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코그룹 3세 ‘수상한 승계’ 내막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세코그룹은 중견 자동차 부품 제조사다. 현재 오너 일가는 그룹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승계의 무게추는 3세로 향하는 모양새다. 배기욱 전무는 개인회사를 통해 그룹 지배력을 확보할 전망이다.
 

세코그룹 창업주는 고 배창수 회장이다. 기아자동차를 세운 고 김철호 회장의 사위로 장인에게 부품회사를 물려받았다. 세코그룹의 모태는 서진산업. 오너 2세 배석두 회장은 지난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이곳의 대표를 맡았다. 배 회장의 손을 거친 세코그룹은 현재 2개 상장사를 포함, 20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우뚝 섰다.

차기 회장은
배기욱 전무?

세코그룹은 자동차 부품 분야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경영·IT 컨설팅을 비롯해 저축은행 등 금융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물론 그룹 주력사는 자동차부품 관련 계열사다. 서진오토모티브와 에코플라스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세코그룹의 상장사로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모두 2조원에 달한다.

다만 두 곳 모두 124억원, 37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실적은 개선될 조짐이다. 호전세가 비교적 뚜렷하기 때문이다. 서진오토모티브와 에코플라스틱의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은 각각 6900억원, 5900억원이다. 지난해 상반기 매출액서 각각 800여억원씩 증가한 수치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51억원과 6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2억원, 28억원의 손실과 결이 달랐다.


배 회장과 오너 3세 배기욱 전무는 개인회사로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선 배 회장은 계열사와 개인지분으로 ‘인베스터유나이티드’를 쥐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배 회장은 ‘연합’ 지분 51.5%를 보유하고 있다. 다시 연합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지분 26.03%를 소유하고 있다. 배 회장은 개인적으로 인베스터유나이티드 지분 59.8%를 갖고 있기도 있다. 인베스터유나이티드가 배 회장의 개인회사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배 회장→연합→인베스터유나이티드’로 이어지는 구조다. 인베스터유나이티드는 종속회사로 오투저축은행(98.27%)과 흥국저축은행(100%)을 두고 있다.

기아차 창업주 사위 차 부품회사 시작
20개 계열사 중견그룹 ‘쑥쑥’ 성장 중

배 전무에겐 ‘미보기아’라는 개인회사가 있는데 지분이 100%다. 미보기아는 ‘서진캠’ 지분 27.34%를 보유 중이다. 더불어 100% 자회사 ‘세코홀딩스’가 지분 11.1%로 서진캠에 자리를 텄다. 배 전무의 서진캠 지배력이 강화된 셈이다. ‘배기욱→미보기아(→세코홀딩스)→서지캠’의 구조다.

서진캠은 100% 종속회사로 ‘에스제이홀딩스’를 뒀다. 다시 에스제이홀딩스는 ‘서진산업(62.50%)’으로, 서진산업은 ‘영풍기계(100%)’로 이어진다. ‘서진캠→에스제이홀딩스→서진산업→영풍기계’ 등이다. 결국 ‘배 전무→미보기아(→세코홀딩스)→서지캠→에스제이홀딩스→서진산업→영풍기계’의 구조가 구축됐다는 분석이다.

배 회장의 인베스터유나이티드와 배 전무가 미보기아를 통해 지배하는 서진캠은 핵심 계열사 ‘서진오토모티브’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인베스터유나이티드는 20.40%, 서진캠은 21.29%다. 서진오토모티브는 그룹의 핵심으로 꼽힌다.
 


서진오토모티브는 주력사 ‘에코플라스틱’ 지분 40.77%를 쥐고 있다. 다시 에코플라스틱은 ‘코모스(69.52%)’와 ‘아이아(100%)’를 지배하고 있다. ‘서진오토모티브→에코플라스틱→코모스, 아이아’의 구조다. 애코플라스틱과 코모스는 모두 해외 법인 종속회사를 품고 있다. 에코플라스틱은 미국에, 코모스는 인도·미국·체코·베트남에 법인을 세웠다.

개인회사
그룹 지배

배 전무는 미보기아를 통해 서진캠을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서진캠 이하 계열사는 범위에 포함된다. 서진캠은 서진오토모티브의 2대주주다. 서진캠이 서진오토모티브의 최대주주가 된다면, 서진오토모티브 이하 계열사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동시에 배 전무의 그룹 장악력도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배 전무가 처음부터 그룹 계열사 임원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니다. 그는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지난 2016년 서진캠 분기보고서에서 상무로 등장했다. 2017년 분기보고서에는 전무로 이름을 올렸다. 1년 만에 상무에서 전무로 ‘초고속’ 승진한 것이다.

