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푸르밀 2세의 수상한 회사 추적

전화도 안 받고…본사에 빌붙어 더부살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푸르밀 본사에는 오너 일가 회사 두 곳이 입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곳이 더 있었다. 현재 푸르밀 2세 시대를 열고 있는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의 개인회사다.
 

▲ 신동환 푸르밀 대표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은 범 롯데가 기업이다.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이자 롯데그룹 부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러나 신 명예회장과의 불화로 롯데햄·롯데우유 부회장에 머물렀다. 이후 신 회장은 롯데우유를 물적분할시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사명을 롯데우유서 푸르밀로 변경하면서 롯데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롯데우유
완전 독립

신 회장은 지난 2012년 푸르밀 주식을 자녀들에게 증여했다. 이전까지 자녀들의 지분이 없었던 관계로 2세 승계가 예고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건 신 회장의 아들 신동환 푸르밀 부사장. 그는 지난해 푸르밀 대표이사로 승진해 2세 경영의 시작을 알렸다.

푸르밀 본사는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푸르밀 외에 ‘호정무역’(무역업)과 ‘대선건설’(건설업)이 들어서 있다. 각각 신 대표와 그의 여동생 신경아 푸르밀 이사가 대표인 회사다.

호정무역과 대선건설은 2007∼2008년 푸르밀 본사 부지에 안착했다. 물적분할 이후 해당 토지의 소유권이 푸르밀로 온전히 넘어간 때였다. 이들은 푸르밀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사무실을 마련했다.

관련 내용은 푸르밀 감사보고서에 적시돼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정무역은 2008년, 대선건설은 2007년 감사보고서에 등장한다. 이들은 ‘기타 특수관계자’로서 푸르밀에 임차료를 지급했다.

푸르밀은 최근 5년간 호정무역과 대선건설로부터 임대수익을 올렸다. 세부적으로 ▲2018년 2050만원 ▲2017년 2450만원 ▲2016년 2400만원  ▲2015년 2300만원 ▲2014년 2100만원 등이다.

신 대표 개인회사 푸르밀 사옥 주소
지점엔 엉뚱한 회사가…흐릿한 실체

눈길이 가는 건 푸르밀 본사에 회사가 한 곳 더 있다는 사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세양월드’라는 회사의 주소지가 푸르밀 본사 주소와 정확히 일치했다.

세양월드는 지난 1991년 세워진 식품 관련 도소매 업체다. 해당 법인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곳은 오너 2세 신 대표의 개인회사로 보인다. 신 대표는 지난 2010년 5월 세양월드의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는 3년 단위로 두 직책을 중임했다. 최근 중임 시기는 지난 5월이었다.

신 회장과 신 이사도 각각 이름을 올렸다. 신 회장은 지난 2000년 3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세양월드의 이사였다. 현재는 어떠한 직책도 맡고 있지 않다. 신 이사는 지난 2005년 6월부터 이사와 기타비상무이사를 거쳐 사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세양월드의 구성원은 오너 일가다. 주소지는 푸르밀 본사로 뒀는데 특수관계자로 볼 수 있다. 이곳 역시 푸르밀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점쳐진다. 앞서 언급한 호정무역, 대선건설과 같은 맥락이다.
 

▲ (사진 위쪽)지난해 푸르밀 감사보고서. 대선걸설, 호정무역은 푸르밀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임차료를 지급했다. (아래)세양월드 등기부등본 캡쳐본. 세양월드는 지난 2008년 푸르밀 본사로 이전했다. 신 대표는 세양월드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현재 지점은 경기도 성남시 소재 오피스텔로 나와 있지만 다른 업체에 임대했다. 부동산 소유주는 세양월드다.

그러나 세양월드는 푸르밀 감사보고서에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호정무역 등의 경우와 상반된다. ‘실체’에 물음표가 찍히는 까닭이다.

세양월드는 비외감법인이다. 감사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공시할 의무가 없다. 그만큼 정확한 재무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어렴풋이 추정할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20여년전 재무 상태였다.

둥지 텄는데
임차료는?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세양월드는 1999년 470억원 매출에 3억1500만원 순이익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7억원의 매출과 3억원의 적자로 주저앉았다. 결국 2001년 매출은 ‘0원’까지 추락했지만 2억76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나이스기업정보에 따르면 세양월드가 0원의 매출을 기록할 당시 영업 외 수익은 11억3200만원, 영업 외 비용은 8억1300만원이었다. 이 중 수입이자는 200만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수익처는 확인할 수 없었다. 3년간 총 자산은 35억원, 27억원, 30억원으로 오르내렸다.

