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역대급 재벌가 상속세 TOP7

돈?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한진그룹의 상속세 신고로 재벌 상속세에 다시 관심이 모인다. 현재까지 1000억원 이상의 상속세를 내야했던 기업은 총 7개. 모두 납부한 기업이 있는 반면 아직까지 진행 중인 기업도 여럿 보인다. <일요시사>서 역대 재벌 회장님들의 상속세 규모를 순위별로 정리해봤다. 
 

▲ 구본무(LG그룹)·신용호(전 교보생명)·고 이운형(전 세아그룹)·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상속으로 내야 할 상속세는 사상 최대인 9000억원 규모였다. LG에 따르면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전 회장의 ㈜LG 주식 11.3% 가운데 8.8%를 상속했다. 구 회장 지분은 기존 6.2%서 15%로 늘어나면서 최대주주가 됐다. LG는 LG전자, LG화학 등 계열사를 지배하는 지주사다.

9000억

구 회장과 함께 장녀 구연경씨 2.0%(346만4000주), 차녀 구연수씨 0.5%(87만2000주)도 각각 분할 상속받았다. 구 회장 등 상속인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5년간 나누어 상속세를 납부하게 됐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 등 3남매가 내야 할 상속세가 9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봤다. 주식 상속세는 고인이 사망하기 전 2개월, 사망 후 2개월 등 4개월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정한다. 이 경우 전체 상속 지분 규모는 1조5200억원 수준이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할증세율 20%가 추가된다.

주식 상속 규모가 30억원 이상이면 과세율 50%가 적용된다.


전체 상속세 9000억원 중 구 회장이 납부해야 할 세금은 7000억원 이상이다. 이는 역대 상속세 중 사상 최대 규모다. 구 회장 등 3남매는 상속세 규모가 큰 만큼 연부연납 방식으로 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연부연납은 상속세 규모가 클 경우 여러 해에 나눠 분할 납부하는 제도다.

재계에선 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담보로 대출 받아 세금을 납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LG그룹 관계자는 “상속인들은 국내 역대 상속세 납부액 가운데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LG 주식에 대한 상속세를 관련법규를 준수해 투명하고 성실하게 납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700억

지난달 29일 조양호 전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2700억원대의 상속세를 국세청에 신고했다. 

우선 조 전 회장의 유족은 연부연납 제도에 따라 1차로 45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납부할 것으로 보인다. 

조 전 회장의 유족은 고인의 급여와 퇴직금, 지분 등을 활용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조 전 회장이 보유한 지분은 상장사에서는 한진칼(17.84%), 한진칼 우선주(2.40%), ㈜한진(6.87%), 대한항공(0.01%), 대한항공 우선주(2.40%)와 비상장사에서는 정석기업(20.64%), 한진정보통신(0.65%), 토파스여행정보(0.65%) 등이 있다.


조 전 회장은 사후에 대한항공, 한진칼, ㈜한진, 진에어, 한국공항 등 5개 상장 계열사서 총 702억원의 급여를 수령했다. 그 중 퇴직금은 총 650억4500만원에 달한다.

역대 1위는 LG그룹…압도적인 격차 
기업별 납부 전략은…연부연납 답?

여기에 한진그룹은 조 전 회장의 보유지분을 일부 정리하면서 상속세 재원을 마련했다. 최근 한진그룹은 조 전 회장의 ㈜한진 지분 6.87%를 GS홈쇼핑에 250억원에 매각했다.

조 전 회장의 유족은 민법서 정한 비율대로 지분을 나누기로 합의한 것으로 관측된다. 보유했던 주식에 대한 배우자 및 직계비속의 법정상속분은 별도 유언에 따른 증여가 없으면 조 전 회장의 부인인 이 이사장과 세 자녀 등 4명은 각각 ‘1.5대 1대 1대 1’의 비율로 나눠 받게 된다.

민법에는 배우자와 자녀의 상속순위가 똑같이 1순위지만, 상속분은 배우자에게 50% 가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조 전 회장이 보유한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법정 비율대로 상속하면 이 전 이사장은 5.94%, 조 회장 등 자녀 3명은 3.96%씩 나눠 받게 된다.

1800억

2003년 타계한 신용호 교보생명 전 회장의 유족들은 183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했다. 신 전 회장의 유족들은 유족들은 비상장주식, 부동산 등을 포함해 30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물려받은 후 주식을 물납하는 방식으로 약 1340억원의 상속세를 신고 납부했다.

하지만 국세청 상속세 조사 후 500억원가량이 늘어나 최종적으로 1840억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이 과정서 유족들은 물납한 비상장주식에 대해 증권거래세를 부과한 국세청을 상대로 조세불복을 제기하기도 했다.

1700억

2013년 타계한 이운형 세아그룹 전 회장의 후손들도 상속세 모범납부 사례로 꼽힌다. 세아그룹 3세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부사장은 세아제강과 비주력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고 주식담보대출까지 받아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부사장은 지난 2013년 이운형 선대회장이 해외출장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작고하면서 세아홀딩스와 세아제강의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이 부사장은 모친인 박의숙 세아네트웍스 회장과 세 누나와 함께 3800억원에 가까운 자산을 상속받았다.

상속재산이 많은 만큼 세금 부담 또한 자연스럽게 커졌다. 가장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이 부사장은 17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부과받았다. 1000억대에 달하는 상속세는 이 부사장에도 부담으로 작용한 듯했다.
 

