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암 마을’ 지도

“우리 동네가 발암지라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마을에 비료공장이 들어섰다. 이후 동네 주민들이 암에 걸리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마을을 가리켜 암 마을이라고 불렀다. 20여년 동안 사망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 사이 암에 걸린 주민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 ▲ 전수조사 및 수사 촉구 기자회견 갖는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은 암 마을로 불린다. 작은 농촌마을에 붙기엔 너무 과격한 별칭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주민 4명 중 1명이 암에 걸린 상태다. 암으로 사망한 주민도 10명이 넘는다.

18년 만에
원인 규명

장점마을 주민 수는 99. 100명이 되지 않는 주민들 중 22명이 암에 걸렸고 그 중 14명이 사망했다. 2001년 비료공장이 들어온 이후부터 주민들은 하나둘씩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 암이 유행처럼 번졌다.

주민들은 수차례에 걸쳐 2001년 들어온 공장이 의심스럽다고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암에 걸린 주민들이 세상을 떠났다. 마을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저수지의 물고기는 집단으로 폐사했다.

주민들은 20174월 암 발병의 원인으로 의심받던 비료공장 금강농산과 관련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고, 같은 해 7월 환경보건위원회가 이를 수용하면서 본격적인 조사에 돌입했다. 2001년 공장이 들어선 이후 16년 만이다.


2년이 지난 후에야 정부의 최종 결과가 나왔다.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14일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교육관서 가진 장점마을 환경부 역학조사 최종발표회인근 비료공장과 주민 암 발생간의 역학적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환경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강농산은 KT&G로부터 사들인 연초박(담뱃잎 찌꺼기)을 퇴비로만 사용해야 하지만 불법적으로 유기질 비료로 만들었다. 이는 비료관리법 위반이다. 금강농산은 20174월 공장가동을 잠정 중단했다가 그해 말 폐쇄했다.

모의시험 결과 연초박 건조과정서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와 탐배특이니트로사민 배출이 확인됐다. 공장 가동 중단 1년이 넘은 시점에 채취한 사업장 바닥과 벽면, 원심집진기 등 비료공장 내부와 장점마을 주택의 침적먼지서도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담배특이니트로사민, 다환방향족탄화수소 중 일부 물질은 국제암연구소 기준 1군 발암물질이다. 폐암, 피부암, 비강암, 간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 장점마을 남녀 전체 암 발병률은 갑상샘을 제외한 모든 암에서 전국 표준인구 집단보다 약 225배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장점마을 주민 1/4 암 발병
비료공장과 질환 관계 인정

하미나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관은 이번 조사 결과는 환경오염 피해로 인한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적 관련성을 정부가 확인한 첫 번째 사례라며 향후 환경부에선 익산시와 협의해 주민건강 모니터링과 환경개선 등 사후관리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비특이성 질환이란 특정 요인이 아닌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말한다.

환경부 발표 이후 장점마을 주민들은 역학조사에 대한 입장문을 냈다. 주민들은 역학조사서 밝혀졌듯이 주민들이 수년동안 환경오염으로 고통받고 집단으로 암에 걸린 이유는, 금강농산의 불법 행위와 허가기관인 전북도·익산시의 관리·감독 소홀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주민들이 악취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태가 발생해도 행정기관서 돌아온 답변은 문제가 없다였다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전북도와 익산시는 주민들에게 공식사과하고 배상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연초박이 원인이므로 폐기물을 제공한 KT&G도 집단 암 발병 사태에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와 함께 피해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늦게 정치권도 나섰다. 전북 익산시의회는 지난 20일 성명서를 통해 암이 집단 발병한 장점마을 사태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익산시의회는 장점마을 주민의 암 집단 발병이 금강농산의 유해물질 때문이라는 발표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주민께 깊은 사죄와 함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문제는 암 발병 사태가 장점마을뿐만 아니라 인근까지 번졌다는 점이다. 장점마을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왈인마을에서도 암 환자가 집단으로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왈인마을 주민에 따르면 비료공장이 들어온 이후 50여명의 주민들 중 확인된 암 환자만 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3명이 사망했다.

또 인근의 장고재마을서도 10명가량이 암에 걸린 것으로 전해졌다. 장고재마을의 전체 주민은 60명으로, 20%가량이 암에 걸린 셈이다. 이 가운데 45명은 사망했고 6명은 현재 투병 중이다. 왈인마을과 장고재마을은 비료공장서 1안팎의 거리에 있다. 500m 거리에 있는 장점마을과 큰 차이가 없다.

인근 마을도
암 발병 많아

주민들은 장점마을의 임 집단 발병이 비료공장의 발암물질 때문이었다는 역학적 관련성이 인정되면서 피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익산시는 왈인마을과 장고재마을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암 발병 여부를 전수조사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결과를 토대로 전수조사 대상을 확대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장점마을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환경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던 다른 지역 문제도 알려지고 있다. 인천 서구 왕길동의 사월마을도 그중 한 곳이다. 120여명이 사는 이 마을 주변엔 크고 작은 공장과 폐기물 처리업체 150여곳이 들어서 있다. 공장과 가정집 사이의 거리가 10m에 불과한 곳도 있다.

대형트럭이 내는 소음과 날리는 쇳가루에 주민들은 호흡기질환, 암 등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호소하는 주민들도 늘었다고 한다. 결국 주민들은 20172월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고, 같은 해 7월 환경보건위원회서 이를 수용해 조사가 이뤄졌다. 그리고 지난 19일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그 결과 생체 내 유해물질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참고치보다는 낮고, 암 발생 비율도 다른 지역보다 유의미하게 높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전체 세대의 70%가 주거환경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과도 함께 제기됐다. 매립지서 배출되는 유해물질과 주민들 질환 사이의 역학관계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라는 점은 확인된 셈이다.