세양월드는 본점 외에도 한 개의 지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점은 경기도 성남 소재의 한 오피스텔.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소유주는 세양월드였다. 하지만 지점으로 등기된 주소지에는 다른 업체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영위하는 사업도 세양월드와 거리가 멀었다.

취재 끝에 세양월드 연락처로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통화음만 계속될 뿐 끝내 접촉할 수 없었다.

푸르밀 측은 최초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세양월드에 대해 “모르겠다”고 답했다. 관계자는 ‘세양월드와 푸르밀 주소가 같다’는 말에 “연락처를 남겨주면 잘 알고 있는 담당자에게 전달하겠다”고 응했다.

이후 접촉한 관계자는 “(푸르밀)본사 안에 세양월드가 있다”며 “(푸르밀과)같은 주소지를 쓰고 있고, 별도의 사무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나 사업 구상에 대해 계획하고 있는 단계”라며 식품 관련 아이템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관계자는 ‘세양월드가 신 대표의 개인회사인 만큼 특수관계자로 보인다’는 질의에 “(특수관계자가)맞다”고 답했다.

정상 운영
계약 맺어

‘특수관계자가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면 푸르밀 감사보고서에 적시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엔 “호정무역과 푸르밀이 임대차 계약을 최초로 맺었고, 세양월드는 호정무역과 임대차 계약을 맺어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푸르밀→호정무역→세양월드’로 이어지는 전대차 구조인 셈이다. 전대차는 임차인이 임차물을 제3자에게 임대하는 계약이다. 임대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이 관계자는 “호정무역을 청산하면서 세양월드만 사무실을 쓰다 보니 재임대 방식으로 푸르밀과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며 “(세양월드가)관리비 등을 내고 있다”고 해명했다. 호정무역은 지난해 7월 해산했고, 같은 해 10월 청산 종결됐다.

그러면서도 “호정무역 청산 이후 몇 달 간 세양월드와 푸르밀의 임대차 내용이 감사보고서에 누락된 것은 맞다. 이후 보고서에 적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정무역과 세양월드는 꽤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이들은 각각 1994년과 1991년 신설됐는데 설립 시기는 다르지만 두 회사는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호정무역과 세양월드는 같은 주소지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총 5번의 이사를 갔는데, 두 회사 모두 같은 곳으로 짐을 옮겼다. 등기된 날짜도 같았으며 이들이 프루밀 본사로 들어온 시기도 동일했다.

사업 영역도 비슷하다. 두 회사의 사업 목적은 상당 부분 겹친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 FIS에 따르면 호정무역과 세양월드는 모두 ‘커피 및 차류 도매업’으로 분류돼있다.

전대차 형식으로 터 잡아
“보고서에 누락된 건 맞다”

사업 내용이 유사한 점, 두 회사가 설립 초기부터 최근까지 사무실을 함께 사용한 점 등을 미뤄 볼 때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회사 관계자는 세양월드 지점으로 등기돼있던 오피스텔에 대해 “(세양월드가)오피스텔을 구입해 (다른 회사에)임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던 세양월드의 전화번호를 문의했지만 “제게 연락을 주시면 된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현재 푸르밀 주요 주주는 신준호 회장(60.0%), 신경아 이사(12.6%), 신동환 대표(10.0%) 등이다. 손자 신재열·신찬열씨도 각각 4.8%, 2.6%의 지분을 쥐고 있다. 오너 일가서만 90%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10%는 우리사주조합(6.8%), 푸르밀 자기주식(3.2%) 등이다. 사실상 푸르밀은 오너 일가 경영 체제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소유 지분만 따져봤을 때 신 대표는 3대주주에 그친다. 반면 신 대표는 푸르밀 대표이사로 선임됐는데 후계 구도가 비교적 명확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완전한 승계’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관건은 푸르밀 최대주주인 신 회장 지분의 확보 여부다. 이를 두고 다양한 경우의 수가 언급된다.

우선 해당 지분을 직접 매입 할 수 있다. 다만 충분한 재원이 동반돼야 한다. 지분을 물려받는 방식도 있지만 상당한 증여세와 상속세가 부담으로 따른다. 개인이 아닌 회사를 활용할 수 있다. 신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가 신 회장의 지분을 사들인다면 푸르밀을 간접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번호
사실상 없어

하지만 신 대표가 주인으로 있던 호정무역은 지난해 청산 절차를 밟았다. 여동생 신 이사의 대선건설서 신 대표는 1주의 주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선건설은 신 이사(72.62%)를 필두로 신 회장과 그의 부인 한일랑씨가 21.90%, 5.48%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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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