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세대 ‘초등학교 신설’ 기준 논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1.18 11:11:39
  • 호수 12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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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버스 태워 학교 보낼 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초등학교 신설 기준을 두고 다양한 곳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1년부터 개정된 해당 법규에 따르면 최소 4000세대가 있어야 학교를 설립할 수 있다. 4000세대의 문턱을 낮출 수는 없을까.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제주, 청주, 화성 등 다양한 곳에서 초등학교 신설 기준을 맞추지 못해 설립이 무산되고 있다. 교육부는 학령인구가 점점 줄어든다는 이유로 2011년 학교 설립 기준을 최소 2000세대서 4000세대로 높였다.

학교 신설을 두고 이를 억제하려는 교육부와 요구하는 지역사회 사이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해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서 현재의 학교시설이 적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실정에 맞춰 학교를 신설하라는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교육계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학교 신설
요구에도…

지난 9월 청주 중앙초의 잇따른 증축공사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학교 학부모들은 “교육 당국의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빚어지고 있는 과대·과밀 해소를 위해 증축공사를 벌이고 있다”며 ‘학군 조정’과 ‘학교 신설’을 요구했다.

충북도교육청·청주교육지원청과 학부모들에 따르면 청주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학생 수가 2000여명서 97명으로 급격히 줄어 폐교 위기에 놓인 중앙초는 율량2지구가 개발되면서 2015년 2월 문화동서 율량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개교 당시 838명(30학급) 이었던 학생 수는 현재 1729명(57학급)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도 교육청은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의 학교 신설계획(안)이 통과된 후 아파트 추가 건설과 인구 유입 변화 등으로 48학급(1680명) 규모의 증축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2016년 3월 46학급서 2017년 11개 교실을 증축, 2018년 3월 57학급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학급당 학생 수 기준 변경 등으로 지난 6월부터 10개 교실 증축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잇단 증축 공사로 인해 학교 운동장 절반을 빼앗기고 공사 소음과 등·하교에 불편을 겪고 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당초 학급당 학생 수 기준이 35명이었으나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28명으로 바뀌면서 학급 수를 늘릴 수밖에 없어 증축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2017년 학구 조정을 심도 있게 검토해 학부모 의견을 수렴했으나, 중앙초 학부모 대부분이 학구 존치를 원하는 상황서 임의적 통학구역 조정은 비민주적 행위로 판단 및 시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교 신설은 4000∼6000세대, 학생 수 1000명 이상이 교육부 심사 기준이어서 현 상황으로는 학교설립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2011년 개정
교육부 vs 지역사회 다른 입장

지난 8월 제주도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제주도교육청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하 JDC)에 따르면 제2첨단과기단지 내 2만1000㎡에 들어설 예정인 초등학교가 기본 설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향후 개교가 어려워졌다. 2022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제2첨단과기단지 내 공동주택이 들어서도 최대 2000세대에 머물러 초등학교 신설 기준인 4000세대를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


초등학교 신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지난 8월9일 제주도의회 행정 사무조사특별위원회의 증인신문서 제기됐다.

바른미래당 한영진 의원은 “JDC는 2016년 첨단과기단지 내 아파트 분양 당시 초등학교 신설을 약속했다”며 “입주민들은 지금도 학교 신설을 믿고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분양 사기’나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첨단사업처 관계자는 “제2첨단과기단지 주택 수요를 고려해도 법령상 기본요건인 4000세대 입주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학교 설립 여부를 떠나 학교 용지는 남겨둔 상태”라고 말했다. 도 교육청은 현 여건상 초등학교 설립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화성서도 초등학교 신설을 두고 한 지역주택조합과 교육청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남양지구는 2008년부터 진행된 남양지구 사업은 2010년 도시 관리계획은 고시가 됐다. 화성시는 남양지구 남양동 371-○○일원의 공동주택건립을 위한 도시 관리계획결정에 대해, 도시관리계획 결정과 지형 도면을 승인했다.

2011년 9월7일 마도1초등학교(가칭)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가 통과돼 최초 부지로 확정을 받았다. 이때 세대수는 2133세대로 18학급이었다. 약 2개월 뒤인 11월1일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 구조 및 설치 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개정 내용에는 최소 4000세대서 최대 6000세대 당 초등학교 1개소가 설치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수차례 시도
결국 무산

주택조합 관계자는 “당시 시공사를 여러 군데 물색해봤지만,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찾지 못했다. 금융 조건 등 다양한 문제로 사업이 진척되다 시간이 흘렀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이 적정승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지체되자 학교 설립 자체도 무산됐다. 착공이 승인받은지 3년 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적정승인 받은 것이 무효가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업 관계자는 “법이 바뀐 걸 나중에야 알았다. 교육청 입장에선 공문을 보냈다고 하지만 사전에 전달받은 적이 없다. 학교 설립하기 위한 예산을 원래 사용하지 않으면 3회 연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데 자동폐기 후 취소가 됐다는 것이다. 아무 얘기가 없길래 학교 설립은 당연히 추진되는 줄 알았다. 교육부에 확인해보니 3년이 지나니까 자동으로 폐기됐다는 것이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2018년에 10월8일 주택조합 측은 지구 내 학교 유치를 다시 요청했다. 같은 해 10월18일 교육청이 인근 학교는 증축이 불가하다는 답을 보내자, 주택조합은 4000세대 미만으로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12월13일 인근 세대수를 학교 반경으로 포함해 재협의를 해달라고 공문 발송, 12월24일 인근세대수 포함한 계획안 제출에 따른 협의를 진행했다. 