▲ (사진 왼쪽부터)이임용 태광산업 전 회장, 전락원 파라다이스그룹 전 회장,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

하지만 이 부사장은 ‘세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난 2013년 9월 연부연납을 신청하고 매년 1회씩 5년간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기로 했다.

이 부사장은 선대 회장이 작고하면서 이 부사장은 세아제강 지분 8.38%를 상속받아 총 지분 19.12%로 세아제강 최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그는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아제강의 지분을 수차례에 걸쳐 매각했다. 세아제강은 이 부사장의 사촌인 이주성 부사장이 경영하고 있는 곳으로 수 차례에 걸친 지분 매각에 따라 이태성 부사장의 세아제강 지분은 4.2%에 불과하다.

1500억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상속세 1500억원을 5년간 나눠서 내고 있다.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은 오뚜기 46만5543주(13.53%)를 함영준 오뚜기 회장에게 전량 상속했다. 계열사 조흥 주식(1만8080주, 3.01%)도 함영준 회장에게 넘겼다. 오뚜기 창업자인 함 명예회장이 별세한 지 3개월 만에 상속이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함 회장의 오뚜기 지분은 15.38%서 28.91%로 높아지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고 함 명예회장은 1990년대 말부터 경영권을 장남에게 넘겼지만 최대주주 자리는 운명 직전까지 지켜왔다.

함 회장은 수천억대원대의 상속세를 부담해야 한다. 상속세·증여세법에 따르면, 30억원 이상의 상장 주식을 증여하면 증여세 50%가 부과된다. 현재 오뚜기 주가는 65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어 상속세는 1500억원대를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내기전…편법상속 시도
내고도…넘치는 의혹들

함 회장은 수천억원대 상속세를 5년간 분납할 예정이다. 상속세·증여세법에 따라 상속세가 2000만원 이상일 경우 최대 5년간 분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 회장은 상속세 재원으로 배당금을 활용할 여지가 크다. 오뚜기 주당 배당금은 2011년 2500원서 지난해 520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작년 배당성향은 16.81%로 높은 편이 아니다. 함 회장이 작년 오뚜기(28억원), 오뚜기라면(26억원) 등 5개 계열사를 통해 받은 배당금도 60억원 수준이다.

추후 5년간 함 회장이 매년 수백억원대의 상속세를 분납해야 하는 만큼 오뚜기 등 계열사 배당성향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고 함 명예회장의 두 딸인 함영림 이화여대 교수, 함영혜(주부)씨 등은 이번 오뚜기 주식 상속서 배제됐다.

1300억

2004년 별세한 설원량 대한전선 전 회장의 유족들도 1355억원의 상속세를 부담했다. 당시 상속재산 중 대한전선의 주식 가치는 937억원에 달했지만 설 전 회장 일가는 대주주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 상속세를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납부했다. 

당시 대한전선은 설 전 회장 부인인 양귀애 대한전선 고문과 장남 윤석씨, 차남 윤성씨 등 유가족이 3339억원 재산을 상속받음에 따라 1355억원의 상속세를 반포세무서에 신고했다. 

설 전 회장 유가족은 3339억원에 상당하는 상속재산을 받게 돼 이 같은 상속세를 낸다고 신고했다. 상속재산은 상장사인 대한전선 주식 1297만여 주(평가총액 937억원) 등 유가증권과 부동산 770억원을 비롯해 기타 유가증권과 현금성자산, 동산 등으로 구성됐다. 고 설 회장의 대한전선 지분(32.44%)은 윤석씨(22.45%)와 윤성씨(6.81%), 양고문(3.20%) 등에게 나눠 상속됐다.

이에 따라 두 아들이 최대주주인 삼양금속(30%)이 단일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윤석씨가 실질적인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당시 대한전선 관계자는 “고인의 평소 뜻에 따라 상속세 신고에 누락되는 부분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1955년 설립된 대한전선은 지난해 1조2461억원 매출에 433억원 순이익을 기록했으며 옵토매직, 삼양금속, 대한벌크터미널 등 7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1000억

1996년 말 세상을 떠난 이임룡 태광산업 전 회장의 유족들은 106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했다. 사망한 다음해인 1997년에 장남인 고 이식진씨는 태광산업 주식 4만6732주(4.2%)와 대한화섬 6만5708주(4.95%)를 상속했으며, 이호진 태광산업 회장도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식을 각각 4.2%와 4.95%씩 물려받았다. 

당시 태광산업 주가는 40만8000원, 대한화섬 주가는 7만4000원으로 두 사람이 각각 239억원 상당의 지분을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 이 회장 일가는 106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했다. 현재 이 회장(15.14%)을 비롯한 일가 10명의 태광산업 지분은 28.75%다.

하지만 태광그룹은 편법 상속 의혹에 휘말렸다. 이임룡 회장이 사망한 뒤 자녀들이 재산을 상속하는 과정서 차명으로 관리되던 태광산업 발행주식의 약 32%가 공식 상속재산 목록서 누락된 것으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 외에도 최종현 SK그룹 전 회장의 유족들은 73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했고 전락원 파라다이스그룹 전 회장 일가는 436억원의 상속세를 국세청에 신고했다. 2001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유족들이 낸 상속세(302억원)는 상대적으로 너무 적은 액수로 눈길을 끈 사례다. 이후 현대자동차그룹 등 범 현대가 계열사들이 편법상속 의혹으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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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