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탐사기획> ‘만들어지는’ 학종의 두 얼굴 ②문제 백화점

10년 만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다. 획일적인 입시제도를 다양화하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우려는 학종의 취지에는 공감도가 높다 . 하지만 공정성과 투명성이 결여돼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학종을 폐지하거나 운영 방식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요시사>는 학종의 도입과 현황, 문제점 및 대안을 살펴봤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입시제도를 ‘누더기’라고 표현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여론에 휩쓸려 개편을 거듭하는 입시제도의 현 상황을 꼬집은 표현이다. 또 “현행 입시제도는 학생, 학부모, 교사, 대학, 정부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개선이 어렵다”고 말했다.

불공정 낙인
학생부 종합

정부 수립 이후 대학 입시제도는 총 18번, 이번 개정안을 포함하면 19번 바뀌었다. 4년에 한 번 꼴이다. 대체적으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 역시 널을 뛰었다. 본고사, 학력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하 수능), 입학사정관제, 학생부종합전형 (이하 학종) 등 용어를 따라가기도 벅차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백년 후까지의 큰 계획)라는 말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정부 부처끼리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유은혜 교육부총리의 말이 대통령 연설로 뒤집혔다. 대통령 연설서 나온 몇 마디 말에 대학은 일제히 입시제도를 손 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국가교육회의, 대학입시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 등에서 나왔던 모든 논의와 결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정부는 출범 첫해 수능 개편을 시도했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부터 새로운 교육 과정이 적용되면서 과목 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서 수능 절대평가 과목 확대가 갈등의 씨앗으로 떠올랐다. 일부 과목과 전 과목 절대평가 등 2가지 안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종합적인 입시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결국 수능 개편 방침이 백지화되고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2022 학년도 입시제도 개편 추진 과정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입시제도는 전 국민의 관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민감한 문제라 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사이 입시제도 개편 주체는 교육부서 국가교육회의로, 국가교육회의 산하 대입개편특별위원회, 국가교육회의 산하 공론화위원회 , 시민참여단 등으로 거듭 바뀌었다. 공론화위원회서 논의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두고도 갈등이 빚어졌다. 4가지 개편안을 두고 교육계가 쪼개진 것이다.

정부 바뀔 때마다 제도 손봐
논란 불거질 때마다 뜯어고쳐

시민참여단 공론화 결과 ▲정시 45% 이상 및 수능 상대평가 유지 (1안) ▲수시· 정시 비율 대학 자율 및 수능 절대평가 전면 전환(2안) ▲ 수시·정시 비율 대학 자율 및 수능 상대평가 유지(3안) ▲정시 확대 및 학생부전형 균형 및 수능 상대평가 유지(4 안) 중 1안과 2 안이 각각 52.5%, 48.1%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공론화위원회는 1안과 2안 사이에 유의미한 통계적 차이가 없다는 점을 들어 판단을 유보했고, 국가교육위원회는 ‘수능 위주 정시 전형 확대’라는 결과를 교육부에 내밀었다. 교육부는 이를 바탕으로 ‘수능 위주 정시 전형 30% 이상 확대 및 수능 상대평가 유지’로 가닥을 잡았다.

교육부는 줄곧 정시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유 교육부총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와 관련된 입시 의혹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에도 ‘정시 확대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학종에 대한 불신과 정시 확대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지만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대신 학종 비율이 높은 대학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다.

그러다 상황이 반전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국회서 진행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27번 사용하는 등 공정 사회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국민 요구는 제도에 내재된 합법적 불공정·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고 사회 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공정성을 발휘하라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국민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계의 불공정”이라며 “최근 시작한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히 추진하고 고교 서열화 해소를 위한 방안도 강구하겠다.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의혹으로 불거진 국민들의 분노에 ‘정시 확대’ 카드를 내민 것이다.

대통령 한 마디에
대학들도 들썩들썩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서 입시제도의 공정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학종의 불공정성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교육계에선 정시 비중을 40 ∼50%까지 높이고 학생부 비교과 항목 폐지 등 학종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와 동시에 ‘학종은 불공정한 전형’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

학종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아예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고쳐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폐지를 주장하는 쪽이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쪽 모두 현행 학종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실제 학종을 둘러싼 논란은 2007년 노무현정부서 도입할 때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가 나올 때마다 교육부에선 환부만 도려내는 방식으로 제도를 뜯어 고쳐왔다. 학종의 역사는 ‘금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외부 수상 경력이 문제가 되자 교내 수상 경력으로만 한정 짓고 , 소논문이 문제가 되니 이를 없애는 방식이다. 최근 학종의 비교과 항목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땜질 처방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학종의 불공정성을 유발하는 것은 ‘정보 격차’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은 어느 덧 고리타분한 표현이 됐다. 정보는 곧 부와 직결됐고, 부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름길을 알려줬다. 학종은 그런 의미서 ‘금수저 전형’ ‘현대판 음서제’라는 별칭을 얻었다.

