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판’ 국내 급식시장 실상

돈으로 들이대는 대기업 ‘식판까지 싹쓸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기업들의 급식시장 잠식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공공기관 구내식당은 물론 대학식당까지 독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은 급식업체들은 이를 기반삼아 높은 실적 성장세를 이어온 가운데 일감 몰아주기, 독과점, 입찰 비리 등 계속되는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기준 인천공항공사의 구내식당 19곳 전부를 대기업 4곳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최경환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인천공항 구내식당은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동원홈푸드, CJ프레시웨이 등이 운영을 장악하고 있다. 

대기업 장악
누구의 편?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016년 입찰자격을 ‘자본금 50억 이상의 법인’으로 변경했다.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은 입찰에 참여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기존에 구내식당을 운영하던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교체됐다. 입찰 자격부터 대기업에 유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 의원은 “이 같은 입찰 자격이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들에게는 바늘구멍보다 뚫기 힘든 구조로 돼있다”며 “구내식당 4∼5곳을 한꺼번에 1곳 업체에 몰아주는 대기업에만 유리한 공개경쟁 입찰”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천공항공사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상생 경제를 위해 공공기관 구내식당 운영은 중소·중견업체에 위탁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사정은 공공기관 뿐 아니다. 대학교의 학생식당마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급식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75개 사립대학 중 36개 대학의 학생식당을 위탁·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를 비롯한 6개 국공립 대학의 학생식당까지 위탁·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세대, 이대, 건대 등의 서울권 사립대학은 일부 대기업들이 급식 위탁을 조건으로 학교에 상당금액을 투자해 중소기업과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의 구내식당 용역 입찰 기준도 논란이 됐다. 평가가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채비율과 영업이익 등을 평가하는 선정 기준에 중소 급식업체들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신용등급’만 평가하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공공기관들은 여전히 과거 기준을 내세웠다.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이 개정된 법을 무시하고, 구내식당 선정 기준에 중소 업체들이 불리한 항목들을 여전히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 평가 세부기준’에 따르면 공공기관 용역계약 입찰 공고 시 참여기업의 경영상태 평가는 ‘신용등급’만으로 해야 한다.

그동안은 신용등급과 부채비율은 물론 매출액과 영업이익·현금흐름 등으로 평가하게 돼있었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 상태에 대한 중복평가 요소를 제거하고 중소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법이 개정됐다.

삼성·SK·CJ 독식…설 자리 없는 중소기업
평가기준 대기업 편? 심사에 부채비율 포함

중소기업은 신용등급이 좋더라도 투자비중이 높을 경우 대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서류 심사에서 불리한 구조였던 셈이다. 그러나 경찰청 산하기관인 경찰수사연수원과 중앙경찰학교는 물론 산업은행까지 개정 전 기준으로 입찰공고를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경찰학교는 지난 29일 구내식당 위탁관리업체 제안요청서를 공고하면서 정량평가 배점한도를 40점을 배정해놨다. 정량평가에서는 주로 용역수행 실적이나 단체급식 경력은 물론 부채비율과 신뢰도 등을 따진다. 반면 정성평가에서는 업체들의 발표를 통해 운영 계획 등을 심사한다.

개정된 평가기준에 따르면 정량평가 점수는 20점 이하여야 하며, 신용평가등급 외에 부채비율 등을 심사 항목에 포함하면 안 된다.

그러나 중앙경찰학교는 부채비율을 심사 항목에 포함시켰다. 이대로라면 중소업체들은 정량심사 단계서 대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입찰에 참여하더라도 정량평가서 낮은 점수를 받아 고배를 마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체급식 대기업인 삼성웰스토리(부채비율 54%)와 아워홈(부채비율 60%) 외에는 대부분 업체들의 부채비율이 100%를 훌쩍 웃돈다. 국책은행 중 하나인 산업은행도 지난 25일 구내식당 위탁운영사업자 선정에 관한 입찰 공고를 게시하면서 특정 대기업이 아니면 아예 서류심사서 탈락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운영 능력을 검증하는 기업 신뢰도 부문에 신용등급은 물론 부채비율과 유동비율을 추가 심사 항목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또 집단 급식소 운영실적(중식 기준 700식 이상)과 HACCP 인증자격(식약처인증, 집단급식소에 한함) 등의 평가 항목도 제시했다.

사실상 대기업 외에는 입찰해도 기준 미달인 셈이다. 중소업체들은 응찰한다 하더라도 대기업의 들러리 역할만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서 발표한 공공기관의 기준을 충족하는 중소기업은 찾기 어렵다”며 “중소기업은 서류심사서 제대로 점수를 받을 수 없도록 평가 기준이 설계돼있어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과도한 기준을 제시한 것 같다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경쟁 안 된다
커지는 논란

특히 법이 바뀌었음에도 공공기관이 지키지 않고 있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구내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살펴야지, 참여하는 기업의 경영상태를 당락의 잣대로 삼는 것은 중소기업은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법 준수를 가장 먼저 해야 할 공공기관들이 과거의 기준으로 입찰 공고를 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급식시장 잠식이 도마에 오르면서 업체들 내부의 문제점들도 지적됐다.