해를 넘겨 ▲1월8일 남양2지구 계획 예정 사항을 포함한 공문 제출 ▲2월25일, 28일 2지구 내용을 제외했을 시 학교설립 가능한 사항 ▲3월 5~8일 2지구를 제외한 채 1지구에만 단독으로 학교 배치가 가능한지를 문의했다. 
 

3월26일 교육청은 당초 의견을 동일하되, 세대수를 충족하면 재검토가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6월11일 2지구 공식협의 요청 및 검토 이후 회신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보냈다. 지난 6월21일 남양1지구 옆인 남양2지구(1825세대)를 입원 제안에 따른 학교 용지 이동 및 학교설립이 가능한지 회신을 요청했다. 


현재는 남양 1지구와 2지구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 학교설립이 추진될 것이며 학교 위치는 아직 확정이 어렵다고 교육청은 밝혔다. 

시흥시
예외 규정

교육청 관계자는 “남양 1·2지구가 합쳐지면 4000세대가 넘는다. 그렇다면 학교를 설립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설립하려던 학교 위치를 옮길 필요가 있다. 그 위치는 1지구 세대 자녀들만 통학하기 용이하기 때문에 1지구와 2지구 중간쯤인 곳을 정한 다음에 설립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남양 2지구의 사업 속도가 아직 1지구에 비해 못 미치기 때문에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난 뒤 학교 설립추진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4월 국민청원에는 ‘변경된 초등학교 신설기준을 완화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옛날에 지어진 초등학교들과 그 이후 도시개발사업, 역세권개발사업, 재개발사업, 택지지구 신설 등 여러가지 이유로 세대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학교 용지 부담금은 걷고 있으면서 학교 신설기준은 점점 높아진다. 계획된 초등학교 부지는 법이 바뀌었으니 취소한다고 하고 세대수 기준이 더 높아졌으니 설립이 불가하다고 한다’고 게시했다. 

이어 ‘아이들은 먼 길을 걸어 먼 곳으로 초등학교를 배정받아 큰 도로를 건너다녀야 한다. 어느 특정 지역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런 문제를 겪는 곳이 많다’고 덧붙였다. 화성남양지역주택조합은 지난 7일 ‘학교설립기준완화 요구에 대한 탄원서’를 경기도 교육청에 제출했다. 

탄원서 내용에는 ‘2014년 해당 사업이 취소돼 당시 투자가 취소된다는 것을 공지받거나 전달받은 사항이 없었다. 연장신청할 기회에 대한 정보조차도 모른 상태서 사업을 추진했다’며 ‘지구단위계획변경을 하는 과정인 2018년 12월13일 설립기준이 4000세대로 변경돼 재협의가 시작됐다. 당시는 2010년 11월 도시관리계획 결정 고시 이후 2014년을 개교 목표로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득하고 교부금도 지청으로 된 상태였다. 공동주택사업의 지연으로 설립추진이 취소됐다. 교육청은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경우 유효기간 3년이 지나면 자동반납 된다는 규정이었다고 답했다. 우리는 이런 규정 사실을 전혀 알지도 못했으며 미리 고지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년동안 화성시와 오산교육지청이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서로 미루는 과정서 수천명의 우리 아이들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교육권을 명백히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인구 감소로 인해 규정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현재 화성시는 인구 유입이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 아이들이 받아야 할 의무교육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재검토를 해 초등학교 설립을 허가해 주기를 간곡해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사업 진척되자 학교 설립 무산
교육청 요구사항 계속 추가

또 ‘관련법 제 89조 학교의 결정기준 2항에는 분명히 근린주거구역의 필요에 따라 주변 여건을 고려해 설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에 따라 교육청이 방법을 강구해달라. 현행법으로 어렵다면 현실성 있는 방법이라도 고지해달라. 현재 학교가 필요하며 학교 설립 요건에도 충족된다는 교육부의 뜻을, 단서나 조항 없이 화성시로 보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화성남양지역주택조합과 교육청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청 관계자는 “법 개정으로 인해 취소된 것은 공문을 따로 발송 안 했을지 모르지만 ,구두로라도 했을 것이다. 교육청은 현행법을 따라야 하므로 절차대로 이행한 것”이라며 “남양 2지구와 합쳐지면 4000세대를 넘겨 학교 설립 추진이 가능하다. 하지만 남양 2지구 개발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지구 단위계획은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양 2지구 사업 관계자는 “현재 남양 2지구는 주민제안 참여인 상태로 정식으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화성시서 일부 보완해달라는 요청에 11월 말까지 기한을 줬다. 이후 화성시 심의를 거치고 나면 탄탄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현재 2지구는 1지구에 비해 진행이 더딘 것은 사실이지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확한 시기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남양 1지구 관계자는 “교육청이 원하는 대로 수정을 해와도 매번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행정도 좋지만 학교 인원을 작게 하는 게 추세지 않느냐. 학교를 작게 만들었다가 나중에 증축하는 방법도 있다. 또 새로운 대안도 없이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의 위치를 옮기는 것도 불가하다. 교육청이 원하는 곳에 학교를 짓는기도 쉽지 않다. 농경지인 데다 토지 비용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현실성 있는
대안 제시해야”

한편, 시흥시는 이 예외규정을 적용해 4000세대 미만이라도 통학로 등 지리적 특수성을 고려해 학교설립을 승인해 줄 것과 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감축하고 학교를 증설해줄 것을 요구했다. 경기도시장 군수협의회는 시흥시 제안 안건에 학교 준공시기를 택지개발지구 입주 시기에 맞출 수 있도록 하는 건의안을 더해 ‘수정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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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