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F그룹 형제경영의 앞날

형 한입 동생 한입…‘홍석조 왕국’ 쪼개질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편의점 CU로 유명한 BGF그룹이 2세 경영체제로 돌입했다. 장남은 그룹 지주사 대표이사로 거취를 옮겼고, 차남은 전무로 승진했다. 장남과 차남의 존재감이 뚜렷해지면서 ‘형제경영’ 가능성도 점쳐진다.
 

▲ ▲▲ ▲ 홍석조 BGF그룹 장남 홍정국 대표이사와 홍정혁 전무

홍석조 BGF그룹 회장의 장남 홍정국 BGF리테일 부사장이 지난 10월31일, BGF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BGF리테일은 편의점 CU를 운영한다. 홍 대표가 사업회사서 지주회사 ‘수장’이 되면서 2세 경영의 시작을 알렸다.

2세 경영
체제 구비

BGF그룹의 세대교체도 동시에 이뤄졌다. 이건준 BGF 대표이사는 BGF리테일 신임 대표 자리로 이동했다. BGF그룹은 “경영진의 세대교체와 함께 강력한 변화와 혁신을 추진해 급변하는 유통환경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해나가고 향후 지속 성장의 기반을 확고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BGF리테일을 책임지게 될 이 신임대표는 삼성그룹을 거쳐 1993년부터 BGF그룹 영업기획팀장과 전략기획실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그룹 내 대표적 전략통으로 편의점 사업에 탁월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내실 성장과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홍 대표는 인사에 앞서 BGF 지분을 취득, 2세 경영을 예고했다. 지난 5월 홍 대표는 홍 회장과 어머니 양경희 BGF복지재단 이사장 지분을 시간외매매로 사들였다. 홍 대표의 BGF 지분은 1% 미만서 10% 이상으로 크게 뛰며 2대주주가 됐다.


홍 대표는 스탠퍼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 코리아서 근무했다. 이후 와튼스쿨 대학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BGF그룹에 입사했다. 1982년생인 홍 대표의 당시 나이는 32세. 그는 상무로 시작해 35세에는 전무, 36세에는 부사장을 지내며 올해 39세에 사장직을 맡게 됐다.

‘젊은 피’ 오너 2세 전면에 등장
승계는 장남? 차남 향한 기대도

홍 대표는 몽골 등 해외시장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 대표는 BFG서 책임 경영 강화, 그룹 신성장 동력 발굴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차남 홍정혁 BGF 상무는 지난달 1일 전무로 승진했다. 홍 전무는 카네기 멜론대학과 게이오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넥슨과 미쓰비씨, KPMG 등 아세안 지역 전략컨설팅 매니저를 두루 거쳤다.

홍 전무는 지난해 6월 실무부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신사업개발실장(상무)으로 입사했다. 올해 7월부터는 친환경 신사업 발굴에 나서며 그룹 계열사 대표를 맡았다. 홍 전무 역시 37세로 형과 같은 나이대다.
 

30대 형제가 동시에 등장하면서 다양한 분석이 있었다. 먼저 이번 인사로 그룹 경영권과 한층 더 가까워진 건 홍 대표다. 2대 주주로 자리를 잡은 뒤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사의 대표가 됐기 때문이다. 홍 대표의 무게감이 한층 묵직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BGF 주요 주주는 홍 회장(53.34%)과 홍 대표(10.29%)다. 홍 전무는 0.03%로 지분 자체는 미미하다.

홍 전무가 지난해 상무로 입사하면서 형제 간 경쟁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차남이 그룹에 발을 들인 만큼 후계구도에 대한 조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의 남매 경영처럼 귀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2세 경영 형태의 가변성이 높은 상황인 만큼 추후 구도를 예단하기란 쉽지 않다.


형제 경영
어떻게?

선명한 점은 그룹 지주사인 BGF의 최대주주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그룹을 주무를 수 있다는 것. BGF그룹은 국내·외를 포함해 2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유통대기업이다. 주력사는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이다. 지주사 BGF와 주력사 BGF리테일 모두 상장사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BGF그룹 주요 계열사 간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최정상에 지주사 BGF가 있다. BGF는 100% 종속회사로 ▲BGF네트웍스(자료 처리업) ▲BGF휴먼넷(편의점 운영업) ▲BGF보험서비스(보험대리 및 중개업) ▲BGF포스트(화물 수탁 알선업) 등을 품고 있다.

