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 송원그룹 외동딸 자질론

패션 전문가에 화학을…그러니 제자리걸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기초소재 강자로 손꼽히는 송원그룹의 실적이 흐릿하다. 가업을 승계 받은 김해련 회장은 그룹 주력사업과 거리가 먼 패션분야 전문가. 승계 당시 우려가 있었지만 비전 선포식을 통해 불식시키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 김해련 송원 회장

송원그룹은 화학·기초소재 주업의 중견 화학그룹이다. 지난 1975년 설립된 한국전열화학공업이 모태다. 창업주는 고 김영환 회장. 김 회장은 빈농서 태어난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한 우물만 판 끝에 산업용 기초 소재 전문회사를 중견그룹으로 키워냈다. 

창업주
자수성가

김 회장은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않고 장학회를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생전 검소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김 회장은 지난 2014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경영권은 외동딸 김해련 회장에게 돌아갔다. 무남독녀인 김 회장은 그해 6월 취임식을 가졌다. 본격적으로 2세 경영 궤도에 오른 셈이다.

김 회장은 패션분야의 입지적 인물로 꼽힌다. 여성복 브랜드 ‘아드리안느’와 국내 최초 온라인 백화점 ‘패션플러스(구 에이다임)’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2006년경 부친의 간암 판정 이후 조금씩 회사 경영에 참여, 후계 수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패션과 화학의 교집합을 찾기 어려웠다. 업계 안팎서 불거진 우려의 배경이었다.

김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새로운 성공, 도약 1·3·5·7’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2020년 매출 1조원 달성 ▲신사업 3000억원 매출 ▲5개 상장사 ▲세계 최고 제품 7개 등 김 회장의 포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송원그룹은 ‘2019 경영방침’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오너 2세 김 회장, 직접 방향키 잡아
‘2020 프로젝트’ 가시적 성과 ‘흐림’

그룹은 “2020 1357이 구체화되고 있고, 앞으로 남은 2년 안에 충분히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되고 있다”며 “이제 우리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크고 원대한 꿈을 꾸자”고 밝혔다. 다만 5여년이 지난 오늘날, 김 회장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찍힌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송원그룹 지분구조는 크게 ‘김 회장→태경산업→백광소재→태경화학’ 순이다. 김 회장은 23.28%로 ‘태경산업’의 최대주주다. 태경산업은 49.5%로 백광소재의 최대주주이고, 다시 백광소재는 40.01%로 태경화학의 최대주주다.
 

그룹 주력사는 태경산업이다. 태경산업은 관계사 등을 통해 여러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연결 대상 회사는 백광소재와 태경화학을 비롯해 ▲남영전구(종합전구 제조) ▲태경에코(산업용 가스 및 각종 환경처리제 생산) ▲태경에프앤지(휴게소 운영) ▲태경가스기술(산업용 가스 충전 및 기화기 제조판매) ▲태경네트워크(드라이아이스 판매) ▲에스비씨(화공약품, 비철금속의 제조· 판매) ▲태경그린가스(액체탄산 제조·도소매) 등이다.

중국과 베트남 소재의 해외투자법인 두 곳도 포함된다.

태경산업 매출액 변화를 살펴보면, 공언했던 1조원 매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연결 기준 매출액은 2014년 4076억원서 2015년 3538억원으로 한풀 꺾였다. 이후 2016년 4446억원, 2017년 5637억원으로 상승했고 지난해엔 5634억원으로 보합세를 보였다. 1조원의 고지를 밟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 까닭이다.


1조 매출
글쎄∼

올해 매출은 오히려 감소할 공산이 크다. 태경산업의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612억원, 64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액은 2841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134억원이었다. 매출액은 200억원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반 토막이 났다.

송원그룹 상장사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전체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태경산업의 별도 기준 매출액은 69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58억원 감소했다. 백광소재와 태경화학도 마찬가지다. 백광소재는 744억원, 태경화학은 206억원을 기록했지만 각각 81억원, 21억원씩 감소한 수치다.

공시서 확인할 수 있는 관계사들은 지난해 소폭 오르내렸다. 2020년 1조원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서 성장이 더디다는 해석이다.

남영전구의 지난해 매출은 637억원으로 전기에 비해 34억원 올랐다. 다만 당기순이익이 46억원에서 4억원으로 주저앉았다. 태경에코는 지난해 60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57억원 증가했지만 당기순이익은 5억원가량 줄어든 23억원이었다. 태경에프앤지는 지난해 5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전년에 비해 4억원 감소했고, 당기순이익은 5000여만원에 불과하다.