최근 SK의 후니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6월 후니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2002억1300만원, 영업이익 108억4000만원을 올려 영업이익률 5.4%을 기록했다. 중소 급식업체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평균 2∼3%대 수준인 것과 달리 후니드는 삼성웰스토리(5.7%) 등 대기업 계열 급식업체에 버금가는 5∼6%대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꾸준히 유지했다. 현대그린푸드(4.2%) 아워홈(3.7%) CJ프레시웨이(1.7%)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이는 후니드가 지분구조상 SK그룹 계열이 아님에도 SK그룹사 오피스·연수원·산업체·건설현장·외식사업 등 급식사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덕분이다. 급식시장 내 브랜드 인지도나 시장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미약함에도 매년 높은 수익성을 시현할 수 있는 이유다.

후니드는 SK그룹 계열사들의 오피스 및 연수원 식당과 SK하이닉스 이천·청주, SK이노베이션 울산·인천, SK케미칼 울산·청주·오산 등 산업체, SK건설의 건설현장 식당 등에 급식을 지원한다. 후니드가 SK그룹으로부터 급식 일감을 지원받는 이유는 주주구성 및 지분보유 현황에서 일정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후니드의 지분내역은 유한회사에스앤아이(49.19%), 최영근(9.10%), 최은진(9.06%), 최현진(9.06%), 허기호(8.46%), 김건호(6.80%), 윤석민(4.90%), 김채헌(1.78%), 김남호(1.65%) 등으로 주주관계부터 SK그룹과 관련이 깊다.
 

▲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특히 주요 주주 가운데 최영근씨는 고(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1남 3녀 중 외아들이자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과 5촌 조카, 당숙 지간이기도 하다. 최씨는 지난해 3∼5월 15차례에 걸쳐 고농축 대마 액상을 구매·투약하고 이후에도 신원미상의 마약 공급책으로부터 3차례 대마를 구매·투약한 혐의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SK그룹 측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급식업체 후니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향후 업체조정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도 알려졌다. 후니드는 2013년 태영그룹 계열사 중 내부거래 규제 대상이던 빌딩관리·조경관리업체 태영매니지먼트를 합병하는 등 태영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도 사업 기반을 넓혔다.

부당 내부거래?
법망 피해가기


합병 이후 후니드 지분 일부를 보유한 태영그룹은 계열사 위탁급식을 후니드에 맡겼고 후니드는 태영건설 본사, SBS프리즘 타워, 태영건설의 각 공사현장 등에 급식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은 후니드 지분을 4.90% 보유하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지난 3월 김상조 전임 공정위원장이 한 번 언급했던 바 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업무계획’ 발표 자리서 ‘삼성웰스토리’를 직접 언급하며 식료품과 급식 등 국민 생활에 밀접한 업종을 중심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 말대로 삼성웰스토리는 식자재 판매와 단체 급식 서비스가 핵심 비즈니스다. 국내 급식 업체 중 매출 기준 1위다. 덩치를 크게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은 단연 배후로 깔려 있는 삼성그룹이다.

삼성웰스토리는 직원 10만여명의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삼성생명·화재·카드·증권사 등 계열사 구내식당을 책임진다. 단체 급식 계약은 통상 1년 단위로 진행되고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내부거래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삼성물산 래미안 아파트에도 조·중식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사실상 그간 일감 몰아주기로 철퇴를 맞았던 다른 대기업과 다르지 않은 모양새지만 삼성웰스토리는 규제 대상서 벗어나 있었다. 

삼성웰스토리 지분은 삼성물산이 100% 보유한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가가 31.16%를 보유해 현행법상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이다. 사익편취 규제는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비상장사나 30% 이상인 상장회사가 대상이다. 

이들 기업의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내부거래 비율이 연 매출 12%를 넘으면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삼성물산은 규제 대상이지만,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는 자회사라는 이유로 일감 몰아주기 대상서 빠졌다.

SK 급식업체 후니드 논란에 업체조정 검토
삼성웰스토리 공정위 압박에 몰아주기 비상

법망을 피한 삼성웰스토리는 문재인정부 공정위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내부거래 비중을 늘려왔다. 지난해 총매출액 1조8114억원 가운데 계열사 매출은 7100억원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39.2%에 달한다. 2016년(36.4%), 2017년(38.7%)에 이어 3년째 상승세다.

공정위는 삼성웰스토리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할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다른 방안을 찾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사익편취가 아닌 부당지원 혐의로 직원 조사에 나선 것이 그 사례다.

그러나 부당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사익편취와 달리 내부거래가 정상가격에 비해 유리한 조건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면밀하게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법 위반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단체급식 시장 규모는 약 5조원이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업계는 지난해 기준 대기업 6개사가 약 7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들은 단체급식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수치만 놓고 보면 대기업 점유 비율이 크지만 저렴하고 질 좋은 급식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대기업 급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점유율이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

수익률이 5~10%로 낮은 단체급식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 중소 급식업체들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그룹 계열사 구내식당 운영 등 내부거래를 통해 확보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다. 대기업의 이 같은 ‘독식’ 행태는 문재인정부의 핵심 국정기조인 대·중소기업 상생발전·공정경쟁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문정부 역시 대기업의 단체급식 독과점에 대한 우려를 제기, 국내 단체급식 시장에 대한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마련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시장자율’ 쪽으로 선회했다. 정부는 오는 2019년 12월까지 대기업의 단체급식 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방침을 유지키로 했다. 정부가 중소업계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부 나몰라
제도개선 시급 

이동섭 의원은 “이미 민간 급식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대기업이 단가 4000원짜리 구내식당까지 독점하는 것은 4500여개 중소업체를 말살하려는 것”이라며 “정부의 국정기조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인데 이는 이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 정부의 국정기조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공정경쟁을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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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