학종은 학교 내신 성적으로 산출하는 교과 항목과 봉사활동·동아리·독서활동 ·수상 경력 등의 비교과 항목으로 구성된다. 교과와 비교과로 채운 학생부에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 등을 종합해 평가받는다. 1차서 합격하면 면접과 수능 최저학력 기준 등을 통해 최종 합격이 가려진다. 점수에 따라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울 수 있는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다.

객관식 시험이 아니라 평가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스펙’이 필요해진 것이다. 수능 ‘한 방’으로 대학이 결정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학생과 학부모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생부 기록이 끝나는 날까지 초긴장 상태에 놓였다. 교과 성적은 물론 외부활동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학부모 전형
돈·지위 영향

학교생활만으로도 바쁜 자녀를 대신해 학부모가 나섰다. 봉사활동이나 수상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대회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친분이 있는 학부모들끼리는 정보를 공유했다. 학종은 학부모의 개입 여부에 따라 스펙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특히 학부모의 경제·사회적 지위가 정보량을 좌우했다.

대학교수들이 미성년 자녀를 논문의 공저자로 끼워 넣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2007∼2017년 발표된 논문을 조사한 결과 49개 대학이 심사한 138개 논문서 교수가 자신의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등록한 사실이 드러났다.


자녀를 공저자로 등록한 교수는 모두 86명이다.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조사했을 때에도 29개 대학서 82건이 적발됐다.

교육계에선 미성년 자녀를 교수 부모의 논문에 공저자로 등록하는 것이 입시용 경력 쌓기를 위한 꼼수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봤다. 교육부는 2014 학년도부터 학생부에 논문을 기재하는 것을 금지했다. 학종 평가서도 제외했다. 하지만 일부 대학은 여전히 특기자 전형에 논문을 지원 자격으로 두고 있다.

특별감사를 통해 추가로 드러난 건까지 합치면 교수들의 미성년 자녀가 공저자로 등록된 논문은 794건에 이른다. 이 과정서 서울대 이병천 수의대 교수가 자신의 아들을 공저자로 올린 논문이 2015학년도 강원대 수의학과 편·입학에 활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강원대에 편·입학 취소를 통보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교수 부모들이 미성년 자녀를 논문의 공저자로 올린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수들끼리 서로의 자녀를 논문의 공저자로 올리는 ‘스펙 품앗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조 전 장관 딸의 경우처럼 교육부 조사서 누락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조 전 장관의 딸은 고등학생 때 논문의 1저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조사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

학종이 매년 늘어나는 사교육비에 일조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체 초·중·고 학생 수는 줄고 있는데 총 사교육비는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사교육비는 2007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학생 수는 558만명으로 전년보다 2.5%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사교육비 총액은 18조7000억원서 19조5000억원으로 8000억원(4.4%) 늘었다. 물가상승률(2%) 의 2배 수준이다.


문 대통령 정시 확대 발언
폐지냐 개선이냐 갑론을박

하유경 교육부 교육통계과장은 “고교 사교육비가 많이 오르면서 전체 사교육비 증가를 이끌었다”며 “대학입시서 수험생들의 예측 가능성이 많이 흔들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종이 확대되고 학생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수험생들의 불안감이 사교육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값비싼 ‘입시 코디’를 고용하는 것도 마냥 허구는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입시 코디는 학생과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사조차 완벽하게 파악하기 힘든 학종을 세세히 알고 방향을 잡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대필이나 매매 등은 이미 성행한 지 오래다. 자기소개서 1회 첨삭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또 교사가 작성해야 할 학생부 기록을 학생에게 써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비교과 항목인 자율활동이나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은 글자 수에 맞춰 담임이나 지도교사가 작성하게 돼있다. 이때도 학생과 학부모는 대필 혹은 컨설팅 업체를 찾는다.

2022학년도 입시에서 자기소개서 등 전형과 관련된 서류의 대필, 허위 작성 등이 확인되면 불합격 처리하고 입학 후에라도 입학 취소를 의무화한다는 ‘2022학년도 대입전형 기본사항’이 발표됐다. 또 학생 1명의 서류를 다수의 입학사정관이 평가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이번 발표는 공정하고 투명한 입시제도 마련에 초점을 맞췄다.

교육부서 학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국민 여론은 싸늘하다. 실제 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표에 70%가 넘는 국민이 지지를 표했다. 반면 교육계에선 정시 확대와 학종 논란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불공정 전형의 대명사로 낙인 찍힌 학종에 대해서는 폐지와 개선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수능이냐
학종이냐

이종배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대표는 지난 5월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이 진행한 학종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서 “학종은 정성평가로 당락을 결정하는 깜깜이 전형”이라며 “학종은 실패한 제도로 개선될 여지가 없다. 이를 폐지하고 정시모집 비중을 9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승주 세종로국정포럼 이사장은 “수능은 악습이고 폐습이며, 학생들을 한 줄로 줄 세우는 시험평가 교육의 잔재”라며 “학종, 특히 비교과 항목인 창체 활동은 시대변화를 예측한 생명력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지만 그동안 암기 교육, 전담교사 부족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학종을 보완해 운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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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