52세대 122(20196월 기준)이 살고 있는 사월마을에는 제조업체 122, ·소매 17, 폐기물처리업체 16곳 등 165곳의 공장이 있다. 이 중 82곳은 망간과 철 등 중금속과 같은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이다. 마을 앞 수도권 매립지 수송도로는 버스와 대형트럭 등이 하루에 13000여대, 마을 내부도로는 승용차와 소형트럭이 하루 약 700대 오가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인천 사월마을의 대기 중 미세먼지와 중금속 등이 인천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고, 마을 내 토양 등에서도 중금속이 검출됐다. 2018년 겨울과 봄, 여름 3계절 각 3일간 측정된 대기 중 미세먼지의 평균농도는 55.5/로 같은 날 인근지역 측정망 농도(인천 서구 연희동, 37.1/)보다 1.5배 높았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주민 122명 중 총 15명이 암에 걸렸고 이 중 8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발생된 암의 종류가 다양하고 전국 대비 암 발생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전국의 개별입지 공장의 밀도, 14세 미만 및 65세 이상 취약인구 비율을 고려했을 때 인천 서구는 난개발 취약수준이 가장 위험한 10분위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대의 70%
주거부적합

유승도 국립환경과학원 환경건강연구부장은 이번 조사는 환경으로부터 기인한 삶의 질 관점서 주거환경 적합성 평가를 시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향후 인천시와 협의해 주민건강 조사와 주거환경 개선 등 사후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에는 경기 김포시 거물대리에 거주하다 건강 피해를 입은 주민 8명이 국가로부터 환경오염 피해 구제급여를 지급받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거물대리는 난개발로 인한 환경오염의 대명사 격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2012년 말부터 언론을 통해 거물대리 주민들이 원인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다 20132014년 예비역학조사서 중금속이 기준치 이상 발견됐고 타 지역에 비해 사망률이 높게 나타나는 등 환경오염으로 인한 주민들의 건강 피해 가능성이 확인됐다. 20152단계 역학조사서도 주민들이 토양, 대기, 농작물 오염과 관련된 중금속에 많이 노출돼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38월 당시 김포시 대곶면에 있는 공장 수는 838, 양촌읍 529, 통진읍 433개에 달했다. 하지만 김포시청서 조사 방법과 분석기관의 신뢰성 문제를 들어 20132015년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7년 환경부서 구제급여 선지급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정밀조사가 다시 실시되고 나서야 거물대리 지역의 환경오염 피해 사실이 비로소 인정됐다.

전북 정읍의 정애마을도 제2의 장점마을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북도의회 김철수 의원은 정읍 이평면 정애마을 주민 58명 가운데 4명이 암으로 숨지고 다섯 가족이 타지로 이주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2016년 정애마을 건너편에 폐기물 재활용업체가 들어선 이후 하수 폐기물, 분뇨 악취, 폐기물 처리용 화학약품 냄새로 주민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다.


김 의원은 전북도의 뒷북 행정, 느슨한 행정력이 도마 위에 오르지 않도록 폐기물 수집과 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 건강이 위협받지 않도록 직접 나서 불안과 불신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 남원의 내기마을 문제도 오래됐다. 50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 인근에 1999년 아스콘 공장이 들어섰다. 최근 10년 동안 내기마을 주민 15명이 폐암과 식도암, 방광암 등의 판정을 받았다. 역학조사 결과 마을 지하수서 기준치의 최고 26배에 달하는 라돈이 검출됐다.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아스콘 공장과 채석장, 고압 송전탑 등이 암 발병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월마을·내기마을·북이면
주민들 시름시름 앓고 있어

하지만 암 집단 발병과 공장 등의 유해물질 배출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아 현재까지도 명확한 원인 규명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다 최근 장점마을 조사 책임자였던 김성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장이 내기마을 조사가 부실했다고 양심고백을 했다. MBN 보도에 따르면 김 소장은 라돈의 측정 수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매연물질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각장이 밀집해 있는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상황도 심각하다. 북이면과 내수읍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모든 암과 폐암 발생률이 전국 평균보다 유의미하게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11일 청주시의회 환경보전연구모임이 개최한 미세먼지와 소각장으로부터 안전한 청주시 만들기토론회 발제에 나선 충북대 의대 김용대 교수는 북이면과 내수읍 주민들의 폐암 발병률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고 발표했다.
 

▲ 인천 사월마을 ⓒJTBC

김 교수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6년 사이 북이면 주민 중 105명이 폐암에 걸렸다. 전국 평균을 1로 가정해 환산하면 북이면 주민의 폐암 발병률은 1.35에 달했다. 전국 폐암 평균발병률보다 35% 높은 것이다. 김 교수는 소각장서 배출되는 다이옥신과 같은 독성물질과 미세먼지가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지난 10월 대정부질문서 북이면 문제에 대한 환경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북이면서 하루 544t의 쓰레기가 소각되면서 주민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이면 주민 5000여명 중 45명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고 지난 10년간 60명이 암으로 사망했다그중 식도암과 폐암이 경악할 수준의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조명래 환경부장관에게 물었다.

조 장관은 해당 지역의 소각장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그에 따른 피해가 우려된다암종 발생 빈도도 상당히 높기 때문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건강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건강영향평가
2∼3년 뒤에나

환경부는 지난 9월 북이면 이장들을 대상으로 주민설명회를 열고 건강영향조사 계획을 밝혔다. 지난 4월 북이면 주민 1532명이 청원을 넣은 지 5개월 만이다. 건강영향조사는 소각장서 발생하는 오염물질과 주민건강 문제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는 데 중점을 둔다. 최종 조사 결과는 23년 뒤 나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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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