정보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황제 단식은 사무처 당직자들을 하루 12시간씩 ‘4인 1조 2교대’로 조를 짜 단식 농성장에 대기하도록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고 대기조엔 임산부 3명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단식투쟁 관련 근무 수칙’에 따르면, 당직자들은 황 대표의 건강을 30분마다 한 차례 이상씩 체크하고 농성장 근처에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있다면 농성장 접근을 막는 업무를 담당한다.

영양제 맞고
당직자 대기

이를 두고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단식했던 같은 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와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이정현 전 대표의 단식 때는 없었던 일이였기 때문이다. 당직자들은 황 대표의 단식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한국당 사무처 노동조합은 황제 단식 논란이 일자 성명서를 내고 “당 대표가 단식투쟁에 돌입한 상황서 사무처 당직자가 단식 농성장서 밤샘 근무를 서며 여러 가지 ‘비상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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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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