신사업
불투명

김 회장은 지난 2015년 기초소재 제조 전문 기업 에스비씨를 인수, 두 번째 목표인 ‘신사업 3000억원의 매출’에 포문을 열었다. 화장품 원료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송원그룹은 2016년 10월 천연미네랄 성분으로 만든 자외선 차단제를 출시했다. 김 회장은 이날 제품 론칭 발표회에 참석해 해외 기업 제품과 비교하며 “내츄럴징크는 높은 품질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대까지 갖추고 있어 국내 화장품 원가 절감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에스비씨의 매출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2016년 565억원을 시작으로 2017년 776억원, 2018년 810억원으로 상승세를 탔다. 다만 ‘매출 3000억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출은 늘었지만 손실을 보기도 했다. 에스비씨 당기순손실은 2016년 4억원서 2017년 105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다만 지난해 순손실이 9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눈길이 가는 건 에스비씨의 인수 시점. 에스비씨는 송원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2014년 1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던 중이었다.

매출 1조 클럽 등극? 아직은 요원
신성장동력·상장계획…‘관망세’

김 회장은 지난 2014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신성장동력으로 에스비씨와 함께 재생연료 ‘페트로코크스’를 지목했다. 페트로코크스는 원유 정제 과정서 남은 잔사유(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값싼 중질유)로 만든 재생연료다. 석탄에 비해 발열량이 높아 보일러나 용해로 등의 연료로 쓰인다.


태경산업은 사업보고서를 통해 “원가경쟁시대에 직면한 저에너지사용 전환의 일환으로 페트로코크스 사업을 투자해 2015년 3월부터 가공·판매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백광소재는 2014년 5월 페트로코크스 제조설비를 준공했다.

태경산업은 페트로코크스 사업에 대해 “2019년 매출증대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태경산업 매출액서 페트로코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상반기 164억원(6.29%), 지난해 상반기 236억원(8.31%)에 그쳤다. 최근 3년간 기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016년 263억원(5.93%), 2017년 593억원(10.53%), 지난해 422억원(7.50%) 수준이었다.

성적표
빨간불

상장사를 5개로 늘린다는 계획 역시 제자리걸음이다. 김 회장이 취임한 2014년 상장사는 ▲태경산업 ▲백광소재 ▲태경화학 등으로 모두 3개였다. 현재까지도 송원그룹의 상장사는 늘지 않았다. 상장이 예상되는 곳은 ▲에스비씨 ▲남영전구 ▲경인에코화학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해당 회사들의 상장은 감감무소식이다. 한국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서 조회할 수 있는 예비심사기업서도 태경산업 등을 제외한 송원그룹 관계사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기업인 대화’, 김해련 회장은 왜?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초 기업인 128명을 초청해 ‘2019 기업인과의 대화’를 열었다. 사전에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업인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현장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참석자 가운데 3명의 여성 경영인이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대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가 아니었다. 청와대 등에서 여성을 중용하는 사회 분위기 등을 고려한 것으로 판단됐다.

김해련 송원그룹 회장은 정기옥 엘에스씨푸드 회장과 김재희 이화다이아몬드공업 대표이사 등과 함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수>

<기사 속 기사> 남영전구 수은 중독, 그 이후…

지난 2015년 남영전구 광주공장서 집단 수은 중독 사태가 발생했다. 남영전구 하도급업체에 소속된 일용직 노동자들은 당시 광주공장 형광등 제조시설 철거 작업을 위해 투입됐다. 이들은 작업 후 극심한 통증과 불면증, 불안장애, 뇌 기능 저하 등 후유증에 시달렸다. 수은에 중독됐던 것이다.

피해자들은 작업 현장에 수은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고 이를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고 호소했다. 회사 대표 등 책임자들은 철거 현장에 수은이 남아있었지만 설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폐기물관리법 위반 등)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지난달 1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광주전남지부에 따르면 광주지법 민사13부는 노동자 6명이 남영전구 광주공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서 양측의 화해를 권고했다. 피해자들과 사측 모두 화해 권고문을 송달받은 뒤 2주 내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권고안은 확정된다.

민변 광주전남지부 측은 마지막 기한까지 사측이나 노동자들의 이의제기가 없었다고 밝혔다. 법원이 권고한 배상 규모는 원고 측 청구액의 3분의 1 수준이다.

민변 광주전남지부 사무차장 장은백 변호사는 “그동안 피해자들이 많은 고통과 상처를 겪었음에도 회사 측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고, 배상 판결이 늦어져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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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