3세 승계가 가시권에 들어온 시기는 이보다 앞선 2012년이었다. 당시 배 전무의 개인회사 미보기아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워런트를 행사, 서진캠 지분을 크게 늘렸다. 지분은 1.3%서 19.6%로 수직 상승한 뒤, 27.34%로 서진캠의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했다.

배 전무의 개인회사 미보기아는 매출을 그룹 차원서 보장받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보기아는 지난 2003년 설립된 자동차 부품 제조·판매 영위 사업체다. 2011년부터 회계법인 감사를 받았다.

당시 매출액은 136억원으로 50억원(36.77%)이 계열사 내부거래를 통해 나왔다. 전체 내부거래액 50억원서 49억원이 서진캠서 비롯됐다.

매출 절반
그룹서

2012년 이후에도 서진캠의 역할이 돋보였다. 2012년은 미보기아가 서진캠의 최대주주가 됐던 때이기도 하다. 미보기아는 당시 19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서진캠서만 84억원의 매출이 발생했다. 비중은 42.37%였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미보기아는 꾸준히 서진캠의 ‘도움’을 받았다. 전체 매출액도 덩달아 늘었다.

미보기아의 매출액과 내부거래 매출액, 내부거래 비중 등을 차례로 살펴보면 ▲2013년(243억원-111억원-45.95%) ▲2014년 (229억원-137억원-59.95%) ▲2015년 (235억원-135억원-57.73%) ▲2016년 (239억원-140억원-59.97%) ▲2017년 (202억원-99억원-48.94%) ▲2018년 (229억원-137억원-59.95%) 등이었다.
 

2013년부터는 매출처가 늘었다. 여러 기타 특수관계자들이 미보기아 매출에 관여했다. 동화,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두리, 서진기차배건유한공사, 넵스테크놀러지 등이 차례로 이름을 올렸다. 다만 그 규모는 미미했다. 서진캠의 역할이 압도적이었다.


미보기아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한 차례도 영업손실을 기록하지 않았다. 미처분이익잉여금은 2011년 67억원서 계속 쌓이기 시작했고, 지난해 215억원까지 늘었다.

미보기아는 그룹 차원서 벌어들인 매출로 현금 배당을 실시했다. 현금 배당은 지분 100%의 배 전무에게 모두 돌아갔다.

배당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초기 배당액은 7억원. 당시 당기순이익은 23억원으로 배당성향은 29.9%였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3억원으로 줄었다. 당기순이익 37억원에 배당성향 8.0%였다.

개인회사 통해 그룹 지배력 행사
내부거래 매출로 배당까지 챙겨

배당은 계속됐다. 2014년부터 배당금액과 당시 당기순이익, 배당성향 등을 살펴보면 ▲2014년 (3억원-21억원-13.7%) ▲2015년 (3억원-25억원-11.90%) ▲2016년 (3억원-35억원-8.36%) ▲2017년 (3억원-15억원-19.72%) ▲2018년 (2억원-20억원-10.00%) 등이었다. 배 전무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25억원의 배당금을 수령했다.

한편 배 회장의 개인회사 인베스터유나이티드 역시 그룹 차원서 일정 수익을 올렸다. 인베스터유나이티드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로 시작했다가 경영 컨설팅으로 종목을 변경했다.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매출은 컨설팅수익과 기타 매출, 지분법이익으로 나뉜다. 이 중 컨설팅 수익처는 그룹 계열사들이다. 지난해 인베스터유나이티드 컨설팅수익은 13억2800만2200원이었다. 서진오토모티브·서진산업·서진캠·코모스·에코플라스틱·아이아·티피에스가 영업수익 13억2875만7000원을 올려줬다.
 

티피에스서 발생한 매출 75만5000원은 특수관계자 공시에선 영업수익으로 잡혔지만, 손익계산서에는 기타매출로 적시됐다.

2017년에도 다르지 않았다. 인베스터유나이티드는 컨설팅 수익 12억9600만원을 기록했다. 서진오토모티브부터 아이아까지의 계열사와 미래아이엔텍에서의 영업수익이었다. 미래아이앤텍서 발생한 영업수익은 기타매출로 처리됐다.

수익 구조
눈길 솔솔

특수관계자 등의 영업수익이 전체 매출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으로 크지 않았다. 다만 그 이전에는 매출 100%가 계열사서 발생했다. 2016년 서진오토모티브부터 아이아까지 총 6개의 계열사서 2억3900만원씩 수익이 발생했다. 모두 14억3400만원이었다. 당시 인베스터유나이티드의 전체 매출이다. 2015년에도 매출 전액이 동일한 6개 계열사서 비롯됐다. 각각 1억6200만원씩 총 9억7200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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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