이어 BGF는 ▲헬로네이처(50.1%·농수축산물 소매 및 전자상거래) ▲BGF에코바이오(83.3%·친환경제품 제조 및 판매업) ▲사우스스프링스(94.8%·골프장 개발 운영업) 등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BGF에코바이오는 홍 전무가 입사 이후 대표를 맡은 곳이다. 홍 전무는 상무로 입사해 1년 동안 신사업 아이템 발굴에 집중, 친환경 사업에 역점을 뒀다. 이후 BGF에코바이오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는 지난 6월 설립돼 BGF그룹 자회사가 됐다. BGF는 이번 인수로 친환경 플라스틱 제조 관련 핵심 기술력과 생산 노하우를 보유하게 됐다.

BGF에코바이오는 국내 유일의 생분해성 발포 플라스틱을 전문적으로 제조한다. 회사는 플라스틱을 따로 재활용하거나 수거하는 과정 없이 매립만으로 6개월 이내 완전 분해가 가능한 친환경 관련 핵심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신성장 동력
발굴에 앞장

BGF는 핵심 계열사 BGF리테일 지분을 30% 쥐고 있다. 이어 홍 회장(7.36%)을 필두로 여러 특수관계자들이 소수 지분을 갖고 있다. BGF를 포함한 이들 지분의 합은 55.43%다.

BGF리테일은 상당한 실적을 자랑한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만 2조8000억원을 넘는다. 이마저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12억원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도 870억원으로 48억원 늘었다.

다만 올해 3분기 실적은 흐린 편이다. BF리테일의 매출은 1조582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 상승했다. 다만 영업이익이 64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502억원으로 5.3% 늘었다.
 

BGF리테일은 ▲BGF로지스(일반 창고업) ▲BGF푸드(식료품제조업) ▲씨펙스로지스틱(자동차 운송업) 등을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씨펙스로지스틱의 경우, BGF로지스의 100% 종속회사다.


홍 회장과 장·차남은 지주사 전환 이전에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었다. 일례로 BGF네트웍스서 이들은 각각 8%대 지분을 쥐고 있었다. 지분합은 25%를 넘었다.

당시 BGF네트웍스는 용인·양주·강화 소재의 BGF 물류회사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해당 물류회사 매출 대부분이 BGF리테일서 나오면서 일감 몰아주기 지적이 있었다. BGF리테일이 오너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다는 것이었다.

물류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주목하는 비주력업체 중 하나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 물류회사를 포함해 시스템통합(SI)·부동산관리·광고회사 등에 감시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해당 영역서 일감 몰아주기로 지적을 받거나 적발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주사 정점…신 먹거리 발굴 박차
계열사 지분 털고 내부거래 빗겨가

그러나 홍 회장 등은 지주사 전환과 함께 계열사 지분을 정리했다. 지난 2016년 BGF로지스용인은 양주·강화·대구·팔탄·화성 소재 BGF로지스를 흡수합병했다. 이후 사명을 오늘날의 BGF로지스로 변경했다. BGF네트웍스는 BGF리테일의 100% 자회사가 됐다.

BGF그룹은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서 비교적 여유로워졌다는 해석이다. 현재 홍 회장 등은 BGF와 BGF리테일 지분만 보유하고 있다.


다만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현재진행형이다. BGF로지스는 BGF리테일의 ‘전용 운송 창구’로 불린다. BGF로지스 매출 대부분이 BGF리테일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BGF로지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496억원. 이 중 BGF리테일서 발생한 매출이 1483억원이었다. 비중만 봤을 때, 99.14%로 압도적이다.
 

 

매출은 이전부터 BGF리테일의 전적인 영향을 받았다. 2015~2017년 상황(매출액-BGF리테일서 발생한 매출-비중)을 살펴보면 ▲2015년(365억원-296억원-81.14%) ▲2016년(1112억원-916억원-82.35%) ▲2017년(1353억원-1111억원-82.13%) 등이다. BGF리테일서 발생한 매출이 많을수록 BGF로지스의 매출액도 덩달아 증가했다.

BGF푸드도 마찬가지다. BGF리테일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지난해 BGF푸드의 매출액 559억원서 545억원이 BGF리테일서 나왔다. 100%에 가까운 97.34%의 비중이었다. BGF푸드 역시 지난 3년간 상황을 살펴보면 ▲2015년(328억원-324억원-98.69%) ▲2016년(456억원-449억원-98.42%) ▲2017년(567억원-457억원-80.49%) 등이다. 

오너 일가
지분 정리

2017년의 경우 나머지 관계사들의 내부 거래량까지 더할 경우, 비중은 80.49%서 98.37%까지 늘어난다. 내부거래 매출도 457억원서 558억원으로 뛴다. BGF리테일과의 내부거래 매출액이 증가할수록 BGF푸드의 매출액도 동시에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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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